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 쿨파’
  • 김재태 | 편집위원 ()
  • 승인 2014.05.07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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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매일 악몽을 꿉니다. 잠의 뒤끝이 개운치 않습니다. 다시 눈을 감으면 영상으로 익숙한 그 캄캄하고 차디찬 바닷물이 동공 속으로 물밀듯이 파고듭니다. 뇌 속에 부유물이 가득 찬 느낌입니다. 주변 사람들과 얘기를 나눠보면 같은 증상을 호소하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온 나라가 집단 우울증에 빠진 듯합니다. 많은 사람이 ‘세월호 증후군’, 더 나아가 ‘세월호 포비아’에 시달리고 있는 형국입니다. 우리 모두가 가해자라는 자책감이 하루하루를 짓누릅니다. 이 나라가 어쩌다 이런 나락으로 빠져들고 말았는지….

세월호 참사를 통해 참담한 민낯이 그대로 드러난 것일 뿐 위험 징후를 알리는 빨간불은 오래전부터 켜져 있었습니다. 국가를 위해 봉사해야 하는 중책을 맡은 국가정보원 직원들이 댓글을 만들거나 퍼나르고, 간첩 사건의 증거를 조작하기 위해 잔머리를 굴리는 비루한 일들이 버젓이 일어난 나라가 대한민국입니다. 그들은 그 부끄러운 일을 저지르고도 국민의 혈세로 주어지는 급여를 또박또박 타갔을 것입니다. 그들이 음습한 곳에 몸을 숨기고 유치한 문장들을 컴퓨터 자판으로 써내려가는 모습, 없는 기록을 만들어내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모습, 맨 먼저 구출된 세월호 선장이 온돌 침상에 앉아 태연하게 젖은 돈을 말리는 모습이 한 매듭으로 연결되어 뇌리를 파고들면 간신히 눌러둔 분노가 또다시 고개를 쳐듭니다. 그리고 이런 기억들 자체가 한없이 역겨워집니다. 이 모두가 애당초에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될 일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를 짓누르는 키워드는 ‘반칙’과 ‘부도덕’,  ‘무책임’입니다. 그리고 이 모두를 포괄하는 정서는 바로 ‘비겁함’입니다. 우리 사회가 온통 비겁함의 덫에 갇혀 있는 꼴입니다. 모범을 보여도 모자랄 지도층이 앞장서서 뻔뻔스러워지면 그들을 믿고 나라나 지역의 살림을 맡긴 국민들은 정말 갈 곳이 없습니다. 가뜩이나 배를 버리고 도망친 선장의 비겁함에 데인 국민들의 가슴을 찢은 높은 분들의 비겁한 언행이 이미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누구 하나 진정성 있게 책임을 말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과의 직접 소통이 아닌 국무회의 석상 발언으로 대국민 사과를 했지만, 그조차도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합니다. 불신과 분노의 불길이 오히려 더 커져갑니다. 희생자 유가족들은 이미 사과를 거부한다는 의사까지 밝혔습니다. 대통령이 관료들의 책임을 강조하며 국외자 혹은 초월자적 모습을 보였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도 유념해서 헤아릴 필요가 있습니다.

국정원 사건이나 세월호 사태를 보면 잘 맞춰진 퍼즐처럼 겹쳐지는 부분이 하나 있습니다. 이른바 ‘2인자’들의 책임지기입니다.

국정원 사건에서는 국정원장 대신 2차장이, 세월호 사태에서는 총리가 총대를 멨습니다. 정부가 다른 건 몰라도 사태 수습용 매뉴얼 하나만큼은 정말 확실하게 갖추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들게 할 정도로 정확하게 일치하는 수순입니다.

국가 지도층에게 그 권한만큼 책임이 따르는 것은 당연합니다. 국민 안전에는 특히 무한 책임입니다. 가톨릭 교회 통상미사에서 행해지는 고백의 기도에 이런 말이 나온다고 합니다. 그 말이 요즘 입안에서 자꾸 맴을 돕니다.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큰 탓이로소이다(메아 쿨파, 메아 쿨파, 메아 막시마 쿨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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