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지중해 ‘난민 전쟁터’ 되다
  • 강성운│독일 통신원 ()
  • 승인 2014.09.18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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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로부터 난민 구조 책임 인계받은 EU 골머리

2013년 10월3일 지중해의 이탈리아령 람페두사 섬 인근 바다에서 배가 침몰했다. 난민을 가득 태운 배였다. 밀입국을 위해 리비아를 출발한 작은 배는 목적지인 해안을 불과 몇 백 m 앞에 두고 가라앉았고, 배에 타고 있던 승객 36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 비참한 사고 이후 유럽연합(EU)의 난민정책은 안팎으로 거센 비난에 직면했다. 그동안 EU는 난민들이 스스로 EU 영토를 밟기 전에 이들을 구조하는 것을 법으로 금지해왔다. 이 때문에 EU 외곽 국경에서는 난민선을 출발지로 돌려보내는 이른바 ‘밀어내기’가 공공연히 행해지고 있었다. 그러나 람페두사 참사 후 EU는 ‘밀어내기’에서 ‘건져 올리기’로 국경 수비 정책을 수정해야 했다. 지난 4월16일 EU 회원 국가의 국경수비대와 유럽국경감시기구(FRONTEX)들은 난민을 밀어내는 대신 이들을 구조하고 필요 시 의료 서비스와 통역, 법률 상담도 지원해야 한다는 내용의 법안이 유럽의회를 통과한 것이다. 그동안 국경을 정찰하고 난민을 밀어내던 FRONTEX는 이제 매년 구조 활동 내용을 보고해야 한다.

2014년 8월25일 지중해에서 이탈리아 해군에 구조된 아프리카 불법 이민자들. ⓒ AP 연합
이탈리아, 난민 구조에 매일 4억원 써 

이러한 변화의 선두에 선 국가는 참사가 벌어진 이탈리아였다. 이탈리아 정부는 사고 직후인 지난해 10월 중순, 사고 해역의 군함을 구조선으로 활용하는 ‘마레 노스트룸’ 작전을 가동했다. 이탈리아어로 ‘우리의 바다’라는 뜻을 가진 마레 노스트룸은 로마인들이 지중해를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잇단 참사로 붙은 ‘난민들의 공동묘지’라는 오명을 씻어내려는 각오가 느껴지는 작전명이었다.

각오를 증명이라도 하듯 이탈리아 해군은 군함을 동원해 지난 8월 말까지 무려 8만여 명의 아프리카 난민을 지중해에서 구조했다. 리비아 내전이 발생한 2011년 한 해 동안 지중해를 통해 밀입국한 사람 수가 6만4000여 명인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숫자다. 특히 5월31일에는 단 하루 동안 2800여 명의 난민을 구조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는 람페두사 섬 인구인 5500여 명의 절반에 해당하는 수치다.

하지만 이탈리아 해군의 적극적인 난민 구조는 야당의 반대에 부닥쳤다. 특히 보수 정당의 반대가 심했다. 우파 야당인 ‘레가 노르드’는 “마레 노스트룸 작전 때문에 더 많은 아프리카 난민이 이탈리아로 몰려들고 있다”며 작전 폐기를 요구했다. 비용도 문제였다. 군함 5척과 헬리콥터 2대, 선전용 비행기 1대를 매일 작전에 투입하는데, 여기에 드는 비용은 무려 하루 30만 유로(약  4억원)가량이나 된다.

압박이 커지자 안젤로 알파노 이탈리아 내무장관은 지난 6월 남부 항구도시인 포찰로 방문을 마치는 자리에서 “마레 노스트룸을 10월에 종료한다”고 말했다. 알파노는 “계속 이렇게 할 수 없다. 유럽은 망명자 문제에 명료한 답을 내놓아야 한다”며 유럽 차원의 해법 마련을 촉구했다. 그는 “우리는 마레 노스트룸을 종료하고, FRONTEX는 이탈리아 군함의 자리를 이어받는 방식으로 유럽이 지중해에서 책임을 넘겨받아야 한다”고 구체적인 방안까지 제시했다.

알파노 장관은 자신의 구상을 실현시키기 위해 다른 EU 회원국들에 연대를 요청했다. 그러나 EU 내륙 국가들은 팔짱을 낀 채 이탈리아가 내민 손을 잡지 않았다. 토마스 드 메이지에르 독일 내무장관은 지난 7월 열린 지중해 태스크포스 회의에서 “FRONTEX가 마레 노스트룸을 이어받는 것은 비현실적”이라고 못 박았다. 드 메이지에르는 한 발짝 더 나아가 “이탈리아에 도착하는 난민들이 정해진 절차를 밟지 않고 북유럽 국가로 오는 것이 참 흥미롭다”며 이탈리아가 더블린 조약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음을 꼬집었다.

더블린 조약은 난민이 처음 발을 디딘 나라에서만 망명을 신청할 수 있고, 난민 관리를 위해 최초로 도착한 나라에서 지문 등 신원 정보를 저장하고 공유하도록 정하고 있다. 스웨덴의 토비아스 빌스트룀 외무장관 역시 이탈리아가 지중해에서 훌륭한 인명 구조 활동을 하고 있지만 이들 난민이 “스웨덴이나 독일로 건너오고 있다”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했다.

이들 국가에도 나름의 이유가 있다. 특히 독일은 올 한 해만 20만명의 망명객을 맞아들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세계 곳곳으로 번지고 있는 정치 불안과 무장 분쟁이다. 리비아뿐 아니라 시리아·이라크 등 중동 지역에서 정치적 망명자가 대거 발생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EU 회원국인 헝가리가 난민을 무조건 감옥에 보내고 있어 독일은 헝가리를 거쳐 독일 땅에 들어온 난민까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게다가 정세가 비교적 안정적인 발칸 국가에서도 일자리를 찾아 독일로 건너오는 불법 이민자들이 늘어나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이 때문에 독일연방의회는 지난 7월 세르비아와 마케도니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를 ‘안전한 국가’로 규정하고 이들 나라에서 건너오는 망명객은 받아들이지 않기로 결정했다.

EU, 떠안은 난민 구조 책임에 울상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는 10월 중으로 구조 작업을 중단하겠다는 강수를 뒀고 결국 성공을 거뒀다. 지중해 태스크포스 회의가 열린 지 한 달 반 만에 독일과 프랑스가 이탈리아의 손을 잡고 ‘FRONTEX 플러스’ 안을 내놓은 것이다. 이 안은 이탈리아가 요구한 대로 유럽국경감시기구가 이탈리아 해군의 마레 노스트룸 작전을 넘겨받을 것, 에리트레아·소말리아 등 난민 발생 국가의 경우 현지 브로커에 더욱 적극적으로 맞서 싸울 것, EU 국가들은 더블린 조약 개정안을 충실히 이행할 것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알파노는 “FRONTEX 플러스는 준비되어 있다. 바로 시동을 걸 수 있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문제는 실행이다. 난민들이 죽음과 사투하며 지중해 바다를 건너오더라도 FRONTEX 플러스를 위한 구체적인 계획과 예산이 아직 없는 상태다. 세실리아 말름스트룀 유럽난민위원은 “FRONTEX 플러스는 규모 면에서 마레 노스트룸의 구조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는 10월8~9일 열리는 EU 내무부장관회의에서 FRONTEX 플러스가 채택되더라도 지금처럼 활발한 구조 활동은 기대할 수 없을 것이라는 뜻이다.

지난 3월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2000년 이후 지금까지 유럽을 향해 지중해를 건너가다 사망하거나 실종된 사람은 2만3000명에 이른다. 이탈리아 해군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올해 지중해 바다 밑에서 주검이 된 북아프리카 난민의 숫자는 2000여 명을 헤아린다. 과연 유럽의 난민정책이 ‘건져 올리기’에서 ‘일으켜 세우기’로 한 발짝 더 나아갈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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