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총수 체면 자꾸 구겨지네
  • 엄민우 기자 (mw@sisapress.com)
  • 승인 2014.05.14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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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수사관들, 기능직 전직 조치 반발 내우외환 시달리는 김진태 총장

검찰의 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안팎으로 분란이 이어지는,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다. 지난해 채동욱 전 총장의 혼외자 보도 사태 이후 검찰은 외풍에 끊임없이 시달렸다. 전 아무개 검사의 이른바 ‘해결사 검사’ 파문, 윤석열 검사의 항명 파동, 서울시 공무원 간첩 증거 조작 사건,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 봐주기 논란 등으로 검찰에 대한 불신은 깊어만 갔다.

이런 와중에 최근에는 검찰 기능직 직원의 수사관(일반직) 전환과 관련해 어수선한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이에 반발한 일부 검찰 수사관들이 법적 대응을 위한 모금에 나서 파장이 예상된다.

2월21일 김진태 검찰총장이 대검찰청에서 열린 ‘전국 조폭전담 부장ㆍ검사ㆍ수사관 전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 연합뉴스
“검찰 수사관 소송비용 모금액 1억 넘겨”

지난 4월 일부 수사관들이 검찰 내부 인터넷망 ‘이프로스’에 “모금으로 소송비용을 충당하겠다”고 밝힌 이후 실제 행동에 나선 것으로 확인됐다. 복수의 검찰 내부 관계자에 따르면, 검찰 수사관들은 현재 비공개 카페를 통해 헌법소원 등 법적 대응 시 변호사 선임을 위한 준비 차원에서 십시일반 모금을 진행하고 있다. 이번 모금은 특별한 기준이나 방침 없이 수사관들이 자발적으로 돈을 내는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으며 현재까지 모금액이 1억원을 넘어선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8, 9급 직원들의 움직임이 더욱 적극적이라고 한다. 6, 7급 직원에 비해 이번 기능직 전직 조치로 직접적 이해관계가 더 많이 발생하기 때문이라는 전언이다. 6, 7급 직원들 역시 모금 자체에는 공감하고 있다고 한다. 검찰 수사관들의 이러한 집단행동은 가뜩이나 검찰을 둘러싼 여러 가지 문제로 복잡한 수뇌부의 머리를 더욱 아프게 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취임한 김진태 검찰총장으로서는 골치가 아플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렇지 않아도 김 총장은 특수수사와 관련해 환부만 도려내는 ‘외과수술식 수사’를 강조하는 등의 발언으로 특수통 검사들의 비판을 받고 있다. 공안 정국 영향으로 특수통과 공안통이 대립하고 있다는 얘기도 공공연히 나돌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김 총장은 최근 식사를 하고 나오는 자신의 모습을 찍는 사진기자들에게 욕설을 해 언론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해당 사건이 터졌을 즈음 한 검찰 관계자는 “총장한테 일어날 수 있는 흔한 일인데, 그냥 넘어가도 될 것을 왜 그렇게 민감하게 대응해 시끄럽게 만드는지 모르겠다”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토로했다.

검찰을 둘러싸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구설에 황교안 법무부장관도 곤혹스러움을 표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4월 기능직의 수사관 전환에 반대하는 검찰 수사관들의 집단 동요 문제가 한창 보도될 즈음 열린 핵심 간부 회의에서 황교안 장관은 “검찰에 대한 국민의 비난을 의식하지 않는 것인지, 무시하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말로 수사관들의 집단행동 움직임과 김 총장의 태도에 불만을 나타냈다는 전언이다. 당시는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 봐주기 논란 등으로 검찰에 악재가 겹치던 때였다. 황 장관은 그로부터 며칠 후인 4월10일 국회에서 열린 법무부 업무현안 보고 자리에서 당시 국회 법사위원장이던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의원에게 수사관 반발 움직임에 대해 해명을 해야 했다.

검찰 기능직 직원의 수사관 전환 조치는 지난해 말 개정해 시행된 국가공무원법에 따른 것이다. 검찰을 제외한 대다수 정부 부처에서는 직종 전직 시험을 통해 기능직 직원들의 일반직 전환이 어느 정도 마무리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일반 정부 부처의 경우 직종 간에 하는 일의 성격이 큰 차이가 없었기에 가능했다. 그러나 검찰은 조직 특성상 기능직의 일반직 전환을 신중하게 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검찰 수사관은 범죄 수사는 물론 압수수색 및 구속영장 업무 등을 수행한다. 범죄 첩보 등을 알아내고 범인을 검거하기도 한다. 일반 공무원보다는 검사나 경찰과 같은 수사 전문 인력에 가깝다.

반면 검찰 기능직의 경우 수사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일을 하는 인력이 대다수다. 검사실의 여성 직원이나 통신 및 전산 직원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처럼 수사와 관련 없는 직종에 있던 이들의 직종 전환이 이뤄질 경우 검찰 수사의 질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법조계 및 정치권 등에서 제기됐다. 이뿐만 아니라 기능직에게 마냥 좋은 기회만은 아니라는 분석도 있다. 예컨대 기능직으로 오랜 기간 근무한 직원의 경우, 새로 주어지는 업무가 오히려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것이다. 수사관 파트너로서 함께 수사를 해야 하는 일선 검사들도 기능직 전직에 대해 우려하는 시각이 많다. 몇몇 검사는 공개적으로 이번 조치의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검찰 기능직의 수사관 전환 문제는 단순한 직무 변경 문제가 아니라 검찰 조직 전반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사안인 것이다.

2013년 10월22일 검찰 수사관들이 KT 본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마친 후 상자를 들고나오고 있다. 수사관들은 압수수색 및 구속영장 업무 등을 수행하는 수사 전문 인력이다. ⓒ 연합뉴스
‘인사 조치설’ 나돌아…대검 “사실 아니다”

검찰은 이러한 이유로 까다로운 검증을 거쳐 선발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시험문제 출제를 안전행정부가 아닌 검찰에서 직접 하기로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시험 내용도 단순한 법 지식을 넘어 수사와 관련된 부분들도 반영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기존 수사관들은 여전히 형평성 문제를 제기한다. 기능직 직원이 형법과 형사소송법, 행정법 등 2~3개 과목 시험에서 평균 60점 이상을 얻으면 전환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인데, 이는 치열한 검증을 거쳐 들어온 기존 수사관들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검찰 수사관들 사이에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다. 검찰 수뇌부에서 모금운동을 주도하는 관계자들에 대해 인사 조치 등 강력하게 대처하겠다는 경고를 보냈다는 것이다. 한 검찰 수사관은 “5월 중순께 인사를 앞두고 이번 모금운동 관련자에 대해 수뇌부에서 인사 조치를 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는데 결국 김진태 총장의 의도가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관계자는 “김진태 총장 입장에서는 (일부 검찰 수사관들의) 이런 (모금) 행위가 불쾌할 것이다. 그렇다 해도 너무 강경하게 나오는 게 아니냐는 불만이 많다”고 밝혔다.  

한편 이런 논란에 대해 대검 관계자는 “그건 전혀 사실이 아니다. 헌법소원·행정소송 등 소송 제기는 공직자 본분에 어긋나거나 법규 위반이 될 발언을 하지 않는 한 개인 권리 영역에 속하는 것”이라며 인사 조치설 등을 부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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