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만 보고 가차 없이 내치는 ‘나으리들’
  • 박동희│스포츠춘추 기자 ()
  • 승인 2014.06.25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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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와 지자체 관계 6·4 지방선거에 구단들 웃고 울어

6·4 지방선거는 어느 때보다 국민적 관심이 높은 가운데 치러졌다. ‘대통령을 지키자’는 여당과 ‘대통령을 심판하자’는 야당 지도부는 5일 새벽까지 TV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하지만 정작 6·4 지방선거 결과에 가장 큰 관심을 나타낸 이들은 따로 있었다. 바로 야구계와 프로야구단들이다. 선거 결과에 따라 구단 운명이 뒤바뀔 수 있기 때문이었다.

공생 관계 된 프로야구와 지자체

2000년대 초반만 해도 프로야구단과 연고지 지방자치단체의 관계는 그리 긴밀하지 않았다. 지방 구단 관계자는 “지자체가 우릴 특별히 도와준 것도, 그렇다고 우리가 지자체를 도와준 것도 없다”며 야구단과 지자체의 관계를 “1982년 정부 중매로 만나 지금껏 한집에 살 뿐 각방을 써온 사이”라고 표현했다.

6월5일 열린 NC와 넥센 경기에서 NC 선수들이 넥센을 9-5로 물리친 후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1981년 프로야구 출범을 정책적으로 준비하던 정부는 당시 대기업 총수의 고향이나 기업의 모태지를 중심으로 프로야구 연고지를 결정했다. 구단이 특정 지역을 연고지로 강력하게 희망했거나 지자체가 구단 유치에 나섰으면 모를까 정부가 중매하듯 구단과 지역을 연결해주다 보니 양자의 사이는 그리 끈끈하지 못했다. 2006년 이후 프로야구 인기가 치솟으며 구단과 지자체는 공생 파트너가 됐다. 한국야구위원회(KBO) 관계자는 양자의 변한 관계를 이렇게 설명했다. “프로야구 인기가 높아지면서 구단들이 앞 다퉈 수익 극대화에 나섰다. 문제는 30년 넘은 낡은 야구장에선 도저히 수익을 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장사다운 장사를 하려면 반드시 새 야구장이 필요한데 이는 지자체가 책임져야 할 부분이었다. 반대로 지자체 역시 야구 인기가 오르면서 지역 야구팬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게 됐다. 지역 야구팬의 민심이 곧 표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2006년 이후 지자체들이 연고지 프로야구단 지원책을 내놓거나 새 구장 건설을 약속한 것도 이 때문이다.”

상식대로라면 ‘수익’이 필요한 구단과 ‘표’가 아쉬운 지자체장은 불협화음 없이 서로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사이가 돼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반대일 때가 많다. 경제적·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지자체의 약속이 수시로 바뀌기 때문이다.

NC의 한 가닥 희망, 시장 교체

NC는 박완수 창원시장 시절 큰 홍역을 치렀다. 야구계와 NC의 반대에도 박 시장이 ‘지역 균형 발전’을 이유로 새 구장을 진해에 짓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NC는 “어째서 새 구장을 여러 후보지 가운데 접근성과 흥행성이 가장 떨어지는 진해에 짓겠다는 소린지 모르겠다”며 “새 구장 사용 주체인 구단 측 의사는 철저히 무시한 채 시장이 독단적으로 추진하는 입지 선정에 절대 찬성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NC의 강력한 반발에도 박 시장은 ‘진해 새 구장 건설안’을 포기하지 않았다. 급기야 NC는 “연고지를 변경할 수 있다”는 초강경 카드를 들고서 박 시장에 맞섰다. 대화 자체가 불가능할 것 같던 NC와 창원시의 갈등은 갑자기 박 시장이 새누리당 경남도지사 경선에 뛰어들며 상황이 바뀌었다. 박 시장이 경선 참여를 이유로 시장 자리를 박차고 나가자 NC는 연고지 변경 카드를 내려놓은 채 창원시장 선거 결과를 지켜봤다. 창원시장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박 시장이 강행했던 ‘진해 새 구장 건설안’이 변경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6·4 지방선거 결과를 지켜본 NC의 표정은 우려 반, 기대 반이다. NC 관계자는 “창원시장 선거에 출마한 야당 후보들은 ‘전임 시장의 진해 새 구장 건설안을 전면 백지화하겠다’고 공언한 반면, 새누리당 안상수 후보는 두루뭉술한 답변만을 내놓았다”며 “안 후보가 새 시장으로 뽑혔다는 소식을 듣고 솔직히 탄식이 나왔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이 관계자는 “최근 신임 안 시장이 지역 유지들과의 대화에서 ‘내가 그래도 집권당 대표 출신이다. 타협과 조정 능력엔 자신이 있다. 조만간 균형발전위원회를 통해 새 구장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겠다’며 ‘야구장 하나 짓는다고 진해가 발전하겠느냐. 더 실질적인 선물을 줘야 하지 않겠느냐’는 발언을 한 것으로 안다”며 “구단 일각에선 이 발언을 사실상 ‘진해 새 구장 건설 포기’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NC와 창원시의 관계 회복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점쳐지는 가운데 다른 구단과 지자체도 갈등을 풀고 화해와 협력의 상생 관계로 접어들 조짐을 보이고 있다.

야구계에선 인기 바닥인 박원순 시장

6·4 지방선거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은 56.1%를 얻어 43.1%를 차지한 정몽준 후보를 가볍게 누르고 연임에 성공했다. 그러나 야구계에서 박 시장의 인기는 늘 바닥을 면치 못했다. 서울에 연고를 둔 구단의 한 관계자는 “박 시장이 부임하고서 LG·두산이 갖고 있던 잠실구장 광고권을 시에서 빼앗아가는 바람에 구단 수익이 뚝 떨어졌다”며 “잠실에 새 구장을 지어주겠다는 말만 했지, 아직 가시적인 청사진을 한 번도 보여준 적이 없다”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그래선지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선 많은 야구 인사가 정몽준 후보 캠프에 합류했다.

박 시장 캠프에서도 이를 알았는지 요즘 서울시는 야구계를 달래기 위한 여러 방안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 고위 관계자는 “잠실구장 광고권은 시가 빼앗은 게 아니라 시의회가 복지 예산 확보 차원에서 광고권을 입찰을 통해 판 것”이라며 “박 시장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각적 방안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새 구장 건설과 관련해서 이 관계자는 “고척동 돔구장을 넥센의 홈구장으로 쓸 수 있도록 시에서 다양한 당근책을 제시할 예정”이라며 “고척동 돔구장의 운영 주체가 확정되고 나면 곧바로 야구계 의견을 수렴해 잠실 새 야구장 건설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삼성과 롯데는 전임 시장과 당적이 같은 신임 시장이 당선되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삼성 관계자는 “전임 시장 시절 착공한 대구 새 야구장 건설이 차질 없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며 “시장이 바뀌었다고 특별히 달라질 건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롯데 역시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다만 삼성은 “전임 시장 때 대구시가 ‘야구장 건설비로 삼성 부담액을 더 높였으면 좋겠다’는 뜻을 밝혀 난처했던 적이 있었다”며 “아무쪼록 신임 시장이 이끄는 대구시와는 그런 문제로 불필요한 오해가 생기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전임 시장에 뒤통수 맞은 KIA, 이번에도?

6·4 지방선거 결과에 전전긍긍하는 구단도 있다. 삼성·롯데와 달리 SK와 한화 연고지에선 전임시장과 당적이 다른 사람이 당선됐다. 두 구단은 긴장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우선 SK다. 전임 송영길 인천시장은 프로스포츠의 이해도가 높은 ‘친구단적인 인물’이었다. SK를 상대로 문학구장 사용료를 대폭 깎아줬을 뿐만 아니라, 구장 리모델링도 구단 입맛에 맞게 자유롭게 하도록 배려했다. 염홍철 대전시장도 마찬가지였다. 염 시장은 대전구장 리모델링에 거액의 예산 지원을 해준 데다 구단에 구장 운영권의 대부분을 부여했다. 덕분에 SK와 한화는 ‘스몰마켓팀’의 한계를 극복하고 여느 구단 못지않은 쾌적한 구장 시설을 갖출 수 있었으며 구단 수익도 크게 늘어났다.

하지만 신임 시장이 오면서 전임 시장의 전폭적인 지원이 되레 독으로 작용할까 염려하고 있다. 두 구단 가운데 한 구단 관계자는 “보통 신임 시장은 전임 시장의 업적이나 성과를 부정하게 마련”이라며 “혹여 우리 구단에 대한 전임 시장의 배려와 관심이 신임 시장 눈에 불편하게 비칠까 걱정되는 게 사실”이라고 털어놓았다.

전임 시장과 같은 당적의 신임 시장이 당선됐는데도 두려움에 떠는 구단이 있다. 바로 KIA다. KIA는 전임 강운태 시장 시절 광주시에 보기 좋게 뒤통수를 맞은 바 있다. 광주시가 “새 구장이 완공되면 25년간 장기 임대권을 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정작 새 구장이 완성되자 “시민단체가 ‘재벌 기업이 운영하는 프로야구단에 장기 임대권을 주는 건 문제가 있다’고 주장한다”며 “2년 임대 후 구장 사용 계약 조건을 재조정하자”고 일방 통보했기 때문이다. 전임 시장의 말만 철석같이 믿고, 새 구장 건설비로 300억원을 투자한 KIA로선 땅을 칠 일이다.

문제는 윤장현 신임 광주시장이 지역의 대표적인 시민운동가 출신이라는 데 있다. KIA 관계자는 “윤 시장은 진보 시민단체 출신이다. 혹여 2년 후 구장 사용권을 재조정할 때 광주시가 일부 시민단체의 주장을 받아들일까 걱정”이라며 “신임 시장이 전향적으로 프로스포츠를 바라봐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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