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간 일해도 커피 한 잔 못 사먹어요”
  • 조유빈 기자·손가영 인턴기자 (you@sisapress.com)
  • 승인 2014.08.14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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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최저임금 시간당 5580원…호주 1만5759원으로 1만원 이상 많아

지난 2월 일본의 규동 전문점 ‘스키야’의 아르바이트생들이 집단 퇴사하는 일이 벌어졌다. 스키야는 일본에 2000여 개 점포를 보유한 프랜차이즈 업체다. 24시간 운영되며 한 끼 가격은 최저 250엔(약 2500원)이다. 이곳 아르바이트생들에게 1일 12시간 근무는 기본이었다. 아르바이트생 한 명이 시간당 5000엔(약 5만원)의 매출을 채워야 했다. 잔업수당은 없었다. 소규모 매장에 한 명만 배치되기 때문에 화장실만 가도 ‘근무 이탈’이었다. 이 한 명이 주문·계산·설거지·요리까지 해야 하는 ‘멀티플레이어’였다. 결국 참다못한 아르바이트생들이 뛰쳐나가면서 문을 닫는 매장이 속출했다. 

일본뿐만이 아니다. ‘알바’는 대한민국 청년에게도 무척 친숙하면서 힘겨운 단어가 된 지 오래다.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2014년)’에 따르면 청년층 인구 중 재학 기간 동안 직장 체험을 한 비율은 41.2%에 달한다. 대통령 직속 청년위원회가 2013년 실시한 ‘알바 청년 부당 고용 실태조사’에서는 아르바이트 경험자의 69.9%가 “생활비 마련을 위해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답했다. 생계를 위해 ‘알바를 뛰는’ 우리 청년들의 상황은 어떨까.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는 청년들이 늘어나고 있다. 말풍선 속은 7월18일 알바노조가 진행한 최저임금 인상안 찬반 여론조사에서 시민들이 남긴 메시지. ⓒ 시사저널 이종현
“알바에겐 기본 인권도 보수도 없다”

#1. 이 아무개씨(21)는 아르바이트 중개 사이트에 올라온 공고를 보고 편의점 면접을 보러 갔다. 사장이 처음엔 시급 4200원을 주겠다고 했다. 이씨가 “최저임금은 5210원 아니냐”고 묻자 “그렇다면 5210원을 주겠다. 하지만 그 이상은 못 준다”고 했다. 그래서 5210원을 받기로 하고 일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씨만 ‘최저임금’을 받았고 그곳에서 다른 시간대에 일했던 아르바이트생들은 4200원만 받고 있었다. 최저임금제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던 것이다.

#2. 프랜차이즈로 운영되는 한 술집에서 일하던 오 아무개씨(여·25)는 40대 사장에게 성추행을 당했다. 지나가면서 팔을 주물럭거리거나 엉덩이를 툭 치는 것은 예사였다. 옷차림을 지적하며 “몸에 붙는 옷을 입어라” “가슴이 더 커진 것 같다” 등의 말을 다른 손님들 앞에서 했다. 견디다 못한 오씨가 그만두고 나가겠다고 하자 사장은 “시급을 올려주겠다. 나랑 사귀자”고 했다.

#3. PC방 아르바이트를 했던 윤 아무개씨(24). 손님이 없어 카운터 PC로 게임에 접속했다. 바로 사장의 전화가 걸려왔다. 게임을 하지 말고 청소를 하라고 했다. 자주 오던 단골 아저씨가 치킨을 사서 몇 조각을 줬다. 먹으려고 하자 또 사장의 전화가 걸려왔다. “그 치킨은 뭐냐”고 물었다. CCTV로 몇 십 분 동안 지켜보고 있었다고 했다. 기본적인 사생활도 없었다. 도망치듯 PC방을 그만뒀다.

#4. 프랜차이즈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했던 김 아무개군(19). 일을 마치는 시간이 30분 남았지만 매니저는 퇴근을 하라고 했다. 일명 ‘꺾기’다. 이렇게 되면 30분 동안 일한 임금은 없다. 일주일에 5일 출근하라고 해서 꼬박꼬박 나갔다. 그런데 매장에서 우연히 본, 일명 ‘시프트’라 불리는 출근표에는 김씨가 6일을 출근해야 하는 것으로 돼 있었다. 자기도 모르게 일주일에 하루씩 결근하게 된 꼴이다. 왜 그런지는 일을 그만둘 때까지 몰랐다. 일주일 동안 근무 일수를 다 채운 사람은 ‘주휴수당’이라는 추가 임금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김씨는 지각 한 번 하지 않았지만 한 푼도 더 받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아르바이트 전선에 뛰어들어야만 하는 ‘생계형 알바생’은 서럽다. 여기에 인권을 무시당하고, 받아야 할 수당까지 받지 못하는 청년이 부지기수다. 청소년의 경우는 더 심각하다. 노동관계법을 잘 모르는 학생들에게 야근수당도 주지 않고 “형이라고 편하게 생각하라”면서 쉬는 날에도 불러 일을 시킨다. 근로계약서는 본 적도 없다. 일을 시작할 때 도장을 가져오라고 했다. 계약은 도장을 갖고 있는 매니저 마음대로 갱신된다. 몇 시간을 일하는지 적지도 않는다. 빈칸으로 비워놓고 필요할 때마다 ‘콜’을 한다. 노동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다고 해서 ‘제로아워’ 노동자라 부른다.

‘알바’들은 “그나마 돈이라도 제대로 주면 낫겠다”고 했다. ‘시급 인상’을 매년 외쳤다. 지난 8월4일 2015년 최저임금이 확정됐다. 지난해에 비해 370원(7.1%) 오른 5580원이다. 노동계는 6700원으로 올리자고 주장했지만 사용자 측은 5210원으로 동결해야 한다고 맞섰다. 결국 최저임금위원회가 제시한 중재안이 통과됐다.

OECD 국가 중 임금 수준 최하위권

아르바이트생들은 “그래도 커피 한 잔이 내 시급보다 비싸다”고 불만을 털어놓는다. 실제로 한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판매하는 아포가또(6000원)나 화이트 모카커피(6000원)는 그들이 한 시간 일하고 번 돈으로는 마실 수 없다. 김 아무개씨(23)는 “김밥이나 햄버거가 아닌, 제대로 된 밥을 먹으려면 6000~7000원은 내야 한다”고 토로했다. 하루 3시간 동안 일해 번 것보다 많은 돈을 세 끼 식사비로 쓰게 되는 셈이다.

아르바이트 노동조합(알바노조)의 구교현 위원장은 “최저임금 결정 기준이 노동자들의 삶과 완전히 괴리돼 있다는 점이 다시 한 번 확인된 것”이라며 “올해도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최저임금위원회) 공익위원들의 의견이 그대로 관철됐다. 정부가 하고 싶은 대로 한 것이고 노동자들은 들러리를 선 꼴이 돼버렸다”고 말했다. 또 “최저임금이 1만원은 돼야 한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들의 최저임금 평균(2013년 기준 6.79달러·약 7040원)에도 한참 못 미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외환위기가 지난 2000년 이후에도 최저임금은 매년 200~300원 인상되는 데 그쳤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우리나라의 최저임금은 매우 낮은 수준이다. OECD가 공개한 국가별 시간당 최저임금 자료(2013년 기준, 2014년 8월7일 기준 환율로 환산)를 살펴보면 1위를 차지한 호주의 경우, 시간당 최저임금은 15.2달러(1만5759원)다. 우리나라의 세 배에 달한다. 프랑스는 12.4달러(1만2856원), 일본은 7.7달러(7983원)다. 우리나라는 26개국 중 17위(4.4달러)였다. 우리나라보다 최저임금이 적은 나라는 포르투갈·칠레·멕시코 등이었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유선 선임연구원은 “박근혜정부는 선거 당시 최저임금을 대폭 올리겠다고 공약했다. 최근 저임금 계층이 양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7% 인상은 상당히 미흡하다고 생각한다”며 “불평등한 분배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노동자 임금이 지금보다 올라야 한다. 우리나라 최저임금도 대폭적인 인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령회사’ 알바 모집 조심하세요 


청년들이 아르바이트 중개 사이트에 게재된 공고를 보고 지원을 했다가 피해를 보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이른바 ‘유령회사’의 공고다. 합격을 했다면서 출입증을 만들어야 하니 신분증 사본을 먼저 보내라고 하거나, 급여를 선지급해야 한다는 이유로 정해진 은행의 통장을 만들어 발송하라고 요구하는 곳이 있다. 최 아무개씨(22)는 “단기 알바가 있어 지원했는데 주민등록번호가 나온 등본을 요구했다. 아무래도 이상해 주소지를 찾아가봤더니 공고가 나온 회사가 아니었다”고 했다.

아르바이트 취업 경쟁이 치열해지는 명절 시즌이 되면 유령회사가 대학생들에게 직접 연락하기도 한다. 대학생 김 아무개씨는 “간단한 업무인데도 급여를 많이 준다기에 호기심이 생겨 이것저것 물었더니 자세히 대답을 하지 않더라. 일단 이력서와 통장, 체크카드 사본을 보내라고 하기에 ‘안 하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알바노조 측은 “회사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도 하지 않고 무료로 공고를 올리는 데는 (아르바이트) 중개 사이트의 책임의 크다. 중개 사이트 측에서 사업자번호만 확인해도 피해를 보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며 “직접 아르바이트생을 구한다고 연락하거나 너무 자주 구인공고를 내는 업체는 의심해 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보수가 지나치게 높거나 일을 하기도 전에 많은 서류를 요구하는 곳은 ‘유령 회사’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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