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수부, 세월호 운항관리 소홀 드러났다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4.05.28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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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간 여객선 운항관리자 보조금 ‘0원’…관리자 숫자 대폭 줄어

1993년 10월10일, 전라북도 부안군 위도 앞바다에서 110톤급 여객선 서해훼리호가 침몰했다. 221명이 정원이던 배에 362명의 승객을 태운 것이 사고의 원인이었다. 서해훼리호는 과적 상태에서 무리하게 급선회를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화물과 사람이 한쪽으로 쏠리면서 복원력을 잃고 침몰했다. 292명의 아까운 목숨이 희생됐고, 부실한 선박 안전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정부에 대한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총리실 주도로 선박 안전 관리 방안이 마련됐다. 정부는 여객선의 안전관리를 담당하는 운항관리자(통신사 포함)를 29명 충원하기로 했다. 국고보조금으로 증원에 필요한 인건비를 지원한다는 계획도 밝혔다. 서해훼리호 침몰 사고 직전 61명이던 운항관리자는 이듬해 88명까지 늘어났다. 1995년과 1996년에 각각 두 명과 한 명이 추가로 충원되면서 2000년까지 91명이 유지됐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운항관리자 수가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2000년 91명이던 운항관리자는 2001년 86명으로 줄었다. 2004년에는 76명까지 감소했다. 이후에도 계속 감소세를 보이다 2010년에는 62명까지 운항관리자가 줄어들었다가, 최근 74명으로 소폭 늘어났다. 정부의 해상 안전 정책이 20년 만에 제자리로 돌아간 것이다. 해운업계 인사들이 “세월호 침몰 사고는 예고된 인재였다”고 지적하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1993년 서해훼리호 사고를 계기로 보조금을 지급하며 운항관리자 수를 크게 늘렸던 정부가 2005년부터 6년간 국고 보조금을 끊었다. 사진은 세월호 침몰 사고 현장. ⓒ 해양경찰청 제공
운항관리자를 관리하는 한국해운조합 출신 인사들은 “2005년 이후 정부 보조금이 끊긴 것이 원인”이라고 한목소리로 말한다. 전직 해운조합 관계자는 “정부의 보조금만으로 충원된 운항관리자의 인건비를 커버할 수 없었다”며 “일부라도 나오던 보조금마저 2005년부터 끊기면서 운항관리자를 줄일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해운조합 출신 인사는 “운항관리에 소요되는 비용은 해운조합이 별도로 관리하기 때문에 다른 예산으로 충당하기가 불가능하다”며 “어쩔 수 없이 운항관리자가 퇴직하면 충원하지 않는 방법으로 부담을 줄여나갔다”고 말했다.

운항관리자는 여객선이 출항할 때마다 정원 초과나 과적 여부를 점검하는 일을 한다. 안전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출항정지를 명령할 수 있다. 정부는 서해훼리호 사고를 계기로 터미널에 배치되는 운항관리자 수를 크게 늘렸다. 하지만 여객선 안전 문제가 국민의 관심에서 사라지자 은근슬쩍 보조금 지급을 중단했던 것이다.

시사저널이 김영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실(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 의뢰해 입수한 ‘최근 20년간 해운조합 국고보조금 교부 현황’ 자료에는 관련 내용이 상세히 나와 있다. 서해훼리호 사고 이후인 1995년 운항관리자 충원을 위한 정부 보조금은 4억9100만원에서 6억6400만원으로 35%나 증가했다. 하지만 1996년부터 감소세를 보였다. 1997년에는 4억원대, 1998년에는 3억원대, 1999년에는 2억원대, 2000년에는 1억원대로 줄어들다가 2001년에는 지급이 중단됐다. 2002년부터 3년간 보조금 지급이 재개됐지만 2005년부터 2010년까지 6년간 보조금 지급은 ‘0원’이었다. 이처럼 정부 보조금이 줄어들다 보니 운항관리자 숫자도 자연히 감소할 수밖에 없었다.

운항관리자의 관리가 부실했던 만큼 여객선 사고도 끊이지 않았다. 해양수산부 등에 따르면 여객선 사고는 2006년 35건에서 2008년 54건으로 크게 늘어났다. 선박 등록 척당 인명 피해는 유럽의 두 배, 일본의 세 배에 달했다. 그럼에도 정부는 여객 안전의 ‘파수꾼’ 역할을 하는 운항관리자 예산을 없애기에 급급했다. 김영록 의원실 관계자는 “운항관리자 수가 크게 줄었음에도 해수부는 안전을 과신했다. 최소한의 조치조차 취하지 않았다”며 “세월호 사태가 터지자 해수부가 해운조합에 대한 특별감사를 예고한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했다.

여객선 수요는 2005년부터 꾸준히 증가했다. 연안여객선 이용객은 2005년 1100만명에서 2010년 1430만명으로 30% 이상 증가했다. 같은 기간 운항관리자 수는 감소했기 때문에 1인당 업무는 50% 넘게 늘어났던 셈이 됐다. 운항관리자들이 직접 현장을 점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형식적인 서류 검사만으로 운항을 허가해줄 수밖에 없었다. 한 전직 해운조합 관계자는 “운항관리자가 부두에서 점검 목록을 일일이 확인하는 것은 현실적으로나 물리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원칙대로 하면 모든 여객선의 출항이 지연될 수밖에 없다”며 “만재흘수선(선박이 물에 잠기는 최대 깊이를 표시한 선)을 보고 과적 여부를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예산 없어 운항관리자 퇴직해도 충원 안 해

그러다 보니 화물 목록을 알고 있는 1등항해사가 입을 닫고 있으면 문제를 찾기가 쉽지 않다. 지난 4월16일 침몰해 300명 이상 희생자(5월22일 현재 사망 288명, 실종 16명)를 낸 세월호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세월호 선장은 안전점검표에 차량 150대, 화물 657톤을 실었다고 운항관리실에 보고했다. 하지만 사고 이후 밝혀진 화물량은 차량 180대, 화물 1157톤이었다. 50톤 규모의 트레일러 3대도 실려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과적 상태에서 급선회를 했고 결국 복원력이 떨어진 세월호가 침몰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인천지검 해운 비리 특별조사팀은 최근 해운조합 인천지부 소속 운항관리자 7명 가운데 3명을 구속했다. 검찰은 퇴직한 운항관리실장에 대해서도 구속영장을 신청해 신병을 확보했다. 이들은 ‘출항 전 안전점검 보고서’에 기재해야 할 내용을 공란으로 남겨뒀다. 출항 이후 선장의 말만 듣고 적어 넣은 혐의(위계에 의한 업무방해 등)를 받고 있다.

검찰의 칼날은 현재 관리·감독 기관으로 향하고 있다. 운항관리자에 대한 감독이 제대로 이뤄졌는지가 수사의 핵심이다. ‘해피아(해양수산부+마피아)’라는 신조어가 나올 정도다. 검찰 주변에서는 2005년부터 6년간 국고보조금이 중단됐다가 2010년 부활한 것을 두고서도 로비설이 파다하다. 사정기관의 한 관계자는 “최근 4년간 지급된 운항관리 보조금(37억900만원)이 1994년부터 2009년까지 15년간 교부된 보조금(40억9800만원)에 비해 4억원 정도 적다”며 “그것이 누구의 작품인지 등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가 나오고 있어 살펴보고 있다”고 밝혔다. 

운항관리비용 부과 요율이 크게 하락한 점도 의문이다. 운항관리자의 급여는 그동안 여객 운임에서 일정 수수료를 떼어내 조달했다. 김영록 의원이 해수부에서 제출받은 ‘연도별 부과 요율 변동 현황’ 자료에 따르면 1995년까지만 해도 부과 요율은 5%였다. 하지만 2008년 4%, 2010년 3.5%로 감소했다. 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생하기 직전인 2014년 4월부터는 3.2%까지 부과 요율이 떨어졌다. 이와 관련해 해운업계가 이권단체인 해운조합에 적지 않은 압력을 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운조합 사정에 정통한 인사는 “운항관리 비용 인하나 운항관리자 감원에 대한 해운업계의 압력이 컸다”며 “부과 요율은 해운조합 이사회에서 결정되지만 최종 승인권은 해수부에 있기 때문에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의문에 대해서도 검찰이 수사에 나서야 할 것으로 보인다. 

2010년 보조금 부활 배경 두고 로비설 파다

감사원은 세월호 침몰 사고와 관련해 해수부에 대한 감사에 착수한 상태다. 감사원은 4월29일 해수부·해양경찰청·안전행정부·해양항만청 등 4곳에 대해 예비조사에 착수했다. 예비조사는 본격적인 현장 감사를 벌이기 전에 하는 것이다. 피감기관으로부터 제출받은 서류를 검토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날 감사원은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 감사관을 보내 여객선 운항 실태와 안전관리 문제를 살펴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조사와 감사원 감사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감사원은 예비조사를 거쳐 5월 중 고강도 감사를 진행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해수부 측은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를 수 있다”면서도 “오래전 일이라 정확한 경위는 좀 더 파악해봐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해수부의 한 관계자는 “2005년 전후로 통신설비 구축이 완료되면서 인건비 비중을 낮췄다. 항로가 줄어들면서 여객선 사고도 감소했다”며 “2011년부터 보조금이 증가한 것은 물가 부분이 반영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세월호 참사 막을 수 있었다” 
해수부, 2011년 해상교통안전공단 설립 반대


박근혜 대통령은 5월19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해양 안전의 전문성과 책임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국가안전처를 신설한다는 내용 등이 담겼다. 해경은 해양 구조·구난 및 해양 경비 분야를 국가안전처로 넘기고 해체된다. 안행부의 안전 업무나 해수부의 해양교통관제센터(VTS)도 신설되는 국가안전처로 넘어가게 됐다. 박 대통령은 이런 내용을 담은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조만간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그런데 해양 사고 전담 기관 설립에 대한 논의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1년에도 해양 사고 예방과 피해 확산을 막기 위한 해양교통안전공단 설립이 추진됐다. 최규성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2011년 8월 이런 내용을 담은 해사안전법 일부 개정안을 국회에서 대표발의했다. 선종별로 나눠져 있는 안전관리 주체를 하나로 묶어 책임성을 높이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해수부는 당시 “내항 화물선에 대한 안전관리를 선사가 자율적으로 시행하는 것이 국제적인 추세”라며 공단 설립에 완강하게 반대했다. 해운업계의 입장도 비슷했다. 해운업계는 당시 언론에 “운항관리자 제도는 서해훼리호 사고 등을 거치면서 보완된 최적화된 시스템”이라며 “개정안은 업계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세월호 사태를 계기로 업계의 자율규제 허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운항관리자는 여객선 운항의 안전을 책임지는 공적인 역할을 하지만, 여객선 사업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해운조합에 소속돼 있다. 공익적인 목표만을 내세울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선사들은 오히려 운항관리자 감원 등 조합을 압박하고 있어 갈수록 입지가 줄어들고 있다. 업계 자율규제나 이권을 이유로 공단 설립을 반대해온 해수부나 해운업계도 궁지에 몰리게 됐다.

국회와 해운조합 주변에서는 해수부 등의 반대 입장 이면에 다른 이유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개정안에 따르면 공단 이사장 및 감사의 임명권자는 해양경찰청장이다. 이사장은 해양경찰청장의 승인을 얻어 이사를 임명하게 된다. 해경과 각을 세우고 있는 해수부 입장에서는 공단 설립 개정안이 곱게 보일 리 없다.

전직 해운조합 관계자들은 “그때 공단이 설립돼 재난에 대한 지휘 체계가 일원화됐다면 세월호 사태와 같은 대형 참사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최규성 의원 발의 당시 해운조합 소속 운항관리자들은 해수부에 공단 설립에 대해 찬성 의견을 보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 농림해수위 관계자도 “해수부와 해경은 VTS센터 소유권을 가지고 갈등을 빚었다”며 “해수부와 해경의 갈등이 결국 공단 설립 무산의 이유가 됐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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