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위 있게 나이 들고 싶은데…
  • 주은선│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
  • 승인 2014.09.17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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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 연금 확충해 노후 소득 보장해야…‘활동적 노화’ 위한 복지 서비스 필요

한국 노인복지는 현재 어느 정도 수준에 와 있는가. 향후 지속 가능한 노인복지는 어떤 방향으로 구축해나가야 할까. 이미 한국은 고령사회로 접어들고 있으나, 노인복지는 갈 길이 멀다. 이는 다양한 지표를 통해 확인된다.

한국의 65세 이상 노인의 상대 빈곤율은 48.6%(2011년 기준)다. 전체 노인 가구를 소득 수준별로 나란히 세웠을 때 한가운데에 있는 가구 소득(중위 소득)의 50% 이하 수입만 거두는 가구가 전체의 절반에 가깝다는 뜻이다. 절대적 의미에서의 빈곤율은 공식 발표되지 않았지만, 보건복지부의 기초노령연금 통계 자료에 따르면 26%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노인 빈곤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에서 가장 심각한 수준이라는 점에서도 문제지만, 국민연금제도가 정착되고 기초연금제도가 도입된 2007년 이후에도 계속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역설적이다. 단순히 글로벌 경제 위기 때문이라고만 치부하기도 어렵다. 미국·영국·일본, 심지어 스페인에서도 같은 기간 노인 빈곤율은 하락했다.

9월3일 서울노인복지센터를 찾은 노인들이 무료급식 식사를 하고 있다. ⓒ 시사저널 구윤성
극심한 노인 빈곤은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노인 자살률로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보건복지부의 2011년 노인 실태조사 자료에 따르면, 한국 노인의 약 30%는 매우 심각한 수준의 우울 증상을 겪고 있으며, 건강과 경제적 어려움 등에 따른 자살 시도 비율은 1.3%에 달한다. 노인의 88% 이상은 만성질환에 시달리고 있으며, 일상생활 기능이 저하되는 경우 70% 이상이 가족의 수발을 받고 있다. 즉, 한국의 노인들은 다른 어느 나라의 노인들보다도 더 빈곤하고, 우울하며, 건강하지 못하다.

한국 노인복지 지출 수준의 열악함은 특히 소득 보장 분야에서 가장 심각하다. 건강 보장, 고용의 질, 사회 서비스 등 다양한 분야에 문제점이 산재해 있지만, ‘인구 고령화 대응 지수’를 보면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특히 ‘소득 보장’ 분야에서 최하위를 기록했다. 이는 상당 부분 공적 연금 보장의 부실함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분석된다. 현재 국민연금 가입자의 평균 가입기간은 8.1년에 불과하다. 평균 급여액은 30만원 수준으로 최저생계비에 미치지 못한다. 현재 국민연금 수급자의 약 65%는 한 달에 손에 쥐는 연금이 채 30만원도 되지 못한다. 게다가 시간이 흘러도 국민연금 급여 수준은 크게 올라가지 않는다. 2007년 국민연금 급여를 3분의 1가량 점진적으로 삭감하는 조치를 취한 결과, 2050~60년에 이르러도 국민연금의 실질소득 대체율은 21%대에 불과하다.

사적 연금으론 중위 계층 이하 복지 어려워

그렇다면 한국 노인복지는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인가. 선결 과제는 노후 소득을 보장할 수 있는 수단을 확충하는 것이다. 지금 노인들의 정신적·신체적 건강을 저하시키고 사회적 배제를 초래하는 핵심 문제는 빈곤이기 때문이다. 소득 보장 수단을 실질적인 수준으로 마련하지 않고서는 이 문제를 결코 해결할 수 없다.

최근 정부는 공적 연금이 아닌 사적 연금 강화를 통해 노후 소득 보장을 확충하려는 정책 기조를 내세우고 있다. 지난 8월27일 발표된 ‘사적 연금 활성화 대책’은 퇴직연금 가입률을 끌어올리고, 위험 자산 투자 허용 등 규제 완화를 통해 사적 연금의 수익률을 높이는 것을 골자로 한다. 하지만 퇴직연금 도입률은 아직 사업장 기준으로 16%에 불과하며, 규모가 작은 사업체이거나 비정규직일수록 가입률은 크게 떨어진다. 개인연금은 더욱더 그렇다. 즉 사적 연금은 본질적으로 가입과 보장 면에서 불균형을 내재하고 있다. 소득 재분배 요소가 부족해 중위 계층 이하의 노후생활을 충분히 보장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현재 공적 연금제도가 지닌 취약성을 사적 연금을 통해 보완하겠다는 정책적 발상은 노후 보장에 더욱 큰 불균형과 불평등을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정책 방향은 불안정한 노동 시장에서 제대로 노후 준비를 할 수 없는 사람들, 그리고 이미 빈곤 상태에 있는 노인들에게 적절한 대책이 될 수 없다. 모든 노인에게 최저생계비 이상의 고른 혜택을 줄 수 있는 안정적인 공적 노후 소득 보장제도가 필요하다. 현재 복지 재원 확충에 대한 사회적 우려가 높은 것이 사실이나, 이미 오랜 기간 상당한 수준의 연금을 제공하면서 성장과 복지를 동시에 일궈온 여러 선진국 사례들을 볼 때 이는 결코 지속 불가능한 대안이 아니다.

또한 최근 ‘활동적인 노화(active ageing)’를 강조하는 상황에서, 한국 노인복지에서 유일하게 국제적으로 좋게 평가되는 지표는 비교적 높은 고령자들의 경제 활동 참여율이다. 정부는 다양한 일자리 사업을 노인복지의 돌파구로 제시한 지 오래다. 그러나 일자리의 양이 전부가 될 순 없다. 중요한 것은 일자리의 질이다. 일자리의 질과 고용의 지속성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이 역시 면피성 대책에 불과하다. 이는 그렇게 높은 경제 활동 참가율과 노인 일자리 사업 확대에도 불구하고 노인 빈곤율은 낮아지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중년 세대부터 ‘일자리 질’ 끌어올려야

중요한 것은 개인이 경력을 쌓아온 일자리에서 지속적으로, 그리고 안정적으로 일하는 것이다. 현재 평균 퇴직 연령이 53세라고 한다. 이 시기 이후 소득의 급격한 하락을 겪게 되며, 이에 따라 65세 이상 노인이 되어 받을 수 있는 연금 수익도 불안정해지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노동 시간 단축 및 일자리 배분 정책을 효과적으로 시행해 중년 이후 일자리의 질을 끌어올리는 방향으로 반드시 나아가야 한다. 이러한 정책적 기반 위에서 주거복지, 만성질환자들을 위한 건강 관리, 평생에 걸친 교육 기회 확대가 우리나라 노인복지의 주요한 내용으로 재정립될 필요가 있다. 특히 교육 기회 확대는 근로 시기부터 노년기까지 장기간에 걸친 프로그램을 알차게 구성하고, 이를 다양한 계층에게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첫째 노인복지, 특히 노후 소득 보장에 대한 정부의 공적 책임 강화, 둘째 활동적 노화를 추구하기 위한 노동 시장 및 교육 시스템 정비, 셋째 주거, 의료 서비스, 장기 요양과 다양한 사회 서비스를 포괄하는 돌봄 체계 구축이 필요하다. 이는 우리 사회에서 노인이 활동적이며 품위 있게 나이 들 수 있게 하는 기본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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