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하산’들 집안싸움에 KB금융 거덜난다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4.09.17 16:3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임영록-이건호 권력 다툼이 화근…리딩뱅크 이미지 큰 손상

“한 편의 막장 드라마를 보는 기분이다.” KB금융 내분 사태를 지켜본 금융권 인사들의 한결같은 반응이다. KB금융지주(KB금융)와 자회사 KB국민은행(국민은행)은 5월부터 전산 시스템 교체 건을 놓고 신경전을 벌였다.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은 IBM에서 유닉스로 주전산기를 교체하는 안을 이사회에서 통과시켰다. 이건호 당시 국민은행장은 이사회 결정이 부당하다며 금융감독원에 주전산기 교체 관련 특별검사를 요청했다.

금감원은 6월9일 임 회장과 이 행장에 대한 중징계 방침을 사전 통보했다. 8월21일 열린 제재심의위원회에서 두 사람에 대한 처분이 경징계로 완화됐다. 임 회장과 이 행장은 갈등을 마무리 짓는 차원에서 1박 2일 일정의 템플스테이를 계획했다. 금융권에서는 이 이벤트를 계기로 양측 간 갈등이 봉합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밥상이나 침상 자리를 놓고도 신경전을 벌였다. 결국 이 행장이 밤늦게 행사 장소인 백련사를 떠났고 이틀째 일정은 이 행장 없이 어정쩡하게 진행됐다.

한 집안에서 권력 다툼을 벌인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과 이건호 전 KB국민은행장(왼쪽부터). ⓒ 시사저널 이종현·연합뉴스
이후 ‘한 지붕 두 가족’의 갈등이 수면 위로 부상했다. 이 행장은 주전산기 교체 과정에서 왜곡된 보고서를 작성한 혐의(업무방해)로 김재열 KB금융지주 전무(CIO)와 문윤호 KB금융지주 IT기획부장, 조근철 국민은행 상무(IT본부장) 등을 검찰에 고발했다. 최수현 금감원장은 9월4일 임 회장과 이 행장에 대해 중징계 결정을 내렸다. 이 행장은 곧바로 은행장 직을 사임했다.

양측의 관계는 이후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것이 KB금융 내부의 시각이다. KB금융의 한 관계자는 “이 행장의 측근들도 검찰 고발은 만류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내부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을 검찰까지 끌고 간 것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일부 인사들은 내부 분위기를 묻는 기자에게 “왜 그랬대요?” “우리도 이유가 궁금하다”고 되묻기도 했다.

최수현 금감원장의 ‘갈팡질팡’

실제로 임 회장은 9월5일과 10일 잇따라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이전까지 내분으로 비칠까 봐 대응을 자제했던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임 회장은 제재심의위원회의 결정을 뒤집으면서 중징계 처분을 내린 금융 당국의 처사를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주전산기 전환 논의는 시작 단계에서 중단됐다”며 “검토만 이뤄진 사안을 가지고 감독 업무 태만 등으로 지주 회장에게 책임을 지라는 처분은 납득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임 회장은 IT본부장에 대한 인사 개입 의혹에 대해서도 강하게 반발했다. 그는 “은행 IT본부장에 대한 인사 개입 의혹은 사실무근”이라며 “은행장이 공문으로 협의를 해온 것을 동의한 것이 전부”라고 해명했다. 필요할 경우 관련 공문을 공개할 의사도 있다고 밝혔다.

이건호 행장이 곧바로 반박에 나섰다. 이 행장은 다음 날인 9월11일 노컷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임 회장의 기자회견 내용은 모두 거짓말”이라며 “유닉스가 대세라 하더라도 리호스팅 방식에 수반되는 리스크 얘기는 전혀 없다. 진실을 가리기 위한 처사”라고 비난했다. 그는 이어 “(임 회장이)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전산 프로젝트에 대해 금감원이 중징계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언급했다”며 “내가 금감원에 문제제기를 해서 스톱된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금융위원회는 9월12일 전체회의를 열고 임 회장에 대해 직무정지 3개월의 중징계를 확정했다. 명예회복을 노리며 금융 당국을 향해 강도 높은 발언을 이어오던 임 회장이 궁지에 몰렸다. 임 회장은 그동안 조직 안정과 경영 정상화를 이유로 사퇴를 거부해왔다. KB금융그룹 계열사 대표이사단은 9월12일 ‘KB금융그룹 정상화를 위한 계열사 사장단 호소문’을 통해 임 회장을 중심으로 경영 안정화와 조직 정상화를 이루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금융위가 최종적으로 최수현 금감원장의 손을 들어주면서 임 회장의 입지는 더욱 좁아지게 됐다. 여론도 임 회장에게 호의적이지 않다. 금융노조는 물론이고 정치권이나 시민단체까지 임 회장의 사퇴를 압박하고 있다. 경제개혁연대는 논평을 통해 “국내 최대 금융회사(그룹)에 대한 시장의 신뢰를 바닥으로 추락시켰다”며 “CEO로서 정당성을 잃은 임 회장이 즉각 사임하는 것이 회사와 주주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라고 주장했다. 금융권에서는 임 회장이 끝까지 버티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한다. KB금융 출신의 한 금융권 원로는 “문책성 경고를 받는다고 해서 바로 물러나는 것은 아니지만 실제로는 현직에서 물러나라는 통보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며 “임 회장이 법적 대응 의사를 밝혔지만 계속 회장 직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사퇴는 없다”…임영록 회장 행보 주목

KB 내분 사태가 막장으로 치달으면서 KB금융은 말 그대로 만신창이가 됐다. 임 회장의 계속되는 해명에도 불구하고 국민은행 주가는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9월11일 종가 기준으로 국민은행 주가는 지난 7거래일간 2.97%나 하락했다. 우리금융·신한금융·하나금융 등 4대 금융지주사 중에서 유일하게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주전산기 교체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도 본격화됐다. 서울중앙지검은 최근 주전산기 교체와 관련된 사건을 조사부에 배당했다. 앞서 국민은행 노동조합은 3월과 6월 두 차례에 걸쳐 임 회장과 이 행장을 비롯한 전·현직 경영진을 업무상 배임과 업무방해 혐의로 고발했다. 국민은행이 LIG손해보험 인수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임원들이 2000억원 이상 비싼 가격으로 입찰에 참여해 은행에 손해를 입혔다는 내용이다. 검찰은 금감원의 특별검사가 마무리됨에 따라 관련 자료를 넘겨받아 본격 수사에 나설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임 회장은 국민카드 분사와 관련해서도 금감원의 제재를 받을 가능성이 있다. 금융 당국의 한 관계자는 “당국의 승인 없이 국민은행 고객 정보를 국민카드에 이관했다. 국민카드 분사 시 제출했던 사업계획서 미이행 건만으로 징계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KB 사태가 점점 진흙탕으로 빠져드는 형국이다.


“KB 내분 사태는 빙산의 일각이다” 


임영록 회장과 이건호 행장은 정통 ‘KB맨’이 아니다. 이 전 행장은 2011년 국민은행 부행장으로 영입됐다. 이전까지 ‘연피아’로 불리는 금융연구원 교수와 연구위원장으로 근무했다. 임 회장 역시 ‘모피아’(옛 재무부 관료) 출신이다.

이런 이유로 두 사람은 취임 초기부터 갈등을 빚었다. 백련사에서 진행된 템플스테이에서 충돌한 해프닝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두 사람은 행장의 등기이사 등재를 놓고도 신경전을 벌였다. 이 전 행장은 지난해 7월 취임 후 KB금융지주에 지속적으로 등기이사 자리를 요구했다. 하지만 임 회장이 이 전 행장의 요구를 계속 거절하면서 갈등을 빚었다. 황영기 전 KB금융지주 회장은 9월10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이건호 행장이 취임하면서 은행장이 이사회에서 제외됐다”며 “내부에서도 말이 많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다른 곳에 있다. 금융지주사의 관치나 낙하산의 폐해가 결국 KB 내분 사태를 계기로 수면 위로 부상한 것에 불과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동걸 전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동국대 교수)은 언론 인터뷰에서 “현재의 금융지주 체제는 문제가 있다. 금융지주 회장과 은행장이 낙하산 시비에 휘말리면서 경영보다 정치를 하는 것이 현재 금융지주 체제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금융권에는 현재 임 회장 외에도 적지 않은 모피아가 포진해 있다. 은행연합회·여신금융협회·손해보험협회·저축은행중앙회·생명보험협회 등 금융권 5개 협회장의 경우 기획재정부 출신이 장악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낙하산 시비가 일지 않도록 금융권 경영진의 선임 루트를 투명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한목소리로 지적한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신한금융지주는 2011년 라응찬 전 회장의 후임을 뽑는 과정에서 관료 출신이 회장 후보에 올랐지만 외풍을 잘 막아냈다”며 “이후 신한은 안정적인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는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시사저널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셜위워크 페스티벌 참가]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