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가 있어도 지금의 야당 못 살린다”
  • 이승욱·엄민우 기자 (gun@sisapress.com)
  • 승인 2014.09.24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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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전문가 7인이 말하는 새정치연합 운명… “헤쳐 모여 식 분당만이 해법” 주장도

“오늘 주제가 ‘수권 정당의 길을 말한다’인데, 아직 수권 정당이 아니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언제 수권 정당이었던 적이 있었나. 제대로 된 정당이 되는 게 먼저다.” 지난 8월20일 새정치연합 을지로위원회가 국회 의원회관에서 연 토론회에 참석한 한 당외 인사의 쓴소리다. 당시 자리에 참석했던 새정치연합 관계자는 “솔직히 귀에 거슬리는 말이지만 그래도 틀린 말도 아니지 않나. 낯이 뜨거울 뿐”이라고 토로했다.

이쯤 되면 ‘멘붕(멘탈 붕괴)’이다. 18대 대선에서 48%의 표를 얻었고, 국회 130석을 가진 거대 정당인 새정치연합의 현주소다. 과연 무엇이 문제일까. 시사저널은 야권 사정에 밝은 국내의 대표적 정치 전문가 7명을 대상으로 ‘새정치연합의 운명’에 대한 주제로 전화 인터뷰를 가졌다. 정당의 존립 기반마저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는 대한민국 제1 야당의 문제점과 대안을 들어봤다. 대다수 정치 전문가는 새정치연합이 처한 위기의 가장 큰 원인으로 강력한 리더십의 부재, 그리고 이를 부추기거나 극복하지 않는 당내 계파 구조와 갈등 문화를 꼽았다. 또 당장은 문희상 비대위원장 체제로 당내 갈등은 봉합되겠지만, 2016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분당 움직임이 현실화될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당이 쪼개져야’ 자중지란에 휩싸인 당이 살아날 것이라는 극단적인 진단도 나왔다.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들이 지난 8월26일 국회 본청 앞에서 세월호 특별법 제정 촉구 대여 투쟁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당 깨고 야권 재편해야” 목소리 많아

박영선 원내대표가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의 비대위원장 영입 시도 파문을 겪으면서 탈당 움직임을 가시화하자 당 안팎에서는 “이럴 바에는 차라리 당을 깨고 야권을 재편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는 현재의 새정치연합을 깨고 각 정파별로 분당을 하는 이른바 ‘빅텐트론’으로 가시화되기도 했다. 결국 당내 조율을 거쳐 문희상 비대위원장 체제로 수습되면서 당장의 분당 가능성은 일단 수그러든 상태다. 하지만 여러 정치 전문가가 새정치연합의 고질적인 내부 분란 사태를 매듭짓기 위해서는 분당만이 해법이라는 주장을 내놓았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은 “(지금이라도) 쪼개질 가능성은 있지만, 그게 현실화하려면 계기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지금 당장은 어려울 것”이라면서도 “당 바깥에서 새로운 세력이 꿈틀대고 구체적 흐름이 형성되면 당 안에 있는 사람들도 움직이기 쉬울 것”이라고 말했다. 오는 2016년 총선 등을 기점으로 장기적으로 분위기만 무르익으면 분당은 언제든 현실화할 수 있는 시한폭탄이라는 지적이다.

굳이 선거 국면이 아니더라도 기존 체제에 대한 적극적인 창조적 파괴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현재 상황이라면) 분당하는 게 오히려 낫다”고 전제하고 “이론적으로 원래 탈당은 (선거를 앞두고) 공천을 못 받는 의원들이 하는 것이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여당이 추진 중인 국회선진화법 개정이 매개체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야당 쪽에서) 의원 40명 정도만 나오면 (제3 정당으로서) 존재감을 알릴 수 있다. 국회선진화법으로 인해 40석이면 90석 정도의 잔류 야당과 맞붙는 게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현재 당이 위기인데도 그에 대한 공감대 형성보다는 계파를 더 염두에 두고 있는 게 문제”라며 “이런 상황에서는 당이 해체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일단 ‘헤쳐 모여’ 하는 것이 동질적 집단끼리 모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지금으로선 이 정도 집단은 하나의 집단이라고 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전체적으로 분당이 해법이라는 의견이 우세했지만, 반면 쪼개지는 것조차 쉽지 않을 거라는 전망도 있었다. 윤희웅 정치컨설팅 ‘민’ 여론분석센터장은 “큰 선거가 있거나 대중적 기반이 있어야 세력화가 가능하고 동력이 생긴다. 여러 계파가 나눠진 상황이라 이런 조건을 충족하지 못해 결국 분화되기는 힘들 것이다. 자기 계파 단독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어 지금도 문제가 있는 것을 알면서도 같이 가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질적인 계파 구조의 문제점은 어김없이 지적됐다. 윤 센터장은 “겉으로 볼 때는 새정치연합 내에서 친노(親盧)가 다수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 또한 절대 세력이라고 할 수 없다”며 “확실한 구심점이 없다 보니 계파 카르텔 체제가 형성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결국 외부의 적 앞에서는 암묵적으로 협력하는 것 같지만 정작 당 내부 결정 과정에서는 계파 카르텔이 작동한다. 비대위가 혁신안을 내놓아도 각 소장 계파들이 목숨 걸고 반대하면 못하는 이유”라고 지적했다.

분열과 갈등 양상에서 이를 조정할 수 있는 강력한 리더십의 부재를 원인으로 꼽는 전문가들도 있었다. 정치평론가 유창선 박사는 “현재 새정치연합 내부는 리더십이 없는 진공 상태”라면서 “이는 당 대표나 위원장만을 두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각 계파를 대변하는 중진 등 비중 있는 리더들이 있기도 한데 제대로 역할을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현우 서강대 교수는 리더의 부재를 지적하면서도 현재 문제가 단순히 리더 한 명이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분석했다. 그는 “과거 DJ(고 김대중 전 대통령)와 같은 확고한 리더가 있을 때는 큰 우산 밑에 묶여 이질성이 봉합됐지만 그런 상황도 아니다. 하지만 어느 한 사람에게만 의존하기보다는 제도나 구조를 손봐야 하는 수준이다. 이미 안철수 경험을 통해 메시아가 있을 수 없음이 확인되지 않았나”라고 반문했다.

“위기 수습보다는 증폭시키는 나쁜 문화”

당의 리더십 부재에 대해서는 갈등을 양산시키는 잘못된 문화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다수를 이뤘다. 유창선 박사는 “지금 새정치연합은 당내 문화에 문제가 있다. 안철수·김한길 공동대표 체제 때도 그랬고, 문제가 발생하면 위기를 수습하려는 정치적인 노력들이 경주돼야 하는 게 정치인데, 새정치연합은 그런 문제가 발생하면 오히려 증폭시켜버린다”고 밝혔다. 이철희 소장은 “당을 대표하는 인물이 권한을 행사하면, (의원들은) 따르는 것도 한 방법이다. 계속 (당 대표가) 하는 일을 비토만 하면 대표가 무슨 권한이 있다고 할 수 있나. 이게 야당이 갖고 있는 문제다. (당 대표에게) 권한도 안 주고 책임만 묻는다”고 비판했다.

윤희웅 센터장은 “지금 새정치연합은 당의 목표함수보다 각 계파의 목표함수가 더 크게 표출되는 구조”라며 “이런 식이라면 DJ가 다시 총재가 돼도 리더십을 발휘하기 힘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현우 교수는 “하나의 집단은 공유하는 생각이 있어야 하는데 새정치연합은 공유할 정체성이 결여돼 있다는 점이 자꾸 이런 사태를 발생시키는 가장 큰 원인이다. 모든 정당에는 다 계파가 있지만 최대공약수라고 할 만한,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데 새정치연합은 보수 정당에 대한 적대심으로만 묶여 있고, 정작 ‘그럼 너희들은 뭐냐’라고 했을 때 정체성이 결여돼 있다. 새정치연합은 대표에게 권한을 맡기지 않는다. 당 전체에 이익이 되는 길도 자기 계파 이익에 불리하면 어깃장을 놓는다. 불만이 있어도 같이 가는 동질성이나 당에 대한 로열티가 없다”고 말했다.

문희상 비대위 체제에도 비관적 전망 

이 밖에도 당 개혁을 위한 야당 의원들의 적극적인 의지 부족을 지적하거나 향후 문희상 비대위 체제에 대해 비관적으로 보는 전망이 제기됐다. 김태일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당을 개혁하려고 해도 국민적 지지를 받는 전폭적인 지도자가 없다. 그런데 정작 지금 아무도 그 역할을 헌신적으로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도 큰 문제점”이라며 “이는 누가 들어가도 지금의 새정치연합을 개혁하기는 힘들다고 생각하는 비관적인 전망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는 문희상 비대위 체제와 관련해 “당내 갈등을 봉합하는 관리형으로 (당 대표를) 세우면 금방 또 어떤 문제에 봉착하고 다시 대표를 갈아버리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며 “결과적으로 부분적인 힘을 가진 계파 수장을 세우는 데 급급하다보니 (당 대표가) 조금만 못하면 다른 계파 수장으로 갈아타는 것이 반복되고 있는 게 벌써 10년째”라고 지적했다. 신율 교수는 “문희상 비대위원장 체제가 꾸려진다 해도 그 역시 관리형 인물이지 구체적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지금으로선 분당 말고는 마땅한 해결 방법이 보이지 않는 상태”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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