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 참사 책임 누구에게 떠넘기는가
  • 유창선 | 시사평론가 ()
  • 승인 2014.07.10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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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은 총리 후보자 낙마에도 인사청문회 제도 탓만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든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 사퇴 파문을 거친 이후, 박근혜 대통령의 일성은 유감스럽게도 ‘사과’가 아니었다. 한 사람도 아니고 안대희·문창극 두 총리 후보자가 인사청문회에 가지도 못한 채 연쇄 낙마한 초유의 사태가 빚어졌고, 게다가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기로 했던 정홍원 총리가 유임되는 기막힌 장면까지 등장했다. 국민들 입에서는 “그렇게도 사람이 없느냐”는 얘기가 쏟아졌고, ‘총리감 하나 못 구하는 정권’이라는 수치스러운 낙인이 찍혔다. 설사 그 과정의 모든 일이 대통령 자신의 책임은 아니라고 생각하더라도, 그 책임의 일단이라도 자신에게 있었다고 여긴다면, 국민에게 죄송스러운 마음을 전하는 것이 국민에 대한 예의였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많은 얘기를 꺼내면서도 자신의 책임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물론 사과의 말 한마디도 없었다.

대통령, ‘신상털기·여론재판’ 탓만 해

6월30일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기 위해 들어서고 있다. ⓒ 연합뉴스
기다렸던 자책의 말 대신, 박 대통령의 입에서는 남의 탓이 이어졌다. 대통령은 ‘신상털기’ ‘여론재판’을 탓했고 또한 인사청문회에 책임을 돌렸다. 그러고는 “현 인사청문 제도에 개선할 점이 없는지 짚어보고 여야가 머리를 맞대 제도 개선 방안을 모색해줬으면 한다”고 정치권에 주문했다. 그러나 문창극 후보자 사퇴 파문과 새 총리감 구하기의 실패로부터 박 대통령이 얻은 결론이 이게 전부라고 한다면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문 후보자를 둘러싼 논란이 어디 인사청문회까지 가기나 했던 사안인가. 국회 인사청문회까지도 못 가고 국민 청문회 단계에서 탈락한 것이다. 국회 인사청문 제도에 문제가 있니 없니 따질 계제도 아니었던 셈이다.  

문 후보자가 여론의 거센 비판 속에서 사퇴하게 된 원인이 무엇이었던가. 그가 갖고 있는 이념적 편향이 총리감으로서는 부적절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문 후보자를 둘러싼 논란거리는 단지 교회 강연에서 나온 몇 가지 내용만이 아니었다. 수많은 강의와 강연, 칼럼들에서도 대한민국 총리감으로서는 부적절한 사고가 드러났다. 대한민국 정부가 사과까지 한 제주 4·3사건을 ‘폭동’으로 인식하고 있는 게 단적인 예다. 오늘날 여야,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복지 확대를 말하고 있는 시대에, 복지를 요구하는 사람들을 남한테 빌어먹으려는 사람 취급하는 게 또 다른 예다.

문 후보자 문제의 핵심은 국민 대다수의 상식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극단적 사고의 소유자를 전체 국민의 의사를 아우르는 역할을 해야 할 총리로 앉히려 했다는 점이다. 도대체 검증을 하기는 한 것인가라고 국민은 물었다. 문 후보자의 많은 칼럼과 강연은 인터넷에 접속만 하면 쉽게 내용을 접할 수 있는 것들이다. 언론들이 하루 이틀 사이에 찾아낸 그 많은 논란거리를 청와대는 알았던 것인가, 몰랐던 것인가. 몰랐다면 무능한 것이었고, 알고도 대수롭지 않다고 판단했다면 무감각한 것이었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은 이 참담한 인사 실패의 진정한 원인에 대해 눈을 감고 모른 척했다. 애당초 부적합한 인물을 기용한 잘못은 모른 척하고, 마치 애꿎은 사람을 흔들어서 낙마시킨 듯이 말했다. 여론의 실체를 끝내 파악하지 못한 채 인사청문회 탓만 하는 박 대통령의 모습은 말 그대로 ‘불통’ 대통령의 모습이다.

과거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이 야당이었던 시절, 인사청문회 제도를 강화하고 노무현 정부 인사들을 향해 사안의 경중을 가리지 않고 그 칼을 휘둘렀던 이가 박 대통령이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는 그 인사청문회 제도가 문제가 있다며 인사 실패의 책임을 전가하는 모습이다. 물론 현행 인사청문회 제도가 최선의 것은 아닐 수 있다. 정책 검증은 뒷전으로 밀리고 신상 검증에 초점이 맞추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조차도 청와대의 사전 검증 단계에서 제대로 걸러지지 못한 채 그대로 국회로 넘어옴에 따라 인사청문회가 그 역할을 떠맡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후보 지명 단계에서의 철저한 사전 검증을 전제로 한다면, 인사청문회의 여러 개선책도 충분히 모색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인사청문회 개선 얘기부터 꺼낼 때가 아니다. 먼저 거듭된 인사 실패에 대해 대통령이 사과하고 그 책임자인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인사위원장 겸임)의 책임을 묻고, 시스템에 의한 인사 체계를 확립한 이후에 비로소 인사청문회 개선 논의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이다. 자신이 책임져야 할 일들은 하지 않고 인사청문회에 책임을 떠넘기는 모습도 청산해야 할 적폐다.

대통령과 국민의 눈높이 너무도 달라

이번에 박 대통령이 내놓은 청와대 인사수석실 부활은 사전 검증 강화라는 면에서 보완적인 조치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청와대발 인사 참사를 막는 일은 인사수석실의 부활만으로는 역부족이고 시스템에 의한 인사가 이루어져야 가능하다. 이제까지 그래왔듯이 고위 공직자들에 대한 인사가 대통령을 비롯한 몇 사람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상황에서는 인사수석실이 생겨봐야 의미 있는 역할을 기대하기 어렵다. 사전 검증부터 인물에 대한 종합적 평가에 이르는 과정을 몇몇 실세나 비선 조직이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공적인 시스템을 통해 진행할 때만이 상식에서 벗어난 인사 참사를 막을 수 있는 것이다. 이제까지 반복되었던 인사 실패의 책임자인 김기춘 비서실장이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건재한 상황에서 그 휘하에 있는 사람들이 무슨 역할을 할 수 있겠는가.

박근혜 대통령은 지금 취임 이후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콘크리트 지지층’이라는 말도 이제는 옛말, 세월호 참사에 이어 거듭되는 인사 실패를 거치면서 박 대통령의 지지율도 하락해 좀처럼 회복 기미를 보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지금의 위기가 정말로 심각해 보이는 것은 박 대통령 자신이 정작 위기의 원인과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비쳐지기 때문이다. 진단이 잘못되니, 거듭되는 인사 실패를 막을 수 있는 대안적 처방도 제대로 나오지 않고 있다. 총리 후보자들의 연쇄 낙마 사태에 대해서조차 ‘나는 아무런 잘못이 없는데 당신들이 흔들어서 이렇게 된 것 아니냐’는 식의 고집스러운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지금의 위기는 갈수록 깊어질 수밖에 없다.

대통령과 국민의 눈높이가 너무도 다르다. 그러면 대통령이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야지, 국민더러 대통령의 눈높이에 맞추라고 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박 대통령이 중요한 고비 때마다 지나칠 정도로 고집스러운 모습을 보이는 데는, 결코 밀리지 않겠다는 의식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야 대통령으로서의 영(令)이 선다는 강박관념 같은 것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대통령이 민심을 상대로 승부를 겨루려 한다면 그것은 무모한 일이다. 박 대통령이 가만히 앉아서 진짜 위기를 맞느냐 여부는 전적으로 자신의 결심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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