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변호사’, 유병언 딸 구출 나서다
  • 최정민│프랑스 통신원 ()
  • 승인 2014.06.11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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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섬나씨 변호 맡은 메조뇌브…‘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사건’ 전문

‘악마의 변호사’라는 무시무시한 별명을 가진 파트릭 메조뇌브 프랑스 변호사가 국내에서 화제의 주인공으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프랑스에서 체포된 유섬나씨의 변호를 맡은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유씨는 현재 도피 중인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장녀다. 메조뇌브 변호사는 프랑스에서는 진작부터 유명세를 탄 인물이다. 프랑스 제1야당인 대중운동연합(UMP)의 장 프랑수아 코페 대표를 물러나게 만든 ‘비그마리옹 대선 자금 초과 지출 스캔들’에도 그의 이름이 들어가 있다.

프랑스에는 ‘그랑 아보캬’라는 변호사 전문 홈페이지가 있다. 거기서는 메조뇌브를 ‘슈퍼스타 변호사’라고 부른다. 그의 수임 방식에 관해서는 ‘상징적인 사건이거나 유명한 인물이 주인공일 경우’라고 요약해놓았다. 그래서인지 프랑스에서는 메조뇌브에 관한 뉴스를 찾는 것이 어렵지 않다. 지난 20년간 프랑스에서 세간의 이목을 끌었던 사건과 재판에는 늘 그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서 ‘악마의 변호사’로 유명한 파트릭 메조뇌브가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장녀인 섬나씨의 변호인으로 선임됐다. ⓒ epa 연합
할리우드 톱스타 톰 크루즈가 믿는 종교로 유명해진 사이언톨로지가 연관된 사건에도, 부정 축재 혐의로 고발됐던 오마르 봉고 전 가봉 대통령의 변호사 명단에도 메조뇌브는 등장한다. 그가 유명세를 탄 것은 단순히 유명인이나 화제가 된 사건을 맡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사건, 절대 변호할 수 없어 보이는 사건에도 그는 어김없이 등장했다.

프랑스인의 ‘공공의 적’ 변호하기도

프랑스인들을 충격에 빠뜨렸던 ‘우트로 사건’에서 온 국민의 지탄을 받았던 파브리스 뷔르고 판사를 변호했던 것도 그였다. “성폭행을 당했다”는 우트로 지역의 어린아이와 그 엄마의 증언만으로 증거 없이 무고한 주민들에게 유죄를 선고했던 이 사건은 법체계의 실수가 한 개인과 가정을 얼마나 잔인하게 파괴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대표적 사례였다. 특히 늘 다양한 의견이 공존하는 프랑스 사회에서는 전례가 없었을 만큼 하나로 응집된 분노를 표출한 사건이었는데, 당시 온 국민의 적이었던 피고인의 변호를 맡은 사람이 메조뇌브였고, 이것이 그의 독특한 수임 스타일을 상징하고 있다.

코르시카 지사를 권총으로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프랑스 지명수배 리스트 1위 이반 콜로나도 그의 고객이었다. 자치주의자들의 테러로 사고가 끊이지 않았던 지중해의 섬인 코르시카에서 벌어진 이 사건을 메조뇌브가 맡았던 이유는 그 역시 강경 자치주의자였기 때문이다. 콜로나는 1, 2차 재판에서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메조뇌브는 끊임없이 무죄를 주장했고, 결국 대법원까지 올라가는 데 성공했다.

메조뇌브의 유명세는 그야말로 톱클래스급이지만, 그렇다고 영향력까지 톱클래스는 아니다. 남성 전문 잡지인 GQ 프랑스판이 지난해 발표한 ‘프랑스에서 가장 강한 변호사 30인’ 순위를 보면 메조뇌브의 순위는 14위에 그쳤다. 그의 유명세에 비춰보면 다소 실망스러운 순위임이 분명하다. 이는 대중 정서에 역행하는 사건의 변호를 주로 맡기 때문에 영향력에서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국 검찰이 제시한 혐의에 오류 있다”

메조뇌브는 프랑스의 한 법률 전문 매체와 가진 인터뷰에서 “피고인들에게 호감을 갖는가”라는 질문에 “나에게 호감과 비호감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내가 변호해야 할 진실이 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나의 유일한 관심은 법적인 절차가 공평하고 정대하게 이루어지는 것이며, 그 과정을 통해 법률적 진실에 다다르게 하는 것이다. 역사적 진실은 늘 같은 곳에 있지는 않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전 국민의 공분을 사고 있는 유병언 전 회장의 딸 섬나씨의 변호를 맡은 이유는 무엇일까. 일각에서는 수임료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메조뇌브의 과거 수임 사례를 보면, 비슷한 부분을 찾을 수 있다. ‘악마의 변호사’라 불리지만 메조뇌브는 모든 사건을 역사적 판단과 사법적 진실의 사이에 놓는다는 점을 매번 강조해왔다. 그가 뛰어든 사건들은 대부분 정치적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예를 들어 부정 축재 혐의로 고발됐던 봉고 전 가봉 대통령은 누가 봐도 잘못을 저지른 인물이었다. 반면 메조뇌브는 이를 단순한 부정 축재 사건으로 보지 않았다.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조직적인 도청과 감청이 있어왔다”고 말했다. 당시 봉고는 프랑스에서 고소되었는데, 그 누구보다도 프랑스 정·재계 인사들과 끈끈한 인연을 맺고 있었다. 1960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가봉에서 41년간 대통령 자리를 독점하며 장기 집권했던 인물이었다. 프랑스 정유업체인 ‘토탈’은 가봉 정부로부터 각종 특혜를 제공받았는데, 그래서인지 그의 독재 뒤에는 프랑스 정부의 지원이 있다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흘러나왔다. 2009년 스페인에서 그가 사망한 소식은 가봉 정부보다 프랑스의 외교부가 먼저 알았고, 그의 장례식에는 자크 시라크와 니콜라 사르코지 등 프랑스 전임 대통령들이 참석했다.

봉고의 사망 이후 아프리카 전문 인터넷 언론인 ‘존 아프리카’는 봉고 퇴임 후 이루어진 부정 축재 혐의를 둘러싼 기소와 재판이 ‘가봉 정부를 흔들기 위한 전략’이었다고 지적했다. 가봉과의 관계가 중요한 프랑스가 외교적 전략으로 봉고 전 대통령을 희생양으로 만들었다는 얘기였다. 메조뇌브와 비교될 정도로 또 다른 한 명의 ‘악마의 변호사’로 불리는 베르제는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의 변호를 자청하며, ‘후세인을 어떻게 변호할 것인가’보다는 ‘후세인이 과연 무사히 법정에 설 수 있을까’를 더 걱정했다.

아프리카나 중동 독재자들의 말로는 역사적으로 험난했는데 그 이유 중 하나로 제시되는 것이 재임 기간 중 서방 국가 수뇌부와의 관계였다. 메조뇌브나 베르제가 “총체적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우리 같은 변호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이번 유섬나씨의 국내 송환 문제를 두고 메조뇌브는 “나의 의뢰인은 정치적 희생양이고, 한국 검찰이 제시한 혐의에는 오류가 있다”며 어느 정도 사태 파악을 끝냈음을 보여줬다. 그가 세월호 참사의 ‘총체적 진실’에 얼마나 가까이 접근할 수 있을까. 프랑스에서는 유병언 일가의 메조뇌브 선임을 ‘신의 한 수’라고 평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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