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아쓰기 잘하는 인사’ 어디 가겠나”
  • 서상현│매일신문 기자 ()
  • 승인 2014.05.07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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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정국 전환 ‘개각 카드’ 만지작…여권 일부에서 회의적 반응

세월호 참사에 대한 책임을 지고 정홍원 국무총리가 사의를 밝혔다. 지난해부터 걸핏하면 튀어나왔던 개각설이 곧 현실화할 분위기다. 사심(私心) 가득한 여권 인사들은 개각 폭에 관심집중이고, 여당은 개각으로 지방선거에서 어떻게 반전을 일으킬까 노심초사다. 하지만 여권의 바람대로 개각을 통해 조문 정국을 돌파하고 국면 전환을 이룰 수 있을까. 알 만한 이들은 모두 ‘개꿈’이라 했다.

여의도 정가에는 “표적 개각이냐 전면 개각이냐를 두고 여권 내부에서 분란이 일 것”이란 전망이 팽배해 있다. 현재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개각 대상으로 거론되는 곳은 안전행정부·해양수산부·교육부·해양경찰청 등이다. 여당의 한 전략통 인사는 “수도권에서 힘든 싸움을 펼치고 있는 여당의 광역단체장 후보들이 전면 개각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청와대를 향한 쓴소리가 후보의 급(級)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은 선거운동의 상식”이라며 “이런 이야기가 나오기 전에 청와대가 선수를 쳐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도 내상을 입은 장기를 완전히 도려내는 수술을 할지, 아니면 최대한 안정적인 시술에 들어갈지 고민 중인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4월29일 박근혜 대통령이 경기도 안산시 화랑유원지에 마련된 ‘세월호 사고’ 정부 합동분향소에서 조문을 마친 후 유가족들의 하소연을 듣고 있다. ⓒ 연합뉴스
‘표적 개각’보다 ‘전면 개각’에 무게 실려

아무래도 표적 개각보다는 전면 개각에 무게가 더 실리는 분위기다. 1기 총리가 사퇴하는 무대여서 일단 커튼을 내리고 2막에 들어가야 한다는 여론이 더 크다. 정부기관 출신 새누리당 중진 의원은 “세월호 사건은 이 정부에 ‘핵펀치’를 날린 것과 같다”며 “야권이 그동안 줄기차게 주장해온 개각 대상을 전부 포함해 완전히 탈바꿈시키지 않는 한 민심 이반 속도를 감당해내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새정치민주연합 등 야권은 북방한계선(NLL) 논란과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의혹 사건의 당사자인 남재준 국정원장 해임을 촉구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를 수습하려면 여권만의 힘으로는 무리여서 야권의 요구를 일정 부분 받아들여야 한다는 얘기였다.

세월호 참사 수습이 더디고 각종 의혹이 꼬리를 물면서 상황에 따라 경제부총리(현오석)와 청와대비서실장(김기춘) 교체 카드까지 만져야 한다는 말도 있다. 게다가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의 잦은 말실수도 도마에 올라 교체설이 나돈다. 새누리당 ‘친박(親박근혜)계’ 인사는 “정부와 집권 여당이 무능력은 고사하고 안일한 정신 상태까지 그대로 보여줬다는 점에서 사태의 심각성이 크다. 일부 개각이 아니라 전면적인 쇄신 의지를 보여줘야 성난 민심을 달랠 수 있다”며 “일신하지 않으면 이 정부는 회생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영남권의 한 초선 의원은 “선거전에서 능력 있는 공보 담당 보좌관은 천금만금을 주고라도 스카우트해야 한다. 그만큼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이라며 “그런데 지금 청와대 대변인은 제 역할은 고사하고 아군에게 총질을 해대는 격”이라고 비판했다.  

4월27일 정홍원 국무총리가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사퇴 기자회견을 하기 위해 회견장에 들어서고 있다. ⓒ 뉴시스
“개각만으로 사태 수습이 되겠느냐”

여권 내부에서 개각에 관한 여러 이야기가 돌다 보니 김칫국을 마시는 이들이 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새누리당 지도부 중 누가 차기 총리를 자처하고 있다느니, 충청권 출신 국회의원이 언론에서 하마평 대상으로 거론되길 바란다느니 하는 이야기다. 경제통으로 불리는 중진 의원과 당 지도부 인사는 경제부총리 자리를, 현재 해외 공관에 있는 누구는 국정원장 자리에 일찌감치 내정됐다는 출처 불명의 이야기도 나돈다.

2012년 대선전을 이끌었던 외부 영입 인사들인 김종인 전 새누리당 행복추진위원장과 안대희 전 정치쇄신특위 위원장은 일부 언론에서 실명으로 보도하기까지 했다. 위기를 틈타 자리를 노리는 모습을 두고 정가에서는 “이게 친박계의 본모습”이라는 비난이 나오고 있다. “지금 새누리당은 개각에 침을 흘릴 일이 아니다. 야권이 정부 책임론을 말할 때 여당은 국회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개혁적이고 파격적인 안전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여권이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는 지적이 여기저기서 제기된다. 

문제는 ‘사람’이다. 박 대통령의 ‘용인 스타일’을 꼬집는 비판적인 여론도 있다. 여권 사정에 밝은 한 정치권 인사는 “이 정부는 ‘청문회 트라우마’를 앓고 있다. 홍수가 났는데 마실 물이 없다는 지적은 ‘인물난’ ‘구인난’을 제대로 지적한 표현”이라며 “국가 개조라는 전면적인 인적 쇄신에 과연 적임자가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 인사는 “집안이 기울었다. 이때 어머니가 기강을 바로잡으며 매조지는 할 수 있다. 하지만 집안을 되살리는 문제는 다른 능력”이라고 덧붙였다. 친박계 핵심 중진 의원은 “개각만으로 사태 수습이 되겠느냐”며 개각 불효용을 주장하면서 “여태껏 대통령은 말 잘 듣는 인사, 받아쓰기 잘하는 인사만 뽑아 썼다. 앞으로도 별로 나아지리라고 보지 않는다. 별 기대가 없다”고 단언했다. 

개각 관련 취재를 하던 중 기자가 재난 컨트롤타워인 ‘국가안전처’ 신설 이야기를 꺼내자, 한 관료 출신 국회의원은 “참 급하긴 급했던 모양”이라고 쓴웃음을 지으며 A4용지를 꺼내 와 선을 죽죽 그으며 이렇게 설명했다. “정부는 이렇게 한 명의 대통령 밑에 여러 라인이 있다. 국토교통부·해양수산부·안전행정부. 그런데 국가안전처는 공직사회의 기본을 모르고 내놓은 대증 처방과 같다. 원인을 명확히 진단해 처방하는 병인요법(病因療法)을 써야 하는데 말이다. 각 부처 장관이 자기 관할의 안전 문제를 전적으로 책임지는 책임 장관이 되면 혼란을 막을 수 있다. 이걸 뭉개고 한데 모아서 지휘체계를 일원화한다? 사건 발생 2주일 만에 나온 졸속 중의 졸속이다. 국가안전처는 옥상옥(屋上屋)이 될 뿐이다.”

개각의 역효과를 말하는 여권 일각에서는 아예 6·4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져야 한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진정한 당의 쇄신과 박근혜정부의 성공적 국정 운영을 위해서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패배하고 국민의 질타를 더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이후 다시 태어난다는 각오로 전면적 쇄신에 착수해야 그 다음에 있을 총선과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논리다. 앞서의 정치권 인사는 “표현키 어려운 불행 속에서 여권이 선거에서 이기게 되면 그게 바로 해외 토픽감”이라며 “죽어야 산다는 교훈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 징후는 새누리당의 텃밭 중 텃밭이라는 대구시장 후보 경선전에서 나타났다. ‘박근혜 마케팅’에 열을 올렸던 친박 핵심이라 불리는 지역구 출신 3선의 서상기(북 을), 재선의 조원진 의원(달서 병)이 4파전에서 3, 4위를 하며 체면을 구겼다. 안방인 대구에서는 거의 ‘민란 수준’이란 말까지 나온다. 세월호 참사를 수습할 대책으로서의 개각. 해도 문제, 안 해도 문제, 진퇴양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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