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영 시대의 영광을! 현대 패밀리의 진격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4.08.20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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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니아만도 현대백화점그룹 품에…범현대가 ‘잃어버린 가족’ 찾기 가속화

범(汎)현대가의 ‘잃어버린 가족’ 찾기가 가속화되고 있다. 현대그린푸드는 8월7일 위니아만도의 지분 100%를 인수하는 양해각서(MOU)를 CVC캐피털파트너스(CVC)와 체결했다. 위니아만도는 1990년대 말까지만 해도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동생인 고(故) 정인영 회장이 이끄는 한라그룹 계열사였다. 만도기계의 공조사업부로 사업을 시작해 1995년에는 세계 최초로 김치냉장고 브랜드 ‘딤채’를 선보이며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문어발식 사업 확장으로 흑자 부도를 내고 1999년 사모펀드인 UBS캐피털컨소시엄(UBS)에 매각됐다. 컨소시엄의 일원이었던 CVC는 2005년 위니아만도 지분 전량을 인수했다.

위니아만도가 현대그린푸드에 인수되면 15년 만에 현대 가족이 된다. 그동안 위니아만도는 사모펀드인 UBS와 CVC로 잇따라 주인이 바뀌면서 경쟁력이 많이 훼손된 상태다. 현대백화점그룹은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셋째 아들인 정몽근 명예회장이 운영하다 2003년 3세인 정지선 회장 체제로 바뀌었다. 한라그룹 역시 정주영 회장의 첫째 동생인 정인영 명예회장이 세운 회사다. 1997년 정몽원 회장이 총수직을 물려받았다. 위니아만도 직원들은 현대백화점그룹이 범현대가라는 점에서 인수를 반기는 분위기다.

현대그린푸드는 현대백화점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회사다. 정지선 회장이 12.67%, 정교선 부회장이 15.28%, 정몽근 명예회장이 2.59%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위니아만도 인수로 범현대가에서 정지선 회장이나 정교선 부회장이 차지하는 입지 또한 더욱 탄탄해질 것으로 보인다.

현대백화점그룹 측은 위니아만도 인수를 범현대가와 연결 짓는 걸 불편해한다. 그룹의 한 관계자는 “생활가전 사업에 진출하기 위해 동양매직 인수를 추진했지만 실패했다. 위니아만도가 범현대가의 울타리에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철저하게 사업적 측면만을 고려해 인수를 진행해왔다”고 설명했다.

2008년 이후 현대 패밀리 결속 본격화

하지만 재계에서는 최근 잇따르고 있는 범현대가의 계열사 되찾기 연장선에서 이번 인수 건을 해석하기도 한다. 지금은 삼성그룹이 부동의 재계 1위를 지키고 있다. 1990년대 말까지만 해도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이끄는 현대그룹이 총자산 기준으로 1등이었다. 2000년 터진 ‘왕자의 난’으로 현대 패밀리는 뿔뿔이 흩어졌다. 2000년 9월 차남인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 5남인 고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이 경영권 다툼을 벌인 직후 현대·기아차가 분리됐다. 2002년에는 6남인 정몽준 전 새누리당 대표가 최대주주인 현대중공업이 분가했다. 1998년과 1999년에 이미 7남 정몽윤 회장과 3남 정몽근 명예회장이 이끄는 현대해상화재보험과 현대백화점이 분리된 상태였다. 현대그룹의 위상은 재계 15위까지 추락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숙질의 난’과 ‘시동생 난’까지 벌어졌다. 정상영 KCC그룹 명예회장은 2003년 현대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현대엘리베이터 지분 매집에 나섰다. 며느리가 이끄는 ‘현씨의 현대’를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명분을 내걸었다. 현대중공업 역시 KCC 편에 섰다. 2006년에는 외국인이 보유하고 있던 현대상선 지분을 현대중공업이 대거 인수하면서 현정은 회장과 날을 세우기도 했다. 현대그룹 측은 “현대중공업이 현대상선의 경영권을 노리고 있다”며 시동생인 정몽준 전 새누리당 대표를 강하게 비난했다.

2000년대 후반 들어서면서 현대 패밀리의 행보에 변화가 감지됐다. 정주영 창업주 작고 이후 핵분열됐던 현대그룹이 ‘범현대가’라는 이름으로 뭉치기 시작했다. 2008년 1월 자동차 부품업체인 만도가 옛 주인인 한라그룹의 품에 안긴 것이 단초가 됐다. 1998년 터진 외환위기로 한라그룹의 경영난이 가중됐다. 한라그룹은 1999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그룹의 주력 회사인 만도를 해외 투자사에 매각했다. 정인영 한라그룹 명예회장은 2006년 작고하기 직전까지 만도를 되찾으려고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아들 정몽원 회장에게 “만도를 꼭 되찾으라”는 유언을 남겼을 정도다.

정 회장은 2008년 1월 만도를 되찾는 데 성공했다. ‘몽(夢)’자 돌림 연합군의 지원 사격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정몽진 KCC 회장은 한라그룹이 만도를 인수하기 위해 만든 컨소시엄에 자금을 댔다. 정 회장은 “만도 인수는 집안 내에서 힘을 합치자고 해서 결정된 문제”라고 말하기도 했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도 물밑에서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자동차 부품업체인 만도의 주 거래처는 단연 현대차다. 매출의 70%가 현대차에서 나온다. 현대·기아차는 당시 기술 유출 등을 이유로 외국 회사나 자본이 만도를 가져가는 것에 반대했다. 범현대가의 지원으로 한라그룹이 만도를 되찾게 됐다는 것이 재계의 중론이다. 

그 후부터 현대가의 ‘잃어버린 가족’ 찾기가 본격화됐다. 현대중공업은 왕자의 난 전후로 외부에 매각된 현대종합상사와 현대오일뱅크를 잇따라 인수했다. 현대종합상사는 2003년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으로 현대그룹에서 떨어져나갔다. 최대주주가 현대자동차에서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 현대중공업, 현대상선 등으로 잇따라 바뀌다가 채권단에 경영권이 넘어갔다. 현대오일뱅크도 1990년대 말 자금난으로 ‘미아’가 됐다. 현대중공업은 2009년과 2010년에 각각 현대종합상사와 현대오일뱅크를 인수하면서 계열사에 포함시켰다.

2011년에는 현대그룹의 모태 기업인 현대건설도 현대가의 품에 돌아왔다. 현대건설은 2001년 8월 현대그룹의 유동성 위기로 부도를 맞아 채권단에 운명을 맡기는 신세가 됐다. 경영이 안정되고 난 후 2010년 매물로 나오자 범현대가에서 눈독을 들여왔다. 현대건설을 누가 먹느냐를 놓고 정몽구 회장이 이끄는 현대차그룹과 현정은 회장의 현대그룹이 맞섰다. 양측은 현대그룹의 모태라고 할 수 있는 현대건설 인수를 위해 치열한 신경전을 벌였다. 현대그룹은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고 정몽헌 회장에게 현대건설을 포함한 그룹을 물려줬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현대건설은 현대그룹이 지키겠습니다’란 내용의 방송 광고를 통해 여론전을 폈다. 

현대차그룹은 명분보다 인수 능력을 내세웠다. “현대건설을 인수해 글로벌 종합 엔지니어링사로 키울 수 있는 곳은 현대그룹이 아니라 현대차그룹이다”고 언론에 호소했다. 경합 끝에 현대차그룹의 승리로 현대건설 인수전은 마무리됐다. 정주영 회장 별세 후 팔려나갔던 범현대가 기업 중 SK하이닉스를 제외한 대다수 기업이 다시 현대가의 품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범현대가의 부활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현대가 복원 프로젝트 완성의 마지막 고비는 현대증권이다. 현대그룹은 최근 유동성 위기 극복 차원에서 현대증권을 매각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산업은행 주도로 매각이 진행 중이다. 산업은행은 현대증권·현대자산운용·현대저축은행을 패키지로 매각한다는 방침을 밝힌 상태다. 재계에서는 현대증권이 누구 품에 안길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범현대가에서 현대증권 인수전에 나설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현대증권 역시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만든 회사인 데다 ‘현대’라는 이름을 가진 상징성 때문이다.

현대차그룹, 현대증권 인수전 참여 주목

현대차그룹과 현대중공업그룹은 현재 계열 증권사로 HMC투자증권과 하이투자증권을 각각 두고 있다. 규모가 크지 않기 때문에 현대증권 인수를 통해 시너지를 기대해볼 만하다고 재계에서는 보고 있다. 5월30일 예비 입찰에서는 범현대가의 이름이 모두 빠졌다. 현대차나 현대중공업은 예비 입찰에 인수의향서(LOI)를 내지 않았을 뿐 아니라 7월 말 진행된 실사 작업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현대차그룹의 한 관계자는 “현대증권을 인수하는 것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 당분간은 HMC투자증권의 체질 개선에 주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현대차그룹의 경우 초기에는 인수전 참여를 부인했다가 나중에 뒤집은 사례가 적지 않다. 2010년 현대건설 인수전 때도 인수 의사를 밝히지 않다가 막판에 참여했다. 현대증권 매각은 ‘원-스테이지 옥션’ 방식으로 진행된다. 인수에 관심 있는 기업은 예비 입찰을 생략하고 본 입찰에 참여할 수 있다. 현대중공업그룹 역시 내부적으로 현대증권 인수 타당성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그룹이나 현대중공업이 인수전 막판에 기습적으로 나타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화려했던 옛 왕조의 부활을 꿈꾸는 범현대가의 행보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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