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공대사’ 하루 이자 5억원 뜯어내 덜미
  • 모종혁│중국 통신원 ()
  • 승인 2014.05.14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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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고리대금업 판치는 중국…국영기업까지 돈놀이 가세

#1. 2013년 7월 신비로운 의술을 펼쳐 ‘기공(氣功)대사’로 불렸던 왕린(王林·62)이 갑자기 종적을 감췄다. 같은 달 28일 중국 관영 CCTV가 <초점방담>을 통해 왕린의 숨겨진 비리를 폭로했기 때문이다. 왕린은 1980년대 말부터 중국 정·관계와 경제계, 연예계 인사들에게 기공술을 펼쳐 얻은 유명세를 이용해 환자들로부터 고액의 치료비를 챙겼다. 왕린은 정·관계 인사와의 관시(關係)를 통해 지방정부로부터 수억 위안의 재정자금을 저리에 대출받은 뒤 사업가들에게 빌려줬다. 돈을 빌렸던 사업가들의 증언에 따르면, 처음에는 연이율 30~40%로 빌려주다가 나중에는 70%까지 올려 받았다. 1억 위안(약 164억원)을 빌린 황(黃) 아무개씨는 왕린의 협박에 하루 300만 위안(약 4억9000만원)의 이자를 내야 했다.

#2. 올해 4월 저장(浙江)성 하이닝(海寧) 시의 부동산 개발업체 ‘리더(立德)’가 파산했다. 1998년 설립된 리더는 비교적 규모가 크고 내실 있는 기업이었다. 하지만 헤이룽장(黑龍江)성 미산(密山) 시에 대규모 가죽 산업단지를 무리하게 조성하면서 부실해졌다. 결국 고리대금업자들로부터 돈을 빌려 사업을 유지했으나, 연 48%의 이자를 감당하지 못해 회사 문을 닫아야 했다.

중국의 은행 대출 담당자의 모습. 중국에서 문턱이 높은 은행 대신 사채를 쓰다 피해를 입은 기업이 최근 속출하고 있다. ⓒImaginechina 연합
법정 최고 이자율보다 10배 이상 받아

최근 사회주의 나라 중국에서 고리대금업이 판치고 있다. 중국 정부가 정한 법정 최고 이자율인 연 14.4%보다 적게는 2~3배에서 많게는 10배 이상의 이자를 받는 악덕 사채업자들이 활개치고 있다.

중국에서 대금업은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3~4세기께 불교 사찰에서 안정적인 포교와 수행 활동을 위해 신도들에게 물건을 저당잡고 돈을 빌려주면서 시작됐다. 당나라 때 이르러 관영 대금업자와 민영 전당포가 서로 경쟁하면서 계약서 작성과 친인척에 의한 보증이 일반화됐다. 이후 상업이 더욱 융성해지고 화폐경제가 발달하자 대금업은 규모가 점점 커졌다. 전당업 종사자끼리 조직을 만들었고 독점적인 권리를 행사하는 한편 상도덕에 따른 규율을 정해 시행했다. 시대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이자는 월 5~10%를 유지했다. 관아에서 이자가 원금을 넘지 않도록 강력히 규제했기 때문이다. 명·청 시기에 이르러 대규모 상인이나 상단이 출현하고 외국과의 교역도 활발해지면서 대금업은 도약의 날개를 달았다. 하지만 1840년 아편전쟁 후 서구식 은행이 하나 둘씩 문을 열면서 전당포는 큰 타격을 입고 몰락의 길로 들어섰다.

20세기 청나라가 멸망하고 중국이 혼란과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지면서 전당포업자는 고리대금업자로 점차 변해갔다. 1920~40년대 대다수 전당포는 연이율 50~100%로 돈을 빌려줬고, 채무자가 갚지 않으면 해결사를 동원해 받아냈다. 폭력 조직이 적지 않은 사채업체를 운영한 것도 이 시기였다. 이 때문에 1949년 집권한 중국공산당은 고리대금업자를 구악(舊惡) 중 하나로 규정하고 철저히 탄압했다.

민간 대금업이 다시 고개를 든 것은 개혁·개방 정책이 나온 이후다. 특히 1990년대 중국 경제가 고속 성장을 구가하면서 불법 사금융이 독버섯처럼 커졌다. 갑작스럽게 돈방석에 앉게 된 부유층은 늘어났지만 마땅한 투자처는 많지 않았다. 이들은 중소기업과 상인에게 고금리로 대출하면서 돈을 굴렸다. 2010년 중국 사금융 규모는 전체 민간 자본 총량의 6분의 1, 은행 대출의 5분의 1에 달했다. 중국 민영기업의 메카 원저우(溫州)는 사채 사업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2011년 중국 정부가 긴축정책으로 전환하자 결국 썩어가던 고름이 터졌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풍부한 유동성에 돈잔치를 벌이던 기업들은 경기가 악화되면서 위기를 맞았다. 중소기업과 상인들은 대출난을 타개하려고 고리의 사채를 빌려 썼다가 이자를 갚지 못해 줄줄이 무너졌다. 당시 윈저우의 사금융 시장 규모는 6000억 위안(약 98조원)에 달했고 연이율은 최고 180%나 됐다. 같은 해 5월 원저우 사채업자로부터 돈을 빌린 저장(浙江)강재 루리창(盧立强) 사장이 목숨을 끊었다. 촉망받는 기업인이었던 루 사장은 2억7000만 위안의 은행 대출 외에도 1억7200만 위안(약 282억원)의 사채를 빌려 썼다. 경찰은 회사가 경영난에 빠진 뒤 루 사장이 사채업자의 독촉에 시달리다 자살한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결국 이들에게 자금을 빌려준 부유층도 재산을 날리기는 마찬가지였다. 자금 대출자와 대여자가 함께 공멸한 것이다. 원저우 사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자, 2012년 3월 중국 정부는 원저우를 ‘금융종합개혁실험구’로 지정했다. 고리대금업으로 변질된 불법 사금융을 제도권에 편입시키기 위한 조치였다. 사채업자들이 지방 은행, 대부회사, 상조업체 등을 설립할 수 있도록 하는 대신에 감독 기관 관리 아래서 여신 업무를 처리하도록 했다. 그러나 이행을 위한 후속 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공염불에 그치고 있다. 이런 틈을 노려 불법 사채업자들은 더욱 활개치고 있다. 지난해 4월 중국 금융 당국은 “2011년 이래 전국적으로 4170명이 불법 고리대금업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고 발표했다. 이 중 1449명은 5년 이상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이들은 높은 이자를 미끼로 자금을 긁어모은 뒤 연이율 70%로 불법 대출을 해 폭리를 취한 것으로 드러났다.

중국 중앙은행인 중국인민은행 두진푸(杜金富) 부행장은 “민간 융자와 관련한 법적 규제 장치가 제대로 마련되지 않아 불법 사례가 빈번히 발생한다”며 “이 때문에 불법 사금융에 대한 처벌이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불법 모금을 통한 대출과 합법적인 민간 융자 사이의 경계가 명확하지 못한 것도 문제다. 기공대사 왕린도 정·관계 인사와의 관시를 이용했지만, 대출받는 절차는 합법이었다.

“이익 높아진다” 국영기업도 대금업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일부 상장 기업과 국영기업까지 본업보다 대금업에 치중하고 있다. 2012년 8월 인민일보는 “상하이와 선전 증권거래소 상장사들의 상반기 사업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위탁 대출을 시행한 기업이 86개사로 전년 동기보다 32.3% 급증했다”고 보도했다. 여유 자금을 본업에 재투자하지 않고 고리대금업에 치중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중국 메이저 석유회사 중 하나인 시노펙(中國石油化工)도 돈벌이에 손댔다. 시노펙 쓰촨(四川)성 공사는 2007년부터 2012년까지 부동산 개발업체들에 연이율 7.83%로 모두 6000여 만 위안(약 98억원)을 빌려주고 이자를 챙겼다. 장기간 이자를 내지 못한 한 회사의 직인을 빼앗아 경영권을 탈취하기도 했다. 중앙재경대학 허창(賀强) 교수는 “고리대금은 단기적으로 기업 이익을 높일 수 있지만 대출 부실로 인한 위험이 더 클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불법 고리대금업을 막기 위해 중국 정부도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4월21일 중국 은행감독관리위원회는 “불법적인 경로로 모은 자금의 대출을 단속하겠다”고 발표했다. 특히 투자 컨설턴트, 소액 대출회사, 사모펀드 등을 통해 이뤄지는 불법 자금 조달과 고율의 이자로 대출하는 행위를 막는 데 치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지난해 4월 중국인민은행이 내놓은 방안과 비슷해 실효성은 의문이다. 뒤처진 금융 시스템, 더디게 진행되는 개혁 조치, 강력하지 못한 규제 장치 등 중국의 현실이 불법 사채업자들의 활동 영역을 넓혀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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