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철피아’ 제물 삼아 구겨진 체면 세울까
  • 엄민우 기자 (mw@sisapress.com)
  • 승인 2014.06.03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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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태 총장, 철도·원전·선박 등 3대 관피아 척결 의지

5월28일 오전 10시. 여느 때 아침과 다름없이 조용하던 철도시설공단이 갑자기 술렁이기 시작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 검사와 수사관들이 갑자기 들이닥친 것이다. 이들은 계약처·궤도처·정보관리처 등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고, 7층 회의실에 자리를 잡았다. 수사팀은 이곳에 임시 사무실을 꾸려 추가 자료를 요청하고 오후까지 임원 컴퓨터 등 증거 자료를 모았다. 이날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는 철도시설공단과 관련 주요 업체 및 관련자 자택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해 자료를 확보했다. 공단의 한 내부 직원은 당시 상황에 대해 “갑작스럽긴 했지만,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검찰이 ‘관피아’(관료+마피아) 척결의 신호탄을 올리는 순간이었다.

지난해 11월 시사저널이 보도한 철도시설공단의 납품 비리 문제(본지 1255호 ‘찍어 내려는 자와 버티는 자’ 참조)가 ‘관피아 척결 1호’ 대상이 돼 검찰이 대대적 수사에 들어갔다.

김진태 검찰총장과 전국 고검 및 지방검찰청 검사장들이 5월21일 대검찰청에서 열린 ‘관피아 척결’ 관련 회의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해 11월 본지 보도로 ‘철피아’ 비리 촉발

최근 김진태 검찰총장은 관피아 척결과 관련해 특히 철도와 선박 그리고 원전 부문에 신경을 쓰고 중점적으로 수사할 것을 강조한 것으로 전해진다. 모두 관피아 문제를 안고 있으면서 ‘안전’과 직결되는 곳이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 박근혜 대통령이 강조한 ‘안전’과 ‘관피아 척결’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 제격이다. 이 때문인지 이날 검찰의 표정은 여느 때보다 비장했고 긴박했다. 한 검찰 관계자는 “특수1부가 움직였다는 자체가 의미 있는 것”이라고 전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는 검찰 내부에서 ‘가장 크면서도 예리한 칼’로 통하는 곳이다. 김후곤 특수1부장은 과거 수원지검 특수부 재직 당시 김명수 서울시의회 의장이 재건축 관련 업체로부터 1억원을 수뢰한 사실을 밝혀내는 등 민간과 정·관계 커넥션을 파헤치는 데 일가견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철도·원전·선박 중에서도 검찰이 첫 번째 목표로 삼은 곳은 철도다. ‘철피아(철도+마피아)’부터 먼저 때려잡겠다는 것이다. 당분간은 다른 부문에 대한 수사보다 특히 철도를 중심으로 한 수사가 급물살을 탈 것이란 게 검찰 내부의 전언이다. 철도는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관피아가 싹트기 좋은 환경을 갖고 있다. 우선 사업 규모가 엄청나다. 부품이나 철로 용품 하나를 공급하는 데 수천억 원의 이권이 걸려 있다. 또 기술적 전문 분야라 내부 관계자들끼리 입을 맞추거나 닫으면 문제가 있더라도 조용히 넘어갈 수 있다. 그들만의 카르텔 속에서 얼마든지 부정부패가 싹틀 수 있는 ‘관피아의 천국’이 바로 철도 부문이다. 시사저널은 최근에도 지하철 2호선 사고와 관련해 철피아 문제를 집중 보도한 바 있다(본지 1282호 ‘지하철 사고 뒤엔 철피아 있었다’ 참조).

현재 철도와 관련해 검찰이 중점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는 부분은 입찰 비리와 업체 담합 문제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 중 입찰 비리는 본지가 지난해 11월 청와대 보고 문서 및 관련 감사보고서 등을 입수해 보도한 바 있다. 입찰 비리에 대해선 예전부터 어느 정도 첩보가 모아지고 내사가 진행된 만큼 수사가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해당 문제를 자세히 살펴보면 현재 거론되는 관피아 논란과 맞닿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철도 선로를 설치하는 데는 레일 체결 장치가 들어간다. 레일 체결 장치의 주요 구성 요소 중 하나가 탄성 패드인데, 이는 레일 밑에 깔려 충격을 흡수해주는 역할을 한다. 쉽게 말해 충격을 흡수해주는 ‘판’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두 회사가 해당 제품을 만드는데, 철도시설공단은 납품가 및 유지·보수 문제 등을 감안해 두 회사 제품 중 하나를 선택해 사용하도록 방침을 정했다. 그 결과 A업체의 제품이 깔리게 됐다. 그런데 김광재 이사장이 재임하던 2007년부터 2012년까지 기존에 사용되던 제품 회사인 A업체에 대해 갑자기 세 차례에 걸쳐 감사가 이뤄졌다. 그 과정에서 세계적으로도 유례없는 새로운 제품 시험 기준이 적용됐고, 결국 B업체의 제품으로 바뀌었다. 당시 취재 결과, 해당 감사에 참여했던 감사관 중 한 명인 김 아무개씨가 B업체 제품에 대한 특허를 갖고 있던 인물임이 밝혀졌다. B업체 제품이 많이 깔릴수록 돈을 버는 인물이 A업체 제품 감사에 참여한 셈이었다. 이미 감사 자체가 객관성을 상실했다고 볼 수 있다.

어쨌든 세 차례 감사를 거치며 결국 B사 제품이 깔리게 되고, B사는 4000억원에 달하는 공사를 따냈다. 당시 업무를 주관한 부서(궤도처)의 책임을 맡았던 ㄱ씨는 김광재 이사장과 영남대 동기였으며, 이번 압수수색 대상에 포함됐던 것으로 전해진다. 공단 내부 직원들은 ㄱ씨에 대해 “김광재 이사장의 대표적인 측근”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이번 관피아 관련 수사를 하며 공단과 납품업체 사이에 금품이 오갔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는데, 그 중심에 있는 인물 중 한 명으로 ㄱ씨를 주목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5월28일 검찰 관계자들이 대전에 있는 한국철도시설공단 압수수색을 끝내고 압수품을 들고나오고 있다. ⓒ 연합뉴스
호남고속철도 입찰 담합 의혹도 수사

검찰은 철피아 문제와 관련해 호남고속철도 입찰 담합 의혹에 대해서도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공단과 더불어 몇몇 철도 관련 업체에 대해 압수수색이 이뤄졌는데, 호남고속철도 입찰 담합 의혹에서 거론됐던 업체들이 포함돼 있다.

현재 철피아 비리와 관련해 가장 주목되는 인물은 김광재 전 이사장이다. 그는 공공기관장 중 대표적인 MB(이명박 전 대통령)맨으로 꼽힌다. 검찰 내부의 한 특수통 관계자는 김 전 이사장에 대한 수사와 관련해 “MB 정권에 대한 사정 신호탄이 될 수도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대구 출신으로 대구고와 영남대를 졸업한 김 전 이사장은 MB 정권뿐만 아니라, 현 정권의 주요 인사들과도 친분설이 나돌았다.

현재 관피아 수사의 컨트롤타워는 대검찰청 반부패부가 맡고 있으며, 서울중앙지검을 비롯한 전국 검찰청에 특별수사본부를 설치하고 있다. 또 해당 수사본부 외에도 관피아와 관련해서는 검찰의 전 조직이 관심을 갖고 있다. 공공기관뿐 아니라 정부 업무를 위탁받아 수행하는 민간 협회에도 칼을 댈 것이라는 게 검찰 내부 관계자의 설명이다. 한마디로 전 방위 수사다. 관피아에 대한 수사가 힘을 받고 있는 것은 특히 김진태 총장이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 간첩 증거 조작 사건 등으로 체면을 구겼던 검찰이 국민적 관심이 높은 관피아 수사를 통해 얼마나 자존심을 세울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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