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건 싫어, 안전이 최고야
  • 조재길│한국경제신문 기자 ()
  • 승인 2014.05.28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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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관리 3.0시대, 5대 키워드로 본 투자 트렌드

지난 5월 중순 서울 압구정동 시중은행 프라이빗뱅킹(PB) 센터에 들른 사업가 황 아무개씨(62)가 요구한 것은 두 가지였다. 연내 사업을 정리한 뒤에도 월급처럼 꾸준한 수입을 얻고 싶다는 것과 어떤 경우에도 원금이 보존됐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이 센터에선 황씨에게 시중금리보다 연 2~3%포인트의 추가 수익이 가능한 해외 부동산 펀드와 주가 연계 파생결합사채(DLB)를 추천했다. 이 센터의 프라이빗뱅커는 “국내외 증시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환율이 급등락하면서 위험 관리를 강조하는 고객이 부쩍 늘어났다”고 말했다.

요즘 자산관리 시장 키워드는 글로벌, 꾸준한 인컴, 스마트 금융, 저비용, 환율 등 5가지로 요약된다. 부유층뿐만 아니라 일반 직장인도 이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 일러스트 최길수
■ 글로벌

선진국·신흥국 등 해외에 투자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특이한 점은 해외 공모펀드 수탁액이 조금 줄었지만 해외 사모펀드엔 뭉칫돈이 몰리고 있다는 점이다. 해외 사모펀드의 주요 고객은 부유층과 기관투자가들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해외 공모펀드 잔액은 지난해 4월 36조7394억원에서 1년 만에 29조9404억원으로 감소했다. 그러나 해외 사모펀드 설정액은 같은 기간 18조4052억원에서 26조628억원으로 41.6% 늘어났다.

해외 주식을 직접 사고파는 투자자들도 증가세다. 올 1분기 해외 주식 투자 규모는 17억600만 달러로 지난해 동기보다 361% 늘어났다. 홍콩 주식에 투자하는 사람이 1조2759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그 다음은 일본(1조1582억원), 미국(1조1099억원) 등 순이다. 개별 종목을 살펴보면 테슬라모터스, 애플, 구글, 비자 등이다.

해외로 눈을 돌리는 가장 큰 이유는 ‘위험 관리’다. 투자처를 다변화해 ‘리스크 쏠림’을 막자는 것이다. “국내엔 먹을 게 많지 않다”는 인식이 확산된 것도 주요 배경 중 하나다. 국내 증시는 수년째 횡보하고 있는 데 반해 미국 등 선진국 증시는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다만 해외에 투자할 땐 세금 문제를 꼭 따져봐야 한다. 해외 펀드에 투자하면 이자·배당소득세 15.4%를, 해외 주식을 샀다 팔면 양도소득세 22%를 각각 납부해야 한다. 이와 달리 국내 주식에 투자했을 때는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 꾸준한 인컴

안정적인 배당 수익을 추구하는 것도 과거와 달라진 양상이다. 배당주 펀드나 월지급식 주가연계증권(ELS)·파생결합증권(DLS) 등에 시중 자금이 쏠리는 게 대표적이다. 지난해 하반기 미국 중앙은행이 양적완화를 축소(테이퍼링)하면서 금리 인상이 예고되자 인컴펀드에서 상당한 자금이 빠져나갔다. 향후 금리가 오르면 수익률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돼서다.

하지만 지난해 8월 이후 처음으로 올 3월부터 수백억 원대 자금이 인컴펀드에 순유입되기 시작했다. 인컴펀드는 고배당주·채권·리츠(부동산투자회사) 등에 분산 투자해 안정적인 수익을 추구하는 중(中)위험·중(中)수익 상품이다. 황진수 하나대투증권 웰스케어부 팀장은 “꾸준한 수익을 원하는 투자자들이 배당과 이자 수익을 꼬박꼬박 챙길 수 있는 인컴펀드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피델리티자산운용의 마이클 클락 인컴펀드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최근 방한해 “유럽의 배당형 인컴펀드는 연 7% 정도 안정적인 수익을 낼 것으로 전망한다”며 “한국 투자자들에게도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매년 꾸준한 배당을 실시하는 맥쿼리인프라나 맵스리얼티1과 같은 리츠형 주식에도 자금이 유입되고 있다. 맥쿼리인프라 주가는 올 들어 거의 흔들림 없이 10%가량 상승했다.

 

■ 스마트 금융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서 ‘언제 어디서나’ 쉽게 이용할 수 있는 금융 환경이 조성됐다. 한국은행 자료를 보면 지난 3월 말을 기준으로 스마트폰 기반의 모바일뱅킹 등록 고객 수가 4034만명에 달한다. 스마트뱅킹이 도입된 지 4년 6개월 만에 폭발적인 성장을 이룬 것이다. 스마트폰에서 예·적금과 펀드에 가입하는 사례가 많다. 은행들이 스마트폰 상품에 가입하면 우대금리를 주거나 수수료를 할인해주는 행사를 경쟁적으로 벌이고 있어서다.

투자 방식도 ‘스마트하게’ 진화하고 있다. 자동으로 특정 주식 종목을 사고파는 서비스를 도입한 증권사가 늘어났다. 우리투자증권은 KOSPI200 지수를 추종하는 지수형 상장지수펀드(ETF)에 투자하는 ‘스마트인베스터’를 내놨다. 지수가 내릴 때 더 사고 오를 때는 덜 사는 방법으로 평균 매입 단가를 효과적으로 낮출 수 있다. 최소 가입액이 1인당 5만원으로 적다. 2011년 말 출시 후 수만 계좌를 달성하는 등 호응을 얻고 있다. 미래에셋증권·신한금융투자 등도 주식을 자동으로 매수·매도하는 방식의 스마트 매매 시스템을 선보였다. 금융 소비자를 위한 ‘컴퓨터 집사’들로 진화한 것이다.

 

■ 저비용

20~40대 직장인을 중심으로 비용을 낮춘 금융상품·서비스가 인기다. 수수료를 아끼면 수익률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계산에서다. 대표적인 것이 펀드온라인코리아의 ‘펀드 슈퍼마켓’이다. 올 4월 말 출범한 펀드 슈퍼마켓은 선취 판매 수수료를 아예 없앴다. 매년 떼는 판매보수를 일반 오프라인 금융사에 비해 3분의 1로 낮췄다. 펀드 슈퍼마켓은 저비용을 앞세워 출범 한 달 만에 1만개에 달하는 신규 계좌를 확보했다.

종전 온라인 펀드 시장의 강자였던 키움증권도 맞불 작전에 나섰다. 금융업계 최초로 ‘최저 가격 보상제’를 들고나왔다. 여기서 가입한 펀드가 최저 가격이 아닐 때 고객에게 차액만큼 100% 현금으로 보상하겠다는 것이다. 다분히 펀드 슈퍼마켓을 겨냥한 마케팅 전략이다. 홍승만 키움증권 금융상품팀 차장은 “펀드 슈퍼마켓 등과의 경쟁에서 전략적 우위를 보이기 위한 조치”라고 강조했다.

현대증권·이트레이드증권 등도 자체 펀드몰을 재정비하는 한편 각종 금융상품 수수료를 추가적으로 낮추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보험사들 역시 각종 비용을 줄이는 데 골몰하고 있다. 일부 정기보험·연금보험·자동차보험 등을 온라인에서만 판매하는 식으로 사업비를 줄이고 있다. 이를 통해 수수료를 종전 대비 절반 이하로 낮춘 상품을 속속 선보이고 있다.

 

■ 환율

환율이 달러당 1000원선을 위협하면서 외환시장은 부유층의 최대 관심사로 떠올랐다. 환율이 충분히 떨어진 만큼 달러를 많이 사놨다가 추후 재상승하면 매도해 차익을 챙기려는 사람이 많다. 환차익에 대해선 비과세되기 때문이다. 지방 은행의 한 프라이빗뱅커는 “부유층이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 세금인데, 외환 투자에 대해선 이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며 “해외 자녀에게 송금할 필요성이 있거나 해외여행이 잦은 지방 고객 중에서 수천만 원어치씩 달러를 사놓겠다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전했다. 환율이 크게 움직이는 요즘, 어떤 전략을 세워야 할까. 전문가들은 당분간 원화 강세가 예상되는 만큼 해외 송금을 가급적 미루거나 분할 매수할 것을 추천했다. 김용태 외환은행 선임PB팀장은 “원·달러 환율이 좀 더 떨어질 확률이 높기 때문에 해외로 송금할 계획이 있다면 천천히 분할 매수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환율 변동에 따른 피해를 줄이려면 해외 투자 상품에 가입할 때 환헤지(위험 회피)를 하는 게 바람직하다. 대개 선진국에 투자하는 금융상품을 매입할 땐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헤지를 할 수 있다. 다만 브라질 채권 등 개발도상국 상품에 투자할 땐 어렵다. 헤지 비용이 워낙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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