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총수가 한남동·성북동에 많이 사는 까닭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4.09.02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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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계에서 눈독 들이는 명당자리는 어디일까

풍수(風水)란 문자 그대로 바람(風)과 물(水)이다. 흐르는 물과 바람으로 인해 변하는 땅과 그 위에서 사는 사람들을 이야기하는 것이 풍수다. 동양학자인 조용헌 전 원광대 교수에 따르면 서울은 천혜의 도시다. 일본 도쿄에는 강은 있지만 산이 없고, 중국 베이징은 물이 없어 건조한 도시다. 하지만 서울은 물인 강과 불인 산이 조화롭다. 그렇다면 서울 최고의 명당은 어디일까. 풍수 전문가들은 경복궁 일대를 지목한다. 뒤편에 북악산, 왼편(좌청룡)에 낙산, 오른편(우백호)에 인왕산이 있다. 그 앞에 드넓게 펼쳐진 공간이 명당인데, 광화문 일대가 그곳이다. 그 앞을 흐르는 개천을 명당수라고 부르는데 청계천을 의미한다. 명당 밖으로 흐르는 한강은 객수(客水)라고 한다. 무학대사가 이런 요소가 조화롭게 어울린 곳을 궁궐터로 잡은 것이다.

그 뒤편에 있는 청와대는 어떤 자리일까. 대다수 전문가는 그 터를 명당으로 본다. 그러나 건물을 지어서는 안 되는 자리라고도 한다. 청와대 터는 과거 일제가 조선의 왕기를 꺾기 위해 지은 총독부 관저가 있던 곳이다. 주역가이자 <사는 곳이 운명이다>의 저자인 김승호 작가는 “북한산·북악산·인왕산의 기운이 경복궁으로 향하는 길목인 청와대 터는 명당”이라면서도 “건물을 지어서는 안 되는 자리에 청와대를 지은 것은 그 기운을 막은 형국이라서 국운에 좋지 않다”고 주장했다.

일부 풍수 전문가들은 북악산의 기운을 받는 경복궁 일대를 서울 최고의 명당으로 꼽지만 청와대 터는 건물을 지어서는 안 되는 자리라고 주장한다. ⓒ 시사저널 임준선
도로·건물 등으로 변하는 현대의 명당

산이 감싼 공간을 보국이라고 하는데, 보국이 서울 사대문 안처럼 도읍지가 된다. 대개 부자 동네는 보국 안에 위치한다. 재벌이 많이 사는 한남동이나 성북동도 예외는 아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등 쟁쟁한 재벌들이 한남동 부근에 산다. 전통적인 부촌인 성북동에는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 등의 자택이 있다. 김승호 작가는 “한남동은 남산과 한강을 두어 배산임수 조건을 갖춘 명당이고, 성북동도 북악산과 청계천이 배산임수를 만족하는 자리”라고 설명했다.

풍수적으로 산이 권력을 의미한다면 물은 재물을 상징한다. 물이 있다고 모두 명당은 아니다. 인하대학교 정책대학원에서 풍수지리를 담당하는 정경연 교수는 “압구정은 관악산에서 내려온 산맥의 끝자락이면서 한강 물이 감싸는 곳이고, 맞은편에 있는 금호동과 옥수동은 남산에서 내려온 산맥의 끝자락이지만 한강이 부딪치는 곳이다. 남산 끝자락에 있는 동부이촌동은 한강 물이 감싸고 흐르지만 맞은편에 있는 흑석동은 관악산의 끝자락이기는 하지만 한강과 충돌한다. 도시에서는 도로를 물로 보기 때문에 도로가 감싸주는 안쪽이 그 반대편에 비해 좋다”고 설명했다.

풍수는 세월에 따라 변한다. 요즘은 지리적 조건 외에 빌딩과 도로 등을 따진다. 최원석 경상대 인문학 교수는 “과거에는 지리적 입지를 보고 명당을 찾았다면, 현재는 그 외에 도로·빌딩·교통 등을 복합적으로 평가한다”며 “풍수의 개념을 현대에 맞게 업데이트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지리적으로는 명당이라도 그 앞에 고층 빌딩이 생겨서 햇볕을 가리면 흉당이 될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또 도로가 새로 뚫려서 흉당이 명당으로 거듭날 수도 있다. 김승호 작가는 “강북과 강남의 상업지로는 동대문 일대와 포스코빌딩 일대를 꼽겠다. 과거 남대문 일대는 혼란을 극복한 기운이 좋은 곳이었다. 그러나 도로와 건물로 어지러워지면서 그 기운이 동대문 일대로 이동하는 모습”이라며 “포스코빌딩 일대는 굳은 땅이어서 기의 소통이 좋다. 앞으로도 좋은 기운이 머무를 곳임에 틀림없다”고 설명했다.

현대 풍수에서 빌딩은 산(권력)을, 도로는 물(재물)을 의미한다. 정치인이 특정 건물을 선호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6·4 지방선거 당시 여의도 국회 앞의 대하빌딩은 각 후보가 캠프를 차리고자 선호했던 명당으로 유명하다. 이 빌딩에서 두 명의 대통령(김대중·박근혜)이 배출됐고, 서울시장도 여러 명(조순·고건 등) 나왔다. 7·14 새누리당 전당대회에 나란히 출마한 김무성 의원과 서청원 의원도 그 빌딩에 선거 캠프를 차린 바 있다.

국회 터는 민심 모으기 어려운 흉당

1997년 강남 신사동 작은 사무실에서 시작한 미래에셋은 현재 자산 규모 8조원이 넘는 금융그룹으로 성장했다. 첨단 기법을 동원해 수익을 내는 업종을 경영하는 박현주 회장이 적용한 것은 풍수 경영이다. 발품을 팔아 그가 찜한 명당은 많다. 그 가운데 1999년 여의도에 처음 사옥을 마련한 후 단숨에 재계 서열 34위로 올라섰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의 펀드 열풍, 미래에셋증권 설립, 미래에셋생명 인수, 12개국에 걸친 글로벌 네트워크 구축도 여의도에서 가능했다. 풍수적으로 여의도는 한강 물(돈)이 두 갈래로 흐르는 섬이다.

도시 개발로 명당이 사라지기도 한다. 도로나 빌딩 건설로 땅을 재단하면서 맥이 잘리기 때문이다. 대우빌딩과 CJ 본사 터는 남산의 맥이 지나는 자리에 있어 좋은 터가 아니라고 한다. 1985년 대한생명(현 한화생명)의 모기업인 신동아건설이 건설한 63빌딩은 2002년 한화그룹으로 사업체와 빌딩이 넘어갔다. 이 빌딩을 인수한 한화그룹은 김승연 회장의 구속 수감 등으로 바람 잘 날이 없었다. 박재락 영남대 환경보건대학원 교수는 “63빌딩은 바람을 정면으로 맞는 자리여서 좋지 않다”며 “과거 삼풍백화점과 나산백화점 자리도 용이 지나는 자리(과룡)인 능선에 있어서 명당으로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과거 여의도는 모래땅인 데다 바람이 세서 일반인이 살지 않았다. 천대받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더러 살았다. 지금도 여의도에 사는 정치인이나 기업인은 거의 없다. 박정희 정부 시절 그 땅에 국회가 세워졌다. 그것도 배수의 진이 없는 섬 서쪽 끝에 있다. 풍수가들은 모래와 바람은 흩어지는 기운이 있어서 국회가 민심을 한데 모으기 어렵다고 본다. <부동산 풍수>의 저자 정광영 한국부동산경제연구소 소장은 “서쪽은 정(靜)적이고 동쪽은 동(動)적이다. 국회의 기운을 뺏기 위해 정적인 서쪽 끝에 국회를 지었다. 그래서 민의가 활발하게 전달되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한마디로 국회와 여의도는 궁합이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의도에는 산이 없고 물만 있다. 섬 주변을 감싸고 흐르는 한강 즉 물은 재물을 의미한다. 증권사들이 모여들었던 배경이다. 그런데 삼성증권은 종로에 본사를 두고 있다. 바람이 세서 웬만큼 기가 세지 않으면 버티기 힘들기 때문이다. 정 소장은 “여의도 외곽에 있던 고려증권·대한생명 등은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무너졌고 삼보컴퓨터도 법정관리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빌딩 자체가 길흉의 장소 되기도

빌딩 자체가 길흉의 장소가 되기도 한다. 서울 중구에 있는 장교빌딩은 해운회사들이 선호하는 건물이다. 한 해운업체가 1990년 그 빌딩의 작은 사무실을 500만원에 빌려 사업을 시작한 후 현재 자산 2조원대의 중견 그룹으로 성장했다. 이 회사는 아직도 사옥을 짓지 않고 그 빌딩에 세 들어 살고 있다. 이후 그 빌딩이 해운업과 궁합이 맞는다는 소문이 돌면서 해운회사들이 앞 다퉈 그 빌딩으로 이전했다.

국제상사(현 LS네트웍스)를 인수한 에너지업체 E1(옛 LG칼텍스가스)은 2006년 인수전에 참여하기 전에 풍수지리를 본 것으로 유명하다. 국제상사를 인수하면 국제센터빌딩(현 LS용산타워)을 보유하게 되는 게 꺼림칙했기 때문이다. 이 빌딩은 지세가 좋지 않아 기업이 망한다는 소문이 난 건물이다. 이 빌딩을 지었던 국제그룹은 해체됐고, 이 빌딩을 인수한 한일그룹은 부도를 맞았다.

좋은 기운을 받기 위해 노력하는 기업도 있다. 서울 종로에 있는 SK 사옥은 거북이가 물(재물)로 들어가는 형상을 하고 있다. 정면에는 거북이의 발을 상징하는 검은 돌을 깔았고, 후문 쪽에는 출입 방향을 표현하는 것처럼 숨겨서 거북이의 꼬리를 만들었다. 거북이의 생명력이 긴 것처럼 그룹이 오랫동안 성장하며 장수하기를 바란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2년 대선에서 패배했다. 1995년 수십 년간 머물렀던 서울 동교동에서 고양시 일산으로 집터를 옮겼고 2년 후 대통령이 됐다. 당시 적수였던 이회창 후보는 고배를 마셨고, 2002년 재도전한 대선에서도 떨어졌다. 정광영 소장은 “김 대통령은 일산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면서 떠오르는 태양의 기운을 받았다. 이 후보는 평창동 집을 떠나지 않았다. 그 집은 청와대 뒤에 숨은 모양새여서 여러 사람이 집터를 옮기길 권유했지만 이 후보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며 “꼭 집터의 기운이 아니더라도 태양이나 청와대를 보면서 야망을 키운 사람의 운명이 희망적임은 분명하다”고 설명했다.

조상 대대로 부자로 살았다면 굳이 집터를 바꾸지 않아도 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이사로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게 풍수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이사는 살던 곳에서 멀리 가야 기운이 새로워진다. 집터로 용꼬리는 좋지 않다. 부자 동네에서 가난하게 살지 말라는 의미다. 좌우 대지가 평평한 곳이 좋으며 같은 평지라도 다른 곳보다 약간 높아서 배수가 원활한 곳이 명당이다. 재벌 총수가 많이 모인 한남동·장충동·성북동 등지는 배수가 잘되는 곳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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