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객기 격추, 푸틴의 어긋나는 플랜
  • 김회권 기자 (khg@sisapress.com)
  • 승인 2014.07.21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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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 항공 격추 주범 의심받는 우크라이나 반군… “러시아 영토에서 날아온 로켓” 주장도

구난 신고도 없었다. 원래대로라면 러시아 영공에 들어갔어야 했다. 7월17일(현지 시각) 아무런 문제 없이 우크라이나 항로를 따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로 향하던 말레이시아항공 보잉777기가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 주에 추락했다. 298명의 승객과 승무원은 모두 사망했다.

조 바이든 미국 부대통령은 “사고가 아니라 격추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사고 현장은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친러시아계 반군이 격전을 벌이는 곳인데 현재는 반군이 실효 지배하고 있다. 이곳에는 도네츠크 주 분리주의자들이 ‘도네츠크 인민공화국’을 세웠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대통령은 서로의 잘못을 따지고 나섰고, 반군은 “우크라이나의 음모”라며 자신들은 무관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재미있는 건, 얼마 전 우크라이나 반군이 러시아제 지대공 미사일을 정부군으로부터 탈취했다는 발표를 했다는 사실이다. 당시 우크라이나 정부군은 “탈취당한 적 없다”고 부인했는데, 막상 말레이시아기가 격추되자 “사실 탈취당했다”고 뒤늦게 고백했다. 그러자 탈취했다는 반군이 이번에는 “탈취한 적 없다”고 말을 바꿨다. 자신들의 소행일 경우 국제적 고립이 불가피한 탓에 양쪽의 ‘네 탓 공방’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 AP 연합
반군 사령관 “수송기 격추는 우리의 전과”

도네츠크의 하늘은 위험하다. 불을 댕긴 쪽은 반군이다. 그동안 우크라이나 공군의 압도적인 전력에 밀린 탓에 반군이 하늘에서 거둔 전적은 Mi-8/17 수송 헬리콥터, Mi-24 무장 헬리콥터 18대를 떨어뜨린 것이 전부였다. 사거리가 닿지 않는 높이에 떠 있는 비행기를 바라만 볼 뿐이었다. 그런데 6월14일 변화가 생겼다. 6500m 상공을 날던 우크라이나 정부군의 중형 수송기 An-26기가 반군의 미사일에 격추돼 타고 있던 8명의 군인이 모두 사망했다. 그동안 베일에 싸여 있던 도네츠크 반군 사령관인 이고르 스트렐코프는 “수송기 격추는 우리의 전과”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혼미한 우크라이나 정세에서 스트렐코프는 당당한 주인공이다. 친러시아계 무장 반군을 이끌며 독립운동을 지휘하고 있는데 우크라이나와 서방 세계에서 스트렐코프는 독립운동의 배후에 러시아가 있다는 살아 있는 증거다. 우크라이나 측은 그를 러시아군 참모본부정보총국(GRU) 공작원으로 보고 있으며 ‘살인마’ ‘테러리스트’라고 맹비난한다.

스트렐코프는 공개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는 신비한 인물이다. 그는 반군 지도자지만 도네츠크 인민공화국 최고사령관이라는 직책을 정식으로 가지고 있다. 도네츠크 인민공화국의 대변인도 그를 두고 “구소련·러시아 재향 군인이다. 풍부한 군사 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정식 계급은 대령이다”고만 밝힐 뿐, 그 이상은 언급하지 않는다. 심지어 그를 제재 리스트에 올린 유럽연합(EU) 역시 서류에 공란으로 남겨둔 항목이 많다. 이름은 기재됐지만 주소나 생년월일 등은 비어 있다고 한다. 많은 부분이 불투명하지만 분명한 것은 도네츠크에서 그에게 보내는 지지 열기가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도네츠크 주에 사는 러시아계 주민들에게 스트렐코프와 그가 이끄는 무장 집단은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로부터 몸 바쳐 자신들을 지켜주는 존재로 인식된다.

그런데 반군 내부에서 최근 변화가 생겼다. 스트렐코프를 중심으로 했던 구심력이 떨어지고 있다. 그의 행동이 정말 크렘린의 전략과 일치하는지에 대해 의심하는 시선이 생긴 탓이다. 스트렐코프의 러시아 공작원설에 대해 러시아 안보 전문가인 마크 갈레오티 뉴욕 대학 교수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는 “스트렐코프가 동부 우크라이나에 들어간 것은 자신의 의지에 의해서라고 생각한다”며 “러시아의 게임 플랜에 부합하지 않는 일을 하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러시아 정부가 생각하는 ‘우크라이나 게임 플랜’은 무엇일까. 많은 전문가는 “우크라이나 동부의 혼란 상황을 조금 더 연장시켜 협상 재료로 쓰면서 러시아의 직접 개입을 초래하지 않는 범위”라고 말한다. 크렘린의 대외 정책 브레인으로 알려진 세르게이 쿠르바노프 러시아 고등경제학원 교수는 “우크라이나의 NATO(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 저지라는 목표는 이미 달성됐다”고 말했는데 그의 말처럼 우크라이나를 중립 지대로 유지한다는 전략 목표는 어느 정도 이뤘다는 견해가 러시아 내에서 확산되고 있다.

냉담한 크렘린 반응에 반감 커지는 반군

실제로 푸틴 대통령은 6월24일, 우크라이나에서의 군사 개입 권한을 반납했고 다음 날 상원은 이를 승인했다. 러시아 국민의 3분의 2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개입 문제에 반대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있어서 러시아 정부가 발을 편하게 뺄 수 있는 분위기다. 러시아 여론조사기관인 레바다의 레프 구도코프 소장은 “푸틴은 이제 우크라이나의 위기를 진정시켜 피스메이커로서 스스로를 어필하는 전략으로 전환했다”고 분석한다.

러시아가 긴장 완화로 방향을 틀 경우 도네츠크의 우크라이나 반군은 버림받은 꼴이 된다. 러시아 입장에서 보면 반군이 한동안 전시 상황을 만들면서도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지 않는 게 이상적이기 때문이다. 당분간은 어느 정도의 군사 원조를 하면서 내전 상태를 길게 가져가겠다는 게 크렘린의 전략이다. “지지는 말되 승리하지도 말라”는 것이다. 이런 전략에 스트렐코프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게 갈레오티 교수의 분석이다.

자신들이 흘리는 피를 냉담하게 바라보는 러시아. 스트렐코프를 포함한 반군은 이미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심지어 “러시아는 우리를 버렸고 지도부는 티격태격하고 있다”며 무기를 버리는 이들까지 나왔다. 7월10일 도네츠크의 한 대학 기숙사에 배치됐던 수십 명의 반군이 무기와 군복을 던져버렸다. 이렇게 불만이 누적될수록 도네츠크의 반군을 크렘린이 컨트롤하기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러시아의 의도를 벗어난 사건이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었고 분열에 빠진 반군 지도부의 선택지도 예측하기가 어려워졌다. 이게 비행기가 격추된 도네츠크의 실상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네 탓 공방’ 중인 말레이시아 항공기 격추의 주범으로 가장 의심받고 있는 쪽은 반군이다. 로이터는 “여객기가 격추된 직후 스트렐코프가 자신의 SNS에 An-26기를 격추시켰다며 글과 함께 영상을 링크했다”고 보도했지만 자료의 신뢰도는 검증할 수 없다. 다만 반군 내부의 상황이 민간항공기 격추의 진실을 이해하는 관전 포인트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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