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행방이 묘연하다. 유씨는 안간힘을 쓰며 도망치고 있고, 검찰은 총력전을 펼치며 뒤를 쫓고 있다. 도피를 도운 인사들을 구속해 ‘협조자’들의 싹을 잘라버리겠다는 의지도 내비쳤다. 형사범에 대한 신고포상금으로는 역대 최고액인 현상금 5억원까지 내걸어 신고 가능성을 높였다. 검찰은 유병언 일가가 약 2400억원의 재산을 처분하지 못하도록 기소 전 추징보전명령을 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검찰이 취할 조치는 모두 취한 셈이다. 그런데도 유씨와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에서 검찰은 매번 허탕을 치며 꽁무니 따라다니기에 바쁘다. 유씨는 지금 ‘대한민국 공공의 적 1호’다. 이런 그가 검찰 출두 대신 도피를 선택했다. 그는 왜 ‘무모한 도피’를 감행했을까. 일각에서는 권력이 뒤를 봐주고 있다는 의혹까지 제기되는 상황이다.
유병언의 배후는 크게 세 가지다. ‘돈’ ‘종교’ ‘권력’이다. 세모그룹과 기독교복음침례회(일명 구원파) 그리고 교주 유병언은 삼위일체다. 겉으로는 다르게 보이지만 실상은 하나의 염색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권력’과 연결된다. 여기에다 성역이나 다름없는 ‘종교’까지 손에 쥐고 있으니 그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 유씨는 이를 밑천으로 정·관계를 넘어 해외 인맥에까지 손을 뻗쳤다.
유씨의 과거 설교 동영상 입수…‘헌납’ 강조
‘종교’와 ‘기업’을 일체화시킨 것은 유병언의 전략이었다. 유씨는 1962년 장인인 권신찬 목사와 함께 구원파를 설립한 후 한동안 ‘유 목사’로 불렸다. 1982년 10월 (주)세모를 설립하면서 종교인에서 기업가로의 변신을 꾀한다. 사실 겉포장만 ‘사장’으로 바꿨지, 구원파 교주로서 영향력은 절대적이었다. 유씨는 ‘돈’과 ‘종교’ 중 어느 하나도 포기하지 않았다. 구원파 신도들이 내는 헌금을 사업체 운영 밑천으로 삼았고, 급전이 필요할 때는 신도들에게 돈을 빌리는 방식으로 사채를 끌어다 썼다. 이 과정에서 종종 신도들과 갈등을 빚었다.
세모그룹 직원 대다수는 구원파 신도들로 채웠다. 종교가 없는 직원에 대해서는 입사할 때부터 ‘교율’ 등을 내세워 구원파 신도로 만들었다. 실제 세월호 선사인 청해진해운과 관계사 임직원 대다수는 구원파 신도인 것으로 드러났다. 세모에서는 자신들의 회사 운영상 기밀을 보호하기 위해 임직원들의 상당수가 외부와는 철저히 차단된 공동생활을 하기도 했다. 기업이 종교였고, 종교가 기업이었던 셈이다.
구원파는 ‘사업’이라는 명칭으로 계모임을 조직해 수익금을 공동 분배하면서 종교적 결속을 다지고 조직을 확대해왔다. 전 구원파 신도들은 “구원파의 전도 활동은 공공장소를 피하는 대신 선후배·친인척 등 인간관계를 토대로 은밀히 접근했기 때문에 겉으로는 거의 드러나지 않아 베일에 싸여 있는 상태였다”고 말한다. 유씨는 측근들을 앞세워 각종 종교 집회 때마다 자신을 ‘지혜자’ ‘지도자’ 등으로 부르게 하며 ‘절대적인 상징’을 만들었다.
유씨 일가는 업종을 가리지 않고 사업체를 늘려왔다. 생산과 유통, 금융을 장악했다. 돈을 버는 족족 전국 곳곳에 땅을 샀다. 서울을 비롯해 대전·인천·대구 등 대도시와 경남 고성, 전남 완도 등의 토지나 아파트, 병원, 상가 등을 대규모로 매입했다. 구원파 총본산인 경기도 안성의 금수원도 이런 방식으로 마련했다. 이곳에서는 그들만의 자급자족이 가능하다. 사실상 ‘유병언 왕국’이다.
민자당 재정위원 지내…“월계수회 회원” 주장
유병언은 어떤 방식으로 신도들의 정신을 지배했을까. 최근 시사저널이 입수한 유씨의 설교 동영상(1999년 1월, 2005년 10월)에서 해답을 얻을 수 있었다. 여기에는 은근히 헌납을 유도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 주기도문(예수가 그의 제자들에게 가르친 모범의 기도문) 내용 중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는 대목을 유독 강조한다. 그는 “자기 집 냉장고에 고기 덩어리 한 개라도 있거나, 쌀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기도하면 안 된다. 쌀이고 뭐고 먹을 거 하나도 없으면 이 기도를 해도 된다”며 “냉장고가 가득 차 있는데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이게 기도가 되겠느냐, 이런 기도는 불필요한 것이다”고 말한다. 하나님이 내려주시는 일용할 양식을 얻으려면 가지고 있는 것을 버리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또 ‘마태복음’에 있는 ‘핍박’을 언급하며 신도들의 이탈을 막고 결속력을 다지는 대목도 나온다. “(그동안) 구원파다, 사이비다, 오대양이다, 별것 다 뒤집어씌웠다. 어떤 더러운 소리를 해도 복음은 계속되고 있다. 인터넷을 보면 괴상치도 않다. 너무나 거짓들이 많다”며 “핍박을 면하기 위해 떠나면 핍박은 우리에게 가중된다. 핍박을 받으면 천국이 너희들의 것이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내리는 상이 크니라”고 강조했다. 유씨는 일찌감치 차남 혁기씨를 후계자로 낙점했는데, 그도 아버지의 설교법을 전수받아 신도들 앞에 나서고 있다.
유 전 회장은 ‘돈’과 ‘종교’를 앞세워 권력층에 선을 대기 시작했다. 대구가 고향인 그는 TK(대구·경북)가 기반인 5공화국과 맥이 닿아 있었다. 유씨가 뒷배로 접근한 것은 5공 당시 새마을운동중앙본부 회장이자 전두환 대통령의 동생인 전경환씨였다. 유씨는 전씨에게 경호원을 붙여주기도 했다. 1983년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는 자신의 경호원을 파견해줬고, 이 일로 당시 내무부장관으로부터 ‘레이건 대통령 방한 경비 지원 공로 감사장’을 받았다.
1985년 9월 세모는 당시 코리아타코마 등 유수한 조선업체들을 제치고 서울시로부터 한강 유람선 운항권을 따냈다. 회사 설립 3년째인 무명의 중소업체가 혜성처럼 사업권을 거머쥔 것은 기적에 가까웠다. 입찰 업체들 사이에서는 전경환씨의 도움이 컸다는 소문이 공공연히 나돌았다. 1984년 3월23일 전두환 대통령은 유씨의 회사인 (주)삼우트레이딩을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 전 대통령은 사공일 경제수석에게 “애로사항을 검토해 돌봐주라”고 지시했다. 얼마 후 삼우 측은 부동산 담보 제공과 사업 범위 축소 등 은행 측 요구를 받아들인 뒤 4개 은행에서 25억원을 대출받았다. 유씨는 구원파 신도들에게 “청와대 고위층과 종종 식사를 함께 한다”는 등의 말을 했다고 한다. 신자들로부터 사채를 끌어모을 때나 일부 신자들이 돈을 돌려달라고 요구할 때마다 5공 권력층과의 ‘밀접한 관계’를 의도적으로 흘리면서 협박했다는 채권자들의 주장도 있다.
유씨가 권력층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는 의혹은 여러 곳에서 감지된다. 1986년 7월 당시 치안본부 특수수사대(현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유병언의 사기 행위 관련 진정서를 접수하고 내사를 실시해 유씨가 구원파 신도들로부터 2억여 원을 사취한 사실을 밝혔으나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실 박 아무개 비서관의 지시에 따라 수사를 중단한 일도 있었다. 1987년 8월29일 32명이 변사체로 발견되는 오대양 사건이 터졌다. 당시 검·경은 집단 자살의 원인 등에 대해서는 자세히 밝히지 않은 채 수사를 마무리했다. 그러다 1991년 7월 잠적했던 용의자 6명이 경찰에 자수하면서 재수사에 들어갔다. 검·경은 대대적인 수사에 착수했고, 구원파와 교주인 유병언을 유력한 용의선상에 올렸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검찰의 수사는 지지부진했다. 구원파 신도인 죽은 박순자씨와 유병언의 최측근인 송재화씨(여)의 돈 관계까지 드러났지만 결국 ‘혐의 없음’으로 결론이 났다. 이를 두고 ‘권력층의 비호설’이 제기됐다. 1991년 7월 당시 민주당의 김현 의원이 “유병언 사장은 월계수회 회원”이라고 주장하면서 ‘6공화국과의 커넥션’을 주장했다. 월계수회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사조직으로 ‘6공 황태자’로 불리던 박철언 당시 체육청소년부장관이 주도했다. 유씨는 또 민자당 재정위원을 지내면서 ‘돈줄’ 역할을 했다.
유씨에 대해 ‘5·6공 유착설’과 ‘배후설’이 확산되자 검찰은 내사에 들어갔으나, 5공 비호 의혹을 샀던 ‘25억 대출’ ‘한강 유람선 업체 선정’ ‘청와대 민정수석실 내사 무마’ 등은 모두 관련이 없다고 발표했다. 사실상 ‘권력 유착설’에 면죄부를 준 셈이다. 유씨는 1991년 8월, 구원파 신도들에게 거액을 빌린 후 갚지 않은 혐의로 징역 4년을 선고받았을 뿐이다.
구원파 장학생 모임 ‘우정학사’ 인맥 주목
세월호 참사가 터진 이후 유병언의 인맥이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유씨에 대한 수사가 지지부진하고 급기야 검찰의 수사망을 뚫고 잠적하면서 ‘정·관계 커넥션’ 의혹이 다시 일고 있다. ‘보이지 않는 힘’이 뒤를 봐주고 있기 때문이라는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지금까지 ‘유병언’의 뒤를 봐준다는 유력 인사의 실명은 거론되지 않고 있다. 최근 사설 정보지(찌라시)에 ‘유병언 인맥’ 명단이 돌았으나 정확히 확인되지 않은 내용이다. 그렇다고 ‘유병언 인맥’이 5·6공화국에서 단절됐다고 보기는 힘들다. 지난해 초 서울의 한 호텔에서 열린 유병언의 사진집 출판기념회에는 400여 명의 인사가 참석했는데, 이 중에는 성김 주한 미국대사 등 각국 주요 대사와 유씨의 조카사위로 알려진 박진영 JYP엔터테인먼트 대표 등의 모습도 보였다. 유병언의 숨겨진 인맥도 상당하다. 현재 구원파 신도는 1만명 내외로 추정되고 있다. 군을 비롯해 국정원·검찰·경찰 등 권력기관 등에도 신도가 뻗어 있다는 얘기들이 확산되고 있다. 세월호 침몰 사고 수사를 진두지휘했던 이용욱 전 해경 정보수사국장이 세모 출신의 전 구원파 신도로 알려지면서 국제협력관으로 전보됐다.
구원파 장학생 모임으로 추정되는 ‘우정학사’ 출신들도 1000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들 중 일부는 유병언 일가 계열사에 입사했거나 사회 주요 곳곳에 포진해 있다. 정동섭 사이비종교피해대책연맹 총재는 “우정학사는 젊은 아이들을 키워 구원파의 지도자를 만들기 위한 목적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검사 출신의 이민석 변호사는 “유병언은 특경법(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를 받고 있다. 최고 무기징역까지 선고할 수 있고, 최소 20년은 감방생활을 해야 할 처지다. 유씨 나이가 73세인 것을 감안하면 평생 그곳에서 살아야 한다”며 “그는 어떻게 하든지 최대한 시간을 끌고 도피하면서 자기가 돈을 준 권력자들을 압박해 도움을 받으려고 할 것이다. 유씨를 잡는 것에 그칠 것이 아니라 그와 연결된 ‘정·관계 커넥션까지 밝혀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독교복음침례회(구원파) 및 유병언 전 회장 관련 정정 및 반론 2 시사저널은 기독교복음침례회(일명 구원파)및 유병언 전 회장 관련 보도에 대하여, 기독교복음침례회 교단 및 유병언 전 회장의 유족과 합의를 통해 다음과 같이 두 번째 통합 정정 및 반론보도를 게재합니다. 1. 오대양 사건 및 5공화국 유착 관련 보도에 대하여 2. 구원파의 교리 폄하 및 반사회적 집단 이미지 보도에 대하여 3. 이준석 선장을 비롯한 선원들이 구원파 신도라는 보도에 대하여 4. 구원파의 내부 규율 및 각종 팀 관련 왜곡선정 보도에 대하여 5. 기독교복음침례회에서의 유병언 전 회장 지위 관련 보도에 대하여 6. 금수원 관련보도에 대하여 7. 유병언 전 회장의 정관계 로비설 및 경영개입 보도에 대하여 8. 유병언 전 회장 작명 관련 보도에 대하여 9. 기독교복음침례회(구원파)의 유병언 전 회장 도피 관련 보도에 대하여 11. 유병언 전 회장 재산 및 대출 관련 보도에 대하여 13. 유병언 전 회장 신도 지시 보도에 대하여 14. 기독교복음침례회 모금 관련 보도에 대하여 15. 유병언 전 회장 개인 신상 보도에 대하여 기독교복음침례회 측의 좀 더 자세한 입장을 ‘구원파에 대한 오해와 진실 (http://klef.co.kr)’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