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MBC 가라앉고 JTBC 떴다
  • 원성윤│허핑턴포스트코리아 뉴스에디터 ()
  • 승인 2014.05.28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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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보도 계기로 방송권력 지도 변화

“저는 올해 들어 장래 희망이 바뀌었습니다. 원래 저의 장래 희망도 기자였습니다. 제 꿈이 바뀐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여러분이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기본적 양심과 신념을 뒤로한 채 가만있어도 죽을 만큼 힘든 유가족들과 실종자 가족 분들, 애타게 기다리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큰 실망과 분노를 안겨줬기 때문입니다.”

지난 4월24일 경기도 안산 단원고 앞. 단원고 3학년 학생이 쓴 ‘대한민국의 직업병에 걸린 기자들께’란 편지가 전해지며 기자들 사이에 일순간 정적이 흘렀다. 정운선 교육부 학생건강지원센터장이 이날 등교를 재개한 고3 학생들에 대한 인터뷰 등 취재 자제를 요청하며 들려준 내용에 기자들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세월호 참사 이후 기자들과 언론에 대한 불신이 날로 커지고 있다. 특히 파급력이 큰 공영방송 KBS와 MBC로 그 불길이 옮겨 붙고 있다. 반면 정부 당국의 사고 수습 문제점에 대해 날 선 비판을 해온 상업방송 JTBC에 대해서는 시청자들의 지지가 쏟아지고 있어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세월호 침몰 이틀째인 지난 4월17일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서 취재 중인 언론사 취재차량들이 도로를 메우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SBS, 경쟁사 KBS·MBC 몰락 기회 못 살려

세월호 참사 보도 후폭풍을 가장 크게 맞고 있는 곳은 KBS다. 김시곤 전 보도국장이 세월호 참사를 교통사고에 비유한 발언이 알려지며 촉발된 ‘KBS 사태’는 길환영 사장이 보도에 간섭한 정황들이 드러나면서 파업 사태로 치닫고 있다. 김 전 국장은 5월16일 KBS 기자협회 주최로 열린 기자총회에 참석해 “지난 5월9일 기자회견 당일 오전까지만 해도 세월호 유족들의 항의에 대해 해명하는 기자회견이 예정돼 있었는데, 기자회견을 35분 앞두고 사장이 청와대의 전화를 받고 회사를 그만두라고 했다”며 “길 사장이 석 달을 쉬면 일자리를 주겠다고 회유했다. 이를 거역하면 자신도 살아남을 수 없고 대통령의 뜻이라며 눈물까지 흘렸다”고 폭로했다.

길 사장은 청와대의 개입 사실에 대해 전면 부인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뜻밖에 정홍원 국무총리가 5월21일 국회에서 “청와대 홍보수석이 KBS에 보도 관련 협조 요청을 한 것으로 안다”며 개입 사실을 간접 시인했다. 실제로 KBS는 이번 세월호 참사 보도 과정에서 정부의 발표를 그대로 받아 보도하거나 비판적 보도를 내는 데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해경의 대대적인 수색·구조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았음에도 마치 그렇게 한 것처럼 보도했고, 사고 다음 날인 4월17일 박근혜 대통령이 실종자 가족들이 있는 진도 실내체육관을 방문한 사실을 전하면서 실종자 가족들의 항의를 전하지 않았다. 또 타 언론사가 해경의 구조 문제를 짚었을 때도 KBS는 계속해서 선원들을 비판하는 기사만 내보냈다. 

MBC 역시 후폭풍에 시달리고 있다. 박상후 부장은 지난 5월7일 MBC <뉴스데스크> ‘함께 생각해봅시다’라는 데스크 리포트에서 “세월호 사고 해상에서 수색 작업을 하다 숨진 이광욱 잠수부에 대해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이 구조 작업을 압박하는 등 조급증에 걸린 우리 사회가 그를 떠민 건 아닌지 생각해봐야 한다”는 내용을 보도해 논란을 일으켰다. 이후에도 여러 경로를 통해 유족을 폄훼하는 발언들이 알려지며 MBC에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MBC 노조 간부들이 세월호 참사 합동분향소를 찾았지만, 유족들로부터 냉대를 받고 쫓겨나기도 했다.

JTBC는 세월호 참사 초기부터 해경의 사고 처리 미흡, 사고 구난업체인 언딘과 해경의 유착 의혹, 정부의 더딘 구조 활동 등을 비판했다. 그러다 보니 제보도 JTBC로 몰렸다. 배가 침몰하기 전 안산 단원고 학생들이 스마트폰으로 촬영해 부모들에게 보낸 동영상은 고스란히 JTBC를 통해 방송됐다. 지금까지 네 차례 보도된 ‘바다로부터 아이들이 보내온 편지’에는 스마트폰 동영상 속 아이들이 때론 천진하게, 때론 의연하게 서로를 다독이며 위로하고 걱정했던 모습이 담겼다. 온라인상에서 JTBC 동영상이 보는 이들의 눈시울을 젖게 만들었다. MBC의 한 차장급 기자는 “MBC가 시민들로부터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방송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가장 혹독한 냉대를 받는 언론사로 추락했다”며 “지금의 JTBC를 보면 이전에 MBC가 받았던 환대를 고스란히 가져간 것 같다”고 말했다.

상업방송사인 SBS는 어찌 보면 지상파 방송 경쟁사인 KBS·MBC의 동반 몰락에 따른 반사이익 효과를 가장 크게 얻을 수 있는 기회였다. 실제 “KBS도 MBC도 못 믿겠다. 차라리 SBS 뉴스가 낫다”는 시청자들의 목소리가 많아졌고, SBS 뉴스가 MBC를 제치고 확고한 2위를 점했다. 하지만 SBS 역시 세월호 유탄을 피해 가지 못했다. 최근 SBS PD협회가 자사의 인기 시사 고발 프로그램인 <그것이 알고 싶다> 세월호 편 방송(5월31일 방송 예정)을 두고 제작본부장으로부터 제작 중단 지시를 받았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JTBC, 시청자와 직접적 접점 가진 게 효과

지상파 방송과 극명하게 대비되면서 JTBC의 시청률은 세월호 정국에서 급상승했다. 특히 지난 4월29일 JTBC <뉴스9>은 MBC <뉴스데스크> 시청률과 같은 5.4%를 기록했다. 닐슨코리아 관계자는 ‘PD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지상파와 종편의 시청률 조사 모집단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시청률이 같다고 해도 단순하게 비교하기는 어렵다”면서도 “다만 직접 수신 가구가 빠진 점을 고려하면 JTBC <뉴스9> 시청률이 <뉴스데스크>에 육박한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지상파 시청률 조사는 시·도까지 포함하는 종편과 달리 13개 대도시만을 대상으로 하고 직접 수신하는 가구가 포함돼 있어 종편보다 모집단이 더 크다.

JTBC <뉴스9>이 4월29일 기록한 시청률 5.4%는 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생하기 전 1% 중·후반대에 머물렀던 것과 비교해보면 3배에 달하는 수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취재원이 JTBC를 찾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특히 KBS 사태를 자세히 전하고 있는 곳이 JTBC라는 점도 눈길을 끈다. KBS 새노조 권오훈 본부장은 5월21일 JTBC <뉴스9>에 직접 출연해 길환영 사장의 퇴진을 촉구했다.

전문가들은 세월호 참사 국면에서 JTBC 뉴스 시청률이 상승한 이유에 대해 시청자들을 향한 겸손함과 인간미, 심층보도를 예로 들었다. 뉴스 내용 면에서 볼 때, 실종자 가족들의 이야기가 상대적으로 적게 취급된 지상파 방송들에 비해 이들의 이야기가 우선적으로 전달됐고, 형식적으로도 1분30초의 방송 뉴스 틀이 아니라 긴 호흡의 심층보도로 시청자를 유인했다는 것이다. 최진순 건국대학교 언론홍보대학원 겸임교수는 “냉정한 뉴스룸이 아니라 인간미 있는 겸손함이 전달됐다는 점이 시청자들에게 어필했다”며 “팽목항에 서서 비를 맞으며, 똑같은 옷을 입고 진행은 물론 울분과 슬픔을 전하며 감정이입을 하는 대목은 정제되고 세련된 뉴스 진행만 보던 시청자들에게 신선하게 느껴졌다”고 평가했다. 최 교수는 “후발 주자인 JTBC는 기존 매체가 생각하지 않던 포털 실시간 방송에 이어 직접 소통에 나서는 등 시청자와의 직접적 접점을 찾으려 했다는 점에서 혁신적이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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