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하루 15시간씩 황소처럼 일한다”
  • 강성운│독일 통신원 ()
  • 승인 2014.07.16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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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마크 의류 라벨에 ‘SOS’ 문구…제3세계 노동자 착취 논란

북아일랜드의 소도시 벨파스트에 사는 여성 카렌 위신스카는 얼마 전 이상한 경험을 했다. 구입한 후 한 번도 입지 않은 바지 뒷주머니에서 한문이 적힌 노란 쪽지와 낯선 중국인 신분증을 발견한 것이다.

쪽지의 맨 첫 줄에 적힌 ‘SOS! SOS! SOS!’라는 문구가 석연치 않았던 위신스카는 중국어를 해석해줄 사람을 찾다가 국제앰네스티(Amnesty International) 아일랜드 지부에 조언을 구했다. 그녀가 얻은 답변의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SOS! SOS! SOS! 우리는 중국 후베이의 시앙난 교도소 수감자들이다. 교도소에서 우리가 하는 일은 수출용 의류 상품을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하루에 15시간씩 일을 하고 있고 우리가 먹는 음식은 개나 돼지에게도 주지 못할 정도다. 우리는 밭의 황소처럼 일한다.” 주머니에서 함께 발견된 신분증은 교도소 수감자 등록증으로 판명돼 쪽지의 내용에 신빙성을 더해주었다.

위신스카가 이 바지를 구입한 것은 지난 2011년, 벨파스트 시내의 프라이마크(Primark) 매장에서였다. 아일랜드에 본사를 두고 있는 프라이마크는 스웨덴의 H&M, 스페인의 자라(Zara)와 함께 유럽의 대표적인 패스트패션(fast fashion) 브랜드 중 하나다.

유럽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SPA 브랜드 프라이마크. 최근 이 회사 의류 라벨에서 구조요청 메시지가 발견돼 노동 착취 논란이 일고 있다. ⓒ DPA 연합
‘지쳐 쓰러질 때까지 일한다’는 글 박음질된 옷

프라이마크의 옷에서 ‘구조 요청’을 발견한 사람은 위신스카뿐이 아니다. 앞서 웨일스의 스완시(Swansea)에 사는 두 명의 고객도 옷에서 이상한 마크를 발견했다며 인터넷에 사진을 올렸다. 이들이 스완시의 프라이마크 매장에서 구입한 윗옷에는 각각 ‘지쳐 쓰러질 때까지 일한다’ ‘노동 착취 공장의 굴욕적인 노동 환경’이라는 문구가 박음질된 표식이 세탁표처럼 달려 있었다. 위신스카는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서 “예전에는 내가 입는 옷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사람들이 하루에 15시간씩 일하고 개와 같은 취급을 받으며 옷을 만들었다면 좋지 않을 것 같다”며 얼굴을 찌푸렸다.

프라이마크는 즉각 반박 성명을 냈다. 2009년 이후 매년 회사의 윤리기준팀이 자체적으로 제품 공급자 실태 조사를 해왔지만 감옥이나 다른 어떠한 형태의 강제 노동도 발견되지 않았다는 내용이었다. 나아가 프라이마크는 옷에서 발견된 메시지가 조작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스완시 매장에서 산 옷은 인도와 루마니아에서 생산됐는데 두 옷에 붙어 있던 마크는 동일한 방식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때문에 프라이마크는 외국의 공장 노동자가 아닌 영국의 시민운동가들이 옷에 ‘구조 요청’을 붙였을 가능성에 무게를 싣고 있다. 그러나 국제앰네스티 아일랜드 지부의 패트릭 코리건 대변인은 ‘슈피겔 온라인’과의 인터뷰에서 “수감증이 진짜가 아니라면 굉장한 노력을 들여야 했을 것”이라면서 SOS 쪽지가 진짜일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그는 “프라이마크의 실태 조사에 심각한 회의를 품고 있다”며 프라이마크의 ‘윤리경영’ 쪽에 화살을 돌렸다.

프라이마크의 해명이 석연치 않은 이유는 제품 생산지 표시가 없기 때문이다. 어느 제품이 언제 어디서 생산되었는지에 관해서는 오직 프라이마크 측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웨일스에서 발견된 두 벌의 옷은 각기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공장에서 생산되었다”는 주장의 신빙성은 결국 프라이마크에 대한 신뢰도 문제로 귀결된다.

프라이마크가 비(非)유럽 국가의 노동 착취를 방조한다는 비판을 받은 것은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특히 프라이마크는 다른 SPA(Specialty store retailer of Private label Apparel, 제조·유통 일괄 공정 의류) 브랜드와 비교해 가격이 매우 낮게 책정돼 있다. 예컨대 독일의 소비자가 남성용 반팔 티셔츠를 사려면, 자라에서는 7.95유로, H&M에서는 6.99유로를 내야 하지만 프라이마크에서는 2.95유로면 충분하다.

이런 가격 경쟁력의 비밀은 지난해 4월24일 드러났다. 불법 증축한 방글라데시의 프라이마크 하청 공장 ‘라나플라자’가 무너져 노동자 1134명이 사망하고 2438명이 부상을 입는 참사가 발생한 것이다. 프라이마크는 사고 직후 200만 달러의 긴급 지원금을 내놓았고 올해 초 추가로 1000만 달러를 내는 등 뒤늦게 이미지 회복에 나섰다.

하루 14시간 노동 대가는 주급 2만8000원

이처럼 사고 후 대책은 요란했지만 실효성은 여전히 의문이다. 독일 일간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너 차이퉁’의 슈테판 핀스터부쉬 기자는 라나플라자 참사 1주년을 돌아보는 기사에서 “여전히 하루에 14시간을 일하는 숙련된 재단공의 주급은 20유로(약 2만8000원)가 안 되고, (5500여 곳의 의류공장 중) 600곳만이 감사를 통과했으며, 낙후 시설 현대화를 위한 예산은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또 “베를린이나 브뤼셀의 고객들이 점점 더 많은 옷을 더 싼 가격에 사고자 한다면 아시아의 대형 의류공장에서 참사가 일어나는 악순환은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여전히 서구 유럽의 소비자들은 라나플라자 참사에도, 진위를 알 수 없는 옷 속의 ‘구호 요청’에도 개의치 않는다. 5월2일 독일 쾰른의 쇼핑 중심가인 노이마르크트에는 수천 명의 시민이 프라이마크 쾰른점의 첫 손님이 되기 위해 줄을 섰다. 청소년들은 학교를 빠지고 새벽부터 기다리기도 했다. 7월3일 베를린의 알렉산더 광장 앞에서도 비슷한 광경이 연출됐다. 6500㎡ 규모의 대형 매장이 새로 문을 열었기 때문이다. 환경단체들은 ‘살인자의 가격’ ‘최저 임금’ ‘패션이 사람 잡네’ 등의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를 펼쳐 들었지만, 오히려 대기 줄은 더욱 길어졌다. 쇼핑을 하기 위해 100유로를 가지고 왔다는 한 13세 소녀는 “당연히 프라이마크 옷은 어린이들이 바느질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30유로를 주고 티셔츠를 사 입을 형편이 안 된다”고 자신을 변호했다. 이날 판매된 제품 중에는 “행복해져야 할 아름다운 이유들이 너무나 많다” “절대로 네 꿈을 잊지 마”라는 문구가 적힌 5유로짜리 티셔츠도 있었다. 물론 제품 생산지 표시는 붙어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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