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 사건도 아니고 5000만원 현상금에 1계급 특진은 좀 오버하는 것 같다.”
사정기관 출신의 한 여권 인사가 검찰의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수사와 관련해 기자에게 한 말이다. 검찰은 유병언 전 회장을 공개 수배하며 5000만원의 현상금을 내걸었다. 장남 대균씨에게도 3000만원의 현상금이 걸렸다. 이에 앞서 일선 경찰관들에게는 1계급 특진을 내걸어 체포를 독려했다. 검찰이 유 전 회장 검거에 총력을 기울이는 모습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검찰이 제대로 수사를 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먼저 유 전 회장의 신병 확보조차 하지 않은 데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다. 검찰이 ‘사회적 지위’를 거론하며 유 전 회장이 소환 통보에 응할 것이라고 믿었다는 해명은 이해하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5000만원 현상금과 1계급 특진을 ‘뒷북 수사’라고 비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독교복음침례회(세칭 구원파)의 총본산인 금수원 수색을 두고도 뒷말이 나온다. 종교 탄압이라고 반발하는 신도들이 출입구를 봉쇄하는 장면이 TV에 생중계되고 검찰이 언제쯤 이를 뚫고 진입을 시도할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된 상황에서 유 전 회장이 여전히 금수원에 숨어 있을 것이라고 봤다면 이는 너무 순진한 판단이었다는 것이다.
“못 잡는 게 아니라 안 잡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로 검찰의 체면은 구겨질 대로 구겨졌다. 여기에 ‘권력 비호’ 의혹도 다시 불거지고 있다. 유 전 회장은 전두환 정권에서 승승장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5공화국 출범 직후인 1981년 4월30일 오전 전두환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7명의 중소기업인을 접견해 약 1시간 동안 환담을 나눴다. 여기에 삼우트레이딩 사장이던 유 전 회장이 포함돼 있었다.
당시 유 전 회장은 성공한 중소기업인으로 언론에 소개됐다. 순직한 우체부에게 100만원의 위로금을 전달했다는 식의 선행과 함께 이색 아이디어로 국제발명전에 참가해 상을 받았다는 보도가 자주 등장한다. 유 전 회장의 발명품 중에는 인명 사고 방지용 보트도 포함돼 있다. 선체 양쪽에 안전장치가 있어 보트의 요동과 전복 사고를 예방해준다는 발명품이었다. 그는 뚝섬유원지 전복 사고 장면을 TV로 본 후 페달이 부력 역할을 하는 보트를 개발하게 됐다고 밝혔다.
5공 때 이미 ‘권력 비호’ 의혹 제기돼
유 전 회장은 이러한 미담 기사를 활용해 사업을 확장해나갔다. 1985년 9월에는 한강 유람선 사업 승인을 얻었다. 그런데 ‘정권 비호’ 의혹은 당시 사정 당국에서도 이미 파악하고 있던 내용이었다. 1986년 7월 치안본부(현 경찰청) 특수수사2대(특수대)에서 작성한 ‘유병언 진정 사건 내사 중간보고서’에는 유 전 회장이 신도들로부터 돈을 사취했다는 사실이 적시돼 있다. 특수대는 보고서를 통해 유 전 회장이 신문에 보도된 미담 기사를 앞세워 선심 공세를 펴고, 신도들을 무보수로 일을 시킨 후 임금을 준 것처럼 허위 신고해 세무조사를 받고 있으며, ‘한국기독교멸공회’라는 단체를 등에 업고 정부 지지 집회에서 발언해 수사기관의 단속 손길을 피하려 하고 있다고 밝혔다.
세모의 한강 유람선 사업 승인에 대한 여론도 수집했던 것으로 나와 있다. 특수대는 이 보고서에서 세모 유람선이 4개월 만에 건조돼 건조 기간이 무리하게 단축됐고, 승선 인원이 210명으로 과다하게 책정돼 안전사고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인명 사고 방지용 보트를 발명했다는 유 전 회장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내용이다. 이때 이미 안전사고에 대한 우려가 제기된 셈이다. 이에 특수대는 유 전 회장에 대한 진정을 불문 처리할 경우 고위층이 세모를 비호한다는 의혹을 일으킬 소지가 있고, 교세 확장으로 더 많은 피해자가 예상되며, 신도들에게 말세 의식과 공포감을 심어주는 등 유언비어로 사회 혼란을 야기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 보고서는 상부에서 묵살된 것으로 알려졌다.
유 전 회장에 대한 수사는 5년이 지난 뒤에야 펼쳐졌다. 최근 금수원 입구에 내걸린 플래카드에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의 이름이 오른 것도 당시 일을 거론한 것이다. 구원파 측은 김 비서실장에게 “1991년 상황이 재연되지 않게 해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당시 오대양 사건 재수사로 유 전 회장이 구속돼 징역 4년을 선고 받았는데, 이때 검찰 출신인 김 비서실장이 법무부장관을 맡고 있었다. 그런 만큼 김 비서실장이 누구보다 구원파의 상황을 잘 알고 있지 않느냐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구원파 내에는 당시 수사가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른 표적 수사였다고 보는 이가 적지 않다고 한다. 유 전 회장의 이름이 언론에 등장하기 시작한 시기는 박정희 정권 말인 1979년 무렵이다. 그해 9월 유 전 회장이 기업경영개발원에서 주최한 ‘공장새마을운동’ 관련 세미나에 참석해 발표를 했다는 기사가 보도됐다. 유 전 회장이 전두환 정권에 앞서 박정희 정권에서도 친정부 성향의 활동을 한 사실을 알 수 있다.
한 교계 인사에 따르면, 박근혜 대통령이 퍼스트레이디를 대행하던 당시 구국여성봉사단을 이끌던 최태민 목사 측이 구원파와 유 전 회장을 견제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돌았다고 한다. 최 목사는 박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거론되던 인물이다. 구원파가 김기춘 비서실장에게 ‘갈 데까지 가보자’고 으름장을 놓은 이면에 이러한 피해의식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오대양 재수사 당시 ‘여론 무마용 수사’ 비판
오대양 사건 재수사는 1991년 7월19일 오전 9시 박찬종 민주당 의원이 국회 의원회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오대양 사건의 배후에 종교계에서 구원파로 알려진 기독교복음침례회가 관계돼 있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오대양 용인공장에서 32명이 집단 변사한 사건에 구원파와 당시 세모 사장을 맡고 있던 유병언 전 회장이 관여돼 있다는 것이다. 기자회견 직후 검찰이 박 의원에게 자료 제출을 요청했고 박 의원은 이 사건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검찰에 촉구했다.
이날 오후 4시에는 유 전 회장의 반박 기자회견이 열렸다. 유 전 회장은 서울 역삼동 세모 본사에서 “세모는 특정 종교와 관련을 맺지 않은 기업이며 다만 직원들이 개인 성향에 따라 직·간접으로 오대양 쪽과 관련을 맺어왔는지는 사장으로선 알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권(신찬·유 전 회장의 장인) 목사의 요청을 받고 구원파의 삼각지 교회에서 몇 차례 특별 강연을 한 적은 있으나 1980년 이후에는 교회에 다니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유 전 회장 측의 입장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유 전 회장은 자신의 자금 담당 비서로 알려진 송 아무개씨와의 관계도 부인했다. 유 전 회장은 “송씨는 1980년 초 대전의 한 교인 집에 갔을 때 우연히 만난 적이 있을 뿐”이라며 “송씨는 광주 사태를 겪은 광주 출신의 일부 과격한 신도들과 함께 1981년 ‘통용파’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송씨를 ‘구원파로부터 배척당한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유 전 회장의 주장과 달리 송씨는 구원파 여성 신도들의 모임인 이른바 ‘엄마들 모임’을 주도한 것으로 드러났다. 송씨는 지금도 유 전 회장 계열사들이 지분을 보유한 한 법인에서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당시 관련 의혹 대부분이 검찰 수사에 의해 밝혀지기 전에 국회의원이나 종교 전문가의 폭로와 언론의 취재에 의해 드러났다. 온갖 설이 무성한 채 의혹이 증폭됐지만 수사가 신속히 이뤄지지는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대검이 직접 나서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는 등 검찰의 수사가 미온적이고 소극적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때도 “여론 무마용 수사가 돼서는 안 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컸다.
결과적으로 유 전 회장이 징역 4년형을 최종 선고받은 것을 두고도 검찰의 판정패라는 평가가 나왔다. 검찰은 1심에서 유 전 회장에게 징역 15년을 구형했지만, 서울지법은 징역 8년을 선고했다. 2심에서는 형량이 더 줄었다. 서울고검은 1992년 5월 1심과 같은 징역 15년을 구형했고, 서울고법은 징역 4년을 선고했다. 넉 달 뒤에 열린 3심에서 대법원은 원심대로 징역 4년을 확정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국민의 공분을 사고 있는 유 전 회장에 대한 검찰 수사가 어떻게 진행될지, 또 법원의 판결이 어떻게 나올지 주목된다.
기독교복음침례회(구원파) 및 유병언 전 회장 관련 정정 및 반론 2 시사저널은 기독교복음침례회(일명 구원파)및 유병언 전 회장 관련 보도에 대하여, 기독교복음침례회 교단 및 유병언 전 회장의 유족과 합의를 통해 다음과 같이 두 번째 통합 정정 및 반론보도를 게재합니다. 1. 오대양 사건 및 5공화국 유착 관련 보도에 대하여 2. 구원파의 교리 폄하 및 반사회적 집단 이미지 보도에 대하여 3. 이준석 선장을 비롯한 선원들이 구원파 신도라는 보도에 대하여 4. 구원파의 내부 규율 및 각종 팀 관련 왜곡선정 보도에 대하여 5. 기독교복음침례회에서의 유병언 전 회장 지위 관련 보도에 대하여 6. 금수원 관련보도에 대하여 7. 유병언 전 회장의 정관계 로비설 및 경영개입 보도에 대하여 8. 유병언 전 회장 작명 관련 보도에 대하여 9. 기독교복음침례회(구원파)의 유병언 전 회장 도피 관련 보도에 대하여 11. 유병언 전 회장 재산 및 대출 관련 보도에 대하여 13. 유병언 전 회장 신도 지시 보도에 대하여 14. 기독교복음침례회 모금 관련 보도에 대하여 15. 유병언 전 회장 개인 신상 보도에 대하여 기독교복음침례회 측의 좀 더 자세한 입장을 ‘구원파에 대한 오해와 진실 (http://klef.co.kr)’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