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능장애에 빠진 정부
  • 이상돈 | 중앙대 명예교수 ()
  • 승인 2014.05.28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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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로 박근혜정부가 큰 위기에 처했다. 대통령에 당선되는 것도 어렵지만 임기 동안 국가를 무사히 끌고 가는 것이 몇 배는 더 어렵다는 말이 실감난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박근혜정부의 위기는 이미 진행 중이었다. 지난 대통령 선거운동 기간에 국정원과 국군 사이버사령부가 대선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사실로 밝혀져서 정권에 대한 신뢰가 큰 상처를 입었다.

정부가 설정한 국정 어젠다도 혼선을 빚었다. 정권 출범 시에는 ‘창조경제’에 매달렸고, 수서발 KTX 사업을 계기로 ‘공기업 개혁’을 추진했으며, 이어 ‘통일 대박론’과 ‘규제 완화’를 내걸었다. 하지만 이를 추진하기 위한 준비가 부족했을뿐더러 내용 자체에도 무리한 측면이 많아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했다. 이런 상태에서 세월호 사건이 터진 것이다. 

새누리당은 국회에서 근근이 다수 의석을 유지하고 있지만 7월 재·보선에서 과반 의석을 상실할 수도 있다. 6·4 지방선거에서는 새누리당이 고전할 것으로 예상되고, 그나마 선거에 나서는 여당 광역단체장 후보는 대부분 비주류 인사들이다. 무엇보다 현 정부의 내각과 청와대에는 끈끈하게 뭉친 집권 세력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KBS에선 중견 간부들까지 나서 사장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고, 대학교수들은 정부를 비판하는 성명서를 연이어 발표하고 있으니 예삿일이 아니다.  

세월호 참사를 보면서 박근혜 대통령이 2012년 한 해 동안 내걸었던 ‘국민 대통합’ ‘경제민주화’ ‘정치 쇄신’ 같은 슬로건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세월호 참사는 그 피해가 젊은 세대, 근로자 및 서민 계층에 집중되어 있는 것이 중요한 특징이다. ‘국민 대통합’과 ‘경제민주화’라는 약속을 저버려서 배신감을 느낄 만한 계층이 세월호 사태로 직격탄을 맞은 형상이다.  

참사를 일으킨 청해진해운은 그 자체가 의혹 덩어리다. 그런 악덕 기업이 정부의 영향권 아래 있는 은행으로부터 수백억 원 규모의 대출을 받았다고 하니, 권력층의 비호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명박 정권이 국가경쟁력을 강화한다는 명분으로 여객선 선령 규제를 완화한 조치에도 어떤 배후가 있을 것으로 의심된다.

이번 사태에서 자신들의 무능을 한껏 과시한 안전행정부와 해양수산부는 현 정부 들어 조직을 새로 정비한 부서다. 초동 대처에 실패한 해양경찰의 사령탑인 해경청장은 현 정권에 의해 발탁된 인물이다. 현 정부가 조직과 인사에서 실패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청와대 참모들은 세월호 사태가 갖고 있는 정치적 휘발성을 알지 못했다. 할 일도 못하고 판단력이 떨어지는 이들은 공영방송에 압력을 가해 보도를 통제하려 했다.

박 대통령은 국무총리실에 새로운 기구를 두어서 안전관리를 강화하고 관료제를 개혁하겠다고 한다. 맞는 말이지만 이에 앞서 해야 할 일이 있다. 무엇보다 언론을 통제하고 정보기관과 경찰력을 동원해 정권을 보위하겠다는 구시대적 사고(思考)를 갖고 있는 인물을 정리해야 한다. 국민과 소통하고 공감하면서도 시대적 과제를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인물로 내각과 청와대 참모진을 다시 구성해야 한다. 심각한 기능장애 상태에 빠져버린 정부를 구할 시간은 별로 남지 않았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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