공복이 공적 됐다
  • 이상돈 | 중앙대 명예교수 ()
  • 승인 2014.04.30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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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는 너무나 엄청난 일이라서 무어라고 말을 하기가 어렵다. 사고 그 자체도 어처구니없지만 전복돼 서서히 가라앉는 선박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보고 있어야만 했다니 믿기지 않는다. 그 배 안에 300명이 갇혀 있었다는 데 대해 표현할 방법이 없다.

세월호는 애당초 항해를 해서는 안 되는, 감항(堪航) 능력이 없는 선박이었다. 일본에서 중고 선박을 싸게 도입해 승객을 더 태우기 위해 무리하게 증축했지만 선급협회가 하는 구조 변경 검사를 통과했다. 선박 구조 검사를 하고 있는 선급협회라는 단체는 선주들이 출자해서 세운 기관인데, 해양수산부 출신 관료가 대표를 맡고 있다. 규제 기관인 해수부는 규제 권한을 업계에 넘겨주었고, 업계는 해수부 출신 고위 관료에게 직장을 제공하는 등 서로 편의를 봐주면서 선박 안전을 등한시해왔음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세월호 선장 등 선원의 다수가 임시직이었으며, 선박의 조타 시설이 고장임을 알고도 항해를 강행했다는 사실도 놀랍다. 그런 세월호가 해경으로부터 여객 사업 면허를 얻었으며, 해운조합으로부터 안전관리 검사를 받아 운항을 했다는 사실 또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세월호가 소속된 청해진해운이란 회사가 어떻게 해서 인천-제주 운항을 독점해왔는지도 미스터리다. 세월호는 과적(過積)을 일삼았을뿐더러 컨테이너와 차량을 제대로 묶지도 않은 채 운항해왔음이 밝혀졌으니 기가 막힐 일이다. 이런 모든 일은 관(官)과의 유착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촌각을 다투는 해난 사고를 신고받고도 우왕좌왕했던 일선 기관이나, 사태가 발생한 후 허둥지둥한 중앙정부의 모습은 보기에도 딱했다. 그 와중에 장관이니 국회의원이니 하는 작자들이 보여준 모습과 언동은 추태 그 자체다. 자식을 차가운 바닷속에 묻은 부모들이 피눈물을 흘리고 있고, 해군과 해경 그리고 민간 잠수대원들이 생명을 걸고 구조 작업을 펼치고 있음에도 관료들은 이 엄청난 비극을 남의 일 보듯 했다. 그렇지 않다면 기념촬영이니 라면 취식이니 하는 터무니없는 일이 일어날 수 있겠는가. 대한민국의 관료는 국민의 공복(公僕)이 아니라 국민의 공적(公敵)이 돼버린 양상이다.

선급협회 등 해수부 유관 민간 기구에 해수부 관료 출신들이 포진한 데 대해 십자포화가 쏟아지고 있지만 그런 관행은 전 부처에 만연해 있는 고질병이다. 오히려 이런 사실을 이제야 처음 알았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다. 고시 출신들로 채워져 있는 해경 지휘부가 바다 현장과 유리돼 있어 비상시 대응이 취약하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멀리서 볼 때 세월호는 멀쩡해 보였다. 그러나 그 속은 썩을 대로 썩었다. 수많은 인명을 앗아갔고 또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못을 박은 세월호는 일그러진 우리의 자화상(自畵像)이다. 세월호가 침몰하고 있을 때 선장은 브리지에 있지도 않았고 제복을 입지도 않았다. 침몰하는 배를 버리고 자기들만 살겠다고 구조선에 옮겨 탄 선장과 선원들에게 애당초 명예와 책임은 존재하지 않았다. 대한민국호를 이끌고 있는 정부 고위 관료, 대기업 경영자 등 우리 사회 지도층은 명예와 책임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탈출한 선원들과 과연 얼마나 다를까.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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