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민족’ 간식은 치킨이 역시 최고야
  • 김진령 기자 (jy@sisapress.com)
  • 승인 2014.06.25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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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적인 재료 공급과 싼 가격으로 꾸준한 인기

월드컵 기간 동안 치킨이 꽤나 팔려나갈 것이다. ‘치맥’(치킨+맥주)과 함께 새벽녘까지 축구를 보는 재미는 얼마나 쏠쏠한가. 환호와 열망 속에 치맥이 없다면 참으로 건조할 것이다. 

치킨은 간식계의 왕이다. 웬만한 먹거리 아이템은 5~10년 인기를 끌다 사라지고 마는데 치킨은 1980년대 이래 유아독존하고 있다. 최근에는 ‘치느님’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치킨 체인점이 그렇게 많은데도 늘 새로운 종류의 치킨집이 생겨나 수십 년째 대중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 치킨은 어떻게 짜장면과 함께 ‘배달’의 민족을 상징하는 불멸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을까.

음식 칼럼니스트 황교익씨는 “치킨은 대한민국 식품산업의 샘플이다. 식품 사업은 얼마만큼 싼 재료를 안정적으로 조달할 수 있느냐가 관건인데 치킨은 이를 가장 잘 충족하고 있는 아이템”이라고 말했다. 치킨을 뜯어보면 부화부터 사료 조달, 사육, 처리, 유통, 양념 등 그 안에 우리 식품산업의 구조가 단계별로 다 들어 있다. 쉽고 싸게 조달할 수 있는 공장제 식자재로 완성되는 구조, 그러니까 치킨은 전자제품처럼 부품화한 현대 한국 식품산업의 표본인 것이다.

ⓒ 일러스트 서춘경
프라이드 치킨으로 대표되는 치킨산업은 생닭부터 염지(밑간)제, 튀김가루, 소스, 절인 무에 이르기까지 치킨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부품)가 대규모 공장에서 저렴한 가격에 안정적으로 공급되는 밸류 체인이 형성돼 있다. 각 단계별로 곡물·사료·식용유 같은 수입 농산물회사와 유통회사, 기업형 육계 공급회사, 식자재(소스) 공급회사 등 한국의 거의 모든 식품 기업이 참여하고 있다.

레드오션이지만 소비층 두터워

황교익씨의 설명이다. “튀김 자체가 조선에는 없던 음식이다. 돼지기름 등을 이용한 부침 요리가 있었을 뿐이다. 1970년대 동방유량이라는 회사가 콩기름 원료를 미국에서 수입해 싼값에 콩기름을 공급하면서 튀김 요리가 대중화됐다. 치킨용 닭도 사료부터 생닭 출하까지 계열화돼 있다. 양념 치킨의 기본 소스인 물엿도 대기업이 생산한다. 치킨은 저가에 대량으로 뿌려질 수 있는 소재의 총합이다.”

저렴하고 안정적인 재료 공급은 매스마케팅이 가능한 시장 조성의 기본 요건이다. 여기에 프라이드 치킨의 기름진 맛은 인생 라이프사이클에서 가장 활동적인 시기를 보내고 있는 30~40대 이하 소비자가 가장 좋아하는 맛, 필요로 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그만큼 경제 활동이 활발한 소비층이 두텁다는 이야기다. 최근 몇 년 사이 치킨 사업에 뛰어든 요리사 박세민씨(31·치맥F&B 연구개발팀)와 치킨 프랜차이즈 치킨시대 이승규 본부장(33)도 치킨 시장이 레드오션이라는 점보다는 ‘치킨 소비층이 두텁다’는 점에 주목하고 이 분야에 뛰어든 젊은 모험가다. 

두 사람이 일하고 있는 ‘치맥’과 ‘치킨시대’의 공통점은 프라이드 치킨이 주메뉴라는 것이다. 다른 점은 치맥은 ‘치킨 다이닝’ 개념의 좀 더 비싸고 고급스러운 포장으로 2만원대의 프라이드 치킨 요리를 내고, 치킨시대는 배달이 없는 대신 1마리에 8500원 정도의 저렴한 가격으로 승부를 걸고 있다는 것이다. 이승규 치킨시대 본부장은 대학을 졸업하고 잠깐 직장 생활을 한 후 곧바로 창업에 나선 경우다. 2010년 서울 방이시장에서 치킨가게를 열고 그 다음 해부터 치킨 체인점 사업을 시작했다. 창업 아이템으로 치킨을 고른 이유에 대해 그는 “치킨이 국민 음식 아닌가. 거기에 성공 포인트가 있다고 봤다. 그 시장에서 남들이 안 하는 것(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을 하면 경쟁력이 있겠다 싶었다. 경쟁률이 높다는 것은 그만큼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뜻이다. 소비자층이 두터운 것이다. 큰 시장에 나가서 경쟁을 해야 얻는 게 많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레드오션’이라 더 매력적이었다는 말이다. 이는 20년 전부터 레드오션 소리를 듣는 치킨업계에 계속 신규 치킨 프랜차이즈가 등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본부장은 창업 자금으로 부모에게서 빌린 1억원을 사업 시작 1년 만에 갚고 프랜차이즈 사업으로 판을 키웠다.

치맥의 박세민 셰프는 대학에서 조리학과를 나와 국내 호텔과 미국에서 요리사로 2년 정도 일했다. 미국에서 귀국한 후 찾은 아이템이 치킨이다. 그는 외국에서 한국식 프라이드 치킨이 주목받고 있다고 전했다. “외국에서 출간되는 요리책에 한국식 프라이드 치킨을 다루는 경우가 늘어날 정도로 한국식 치킨이 주목받고 있다. 외국에선 밥으로 치킨을 먹지만 우린 간식 개념이고 밑간(염지)이 좀 더 디테일하다. 똑같은 닭으로 만든 치킨이지만 차로 따지면 옵션이 많은 차(한국식)와 적은 차(미국식)의 차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치느님’의 위엄이 맹위를 떨치는 계절은 언제일까. 치킨은 따뜻하고 바삭거릴 때 먹어야 최고라는 점에서 추운 계절에 힘을 받을 것으로 흔히 생각한다.

치킨시대 이승규 본부장(왼쪽)과 치맥의 박세민 셰프. ⓒ 시사저널 임준선
‘치맥’ 영향 여름 매출이 겨울보다 많아

하지만 답은 의외였다. 치킨은 맥주와의 협업이 중요했다. 최근 유행하는 ‘치맥’이 괜히 생긴 말이 아니다. “계절을 탄다. 여름에 매출이 확 뛴다. 맥주와 함께 붙어다닌다. 여름에 시원하게 마시고 싶어 하니까, 덩달아 치킨도 뛴다.”(박세민)

“여름엔 치맥이다. 테이크아웃 판매가 많아 계절은 덜 타지만 그래도 여름 하루 매출이 100이라면 겨울은 80 정도로 차이가 난다.”(이승규), 박 셰프는 “영양학적으로 치킨과 맥주는 좋은 궁합이라고 볼 수 없지만 치킨이 기름에 튀긴 느끼한 음식이라 벌컥벌컥 마실 음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치킨 메뉴가 생각보다 간이 강한 이유에 대해 박 셰프는 “사람들이 저염식이 좋다는 것은 알지만 실제는 저염식에 반감을 보이는 사람이 50% 이상이라서 입맛의 선택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치킨집의 차별화 포인트는 밑간(염지)이다. 어떤 향신료를 넣고 어느 정도의 간을 하느냐가 맛을 결정한다. 염지제는 프랜차이즈 업체마다 대형 식자재 공급업체와 계약을 맺고 자사만의 레시피를 이용한 것을 조달한다. 

국내에선 동원삼조셀텍이 제일 큰 양념 공급회사다. 오리온제과·굽네치킨·피자헛 등이 이 회사의 오랜 파트너다. 동원삼조셀텍의 오준석 마케팅 팀장은 “염지제의 베이스는 소금과 향신료다. 튀김가루에 매운 성분을 첨가하는 경우도 있다. 치킨과 관련해서는 튀김가루 매출이 제일 많다. 튀김가루도 업체마다 요구하는 레시피가 다르기 때문에 오븐 구이용, 프라이드용 등 20~30종류가 있다”고 밝혔다. 사실상 치느님의 ‘조물주’는 하림·마니커 등 육계 업체와 튀김가루와 소스를 만드는 동원삼조셀텍 같은 대형 식자재업체인 것이다.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사회의 음식은 대중이 구매할 수 있는 적정한 가격 선에서 안정적인 공급만 하면 된다. 음식은 달고 짜고 매운, 몇 가지 기본 맛의 밸러스만 맞춰주면 된다. 여기에 적정한 포장(광고)이 더해지면 대중은 소비한다.”(황교익), “소고기나 돼지고기처럼 닭고기도 뜯는다고 표현한다. 그래서 같은 ‘고기’지만 가격이 저렴한 덕에 널리 인기를 얻는다”(박세민)는 말에서 드러나듯 대중의 ‘고기에 대한 열망’이 치킨 인기에 베이스로 깔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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