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배신하는 자살 폭탄 테러범들
  • 강성운│독일 통신원 ()
  • 승인 2014.09.24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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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영국 등 자국 출신 지하디스트 증가에 불안감 고조

 9월5일 독일 중소 도시인 부퍼탈(Wuppertal) 중심가에서 난데없는 가짜 경찰 소동이 벌어졌다. 원인은 극단 이슬람주의 운동인 살라피(Salafi) 종파의 교인 3명이 입고 나타난 어설픈 유니폼이었다. 이들은 등에 ‘샤리아 경찰’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주황색 안전 조끼를 맞춰 입고 ‘불타는 금요일 밤’을 즐기러 나온 사람들 틈을 순찰하며 ‘샤리아 통제구역’을 선포했다. 샤리아란 이슬람교의 율법을 뜻하는 말이다.

이들 이슬람 풍기 단속단은 진짜 경찰에 의해 제지당했다. 단 3명이 한 중소 도시에서 일으킨 해프닝에 독일 사회는 민감하게 반응했다. 당장 다음 날인 6일 독일 일간지 ‘빌트’는 “누구도 감히 독일 경찰의 훌륭한 이름을 남용해서는 안 된다”는 토마스 드 메지에르 독일 내무장관 인터뷰 기사를 실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역시 사흘 후인 8일, ‘자트 아인스’ 채널에 출연해 “물리력은 국가가 독점하며, 그 외에는 누구도 경찰의 역할에 끼어들 수 없다”고 말했다. 아이만 마츠예크 독일 무슬림중앙회장은 “이들 불량배는 우리를 대변하지 않으며 부퍼탈의 살라피 교인들이 벌인 일은 우리 종교를 오용한 것”이라며 선을 그었다.

이슬람 국가(IS) 세력에 합류했다는 혐의로 프랑크푸르트 법정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 22세의 크레시니크 B.가 변호사와 이야기를 하고 있다. ⓒ EPA 연합
‘샤리아 경찰’ 소동에 독일 사회 발칵

독일 정치권과 무슬림중앙회가 한목소리로 ‘샤리아 경찰’을 공격한 데는 이유가 있다. ‘이슬람 국가(IS)’가 지핀 전화(戰火)가 이라크와 시리아를 벗어나 독일까지 튈까 전전긍긍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리아와 이라크에는 현재 약 400명의 독일인이 IS의 ‘성전(聖戰)’에 참전 중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참전 후 독일로 이미 돌아온 지하디스트는 약 100명 정도로 전해지고 있다.

‘샤리아 경찰’ 소동이 일어난 지 일주일 만인 지난 9월12일, 드 메지에르 장관은 앞으로 독일에서 IS와 관련된 모든 선전 및 지지 활동을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극렬 이슬람주의자들이 독일의 도시에서 지하드를 벌이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단지 부퍼탈에서 일어난 풍기 단속단 사건 때문만은 아니다. 독일에서도 IS를 지지하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모금을 하고 지하드 참전자를 모집하는 등 실질적으로 IS에 도움을 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IS 금지법을 어길 경우엔 최대 징역 1~2년의 처벌을 받는다.

그러나 정확한 실태 파악 없이 나온 IS 금지법이 실제로 효과를 나타낼지 의문시된다. ‘슈피겔 온라인’은 “독일 내에 IS가 어떻게 조직되어 있고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이용한 의사소통을 전부 영구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지 등이 전혀 알려지지 않고 있다”며 “이번 금지법은 단지 상징적인 정치 행위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실었다.

영국 또한 IS의 국내 세력 확산을 막기 위해 고심 중이다. 영국 사회는 지난 두 달간 이슬람 극단주의가 더 이상 중동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충격적인 방식으로 깨달았다. 지금까지 3명의 미국·영국인 인질을 살해한 IS 지하디스트가 존이라는 이름의 영국 국적자라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데이비드 캐머런 정부는 8월25일 영국 국적을 가진 테러 용의자가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귀국하지 못하도록 여권을 압수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그러나 일주일 만인 9월2일 캐머런 영국 총리는 이 방안에 법적 허점이 있음을 인정하고 이 방안을 폐기했다. 경찰에게 여권을 압수할 권한을 주는 것은 결과적으로 국적을 박탈할 권한을 주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독일과 영국은 국내 테러 발생 가능성을 막고 이슬람 근본주의자를 색출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하지만 유럽 출신 자살 폭탄 테러범의 존재가 알려지면서 유럽 국가의 테러 방지 정책의 맹점이 드러났다. 9월16일 독일 일간지 ‘쥐트도이체 차이퉁’은 “지금까지 적어도 5명의 독일인이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IS를 위해 자살 폭탄 테러를 저질렀으며 그 밖에 3~4건의 사건에 대한 조사가 추가로 진행 중”이라고 보도했다.

IS, 유럽 국적자들에게 자살 폭탄 테러 종용

바그다드에서 붙잡힌 한 IS 간부의 증언에 따르면, 지난 7월 54명의 목숨을 앗아간 바그다드 남부의 자살 폭탄 테러를 저지른 범인도 독일인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간부는 체포되기 전 “작전 투입을 기다리는 독일인 3명을 만났다”고 증언했다. 드 메지에르 장관의 표현대로 독일에서 이라크로 테러가 수출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한스-게오르크 마센 독일 헌법보호청장은 “우리는 독일 국내의 안보 상황을 주시하고 있지만 시리아와 이라크에 사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유럽 본토의 바람과 달리 당장 이라크에서 유럽인에 의해 벌어지는 자살 폭탄 테러는 증가 추세다. 유럽인 자살 폭탄 테러범 수는 올해 3월부터 반년 동안 4배가량 증가했다. IS가 유럽 국적을 가진 이들에게 자살 폭탄 테러를 종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은 올해 4월부터 이슬람 극단주의에서 벗어나려는 사람들을 위한 지원 프로그램을 가동 중이다. 근본적인 해결책이자 장기적으로 중요한 방법이다. 그러나 현재 미국과 프랑스를 주축으로 한 국제사회는 좀 더 직접적이고 신속한 대처 방안을 찾는 데 힘을 모으고 있다. 이라크에 대한 군사 지원이다. 미국은 8월8일 이라크 내의 IS 근거지에 대한 공습을 개시했다. 그 후 닷새 만인 8월15일 프랑스도 이라크 내 쿠르드족 반군에게 무기와 구호 물자를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9월15일에는 프랑스 파리에 세계 26개국, 그리고 UN·EU·아랍리그 대표 등 30개국 대표가 모였다. 이라크의 대(對)IS 전쟁 지원을 논의하기 위한 자리였다. 푸아드 마숨 이라크 대통령이 “무엇보다도 공습 지원이 필요하다”고 요청했고,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적절한 군사 원조를 포함해 필요한 모든 수단을 지원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이미 이날 회담이 있기 전 프랑스 공군은 이라크 상공에 정찰기를 파견했다.

그러나 유럽의 맹주 독일은 IS 격퇴를 위한 국제적인 군사 동맹의 취지에는 동의하지만 정치적 해결이 우선이며 참전은 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거듭 확인했다. 영국도 참수 동영상 파문에도 불구하고 일단은 정찰 비행 외에 공습은 하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지금 울타리 안과 밖, 어느 쪽의 불길을 먼저 잡아야 할지 난감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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