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사고 뒤엔 ‘철피아’ <철도 마피아> 있었다
  • 김지영 기자 (abc@sisapress.com)
  • 승인 2014.05.12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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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은 한꺼번에 몰려온다고 했던가. 온 나라를 슬픔과 비탄에 빠트린 세월호 참사. 뒤이어 서울 지하철 추돌사고가 일어났고, 급기야는 지하철 역주행 사고까지 발생했다. 마치 대한민국의 안전 시스템 전체가 마비된 듯하다. 우리를 더욱 분노케 하는 것은 대형사고 때마다 안전을 갉아먹는 ‘마피아’의 존재가 드러나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에서 ‘해피아’가 드러나더니, 지하철 사고에서는 ‘철피아’가 있었다는 사실이 시사저널 취재 결과 밝혀졌다. 


세월호 참사로 온 국민이 슬픔에 잠겨 있던 5월2일, 또 하나의 대형 참사로 이어질 뻔한 사고 소식에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이날 오후 3시32분쯤 서울 성동구 지하철 2호선 상왕십리역에서 지하철이 추돌하는 아찔한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이번 지하철 추돌 사고는 뒤따르던 차량이 급히 멈춰서면서 발생했다. 서울메트로는 사고 원인으로 신호 시스템 오작동을 지목했다. 신호 시스템은 일종의 도로 신호등이다. 초록(진행)·노랑(주의)·빨강(정지)으로 후속 열차 기관사에게 운행 신호를 알려준다. 이 신호 시스템은 ‘자동 정지 장치(ATS)’와 연결돼 있다. 신호 시스템에 빨간불이 들어오면 ATS가 자동으로 작동돼 열차를 멈추게 한다. 지하철 2호선의 모든 전동차에는 이 장치가 설치돼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이번 사고의 원인은 신호 시스템 고장에 따른 것으로 확인됐다. 이로 인해 ATS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상왕십리역에 이미 앞선 열차가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빨간불이 들어와야 했는데 파란불이 표시돼 ATS가 작동하지 않은 것이다. 그 결과 시속 15㎞로 달리던 후속 열차는 제동 후에도 128m를 더 가서야 간신히 멈췄다. 하지만 추돌을 피하진 못했다. 이 사고로 승객 249명이 다쳤고, 이 중 7명이 중상을 입었다.

서울 지하철 2호선 열차 추돌사고 6일 만인 지난 8일 오후 2시35분쯤 지하철 1호선 전동차가 운행 중에 300여m 후진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번에도 신호기 오작동이 원인이었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자칫 큰 사고로 번질 수도 있었다.

2011년 협회 검사에서 모두 ‘정상’ 판정

그런데 시사저널 취재 결과 이번 지하철 추돌 사고는 세월호 참사와 너무나도 닮은꼴이었음이 드러났다. 사고가 난 지하철 2호선의 신호 시스템을 설계·제작한 곳은 ‘유경제어’라는 민간 업체다. 이 회사가 회원사로 있는 사단법인 한국철도신호기술협회가 안전 점검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철도신호기술협회는 철도 신호 시스템을 제작하는 민간 기업 477개사가 회원으로 있는 이익단체다. ‘봐주기 검사’ ‘부실 검사’ 논란이 예상되는 부분이다.  

세월호 역시 선사인 청해진해운을 비롯한 해운업체들의 이익단체인 한국선급이 안전관리를 도맡았다. 한국선급은 1960년 해운사들이 출자해 설립한 비영리 사단법인이다. 이 단체는 정부를 대행해 선박 검사 업무를 맡았다. 해운업체 사주들로 구성된 단체가 선박 검사 업무를 직접 맡아 하는, 한마디로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이 되었고, 이는 엄청난 재앙으로 이어졌다. 결과적으로 세월호에 대한 한국선급의 부실 관리로 270여 명이 목숨을 잃고 30여 명이 여전히 실종 중이다.

이번 지하철 추돌 사고 역시 철도 신호 시스템 제작업체들이 회원으로 있는 이익단체에서 안전 점검을 해온 것으로 밝혀져 논란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유경제어는 상왕십리역 신호 시스템을 2011년 11월 서울메트로에 납품했다. 이에 앞서 10월29~30일 철도신호기술협회로부터 사용 전 검사를 받았다.

협회가 검사한 내용에는 궤도 점유 표시, 선로 전환기 전환 시험, 연동 시험을 포함해 이번에 문제가 됐던 ‘신호 현시 계열 및 ATS 동작 시험’도 포함돼 있다. 협회는 이 모든 부문에 대해 ‘정상’이라고 판정했다. 서울메트로 관계자는 “2011년 당시 안전 점검을 의뢰한 철도신호기술협회에서 정상이라는 판정을 받고 운행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철도신호기술협회 관계자도 “당시에는 운행에 사용될 만큼 신호 시스템이 정상적이었고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철도신호협회, 납품업체 사무실 공짜로 써 

하지만 세월호 참사에 이어 이번 지하철 사고에서도 드러난 것처럼 회원사의 이익을 목적으로 설립된 협회가 안전 점검을 직접 맡고 있는 시스템이 적절한지 강한 의문이 제기된다. 특히 신호 시스템을 납품한 유경제어 대표인 이 아무개씨는 현재 철도신호기술협회의 감사를 맡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 협회가 들어 있는 서울 금천구 사무실을 유경제어에서 무상 임대해주고 있는 사실도 시사저널 취재 결과 드러났다. 이처럼 유착된 관계에서 협회의 안전 점검이 과연 제대로 이뤄졌을지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철도신호기술협회가 2006년부터 현재까지 실시한 철도 사용 전 검사는 모두 ‘정상’ 판정을 받았다. 이번에 사고가 난 2호선 상왕십리역 안전 점검 역시 ‘정상’ 판정이었다. 하지만 국내에서 신호 시스템 오류로 인해 발생하는 철도 사고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국토교통부가 조사한 ‘연도별 철도 사고의 근본 원인 현황’을 살펴보면 2008년부터 2012년까지 1622건의 철도 사고가 발생했는데, 이 중 신호 제어 설비 탓에 발생한 사고가 179건이다. 전체 철도 사고 10건 가운데 1건이 이번 사고와 마찬가지로 신호 제어 시스템 오작동으로 발생한 것이다.

지하철만 따로 떼어놓고 봐도 신호 시스템 결함으로 발생하는 운행 장애는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지하철에서 발생한 운행 장애는 총 277건인데 이 가운데 신호 시설 결함으로 발생한 장애가 38건이다. 전체 운행 장애 원인의 13%가 신호 시설 결함이었던 것이다. 2006년부터 국내 신호 분야 안전 점검은 당시 건설교통부로부터 철도 안전 전문 기관으로 지정받은 철도신호기술협회가 맡고 있다.

철도신호기술협회 관계자는 “우리 협회는 서류로만 평가하지 않고 직접 설비를 제작하는 공장에 가서 평가하기 때문에 객관적이고 중립적으로 검사를 시행하고 있다. 문제가 있는 부분을 발견해 납품 전에 시정 조치를 내려 개선하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정상’이라는 판정을 내리는 것”이라고 밝혔다. 협회와 회원사 간의 유착 의혹에 대해서는 “협회 감사직은 안전 검사에 관여하지 않는 별개의 직책”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3년 전 ‘정상’ 판정을 받은 신호 시스템은 왜 이번에 오작동을 한 것일까. 철도신호기술협회에서 실시하는 사용 전 검사는 정해진 유효기간이 따로 없다. 하자가 있다고 판정이 날 경우만 3년 이내에 신호 시스템 제작업체가 무료로 A/S를 해줄 뿐이다. 서울메트로 측은 “기관사들의 요청으로 열차 속도제한을 25㎞/h에서 45㎞/h로 높이기 위해 데이터 변경 작업을 했는데 이때부터 신호 시스템 오류가 났다”고 밝혔다. 변경된 데이터가 신호기로까지 자동으로 연동되지 않았다는 얘기다. 신호 시스템이 부실이었을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서울메트로 관계자는 “신호 시스템이 왜 오작동이 났는지는 조사 중이라 정확한 원인은 모른다”면서도 “신호 중앙처리장치(CPU)는 시스템을 만든 제작업체(유경제어)에 저작권이 있어 (유경제어 쪽에 관리) 고유 권한이 있다”고 말했다.

철도신호기술협회가 맡기 전까지는 철도청(현 한국철도공사 코레일)에서 입찰을 통해 안전 검사를 맡겼다. 이를 건설교통부(현 국토교통부)가 2006년 7월24일 고시를 통해 철도신호기술협회를 철도 안전 전문 기관으로 유일하게 지정했다. 이에 따라 철도신호기술협회는 철도 시설의 사용 전에 실시하는 점검, 철도 시설 공사 하자 만료 시 실시하는 점검,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정밀 안전 점검에 관한 업무를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았다.

협회 ‘안전 점검 독점’ 올해부터 강제 사항

이때까지만 해도 권고 사항이었다. 안전 점검을 필요로 하는 업체가 판단해서 철도신호기술협회에 검사를 의뢰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올해부터 협회가 안전 점검을 사실상 독점하게 됐다. 지난해 국토교통부 고시를 보면 올해 3월19일부터 ‘정밀 안전 점검을 시행할 때에는 객관성 확보를 위해 철도안전법 69조에 따라 철도 안전 전문 기관인 협회에 의뢰해야만 한다’고 적시돼 있다. 정밀 안전 점검에 대한 의뢰를 권고 사항에서 강제 사항으로 바꾼 것이다.

이에 대해 국토교통부는 “독점이라는 것은 다른 사업자가 못 들어오게 막는 것을 말하는데 철도안전법 어디에도 (철도신호기술)협회에 안전 점검을 하라는 말은 없다”며 “철도 안전 전문 기관으로 협회가 현재 유일하게 등록돼 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철도신호기술협회 외에 다른 기관도 안전 점검을 할 수 있다는 뜻이지만, 현재 유일하게 철도신호기술협회만 등록되어 있는 상황에서는 독점이나 다름없다.

서울메트로 관계자는 “원래는 자체적으로 지하철 안전 검사를 했다. 그런데 정부로부터 감사 때마다 ‘믿을 수 없다. 좀 더 공신력 있는 업체에서 안전 검사를 받으라’는 지적에 시달렸다. 그래서 정부가 지정한 철도 안전 전문 기관인 협회에 검사를 의뢰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비용 절감을 위해 안전 부문을 외주로 돌렸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이번 지하철 사고의 주원인으로 지목된 신호 시스템 역시 경비 절감을 위해 민간 업체에 위탁해 관리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2008년 이후 정비 인력을 대폭 줄이면서 대부분의 안전 관리 업무는 외주 업체 몫이 됐다. 철도신호기술협회 측도 비용 문제를 거론했다. 철도신호기술협회 안전 검사 담당자는 “안전 점검으로 발주 기관에서 받는 돈은 1000만원이 안 된다. 보통 몇 백만 원 정도다. 외국에서는 안전 점검을 할 때마다 몇 억 원씩 소요된다. 안전 점검이라는 게 무한 책임을 져야 하는 부분인데 점검 비용이 많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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