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출전·개최·우승이 나의 세 가지 소원”
  • 모종혁│중국 통신원 ()
  • 승인 2014.06.25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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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중국 주석의 못 말리는 축구 사랑…대륙은 월드컵 열기로 몸살

“한국팀은 정말 아시아 최강으로 꼽기에 손색이 없다. 러시아를 맞아 추호도 흔들림 없이 경기를 주도했다.”

6월18일 브라질 쿠이아바에서 열린 월드컵 H조 한국과 러시아 경기가 끝난 후 중국은 어느 때보다 떠들썩했다. 한국이 고전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무승부로 경기를 마감했기 때문이다. 중국인들은 경기 전 스포츠토토의 축구 매치에서 3 대 1의 비율로 러시아의 압승을 점쳤다. 그러나 한국(57위)이 FIFA(국제축구연맹) 랭킹이 무려 38단계나 높은 러시아(19위)를 상대로 대등한 접전을 펼치자 중국 내 분위기는 급변했다. 한국팀에 대한 칭송이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뒤덮었다. 대다수 중국인은 “2002년 이후에도 좋은 성적을 꾸준히 얻은 것은 오직 실력 덕분”이라며 한국이 아시아 축구의 기개를 만방에 떨치길 기원했다.

월드컵 경기 시청하다 숨지는 ‘추미’ 속출

중국은 이번 브라질월드컵에 진출하지 못했다. 2002년 한·일월드컵에 출전한 이후, 이번 대회를 포함한 세 차례 월드컵과 인연을 맺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월드컵에 대한 관심은 어느 나라보다 높다. “14억 인구 중 절반이 축구팬”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중국인의 축구 사랑은 뜨겁다. 너무나 강렬한 나머지 경기를 보다가 숨지는 ‘추미(球迷)’들이 속출하고 있다.

2014 월드컵 개막 경기인 브라질과 크로아티아 경기의 중계화면을 한 베이징 시민이 주점에서 시청하고 있다. ⓒ AP 연합
6월14일 랴오닝(遼寧)성 다롄(大連)에서 전직 축구선수였던 51세 남성이 스페인과 네덜란드의 경기를 시청하다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장쑤(江蘇)성 쑤저우(蘇州)에서도 밤새 축구 경기를 보던 25세 남자가 숨진 채 발견됐다. 시신을 검안한 병원 의사들은 밤샘 TV 시청에 따른 피로나 심장마비를 사인으로 추정했다. 15일 새벽에는 상하이(上海)에 사는 39세 남성이 사흘 동안 하루도 자지 않고 월드컵 경기를 보다가 뇌출혈로 사망했다.

이 같은 사고에 대비한 보험 상품이 나와 인기를 끌고 있다. 온라인 보험사인 중안(衆安)보험은 3위안(약 490원)을 낸 가입자가 TV 시청 중 사망하면 최고 1만 위안(약 164만원)을 지급하는 ‘올빼미보험’을 내놓았다. 경기를 보는 도중 과식해 급성 위장염에 걸리는 경우 보상해주는 ‘과식보험’도 출시했다. 충칭(重慶)에 있는 안청(安誠)보험은 응원하는 팀이 조별리그에서 탈락할 경우 인터넷 쇼핑몰 포인트로 보상해주는 ‘유감보험’을 내놓아 이목을 끌었다. 회사에 나가지 않으면서 월드컵을 즐기려는 축구팬을 겨냥한 가짜 진단서도 등장했다. 6월 초부터 인터넷 쇼핑몰 타오바오(淘寶)에서는 병가 제출용으로 쓸 수 있는 진단서가 팔리고 있다. 이 진단서는 장염·위염·골절상 등 여러 병명을 선택할 수 있고, 병원 직인까지 찍혀 있다. 판매되는 진단서는 옵션에 따라 10~300위안(약 1640~4만9000원)으로 다양하다.

이런 열성적인 추미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은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다. 시 주석은 베이징 81중학에 다닐 때부터 공을 즐겨 찼다. 허베이(河北)성 정딩(正定) 현 서기로 재직할 때는 주말마다 베이징으로 가 경기를 관람했다. 2011년 베이징을 방문한 손학규 당시 민주당 대표가 박지성 선수의 사인볼을 선물하자 “중국이 월드컵에 출전하고, 월드컵을 개최하고, 월드컵에서 우승하는 것이 나의 세 가지 소원”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2012년 2월 부주석 신분으로 아일랜드를 방문했을 때는 크로크파크 경기장에서 코트를 입고 구두를 신은 채 시축을 하기도 했다. 시 주석은 당시 모습을 담은 사진을 지금도 집무실에 걸어놓고 있다. 지난해 6월 자국 대표팀이 태국에 1-5로 대패하자, 국가체육총국에 전화를 걸어 “모든 역량을 동원해 원인을 파악하라”고 지시했다. 지난 3월 유럽 순방에서는 축구계 인사를 만나고 현지 축구장을 찾는 등 적극적인 ‘축구 외교’를 펼치기도 했다.

시 주석뿐만 아니라 중국의 억만장자 대다수도 소문난 축구광들이다. 6월5일 광둥(廣東)성 광저우(廣州)에서 알리바바그룹이 광저우 헝다(恒大) 프로축구 구단의 지분 50%를 12억 위안(약 1960억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광저우 헝다는 중국 구단으로는 처음으로 지난해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왕좌에 올랐다. 인수 계약 후 마윈(馬雲) 알리바바 회장은 “지난해부터 경기를 보면서 축구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알리바바는 중국 최대의 전자상거래업체다. 지난해 거래액이 2480억 달러에 달해 아마존(1000억 달러)과 이베이(800억 달러)를 훨씬 뛰어넘었다. 매출액은 55억5300만 달러, 순익은 14억 달러를 거뒀다. 미국 증시 상장을 앞둔 알리바바의 주식 가치 평가액은 최대 2000억 달러로 추정되고 있다. 회사 지분의 8.9%를 지닌 마 회장은 자산 180억 달러의 슈퍼 갑부로 탈바꿈하게 된다.

프로축구단 보유한 중국 갑부들, 돈 세례

현재 중국 프로축구 1부 ‘슈퍼리그’ 소속팀 16개 중 14개가 자수성가한 부자들을 구단주로 두고 있다. 특히 부동산으로 부를 축적한 부호들의 축구 사랑은 유별나다. 자산 220억 달러를 소유한 왕젠린(王健林) 완다(萬達)그룹 회장이 대표적이다. 왕 회장은 1994년 다롄 시로부터 다롄 완다를 인수한 후 막대한 돈을 쏟아부어 명문 구단으로 키웠다. 2011년 유럽에 나가 있는 청소년 선수들에 대한 훈련과 지원을 위해 5억 위안(약 820억원)을 내놓았다. 현재 이 프로그램을 3년 연장하고 향후 10년간 연간 2억 위안씩 더 투자할 계획이다.

이런 투자 덕분에 중국 프로축구 선수의 몸값은 한국 못지않게 비싸다. 유명 플레이어의 연봉은 500만~800만 위안(약 8억2000만~13억1000만원)에 달한다. 여기에 승리 및 득점 수당은 별도다. 대졸 월급쟁이의 평균 연봉이 6만 위안(약 980만원) 안팎인 점에 비춰볼 때 프로축구 선수의 연봉 인플레는 심각하다. 자국 리그에서 뛰기만 해도 엄청난 부와 명예를 거머쥘 수 있어 유럽 진출을 노리는 선수가 잘 나오지 않는다.

중국은 거대한 인적 자원 위에 체력 조건이 좋은 선수가 풍부하다. 하지만 어린 선수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시스템은 허술하다. 과거 중국에는 학교 축구팀이 있었지만, 한국처럼 전문화된 체계는 갖추지 못했다. 2010년 들어서야 각 성·시마다 유소년 팀을 조직하고, 전국 42개 도시 2200개 학교의 축구팀을 지정해 육성하기 시작했다.

이런 단점을 떨쳐내고 중국은 월드컵을 향한 행보를 착실히 다지고 있다. 2010년 중국 정부는 승부 조작과 도박에 연루된 중국축구협회 고위 인사들을 모두 쫓아냈다. 두 명의 전임 회장을 부패 혐의로 법정에 세우는 등 축구계에 만연한 비리를 바로잡기 위해 노력했다. 이를 위해 지난 1월에는 탁구 세계 챔피언이자 국가대표팀 감독을 지냈던 차이전화(蔡振華)를 신임 축구협회장으로 선출했다. 축구계의 부정부패와 썩은 인맥 문화를 일소하기 위한 충격요법이었다. 지난해 태국에 대패한 직후 국가대표팀 호세 안토니오 카마초 감독도 바로 경질했다. 계약 기간이 1년6개월이나 남아 위약금 645만 유로(약 89억원)를 물어줬지만, 다음 월드컵을 대비해 내린 극약 처방이었다. 지난 2월 프랑스 출신 알랭 페렝 감독을 영입한 중국축구협회는 장기 계획을 세워 2018년 러시아월드컵에 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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