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조, 시민과 함께 가는 운동 전략 선택해야”
  • 김지영 기자 (abc@sisapress.com)
  • 승인 2014.07.02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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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연 서울시교육감 당선자 “정부는 전교조를 거리로 내몰아선 안 돼”

레프 톨스토이는 <안나 카레니나>에 이렇게 썼다. “인간이 적응할 수 없는 삶의 조건은 없다. 특히 모든 사람들이 그러한 조건들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때는 말이다.” 사교육비 세계 1위(OECD, 2013년), 하루에 한 명꼴로 청소년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나라(통계청, 2010년) 대한민국의 우울한 자화상이다. 뜨거운 교육열이 오늘날 대한민국을 만든 원동력이라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모든 모습이 정상적이라고 하긴 어렵다. 톨스토이의 말대로 대한민국의 과도한 교육 경쟁은 어딘가 비정상적이지만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는 삶의 조건이 됐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현실을 바꾸겠다고 나선 이가 있다. 그는 초반 4%대의 지지율에서, 최종 39%의 득표율로 역전에 성공했다. 서울시민 1000만의 교육을 책임지는 ‘교육대통령’,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당선자다. 시사저널은 교육감 취임을 앞둔 6월26일 조희연 당선자를 서울 용산구 인수위원회 사무실에서 만났다. 조 당선자는 시사저널 700호(2003년 3월) 기념 여론조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지식인 1위’로 꼽히기도 했다. 그 명성답게 교육의 가치를 묻는 질문에 그는 명쾌하고 열정적으로 답했다. 하지만 이를 현실에 실현할 정책은 아직은 구체적이지 못한 듯했다. 당선자 책상 옆 화이트보드에는 포스트잇으로 빼곡하게 지지자들이 직접 쓴 요구사항이 붙어 있었고, 인터뷰하는 동안에도 보좌진의 보고를 수시로 받을 정도로 그는 바빴다.

 

ⓒ 시사저널 박은숙
초반 4% 지지율에서 시작해서 당선까지 됐는데 소감이 어떤가.

마지막 광화문 유세에서 ‘감동의 역전 드라마를 보게 될 것’이라고 시민들에게 자신 있게 말했지만, 내심 ‘감동이 아니라 쪽박 차면 어떡하나’ 하는 고민이 있었다. 당선되니 저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한 분들에게 빚을 갚은 느낌이다.

당선된 원인 중 하나로 한 포털에서 직접 아버지 지지를 호소했던 아들 얘기를 빼놓지 않을 수 없다. 실제 어떤 아버지인가.

(아들 얘기를) 빼놓을 수 없다(웃음). 갑자기 내가 반듯한 아빠의 표상이 돼서 사실 부담스럽다. 소설과 현실이 다르듯 (아버지로서) 현실도 그렇다. 사회적 활동 하고 연구 활동 하느라 바쁘기 때문에 별로 신경을 못 썼다. 자유방임형이라고 할까. 잘 자라준 것만으로 감사하고 한두 달에 한 번씩 술 마시는 기회를 갖는 정도다.

선생님으로서 학생 인권을 강조하는데, 아버지로서는 어떤가. 자녀를 가르칠 때 체벌을 한 적이 있나.

통상 때리는 스타일은 아닌데, 한 번 그런 적이 있었다. 1995년 교환교수 발령을 받아 갑자기 미국에 가게 됐다. 당시에 빚이 1억원 정도 있어서 교사인 처가 빚을 갚느라 한국에 남고, 큰아들만 데리고 (미국에) 갔다. 당시 애가 초등학교 2학년이었는데 너무 말을 안 듣더라. 그래서 책을 집어던졌다. 책이 아이 눈밑에 맞았다. 아이고, 가슴이 철렁하더라. 그 후부터는 손찌검을 안 한다. 돌이켜보면 아이가 말도 안 통하는 낯선 땅에 와서 영어 공부하느라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겠나. 심하게 징벌적인 훈육을 안 해도 아이들이 말썽 안 부리고 스스로 열심히 해줘서 고맙다. 둘째는 1년 반 동안 독서실에 있으면서 공부를 잘해줘서 부모 입장에서 엎드려 절하고 싶은 심정이다.

그 둘째 아들이 당선자께서 비판하는 대상인 ‘외고’를 나왔다.

(웃음)특권 학교를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송구스럽다. 아이가 1년 반이나 캄캄한 독서실에서 자기 학대를 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갔다. 결과적으론 그래서 승자가 됐다 해도, 불행하다. 현재 우리 교육 경쟁 시스템은 거의 아동 학대, 청소년 학대 시스템과 다름없다. 고통스럽게 승자가 되더라도, 그 승자 또한 불행하다. 개선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당선자의 책상 옆 화이트보드에는 지지자들이 직접 쓴 요구사항이 빼곡하게 붙어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둘째 아들은 뭐라고 하나. 당시에는 힘들지만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학(서울대 경제학과 2010년 입학)을 다녀서 현재 행복하다고 하지 않나.

한 개인이 승자가 된다고 해서 그 시스템이 정당한 건 아니다. 엘리트 교육이나 수월성 교육을 부정하는 건 아니다. 현재 한국 교육은 30~40년 전 경쟁 시스템이다. 한국이 세계 10대 경제대국이 된 상황인데 우리 애들을 이렇게 국·영·수 중심의 편향적인 비생산적 교육 경쟁에 몰아넣을 필요는 없다. 외고에 대해서는 아직 특별한 정책은 없지만 원론적인 수준에서 지금과 같은 종합 입시 명문이 아니라 원래의 설립 목적에 맞게 운영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자사고 전면 재검토, 일반고 전성시대, 혁신학교의 확대 모두 사실 고교 평준화 정책이다. 서울대 중심의 학벌체제가 공고한 현실에서 고교 평준화는 오히려 역효과가 나지 않을까. 조 당선자가 쓴 <병든 사회, 아픈 교육>에서도 노무현 정부의 고교 평준화에 대해 실패했다고 평했다.

동의한다. 자사고 폐지에 따른 딜레마가 있다. 예컨대 강북의 자사고가 강남과의 교육 격차를 상쇄하는 면이 있다. (강북에 자사고가 없다면) 강남이나 외고로 가야 하니까. 현재 다니고 있는 자사고 학생들의 피해 문제도 있다. 경제력에 따른 교육 격차는 해소하면서 지혜롭게 자사고 정책 전환을 할 수 있을지 그게 고민이다.

비책이 있나.

비책은 없다. 어쨌든 자사고 폐지라는 목표를 현명하게 달성하기 위해 고민 중이다. 궁극적으로는 초·중·고교 교육 개혁과 대학 입시 제도, 학벌 체제에 대한 개혁도 같이 가야 한다.

임기 내에 혁신학교를 200곳으로 늘리겠다고 공약했다. <혁신학교란 무엇인가>의 저자인 김성천 경기도교육정보연구원은 혁신학교의 무분별한 확대보다는 혁신학교의 질을 높이는 게 더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일례로 혁신 교육에 대한 의지가 있는 교사가 배정됐을 경우엔 좋은 성과를 기대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기존에 좋은 평을 받던 혁신학교마저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혁신학교 근무를 희망하는 교사를 우선 배치하는 인사제도 도입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단위학교 내에서 학습 소모임, 수업연구회 등 ‘교사 전문성 학습공동체’를 구축할 수 있도록 지원해 모든 교사의 역량을 혁신하겠다.

혁신학교가 이른바 좋은 대학에 학생들을 보낼 수 있을까. 기자가 얼마 전 취재차 가본 혁신학교의 고등학생들도 영·수 등 주요 과목을 사교육에 의지하고 있고, 혁신학교 졸업생들도 아쉬운 점으로 부족한 주요 과목의 공부시간을 지적했다.

2010년부터 지정 운영된 혁신학교가 이번에 처음으로 졸업생을 배출했는데 입학사정관제에서 좋은 성과를 거뒀다. 혁신학교라고 해서 대학 입시를 위한 준비를 소홀히 하는 게 아니다. 다만 주입식 문제풀이 식 교육에서 탈피해 학생들의 꿈과 소질에 따른 진로·진학 교육을 철저히 한다는 것에서 차이가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화제를 전환해, 이번 6·4 지방선거에서 진보 교육감들이 대거 당선된 것에 대해 보수 진영에서는 ‘전교조 승리’라고 평했다.

(그는 펜으로 전교조라는 세 글자를 썼다.) 우리는 민교협 같은 교수 조직 출신이지 전교조 출신은 아니다. (당선된 교육감의) 절반 정도는 전교조 출신이 아니다. 또 전교조 조합원의 후보이기 때문에 전교조 후보라는 것도 적절치 않다. 우리 사회의 보수 집단이 반(反)전교조 프레임에 의존하는 방향으로 가는 건 안 좋은 것 같다. 국민들이 수긍하는 것도 아니다. 보수의 개방성, 진보의 성찰성, 이 두 가치가 함께 갔으면 좋겠다.

부인이 전교조 소속이라고 들었다. 개인적으로 전교조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

전교조가 참교육을 실현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해왔고, 희생도 많이 치렀다는 점을 인정한다. 근데 조직에 여러 가지 조직논리가 생기고, 시민의 요구에 완전히 부합해서 조직이 운영되지 않는 점도 있다는 것 또한 인정한다.

사법부의 전교조 법외노조 판결이 최근 교육계의 큰 이슈가 됐다.

박근혜정부가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만들려는 정책 방향은 올바른 게 아니라고 본다. 6만~7만명에 이르는 조합원을 가진 교사 조직을, 말하자면 파트너로 삼지 않는다는 것인데, 과연 현명한가. 학교 현장에 혼란을 키우고 갈등을 증폭시킬 뿐이다. 궁극적으로 박근혜정부에도 정치적으로 마이너스가 될 것이다. 성숙한 민주주의란 더 많은 거리의 갈등을 제도권으로 끌어들이는 것인데 오히려 제도화된 영역으로 들어온 조직을 특정 이유로 배제해 거리로 내모는 것은 민주주의라는 큰 흐름에서 부적절하다.

전교조의 조퇴 투쟁과 같은 강경 투쟁 노선에 동의하나.

과연 지혜로운 전략인가 하는 데는 의문이다. 개인적으로 전교조가 시민들과 함께 가는 조직이자 운동 전략을 선택했으면 좋겠다. 문제의 핵심은 상근 조합원의 현장 복귀 여부다. 원래는 현장 복귀를 할 때까지 30일간의 유예 기간이 있다. 그걸 교육부가 7월3일까지 (상근 조합원) 복귀 여부를 결정하고 그렇지 않으면 해직 징계 절차를 밟겠다고 했다. 30일간의 예고 기간을 준수하면 마침 방학이라 학교 현장에서 혼란도 적었을 것이다. (정부가) 너무 서두르는 것 같다. 박근혜정부와 전교조가 원만한 타협은 할 수 없을까. 우리 입장에서는 법원의 판결을 존중할 수밖에 없으니까….

세월호 시국선언에 대해 교육부가 교사 200여 명을 전원 검찰에 고발했다. 취임 후 교육감으로서 교육부 징계 결정을 따르겠나.

(머뭇거리며) 아직 특별한 방침을 결정하진 않았다. 이것은 뭐 표현의 자유와 실정법 간에 약간의 긴장이 있는 이슈 같다. 민주주의가 약간의 소란스러움이 뒤따르는 건데, 다양한 이견들의 표현을 폭넓게 용인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큰 흐름인 것 같다. 이 부분도 우리가 조금 개방적으로 봤으면 어떨까 생각한다.

선거 때 제시한 공약이 구체성이 떨어지고 원론적이라는 비판이 있다. 예컨대 무상급식 확대부터 고교 무상교육까지 말했다. 한정된 예산으로 그 모든 게 가능할까. 아직 교육행정가보다 시민운동가 이미지가 강하다는 지적이 있다. 

오랫동안 사회학자이자 시민운동가로 살아 하루아침에 교육행정가로 변모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 아직 완벽하지 않지만 선거를 치르면서 매우 급속한 ‘자아 재구성’이 이뤄졌다고 감히 생각한다. 공약 이행과 관련된 예산에 대한 고민이 깊은 것도 사실이다. 현재 인수위에서 공약 이행 계획서를 매우 꼼꼼하게 만들고 있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무상급식과 고교 무상교육은 우리 공교육이 가야 할 큰 방향이기에 중앙정부가 책임져야 한다. 지속적으로 그것을 여론과 함께, 전국의 교육감들과 함께 중앙정부와 국회에 요구하고 촉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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