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하산끼리 싸우는 새 ‘알짜 기업’ 속병 들었다
  • 안성모 기자 (asm@sisapress.com)
  • 승인 2014.07.10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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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한전산업개발 이사회 녹취록 및 기업진단보고서 단독 입수

“여기 근거 서류 가지고 왔으니까 답변하고 안 하고는 자유입니다. 답변하시고 싶으면 하시고, ‘노(No)’ 하고 싶으면 ‘노’ 하세요.”

지난 4월24일 서울시 중구 서소문로에 위치한 한전산업개발의 한 회의실. 올해 두 번째로 열린 이사회에서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3월에 취임한 윤기영 감사가 관리본부장을 맡고 있는 신동혁 전무이사에게 ‘부실 경영으로 인한 600억원의 손실’을 따져 물으면서 분위기가 일순간 냉랭해졌다. 윤 감사는 회사의 최대주주인 한국자유총연맹의 무책임을 거론하며 자유총연맹 회장과 신 전무를 업무상 배임죄로 사법 당국에 제소하기로 했다는 폭탄 발언까지 했다.

윤 감사는 “‘예’나 ‘아니오’로만 답변해주면 된다”며 시종일관 신 전무를 몰아세웠다. 몇 차례 “예”라고 대답하던 신 전무도 계속된 질문에 “지금부터는 답변 안 하겠다”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신 전무는 “이러한 (이사회) 자리에서 증인을 신문하듯이 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지성인의 자세인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맞섰다. ‘노조위원장에게 잘 봐달라고 부탁한 사실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명예훼손죄로 고발하겠다”며 역시 맞받아쳤다.

서울시 중구 서소문로에 위치한 한전산업개발(왼쪽)과 장충단로에 있는 한국자유총연맹. ⓒ 시사저널 박은숙
공기업으로 출발했다 2003년 민영화

이 일이 있은 지 두 달 넘게 지났다. 하지만 아직까지 자유총연맹 회장과 신 전무 그리고 윤 감사 중 어느 누구도 고소나 고발을 당하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무슨 일이 터질 것 같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한전산업개발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이들은 이날 이사회에서 일어난 소동을 일종의 기 싸움 차원으로 보고 있다. 새로 부임한 감사가 실세로 통하는 전무를 상대로 선공을 날렸다는 것이다. 어떤 이유에서든 국내 일반 기업 이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한전산업개발은 1990년 공기업으로 출발했다. 회사명에서 알 수 있듯 한국전력공사가 100% 출자한 회사였다. 하지만 2003년 자유총연맹이 지분 51%를 인수하면서 민영화가 이뤄졌다. 현재 자유총연맹이 지분 31%를 보유한 최대주주이며, 그 다음으로 한국전력이 29%의 지분을 갖고 있다. 주요 사업은 공기업일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전력의 자회사인 발전회사의 설비 운영 및 유지와 검침 용역 등 국가기간산업과 관련한 업무를 주로 맡고 있다.

윤기영 감사의 의도가 무엇이었든 그가 이사회에서 문제 삼았던 부분은 최근 들어 한전산업개발 안팎에서 제기돼온 의혹들 중 하나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당시 이사회 녹취록에 따르면, 윤 감사는 한전산업개발이 지난해 자회사인 한산산업개발을 홍기표씨에게 매각하면서 약 170억원의 손실을 봤다고 주장했다. 이는 시사저널이 지난 6월16일자(1287호) ‘한전산업개발, 엉터리 계약에 제 발등 찍다’ 기사를 통해 단독 보도했던 사안이다. 양측은 현재 소송전을 펼치고 있다. 요약하자면 한전산업개발은 매각 대금을 아직까지 받지 못했다며 홍씨를 배임 혐의로 고발하는 한편 사기 혐의로 고소까지 했고, 홍씨는 적자투성이 회사를 인수해 피해를 봤다며 한전산업개발을 상대로 우발 채무 정산금 지급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문제는 계약 과정이 너무 허술했다는 점이다. 2012년 12월21일 가계약을 할 당시에는 잔금 38억9000만원을 완납한 후 본계약을 체결하기로 했는데 결과적으로 잔금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2013년 2월7일 본계약을 맺었다. 계약금만 받고 회사를 통째로 넘긴 셈이다. 이도 모자라 잔금 지급 기일을 5월15일에서 10월31일로 연장해달라는 홍씨의 요청까지 받아들였다.

홍씨가 우발 채무라며 정산금 지급을 요구하는 석산 복구비용도 가계약 때 매각 대금을 산정하면서 20억원으로 책정했다. 하지만 본계약서에는 이 부분에 대한 명확한 설명이 없다. 한전산업개발이 허점투성이 계약으로 소송의 빌미를 제공한 꼴이 된 셈이다. 특히 홍씨는 이미 주식 60%를 제3자에게 넘겼고, 토지를 담보로 15억6000만원을 대출받았다. 한전산업개발이 소송에서 이기더라도 받아낼 자산이 얼마나 남아 있을지 의문이라는 우려가 제기되는 이유다.

출자 회사 부실로 642억원 손실 우려

한전산업개발의 ‘부실 경영’ 논란은 이뿐만이 아니다. 시사저널은 지난 4월 한전산업개발이 한 회계법인에 용역을 의뢰해 조사한 ‘기업진단보고서’를 통해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중 하나가 출자회사의 부실이다. 한전산업개발은 출자회사 형태로 진행한 신규 사업에 371억원을 투자했고, 출자회사의 금융기관 차입금 중 271억원에 대한 연대보증을 섰다. 이를 합하면 642억원에 이른다. 윤기영 감사가 ‘약 600억원의 손실’을 주장한 배경에 이러한 계산이 깔려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전산업개발의 지난해 매출액은 2890억8500만원이다. 당기순이익은 73억5000만원이다. 감사보고서를 공시하기 시작한 1999년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적자를 낸 적이 없는 ‘알짜 기업’이다. 당기순이익은 2000년대 초반 60억~100억원 수준이었고, 이후에는 100억원대 이상을 대부분 유지했다. 하지만 2012년 배전 사업 부문 적자와 함께 신규 사업에서의 손실을 반영하면서 이익이 큰 폭으로 하락해 28억7100만원에 머물렀다. 2013년에 회복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신규 사업 등에서 발생 가능한 손실로 인해 이익을 예측하기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전산업개발 보증 채무의 경우 아직 확정 채무가 되지는 않았지만 회사가 지급보증하고 있는 출자회사 등의 재무 상태 및 영업 흐름으로 볼 때 회사가 부담할 위험이 있다고 한다. 그런 만큼 이에 대한 대비와 고려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회사의 회계상 부채 비율은 92.49%이지만 보증 채무를 부채로 감안한 부채 비율은 239.81%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한전산업개발이 피고로 계류돼 진행 중인 소송 결과에 따라 회사가 부담해야 하는 우발 채무도 자금 계획 시 고려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현재 한전산업개발이 피고 입장인 소송 금액은 132억7300만원으로 집계됐다. 반면 현금성 자산은 큰 폭으로 감소하고 있다. 2013년 말 기준으로 현금성 자산은 73억원 정도다.

안정적인 사업 기반을 바탕으로 내실을 챙겨왔던 회사가 왜 이런 위기를 맞게 된 것일까. 산업 환경의 변화 등 다양한 원인이 제기되는 가운데, 외풍에 휘둘리다 보니 장기적인 경영 전략을 추진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전산업개발은 외형상 민간 기업으로 전환했지만 아직도 공기업 특성을 상당 부분 지니고 있다. 그중 하나가 낙하산 인사 관행이다. 물론 경영진은 주주총회를 통해 뽑는다. 그런데 1대 주주인 자유총연맹이 이른바 3대 관변단체 중 하나고, 2대 주주인 한국전력은 국내 최대 공기업 중 한 곳이다. 1·2대 주주의 집행부와 경영진 인사가 정권의 영향력 아래 있다 보니 한전산업개발 역시 정권이 바뀔 때마다 물갈이 인사로 홍역을 앓아야 했다.

2013년 3월19일 김영한 한전산업개발 사장이 기자회견장에서 신동혁 한국자유총연맹 사무부총장(현 한전산업개발 전무이사)의 발언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낙하산끼리 힘 대결…책임경영 사실상 불가능

대표는 물론 감사와 관리본부장 등 핵심 요직은 사실상 정권이 자유총연맹을 통해 낙하산으로 내려보냈다. 이사회에서 맞섰던 윤기영 감사와 신동혁 전무도 마찬가지다. 새누리당 중앙위원회 상임고문인 윤 감사는 현재 자유총연맹 부총재다. LG CNS 지사장을 지낸 신 전무는 직전까지 자유총연맹 사무부총장을 맡고 있었다. 지난해 12월에 임명된 이삼선 대표는 이한동 전 국무총리 비서관 출신으로 한 달 전쯤에 취임한 우종철 자유총연맹 사무총장과 가까운 사이로 알려졌다. 우 총장도 2002년 대선 출마를 준비하던 이 전 총리의 특보로 이 대표와 함께 캠프를 이끌었다.

이처럼 낙하산으로 내려온 인사를 대신해 새로운 낙하산이 내려오는 상황이 되풀이되다 보니 장기적 관점에서 책임경영을 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낙하산 인사의 경우 임기가 짧다는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소신을 갖고 일을 추진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래저래 눈치 볼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회사의 한 전직 간부는 “의욕을 갖고 일 좀 하려고 들면 여기저기서 태클이 들어온다. 그런 일이 반복되다 보면 결국에는 조용히 있다가 나가자는 생각이 들게 된다”고 밝혔다.

낙하산의 배후가 다르다 보니 대표와 감사, 관리본부장 등이 대결 구도를 형성해 내부 진통에 시달린 경우도 적지 않다. 윤 감사와 신 전무가 이사회에서 맞선 배경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되고 있다. 박근혜정부 출범 직전 김영한 당시 한전산업개발 대표는 박창달 당시 자유총연맹 회장과 사사건건 부딪치면서 대립하다가 결국 옷을 벗었다. 내부 사정을 잘 아는 회사 관계자는 “김 대표가 나간 후 그 자리에 관리본부장을 맡고 있던 최준규 전무이사가 앉았다. 그리고 관리본부장 자리에는 신 전무가 자유총연맹에서 옮겨왔다. 최 대표와 신 전무는 박창달 전 회장 인맥으로 통했다”고 설명했다.

김 전 대표와 박 전 회장의 사이가 틀어진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가 한산산업개발 매각 건 때문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박 전 회장이 대학 동창인 홍기표씨에게 한산산업개발을 매각할 것을 요구했지만 김 전 대표가 반대해 여러 차례 무산됐다는 것이다. 김 전 대표는 “공정하게 한다고 해도 친구니까 오해를 살 수 있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상황이 이렇다 보니 홍씨의 한산산업개발 인수를 두고 특혜 의혹까지 제기됐다. 박 전 회장이 뒤를 봐준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홍씨는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한 바 있다. 자유총연맹 측은 박창달 전 회장 시절까지는 한전산업개발을 연맹의 소유물처럼 여긴 측면이 있었지만 김명환 현 회장 체제가 들어선 후 많이 달라지려고 노력 중에 있다고 했다. 한 고위 인사는 “한전산업개발은 연맹에 아주 중요한 회사다. 우량 기업을 망가트리면 연맹도 엄청난 손해를 본다”며 “문제 해결에 시간이 걸리더라도 대주주로서 책임을 다할 것이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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