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지렛대 삼아 장기 집권 노린다
  • 김회권 기자 (khg@sisapress.com)
  • 승인 2014.06.11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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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일 납치 문제 재조사 합의…중의원 해산 후 재선거 시도할 듯

북한과 일본이 납치 문제 재조사와 대북 독자 제재 조치 해제의 빅딜을 발표한 5월29일, ‘한반도 주변국’은 모두 충격을 받았다. 출범 때부터 대북 강경 자세를 전면에 내세웠던 아베 정부의 결정이라 더욱 그랬다. 서로 물고 할퀴며 증오하던 북한과 일본이 2년 만에 그렇게 손을 잡았다.

“굳게 닫혀 있던 납치 피해자 구출의 문을 열 수 있었다.” 스톡홀름 합의문을 발표한 다음 날인 5월30일 오전, 도쿄 총리관저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굳은 결의를 품은 얼굴로 기자들 앞에 섰다. 평소처럼 그의 양복 상의에는 파란색 배지가 달려있었다. 피랍자의 무사귀환을 염원하는 상징물이다. 북한 비핵화를 위한 국제 공조가 진행되고 있는 시점에 본인이 내린 결단은 대외적으로는 부담이었다. 하지만 아베 총리에게 납치 문제는 자신의 공약이자 숙명이요 필생의 과업이다.

북한과 납치 문제 재조사에 합의하며 경제 제재 해제와 국교 정상화까지 언급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 그가 항상 부착하고 있는 양복 상의 왼쪽의 파란 배지는 ‘북한 납치 피해자의 무사 귀환’을 의미한다. ⓒ EPA 연합
국회의원이 된 이후 무명 정치인 아베는 납치 문제를 공론화하며 주목받았다. 납치 문제는 아버지인 아베 신타로가 물려준 정치적 자산이었다. 중의원 의원인 아버지의 비서로 일하며 이 문제를 처음 접했고 피랍자 가족의 대명사 격인 요코타 메구미 가족을 비롯해 피랍자 가족을 위해서라면 최선을 다했던 아베였다. ‘아베=납치 문제 해결 전문가’라는 등식은 이내 일본 국민에게 각인될 정도였다.

아베 총리는 2002년 결정적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관방장관 시절인 2002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총리와 북한을 방문한 후 납치된 일본인 5명을 데리고 돌아오면서부터였다. 2002년 9월17일 고이즈미 총리의 전격적인 평양 방문은 세상을 놀라게 했다. 과거 청산과 경제 협력, 국교 정상화 등을 담은 ‘평양선언’이 발표됐고, 이에 화답하듯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970년대와 80년대 초까지 특수기관 일부의 영웅주의가 불러온 과실”이라며 일본인 납치 사실에 대해 사과했다. 이후 북한은 피랍 일본인 5명과 그 가족 등 모두 10명을 일본으로 일시 귀향시켰다. 

당시 고이즈미 총리는 귀향한 일본인을 “다시 북한으로 돌려보낸다”고 합의했지만, 아베는 “약속을 파기하고 돌려보내지 말자”고 줄기차게 주장했다. 북한을 때리면 인기가 올라가는 것은 일본 정치의 특징인데 아베 역시 이런 혜택을 받았다. 2006년 아베의 첫 총리 취임의 시작은 납치 문제로 얻은 정치적 명성에서 비롯됐다.

2012년 12월, 두 번째 내각을 구성한 아베 총리는 이번에도 납치 문제에서 정치적 타개책을 찾고 있다. 일본 정치 1번지인 도쿄도 지요다 구 나가타 초에서는 북한과 일본의 납치 피해자 재조사 합의 소식이 돌자 갑자기 ‘의회 해산’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해산의 전제는 이렇다. 일단 북한이 내놓을 결과물이 중요한데, 현재 관계 정상화가 더 간절한 쪽은 북한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일본 정부를 설득할 수 있는 성실한 결과물을 내보일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북한의 결과물이 제대로 나온다는 걸 전제로 한 자민당의 계산은 이렇다. “지금부터 납치 재조사를 진행하면 가을 정도에는 결과가 나온다. 일본인이 1~2명이라도 돌아온다면 자민당의 지지율은 확실히 오른다. 그 여세를 몰아 중의원을 해산하고 총선거를 치를 수 있다.” 북한의 비핵화 문제에 대해 공조해온 미국의 불신을 사면서까지 협상을 진행하고 경제 제재의 일부 해제를 검토하는 일본의 절박함은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악재 즐비한 아베, 납치자 귀환 승부수

사실 아무 일 없이 이대로 흘러갈 경우 아베 정권의 앞에는 역풍이 불 사건만 기다리고 있다. 오를 만큼 오른 지지율은 이제 빠질 일만 남은 셈인데 특히 연말에 난제가 산적해 있다. 일단 4월1일 일본 정부는 재정 건전화를 위해 17년 만에 소비세를 인상했는데, 이 때문에 향후 가계 소비 등이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던 차였다. 11월에는 후쿠시마 현과 오키나와 현에서 지사 선거가 있는데 이것도 어려운 전쟁이다. ‘원전’과 ‘미군기지’가 쟁점이 될 게 빤한 선거라 자민당에 불리하고 만약 패배한다면 아베의 정치적 구심력은 단번에 약해질 수밖에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지율이 높아질 시기를 고려해 중의원을 해산한 후 재선거로 난관을 타개해버리자”는 소리가 총리관저 근처에서 맴돌고 있는 것이다. 지지율이 하락하면 해산조차도 마음대로 할 수 없게 된다. 그런 점에서 아직은 여유가 있는 셈이다.

일단 현재의 정치 환경은 분명 자민당에 유리하다. 지난해 7월 참의원 선거에서도 참패한 제1야당 민주당은 존재감이 사라진 지 오래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납치 문제 해결이 진전되고 이번처럼 전격적으로 북한을 방문한 아베 총리가 납치된 일본인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오는 모습이 전파를 탄다면 그 즉시 중의원 해산과 총선거가 이뤄질 동력이 생긴다. 그럴 경우 야당은 괴멸하고 자민당은 지금보다 의석 수가 더욱 늘어나는 시나리오가 가능하다.

심지어 오는 11월로 예정돼 있는 후쿠시마 현과 오키나와 현 지사 선거에서조차 자민당 승리가 가능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정치평론가인 야마다 아쓰토시는 “이런 시나리오대로 흘러간 뒤 지사 선거를 중의원 선거와 같은 날 치르면 자민당이 이길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올 수 있다”고 전망했다. 반면 민주당 관계자는 “만약 납치 문제에서의 성과를 전면에 내세우게 되면 승산은 없다. 아베 총리가 중의원을 해산한 후 선거를 다시 치러 대승하면 고이즈미 정부와 같은 장기 집권으로 갈지도 모른다”고 토로했다. 

중의원 해산은 자민당의 강력한 무기다. 아베 총리도 해산을 말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현직 의원 중 2016년 자신의 임기가 끝나기도 전에 선거를 치르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 상황에서 아베 총리는 “중의원 해산은 적절한 때 결단하려고 한다”며 야당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지난해부터 말해왔다.

안절부절못하는 야당을 도발하듯 북한과의 협상 결과를 발표한 이후부터 장기 집권과 중의원 해산설이 언론에 등장하고 있다. 간 나오토 관방장관은 5월31일 요미우리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아베 총리는 중의원 선거를 극복한 뒤 내년 총재 선거에서 재선돼 2018년까지 총리직을 유지할 것이다”라는 계획을 언급했다. 자민당의 중진인 야마모토 유우지 의원(중의원)도 “정계를 재편하는 것은 결국 중의원 해산 시기와 관련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납치 문제 해결, 집단적 자위권 해법 될 수도

중의원 해산과 총선거는 집단적 자위권 문제를 단번에 해결할 수 있는 꽃놀이패다.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기 위해 개헌을 강행하려는 아베 총리에게 가장 강력한 장벽은 국민의 반대 여론인데 이 뿌리가 의외로 깊다. 계속 설득하고 있지만 최근 여론조사에서도 개헌 반대가 평균 50% 정도로 나온다. 개헌 찬성은 후하게 쳐줘도 10명 중 4명꼴이다. 일본 석간지인 ‘일간 겐다이’는 “거대 미디어들이 아베 총리를 지원하고 있는데도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찬성 여론이 늘어나지 않는 것을 보고 아베 총리 쪽에서 충격을 받고 있다. 이대로 시간이 지나가면 반대파가 증가하는 것은 아닌지 초조해하고 있다”고 전했다.

납치 문제를 국내 정치에 이용하려는 아베의 중의원 해산 전략은 정말 진심일까. 야당의 움직임을 보면 안다. 때마침 보수 정당인 일본유신회는 하시모토 도루와 이시하라 신타로 두 공동대표가 분당에 합의하면서 두 개의 그룹이 창당 1년6개월 만에 갈라서기로 합의했다. 각 그룹은 민주당의 일부 세력, 모두의당과 제휴를 모색하거나 자민당 복귀까지도 염두에 두고 있다. 혹시 있을지도 모를 ‘깜짝 해산’에 맞선 야당의 대비는 해산 전략의 현실성을 방증하고 있다. 납치 문제에서 정치적 과실을 따먹으려는 아베. 북·일 사이의 밀담에 가장 신경이 곤두선 쪽은 의외로 일본 정치인들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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