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 전과자가 어떻게 감사 맡았나”
  • 안성모 기자 (asm@sisapress.com)
  • 승인 2014.08.28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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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총연맹 회장 불신임 파동 내막…윤기영 한전산업개발 감사 과거 전력 논란

국내 최대 관변 단체인 한국자유총연맹이 또 한 차례 격랑에 휩싸였다. 김명환 회장이 취임한 지 채 1년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내부로부터 ‘회장 퇴진’ 요구가 본격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유총연맹은 8월21일 열린 이사회에서 김 회장 불신임안을 총회에 올리기로 의결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6월 박창달 전 회장이 사퇴한 후 3개월여 만에 출범한 김명환호가 임기도 다 채우지 못한 채 중도하차할 위기에 놓였다.

“한산 대표 시켜준다며 1억 요구” 회의록 파문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시사저널은 지난해 초부터 자유총연맹의 비리 의혹을 집중적으로 파헤쳐왔다. 박창달 회장 시절, 자금 관리에서부터 정치 개입에 이르기까지 자유총연맹 안팎에서 제기돼온 여러 의혹의 실체를 추적 보도했다. 이는 경찰의 수사가 본격화하고 정부의 감사가 진행되는 단초가 되기도 했다. 자유총연맹이 최대주주로 있는 한전산업개발의 비리 의혹도 공론화했다. 정치권에서 내려오는 ‘낙하산 인사’로 인한 폐해를 꼬집기도 했다.

8월21일 서울 장충동 자유총연맹 회의실에서 열린 2014년 제3차 이사회. 김명환 회장 등이 이사회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김명환 회장이 불신임까지 받게 된 이유도 한전산업개발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표면적으로는 김 회장이 한전산업개발로부터 매달 1000만원의 활동비를 받았던 게 문제가 됐다. 이는 시사저널이 7월7일자(1290호)에서 단독 보도한 내용이다. 자유총연맹 회장은 한전산업개발이 2010년 말 상장하기 전까지 이사회 의장을 맡았다. 이후 이사회 의장 자리를 내놓았는데도 이전에 받던 활동비를 그대로 받아온 것이다. 박창달 전 회장이 자유총연맹을 떠나기 직전 활동비가 500만원에서 1000만원으로 두 배로 뛰었다.

취재 당시 자유총연맹 측은 “1000만원의 활동비 지급은 비정상적이다”고 인정하면서 “빠른 시일 내에 합리적인 방안을 찾아 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기사가 나간 후에는 “시사저널 보도로 인해 문제 해결을 더 빨리 할 수 있게 됐다”며 “안전행정부에도 개선 방안을 보고했다”고 전해왔다. 그런 만큼 이 문제로 인해 김 회장이 불신임까지 받게 됐다면 다소 의외로 받아들여진다. 전임 회장 때부터 관행처럼 이뤄졌던 일인 데다 지금은 300만원으로 금액이 조정됐다는 게 김 회장 측 설명이기 때문이다.

복수의 관계자들 말을 종합하면, 김 회장 퇴진 요구의 도화선은 8월8일 열린 부총재단 회의에서 불이 붙었다. 자유총연맹에는 14명의 부총재가 있다. 일종의 명예직이다. 이들 중 10명이 한자리에 모인 가운데 참석자 대부분이 김 회장의 ‘부도덕성’을 규탄하고 나선 것이다. 논란은 정 아무개 부총재가 회의록 일부를 가공해 작성한 문서가 전국의 시·도지부에 전달되면서 더욱 확산됐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해당 문서에는 윤기영 부총재의 ‘공개 폭로’가 담겨 있었다. “김명환 총재는 본인에게 연맹 자회사인 한전산업 대표이사를 내가 시켜줄 테니 현금 1억원을 요구해 본인이 김명환 총재에게 직접 전달한 바 있으나 본인은 대표이사가 못 됐고 그 돈을 달라고 했으나 안 주고 있다. 부도덕한 사람으로 본인이 검찰에 고발하고자 한다.”

문맥이 매끄럽지 않지만 핵심 내용은 김 회장이 한전산업개발 대표를 맡게 해준다며 윤 부총재로부터 1억원을 챙겨갔다는 것이다. 윤 부총재는 지난 3월 한전산업개발 대표가 아닌 감사로 임명됐다. 이 회의록으로 인해 자유총연맹 내부가 발칵 뒤집혔다고 한다. 발언 내용이 사실이라면 김 회장이 일종의 ‘매관매직’을 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윤 부총재는 이후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며 발언 내용을 부인했다. 윤 부총재는 “간사에게 항의까지 했는데 모 부총재가 잘못 알고 그랬다며 미안하다는 사과 문자를 보내왔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김 회장과 윤 부총재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양 측에 해명을 요청해 직접 들어봤다.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다. 지난해 자유총연맹 회장 선거 직후 경쟁 후보로 나섰던 이 아무개 전 서울지부 회장이 김 회장의 직무를 정지해달라는 취지로 법원에 가처분신청을 냈다. 이 재판을 준비하기 위해 자유총연맹 고문변호사를 비롯한 두 명의 변호사가 선임됐는데, 나중에 한 명의 변호사가 더 선임됐다고 한다. 이 변호사에게 들어간 수임료를 윤 부총재가 지불했다는 것이다.

윤기영 한산 감사 “자총 회장 변호사비 대납”

다리를 놓아준 것은 이우현 새누리당 의원의 보좌관이었다고 한다. 이 의원은 현재 국회 해병대전우회 회장을 맡고 있고 해당 보좌관도 해병대 출신으로 알려졌다. 김 회장은 해병대 사령관 출신으로 해병대전우회 총재를 지낸 바 있다. 윤 부총재는 이 의원의 지역구인 경기도 용인에서 건설업체를 운영한 게 인연이 돼 현재 이 의원의 후원회 회장을 맡고 있다고 밝혔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양 측의 주장이 엇갈린다. 김 회장 측은 처음에 거절했는데 한 명이라도 변호사를 더 쓰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해서 선임계에 사인만 해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수임료를 얼마 준다는 얘기는 없었다고 한다. 반면 윤 부총재는 김 회장과 가까운 인사가 변호사를 더 썼으면 좋겠다고 해서 친분이 있는 변호사를 선임해준 것이라고 밝혔다. 착수금 2000만원에 중도금 3000만원을 지불했다고 한다.

김 회장에 대한 가처분신청은 증거 자료 부족으로 기각됐다. 윤 부총재는 이때도 성공 사례비를 변호사에게 지불했다고 밝혔다. 1억원이라는 금액은 여기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김 회장 측은 “변호사비로 1억원을 썼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법조계에서 가처분 소송 1심에 1억원을 줬다고 하면 다들 웃는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 측은 한 달 전쯤 자유총연맹에 접수된 윤 부총재에 대한 비리 의혹 제보 때문에 이런 사태가 벌어진 것 아니냐고 의심하는 분위기다.

시사저널도 관련 제보를 입수했다. 한때 윤 부총재의 사업을 도왔다는 한 아무개씨 주장에 따르면, 윤 부총재는 사기 등으로 여러 차례 실형을 산 전과자이며 학력과 경력을 위조했는가 하면 병역을 기피한 군 면제자이기도 하다. 한씨는 그 근거로 ‘범죄 경력 자료 조회’와 ‘병적 증명서’ 등 관련 문서를 제시했다. 그는 “사기 전과자가 어떻게 상장사의 감사를 맡을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한전산업개발은 1990년 한국전력공사가 100% 출자한 공기업이었다. 하지만 2003년 자유총연맹이 지분 51%를 인수하면서 민영화가 이뤄졌다. 현재 자유총연맹이 지분 31%를 보유한 최대주주이며, 그 다음으로 한국전력이 29%의 지분을 갖고 있다. 주요 사업은 공기업일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전력의 자회사인 발전회사의 설비 운영 및 유지와 검침 용역 등 국가기간산업과 관련한 업무를 주로 맡고 있다. 대표와 감사 등 주요 경영진으로 낙하산 인사가 내려오는 것도 공기업과 별반 다르지 않다.

서울 서소문동 소재 한전산업개발(주) 본사 건물 ⓒ 시사저널 박은숙
“누가 뒤 봐줬나” 감사 임명 후 뒷말 무성

윤 부총재의 감사 임명을 두고도 뒷말이 나돌았다. 한전산업개발 고위 인사는 “감사로 오기 전부터 워낙 말이 많았다. 연세도 있고 해서 다들 의아해하는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1935년생으로 올해 79세인 윤 부총재의 이력은 화려하다. 한씨가 제시한 그의 이력서와 자기소개서에 따르면 현재 새누리당 중앙위원회와 대한민국특수임무유공자회에서 상임고문을 맡고 있고, 새누리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와 광복회의 자문위원으로 있다. 또 박근혜 대통령의 팬클럽으로 보이는 근사모(박근혜 사랑 모임)에서도 상임고문을 맡고 있으며, 지난 대선 때는 박근혜 후보 캠프에서 자문위원과 보훈특보를 지냈다.

윤 부총재의 배경으로 친박계 좌장인 서청원 새누리당 최고위원의 이름이 거론되기도 했다. 윤 부총재가 지난해 10월 치러진 경기도 화성 갑 재선거 때 서청원 후보 선거대책본부에서 자문위원을 맡았고, 올해 7월 새누리당 전당대회 때도 서청원 캠프에서 활동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윤 부총재는 “커피 한 잔 함께 해본 적도 없다. 악수 두어 번 한 게 전부다”며 관련 사실을 부인했다. 일각에서는 “윤 부총재가 후원회장을 맡고 있는 이우현 의원이 서 최고위원과 가깝기 때문에 나온 말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윤 부총재는 자신을 낙하산으로 보는 시각에 대해서도 불만을 표시했다. 10년 동안 검침 사업을 했던 전문 경영인이라는 것이다. 자신에게 제기된 의혹에 대해서도 “전부 헛소리”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범죄 경력 조회 회보서’와 ‘범죄 경력·수사 경력 조회 회보서’ 등 관련 문서를 근거로 제시했다. 그는 “소송으로 악연이 있는 한씨가 여기저기에 투서를 냈는데 이미 다 해명이 된 사안”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자유총연맹 핵심 인사의 설명은 달랐다. 윤 부총재가 제출한 자료는 5년 전부터 현재까지 범죄 사실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지만 그 이전에 대해서는 형의 실효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확인이 안 된다는 것이다. 한씨가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윤 부총재의 범죄 대부분이 1970~80년대 일어난 일이었다. 이와 관련해 윤 부총재는 “전혀 문제 될 게 없다. 설령 무슨 일이 있었다 하더라도 형 실효법에 의해 다 끝난 것”이라고 밝혔다.

윤 부총재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자유총연맹은 그에게 사퇴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회장 측은 “용퇴해달라는 의사를 전달한 이후 윤 부총재가 김 회장을 걸고 넘어졌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 측은 회의록 논란이 일자 윤 부총재에게 전화를 걸어 사실 확인을 했다고 한다.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는 답변을 듣고는 확인서를 써달라고 요청했다. 김 회장 측은 “윤 부총재가 확인서를 써주는 대신 한전산업개발 대표를 시켜달라고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윤 부총재는 “현금 1억원을 준 사실이 없다는 내용만 들어가 있고 변호사비를 대납했다는 내용은 빠져 있어서 안 써준 것”이라고 반박했다. 윤 부총재는 김 회장을 상대로 변호사비 반환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고 밝혔다.

자유총연맹은 회장 불신임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아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김 회장 측은 “연맹 이름으로 추진하던 사업을 중단시킨 데 대해 불만을 갖고 있던 세력이 윤 부총재의 폭로를 빌미로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회의록 내용 가공을 주도한 정 아무개 부총재에 대해서는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김 회장의 사퇴는 사실상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총회가 열리면 불신임안이 통과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폭로와 소송이 난무하는 진흙탕 싸움이 펼쳐질 수도 있다. 한때 보수의 본산임을 자부하던 자유총연맹이 끝 모를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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