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병 환자’들, 세월호 상처 덧나게 하다
  • 하재근│대중문화 칼럼니스트 ()
  • 승인 2014.05.07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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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의 열패감에서 나온 악성 유언비어…헛소리에 들썩이는 한국 사회가 문제

세월호 참사는 우리 국민에게 엄청난 충격을 준 사건이다. 이렇게 큰 사고를 당할 경우 건강한 공동체는 함께 사고를 수습하며 더욱 결속력을 강화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은 그 반대였다. 사고 그 자체보다 사고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난맥상으로 공동체가 사분오열돼 흩어지며 치명적인 내상을 입었다. 단시일 내에 치유되기 힘들 것으로 보일 만큼 깊은 상처다. 세월호 사건을 두고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등에서 난무한 유언비어 사태는 이를 보여주는 징후라고 할 수 있다.

4월28일을 기준으로 경찰이 121건의 악성 유언비어를 내사해 23명을 검거했는데, 이 숫자는 앞으로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흉흉한 소문이 한국 사회에 창궐하고 있는 것이다. 유언비어는 처음 생존자를 사칭한 구조 요청에서 시작됐다. ‘전화 안 터져. 문자도 안 되고 뭐도 안 돼. 지금 배 안인데 사람이 있거든. 아직 안 죽었으니까 사람 있다고 좀 말해줄래’라는 글이 인터넷에 번지면서 많은 사람을 안타깝게 했는데 놀랍게도 초등학교 5학년생의 소행으로 밝혀졌다. 단원고 여학생이라며 ‘제발 이것 좀 전해주세요 제발. 지금 저희 식당 옆 객실에 6명이 있어요… 식당 쪽 사람 많아요. 제발 빨리 구조해주세요’라는 글이 SNS를 통해 빠르게 번져 경찰 수색에 혼선을 초래하기도 했는데 이는 20세 남성의 소행으로 밝혀졌다. 그 밖에도 중학생 등이 생존자를 사칭하며 구조 요청 글을 인터넷에 올렸다.

ⓒ 일러스트 김세중
유언비어는 곧이어 정부를 향했다. ‘경찰이 실종자 가족을 산으로 밀어붙여 부상자가 발생했다’ ‘진도 체육관에 용역 깡패가 난입했다’ ‘정부가 실종자 수색을 막고 있다’ ‘세월호 선장 등과 정부가 짰다’ ‘정부가 다수의 사망자를 감추고 있다’ ‘한·미 훈련 잠수함 때문에 좌초했는데 정부가 사고 원인을 숨긴다’ ‘대통령 방문 의전 때문에 3시간 수색을 멈추었다’ 등의 내용이다. 민간 잠수부를 사칭하며 직접 방송에 출연해 유언비어를 전한 홍 아무개씨는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다.

악성 게시 글도 충격을 줬다. ‘실종자 가족으로 위장 잠입해 (다른) 가족을 선동하려다 실패한 여자다’ ‘세월호 선동꾼 좀 구경하세요’ 등의 글로 실종자 가족을 근거 없이 음해하고 비난하는가 하면, ‘실종자 중 중국 동포 2마리가 있다는데’ 운운한 반인륜적인 게시 글도 나타났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실종된 여학생과 여교사를 성적으로 모욕한 글까지 있었다는 점이다. 가히 같은 인간이라고 생각하기 힘들 정도의 내용이다.  

유언비어와 악성 게시 글을 퍼뜨린 이들은 10대 10명(43.5%), 20대 8명(34.8%), 30대 3명(13.0%), 40대 2명(8.7%)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왜 그런 행동을 한 것일까. 단원고 여학생을 사칭한 20세 남성은 ‘그렇게 널리 퍼질지는 몰랐다’며 경찰관 앞에서 울먹였다고 한다. 그저 유희로, 그리고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그런 글을 올렸는데 일파만파로 번지자 자신도 충격을 받았다는 것이다. 악성 게시 글을 쓴 이들도 ‘사안의 심각성을 모르고 단순히 관심을 받고 싶어 글을 올렸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현실에서 무력감·열패감 등을 느끼는 사람이 많다. 특히 경쟁에 내몰리는 10대나 미래가 불안한 20대의 무력감이 큰데, 이들은 이를 인터넷에서 받는 관심으로 보상받으려 한다. 자신의 말 한마디에 수많은 사람이 관심을 보이면 그것이 짜릿한 쾌감으로, 뿌듯한 자부심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요즘에 이런 이들을 가리키는 ‘관심병 환자’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방송 인터뷰에서 민간 잠수사를 사칭한 홍씨는 관심을 받고 싶다는 욕구가 극단적으로 커진 경우로 보인다. 그는 동일본 대지진 당시 일본 거주자라며 지상파 뉴스 인터뷰에도 등장했고, 아이돌 그룹 멤버의 친척을 사칭한 적도 있다. 이번에 비난이 커지자 SNS에 ‘내가 방송 출연한 게 그렇게 부럽냐? 이러다 나 영화배우 데뷔하는 거 아닌가 몰라 ㅎㅎ’라는 황당한 글까지 남겼다. 스타처럼 주목받고 싶다는 욕구가 정신적 안정성까지 해쳤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종된 여학생과 여교사를 성적으로 모욕한 이는 28세 남성으로 고시원에서 생활하고 무직이며 ‘일베’(일간베스트 사이트) 회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베는 주로 젊은 남성이 자신들의 열패감을 여성과 호남, 외국계에 대한 증오로 보상받는 곳이다. 비슷한 집단 내에선 가장 강한 발언을 하는 사람이 주목받는 법이다. 그래서 증오와 혐오, 비하가 난무하는 곳에선 누가 더 강하게 공격적인 표현을 하는가 경쟁이 벌어지며 폭주하게 된다. 그런 원리로 세월호 실종자에게 여성 혐오 프레임을 적용하는, 상상을 초월하는 악성 게시 글이 탄생한 것으로 보인다. 

유언비어에 흔들린 한국 사회

이번 유언비어 사태에서 가장 크게 문제가 되는 것은 유언비어 그 자체가 아니다. 무개념, 정신이상자, 악의적인 사람은 언제나 있을 수 있다. 중요한 건 그런 사람들의 ‘헛소리’에 한국 사회가 뜨겁게 호응했다는 점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한국 사회의 기초 체력, 민낯이 드러났다고 할 수 있다. 건강한 사회였다면 유언비어에 그토록 많은 사람이 휘둘리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들이 뜨겁게 호응한 유언비어는 대체로 ‘생존자가 있는데도 정부가 구조를 막는다. 정부가 사망자도 숨기고 사고 원인도 숨긴다’는 스토리였다. 그런 유언비어는 끊임없이 이어져, 유포자가 검거된 후에도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다. 한 프로그램에서 유언비어를 주제로 한 방송이 끝난  후 스튜디오를 나오자 방송 관계자가 필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 유언비어라는 것이 어느 정도는 사실 같지 않아요?” 유언비어에 대한 믿음이 이 정도다. 단원고 여학생을 사칭했다는 20세 남성도 사실은 진짜 여학생이라는 유언비어가 새롭게 나돌며 정부의 발표를 비웃고 있다.

유언비어가 파고든 이유는 그것이 사람들이 듣고 싶은 말을 해줬기 때문이다. 국민을 속이는 정부, 국민을 버리는 지도층이라는 뿌리 깊은 불신이 있다. 간첩 조작 사건 등으로 정부의 신뢰도는 더욱 추락했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발표에 의하면 한국의 정부 신뢰도는 OECD 회원국 중 최하위 수준이다. 사건이 터진 후 수습 과정은 그야말로 혼란 그 자체여서 이미 존재하던 불신을 부채질했다. 최근엔 구조 작업 중 ‘언딘 마린 인더스트리’란 업체에 특혜를 주면서 다른 잠수부를 막았다는 의혹, 진도VTS(해상교통관제센터) 교신 녹음 파일 편집 의혹, UDT동지회 배제 의혹, 분향소 최소화 의혹 등이 잇따라 보도되며 상황이 최악으로 치달았다. 거대한 혼돈, 거대한 불신이 잉태된 것이다. 이 상처를 한국 사회가 언제쯤이나 치유할 수 있을지 가늠조차 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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