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히딩크’를 영입하라
  • 서호정│축구 칼럼니스트 ()
  • 승인 2014.08.06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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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 마르바이크·레이카르트 등 네덜란드 출신 유력…‘코스타리카 8강’ 핀토 감독도 급부상

한국 축구 대표팀이 새롭게 출발한다. 그 시작은 기술위원장 선임이다.

대한축구협회는 7월28일 이용수 세종대 교수를 신임 기술위원장으로 임명했다. 2002년 거스 히딩크 감독을 대내외에서 지원하며 역대 가장 성공한 기술위원장으로 꼽히는 이용수 교수는 12년 만에 다시 돌아왔다. 한·일월드컵 이후 당시 대한축구협회장이었던 정몽준 명예회장과 마찰을 겪은 후 야권으로 돌아섰던 그는 지난해 정몽규 신임 축구협회장 부임 후 해빙 모드로 돌입했다. 회장에게 큰 그림을 그려주는 싱크탱크인 미래전략기획단 단장을 맡아 다시 축구협회 내부로 들어오는 것 아니냐는 설이 파다했다. 결국 정몽규 회장의 적극적인 요청에 조력자 역할을 받아들였다.

이용수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이 7월31일 경기도 파주 국가대표 트레이닝센터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뉴시스
기술위가 제시한 신임 사령탑 8대 요건

첫 기자회견에서 밝힌 대로 이용수 기술위원장이 수행해야 할 첫 번째 과제는 국가대표팀을 이끌 새 감독을 뽑는 것이다. 7월30일부터 파주 대표팀 트레이닝센터에서 기술위원과 1박 2일의 회의를 가진 그는 31일 두 번째 기자회견에서 신인 감독 선임의 큰 그림을 소개했다. 기존에 축구협회가 보유했던 감독 풀과 자천타천의 후보까지 총 47명의 리스트를 갖고 가진 열띤 토론 끝에 기술위원회는 외국인 감독을 선임하기로 결정했다. 국내파 감독 선임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현재의 난국을 끌고 가기엔 능력과 명성을 갖춘 외국인 감독이 적합하다는 결론이었다. 2007년 핌 베어벡 감독 이후 7년 만에 다시 외국인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기는 프로젝트가 시작된 것이다.

이용수 위원장은 3명의 우선협상대상자를 대한축구협회에 추천했다. 축구협회는 기술위로부터 받은 대상자와 8월부터 접촉하고 협상에 들어갈 예정이다. 3명의 후보는 밝히지 않았다. 이용수 위원장은 “이름이 노출되면 협상을 진행하는 과정에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과거 감독 후보가 외부에 노출돼 협상 주도권을 내주고 실패했던 사례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다.

대신 신임 감독 선정 조건을 조목조목 밝혔다. 이용수 위원장은 3대 필수 요건에, 가급적 해당되면 좋을 다섯 가지 조건까지 총 8대 요건을 설명했다. 3대 필수 요건의 첫 번째는 ‘대륙별 선수권대회에서 지도 경험이 있는가’다. 아시안컵, 유럽선수권(유로), 남미선수권(코파아메리카) 등이 이에 해당하다. 신임 감독의 당면 과제가 내년 1월 호주에서 열리는 아시안컵인 만큼 그 부분에 대한 노하우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두 번째는 ‘월드컵 지역 예선을 홈과 원정의 형태로 치러본 경험이 있는가’다. 세 번째는 ‘월드컵 본선에서 16강 이상의 성적을 낸 적이 있는가’다. 아시안컵은 당면 과제지만, 진정한 목표는 2018년에 열리는 러시아월드컵에 진출해 성적을 내는 것이다. 즉 월드컵 성공을 위한 일련의 과정을 경험하고 그 안에서 좋은 결과를 낸 감독이 필요하다는 부분을 짚었다.

 이 세 가지 조건은 기술위가 객관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국제무대에서 인상적인 성공을 거둔 지도자를 원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검증이 됐고 이름값 높은 감독이 후보에 포함돼 있음을 유추할 수 있다. 국내 지도자의 대표 격이었던 홍명보 감독의 실패로 당분간은 외국인 감독으로 가야 한다는 대세론도 어느 정도 수긍했다.

기술위는 그 밖에 K리그와의 연계를 고려한 ‘클럽팀에서의 지도자 경험’ ‘국내 지도자와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는 교육자로서의 인성과 자질’ ‘지나친 고령보다는 60대 중반 이하의 연령’ ‘가급적 영어를 편안하게 구사해 선수와 커뮤니케이션이 될 수 있을 것’ ‘지금 바로 계약을 체결할 수 있는 조건인 무직’ 등도 필수는 아니지만 주요 조건으로 내세웠다. 또한 조건으로 언급되진 않았지만 대한축구협회가 현실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연봉도 포함됐다. 대한축구협회는 과거 외국인 감독 선임을 위한 연봉으로 10억원가량을 책정했지만 이번에는 15억~20억원 사이를 고려 중이다.

기술위가 밝힌 조건은 명확하지만 과거에 언급됐던 조건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특히 언어 부분은 축구협회가 전통적으로 고수하고 있는 서유럽 출신 감독이 후보에 있음을 짐작하게 해준다. 그중에서도 네덜란드 출신 감독에게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역대 대표팀을 맡았던 6명의 외국인 감독은 네덜란드 출신이 4명(거스 히딩크, 조 본프레레, 딕 아드보카트, 핌 베어벡), 러시아 출신이 1명(아나톨리 비쇼베츠), 포르투갈 출신이 1명(움베르투 쿠엘류)이었다. 그중 비쇼베츠와 쿠엘류 감독은 커뮤니케이션 미스로 잦은 반목과 오해를 불렀다. 때문에 유럽에서도 다양한 언어에 능하고,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하는 네덜란드 지도자가 선호됐다.

ⓒ AP 연합
‘히딩크 효과’ 네덜란드 출신 감독이 제1 후보

역대 대표팀 감독 중 가장 크게 성공을 거둔 히딩크 감독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히딩크 감독은 네덜란드인 특유의 적극성과 고정관념을 깨는 사고, 한국의 강점을 잘 흡수하는 포용력으로 성공했다. 이용수 위원장은 최근 박지성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히딩크 감독과 공석에서 여러 차례 만남을 가졌다. 두 사람은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최고의 호흡을 보여줬다. 히딩크 감독은 “이용수 교수는 한국 축구를 도울 최적의 인물이다. 그를 신뢰하라”며 지지를 보냈다. 짧은 만남 속에서 한국 축구의 위기에 대한 히딩크 감독의 혜안이 있었을 것이고, 그가 가진 네트워크를 통해 유명 지도자를 추천받지 않았겠느냐는 추측이 많다.

실제로 기술위가 밝힌 조건에 해당하는 후보들 중 네덜란드 출신이 많다. 가장 유력한 후보는 베르트 판 마르바이크다. 페예노르트(네덜란드),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독일) 같은 명문 팀을 지도해 성공을 거뒀다. 2008년부터 2012년 사이에는 네덜란드 대표팀을 맡으며 2010 남아공월드컵 예선과 본선, 유로2012 예선과 본선을 치렀다. 남아공월드컵에서는 준우승을 거두며 지도력을 증명했다. 지난해 함부르크 SV(독일) 감독에서 물러난 이후 현재는 쉬고 있다. 페예노르트 감독 시절 송종국·이천수를 지도한 바 있어 한국에 대해서도 인지하고 있다. 1952년생으로 60대 초반이다.

다음 후보는 프랭크 레이카르트다. 선수 시절 아약스(네덜란드)와 AC 밀란(이탈리아), 네덜란드 대표팀에서 맹활약했던 슈퍼스타 출신이다. 지도자로 변신한 후에도 성공을 거뒀다. 네덜란드 대표팀 감독으로 유로2000에 참가해 준우승을 거뒀다. 이후 FC 바르셀로나를 맡아 챔피언스리그와 프리메라리가를 모두 제패했다. 감독으로서 월드컵을 치러본 경험은 없지만 1962년생으로 50대인 데다 선수와 지도자로서의 경험이 풍부하다는 점이 돋보인다. 레이카르트 감독 역시 2013년 사우디아라비아 대표팀 감독을 끝으로 소속이 없는 상태라 접촉이 용이하다. 그 밖에 마틴 욜 역시 한국 팬들에게 익숙한 또 다른 네덜란드 출신 감독이다. 하지만 성공 경험, 대표팀 감독 경력 등 여러 조건에서 판 마르바이크, 레이카르트에게 크게 밀린다.

ⓒ EPA 연합
루이스 핀토 감독, 히딩크 연상케 한다는 평

가장 최근에 인상적인 성공을 거둔 지도자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바로 브라질월드컵에서 성공을 거둔 감독들이다. 대표적인 예가 코스타리카를 8강으로 이끈 호르헤 루이스 핀토 감독이다. 핀토 감독은 월드컵 전 FIFA 랭킹 28위였던 코스타리카를 8강까지 이끌며 크게 주목받았다. 당초 코스타리카는 이탈리아·우루과이·잉글랜드와 함께 ‘죽음의 조’인 D조에 포함돼 탈락 1순위로 꼽혔지만 오히려 2승 1무의 무패로 조 1위를 기록하며 16강에 올랐다. 16강에서 그리스를 승부차기 끝에 이기고 8강에 진출했다. 8강에서도 네덜란드와 0-0 무승부를 기록하고 승부차기에서 아쉽게 패했다.

전력이 떨어지는 팀을 육체적·정신적인 면에서 최대치까지 끌어올리고 상대에 대비한 맞춤 전술로 대응하는 등 2002년의 히딩크 감독을 연상케 했다는 평이 많았다. 실제로 이용수 위원장은 월드컵 기간 동안 해설위원으로서 코스타리카 경기를 꾸준히 확인하며 핀토 감독에게 큰 매력을 느꼈다는 얘기가 있다. 1952년생인 핀토 감독은 월드컵 이후 코스타리카와 재계약 협상이 결렬돼 팀을 떠난 상태다. 월드컵을 통해 스타 감독으로 급부상했지만 그 이전의 몸값(약 5억원)이 낮아 축구협회가 현실적으로 택할 수 있는 유력한 대상으로 여겨진다. 그 밖에도 그리스 대표팀을 16강으로 이끈 포르투갈 출신의 페르난도 산투스(1954년생), 칠레 대표팀을 지도하며 인상적인 경기력을 보여준 아르헨티나 출신의 호르헤 삼파올리(1960년생)도 매력적인 후보다. 하지만 두 감독은 재계약을 통해 각각 잔류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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