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W 520d, 넌 뭐가 그리 잘났지?
  • 김지영 팀장·권용주 오토타임즈 기자 ()
  • 승인 2014.07.24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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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상반기 수입차 판매 톱5…폭스바겐 티구안 2.0·골프 2.0, 벤츠 E220, 아우디 A6 3.0

3억7100만원, 2억9600만원, 2억7800만원. 얼핏 보면 아파트 분양가격 같지만 최근 국내 시장에 등장한 고급 수입차의 판매가격이다. 가장 비싼 람보르기니 우라칸을 비롯해 벤츠 S600 롱(Long), 페라리 캘리포니아 등이 주인공이다. 가격만 보면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물량 부족에 시달리는 차종이기도 하다. 그만큼 최고급 수입차를 선호하는 소비자가 많다는 의미다.

1987년 수입차 개방 이후 한동안 최고급 수입차가 시장을 이끌었다면 2000년 중반에는 중·저가 수입차가 주목받았다. 하지만 근래 수입차는 가격을 가리지 않고 전성기를 누리는 중이다. 비싸면 비싸서, 반대로 저렴하면 부담이 줄어 앞 다퉈 구매에 나선다. 덕분에 올 1~6월 상반기 수입차 판매량은 9만4263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 7만4487대에 비해 26.5% 증가했다. 같은 기간 국내 전체 승용차 시장이 7% 증가했음을 고려하면 수입차들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수입차의 국내 시장 점유율도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에 따르면 올 상반기 국내 수입차 점유율은 13.87%였다. 지난해 점유율 12.1%보다 1.77%포인트 상승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올해 수입차 점유율이 15%를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한다. 

수입차 판매 톱5 모두 디젤 엔진

한국수입차협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수입차 시장을 휩쓴 톱5 차종은 BMW 520d(3863대), 폭스바겐 티구안 2.0 TDI 블루모션(3675대), 메르세데스 벤츠 E220 CDI(3052대), 폭스바겐 골프 2.0 TDI(2579대), 아우디 A6 3.0 TDI(2509대)로 집계됐다. 워낙 인기가 높아 톱5 차종을 합치면 1만5678대로 비중이 16%에 달한다. 국산차보다 판매되는 제품 종류가 5~6배 많은 점을 감안하면 만만치 않은 비중이다. 

이들 차종의 공통점은 모두 디젤 엔진이 탑재됐다는 것이다. 한때 휘발유 엔진이 지배했던 국내 시장의 흐름이 디젤로 급속히 이동하며 나타난 현상이다. 실제 디젤 선호 현상은 통계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수입차협회에 따르면 상반기 디젤 수입차는 6만4427대로 전체 수입차 판매량의 68.3%에 이른다. 지난해 같은 기간 44.5%보다 월등히 높은 수치여서 디젤 선호 현상이 일시적인 게 아님을 뒷받침해준다.

디젤 쏠림 현상은 독일차로 집중됐다. 지난 6월 판매된 수입차를 가솔린과 디젤로 구분한 후 톱5 차종을 비교하면 BMW 520d 디젤이 711대로 가솔린 중 최다 판매량을 기록한 벤츠 E300의 362대보다 349대 많다. 폭스바겐 티구안 역시 652대를 팔아 가솔린 판매 2위인 피아트 500의 301대보다 훨씬 많다.

그렇다면 독일차의 인기가 높은 이유는 뭘까. 개별 회사 제품력도 있지만 무엇보다 국가 브랜드 효과를 무시할 수 없다. 독일의 경우 기초 소재가 발달한 곳, 뛰어난 자동차 부품회사가 많은 나라로 알려진 터여서 최근 독일 정부도 전체 산업 견인이 가능한 우산 브랜드로 ‘독일(Germany)’을 내세우고 있다. 

디젤로 수요가 집중되는 유일한 이유는 효율이다. 비교적 값비싼 수입차를 타되 유지비만큼은 어떻게든 줄이려는 소비자가 적지 않다는 방증이다. 실제 수입 디젤 판매 1위인 BMW 520d의 경우 복합 기준 효율이 L당 16.9㎞에 달한다. 국산 디젤 세단으로 최근 등장한 현대차 그랜저 2.2L 디젤의 13.8㎞보다 3.1㎞ 높다. 물론 아우디 A6 3.0L TDI의 13.1㎞와 비교하면 그랜저 디젤의 효율이 높지만 배기량 차이를 감안하는 소비자가 적지 않음을 감안할 때 가격을 제외한 효율 경쟁력은 독일 디젤이 앞서는 셈이다. 이는 같은 2.2L 디젤 엔진이 탑재된 메르세데스 벤츠 E220 CDI의 14.8㎞와 비교하면 극명해진다.

효율이 높다는 것만으로 독일 디젤 세단의 한반도 점령 현상을 설명할 수는 없다. 기본적인 브랜드 선호 현상에 고효율이 더해지며 시너지가 형성됐다는 점도 이유로 꼽힌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수입차 가격 인하는 개인 구매자를 끌어들이며 수입차 시장을 폭발적으로 성장시키는 요인이 됐다.

개인 구매자는 폭스바겐 선호

한국수입차협회에 따르면 올 상반기 판매된 9만4263대의 수입차 가운데 개인 구매는 5만6077대로 59.5%를 차지했다. 법인 구매는 3만8186대인 40.5%로 집계됐다. 과거 수입차는 기업 경영자나 일부 자영업자, 전문직이 법인 형태로 구매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개인 구매자가 늘어났음을 보여준다.

판매된 수입차 중 개인 구매자가 가장 많았던 브랜드는 폭스바겐이다. 상반기 판매된 1만5368대 가운데 81%에 달하는 1만2442대가 개인 구매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업계 평균인 59.5%를 크게 앞서는 것으로 그만큼 폭스바겐이 수입차 대중화를 견인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골프와 티구안이 수입차 톱5에 포함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폭스바겐의 개인 구매 비율이 유독 높은 것은 상대적으로 가격 부담이 적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독일 프리미엄 3사와 달리 개인 구매자도 충분히 구입 가능한 가격인 데다 다양한 디젤 제품이 포진했다는 것이 강점이다. 실제 주력 차종인 골프(3050만~3750만원)의 개인 구매 비율은 평균을 넘는 85.3%에 달한다. 상품성이 크고 합리적인 가격으로 인식된다는 뜻이다. 폭스바겐코리아 관계자는 “젊은 층의 수요가 개인 구매를 견인했다”며 “실용성이 큰 제품군이 많은 점도 개인 구매를 늘린 이유”라고 설명했다.

개인 구매 2위인 BMW는 상반기 1만1112대를 판매했고, 비중은 54.8%로 업계 평균에 미치지 못했지만 과거 법인 구매가 70%에 육박했음을 떠올리면 개인 구매자 기여도가 적지 않았음을 엿볼 수 있다. 그 밖에 개인 구매가 비교적 많은 브랜드로 닛산(87.6%), 혼다(83.2%), 도요타(81.1%), 푸조(77.6%), 인피니티(74.1%), 포드(70.5%) 등이 꼽힌다.

국산 디젤의 반격

유럽산 디젤이 시장을 휩쓸자 토종 브랜드도 반격에 나섰다. 현대차가 그랜저 2.2L 디젤을 내놓고, 쉐보레는 앞서 나온 말리부 2.0L 디젤로 톡톡한 재미를 보고 있는 중이다. 르노삼성차도 최근 SM5 D를 출시한 후 밀려드는 계약에 웃음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과거 디젤차는 진동과 소음이 심한 것으로 인식됐지만 수입 디젤차를 통해 선입견이 희석되며 국산차에도 파란불이 켜졌다.

현대차는 그랜저 외에 쏘나타와 제네시스에도 디젤을 탑재할 예정이다. 수입 톱5 중 제네시스의 경쟁차로 지목되는 BMW 520d와 아우디 A6,  벤츠 E220 CDI와 경쟁하겠다는 의지다. 하지만 당분간 유럽 디젤차 강세는 꺾이지 않을 전망이다. 오랫동안 디젤 개발에 매진해온 데다 물가 상승에 따라 가벼워진 지갑이 고효율로 시선을 돌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국은 유럽과 달리 디젤 연료 가격이 휘발유보다 저렴한 점도 디젤 인기의 요인으로 꼽힌다. 그렇게 본다면 상반기 수입차 톱5에 오른 차종의 인기는 하반기에도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  

서울 시내의 한 수입차 대리점 관계자는 “수입차 업체들은 국산차와의 가격 경쟁에서도 뒤지지 않는다”며 “앞으로도 젊은 층을 포함한 개인 구매자를 타깃으로 가격 인하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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