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무통 살인사건’ 열쇠 쥔 5명의 남자
  • 정락인 객원기자 (pressfree7@hanmail.net)
  • 승인 2014.08.14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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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자 이씨 복잡한 내연관계…제3의 희생자 있을 수도

경기도 포천에서 발생한 일명 ‘고무통 살인 사건’이 미궁에 빠지고 있다. 용의자는 체포했지만 사건의 실체는 여전히 안갯속이다. 지난 7월29일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이날 밤 9시40분쯤 주민들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포천시 신북면의 한 빌라를 찾아갔다. 현관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경찰은 소방서의 협조를 받아 베란다를 통해 집 안으로 진입했다.

집 안은 쓰레기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난잡했고 악취가 심했다. 안방에서는 여덟 살짜리 아이가 눈빛을 잃은 채 멍하니 누워 있었다. 작은방을 살펴보던 경찰은 이불이 덮여 있는 80cm 높이의 고무통을 발견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경찰이 고무통을 열어보니 그 안에는 신원불상의 시신 2구가 포개져 있었다. 아래에 있는 시신은 백골 상태였고, 그 위에 있는 시신의 목에는 2m 정도 되는 스카프가 세 번 감겨져 있었다. 얼굴에는 공사판에서 쓰는 랩이 약 165cm 정도로 둘둘 씌워져 있어 한눈에 봐도 타살이 의심됐다.

8월1일 경기도 포천경찰서에서 ‘포천 빌라 살인 사건’ 피의자 이 아무개씨(50·여)가 조사를 받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씨 “내가 둘 다 죽였다”던 진술 번복

경찰은 유력한 용의자로 빌라 주인 이 아무개씨(51·여)를 특정하고 신병 확보에 나섰다. 그는 집 근처 제과공장에서 근무하고 있었지만 경찰이 수사에 착수한 후 잠적한 상태였다. 경찰은 이씨와 자주 통화한 스리랑카인을 통해 그가 숨어 있는 곳을 찾아냈다. 시신 발견 4일 후인 8월1일 경찰은 포천시 소흘읍 송우리의 한 섬유공장 외국인 숙소 내에서 이씨를 검거했다.

유력한 용의자가 검거되면서 수사는 급물살을 탔다. 이씨는 1차 조사에서 고무통 시신에 대해 “남편과 외국인 1명을 내가 죽였다”고 진술했다. 또 “길 가던 외국인을 집에 데려와 술을 마시다 돈을 달라고 해 다투다 거실에서 살해했고, 회사에서 100만원을 가불해 길에서 만난 다른 외국인에게 주고 시신을 고무통에 넣도록 했다”며 비교적 상세하게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하지만 이씨는 얼마 지나지 않아 진술을 번복했고, 수사도 꼬이기 시작했다. 당초 자신이 살해했다고 말했던 백골 상태인 남편은 “10년 전 자연사했고, 베란다에 쓰러져 있었다”고 말을 바꾼 것이다. 이씨의 큰아들(28)도 처음에는 아버지가 실종됐다고 했으나 나중에 자연사했다고 말을 바꿨다. 경찰은 큰아들을 상대로 거짓말 탐지기 조사를 했으나 ‘진실 반응’이 나왔다. 이로써 남편 박씨가 타살된 것인지 아니면 자연사한 것인지 정확한 사인을 밝히는 게 어렵게 됐다.

여러 정황을 보면 이씨가 형량을 줄이기 위해 진술을 번복했을 가능성이 짙다. 집안의 가장이 사망했는데도 외부에 알리거나 장례도 치르지 않고, 시신을 고무통에 넣어 집 안에 뒀다는 건 상식 밖의 일이다. 심지어 남편 박씨의 가족에게조차 사망 사실을 숨겼다. 이씨와 남편은 지난 1995년 당시 만 여섯 살이던 아들을 교통사고로 잃은 후 서로 책임을 묻는 등 부부 사이가 틀어졌다고 알려졌다.

이상한 점은 또 있다. 당초 이씨가 외국인이라고 했던 시신 한 구는 한국인 내연남(49)으로 밝혀졌다. 그는 지난해 10월 이씨와의 내연 관계가 들통 나 직장에서 해고됐으며 이후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다. 경찰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시신 감정을 의뢰한 결과 시신 2구에서 수면제 성분이 검출됐다. 내연남 시신에서 발견된 ‘졸피뎀’은 처방전 없이는 구할 수 없는 수면제다. 수면 성분이 강력해 범죄에 종종 악용된다. 시신 2구 모두에서 수면제 성분이 발견됨으로써 이씨가 계획적으로 살인을 저질렀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내연남을 우발적으로 죽였다는 말에도 모순이 생긴다. 이씨가 굳이 한국인을 외국인으로 말한 이유도 미심쩍다.

일각에서는 이씨가 외국인을 살해한 후 제3의 장소에 유기했을 가능성도 제기한다. 더욱이 이씨가 “자연사했다”고 주장한 남편에게서도 수면제 성분이 검출돼 타살 의혹은 더욱 짙어졌다. 이씨는 키가 150cm에 불과하다. 체격은 크지만 성인 남성을 한 번에 제압하기에는 무리다. 시신의 몸에서 수면제 성분이 나온 것은 상대방을 제압하기 위해 사용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렇지 않을 경우 공범이나 조력자가 있을 수 있다. 경찰도 이 부분을 집중 수사하고 있다.

이번 사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피의자인 이씨 주변에는 여러 남자가 등장한다. 지금까지 숨진 남편 박씨를 포함해 최소 4명이 거론되고 있다. 박씨와 함께 고무통에 들어 있던 내연남과 이씨가 검거되기 전까지 함께 있던 스리랑카인. 또 시신 발견 당시 안방에 있던 막내아들의 친아버지인 방글라데시인이다. 이씨는 1차 진술에서 고무통에 있는 시신 한 구는 자신이 살해한 외국인 남성이라고 말했다. 나중에 내국인으로 밝혀지기는 했지만 이씨가 살해한 또 다른 외국인 남자가 있다면 총 5명이 등장하는 셈이다. 이씨의 이웃들은 그가 “여러 남자와 함께 자주 어울렸다”고 말했다.

이씨가 성매매에 나섰다는 의혹도

이씨는 이들 남성과 단순한 친분 관계가 아닌 내연 관계를 맺고 있었다. 일각에서는 여러 정황을 감안해 이씨가 외국인 남성들을 상대로 성매매를 한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한다. 경찰은 이 부분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조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김재웅 포천경찰서 수사과장은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더 급하게 조사할 것이 많아서 피의자가 성매매를 했는지는 확실하게 조사하지 않았다”며 “주변에 남자가 많은 것은 개인적인 취향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현재로서는 이씨가 부양할 가족이 많지 않았고, 직장을 다니고 있었다는 점을 들어 ‘성매매’보다는 ‘복잡한 남자 관계’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포천은 안산과 부천에 이어 전국에서 셋째로 외국인 노동자가 많은 지역이다. 전체 인구의 약 6%에 달한다. 특히 이씨가 숨어 있다가 검거된 소흘읍 송우리와 가산·내촌면 등에 산재한 가구·염색·섬유 등 업체에는 외국인 노동자가 대부분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씨와 외국인 노동자들과의 만남이 쉽게 이뤄질 수 있었다.

이씨의 내연 관계는 이번 사건을 푸는 핵심 열쇠가 될 수 있다. 고무통에서 발견된 시신 2구의 사인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수 있다. 이씨 남편의 사망 시점이 정확하게 언제인지도 따져봐야 한다. 보통 10년 된 시신은 완전히 백골 상태가 된다. 그런데도 남편 박씨의 손가락에서는 지문이 나왔다.

이씨 집에서는 남편 명의의 휴대전화가 나왔는데, 지난 6월까지 통화한 내역이 확인됐다. 이씨는 자기 휴대전화가 있는데도, 왜 남편 것을 사용했던 걸까. 경찰은 숨진 박씨의 2004년 이후 행적을 찾기 위해 탐문 수사와 통신·금융 기록 등을 조사했지만 실패했다.

만약 남편 박씨의 사망 시점이 8년 전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이씨에겐 방글라데시인과의 사이에 여덟 살짜리 아들이 있다. 남편이 살아 있는 상태에서 혼외 자식이 생겼다면 가정불화가 있었을 수도 있다. 현재 아이 아버지인 방글라데시인은 자국으로 출국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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