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 사라진 거리에 돈 냄새만 진동하다
  • 김회권 기자 (khg@sisapress.com)
  • 승인 2014.10.02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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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임대료와 권리금으로 황폐해지는 서울 문화의 거리

왜 이 길이 이렇게도 난리인지 분석하는 책이 나올 정도였다. 왜 이렇게 떴는지 알아보자는 책이었다. 이 책을 기획한 카피라이터 박웅현씨는 “이 길은 ‘로망’으로 해석할 수 있다. 돈을 벌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온 한국인들이 이제는 자신만의 꿈을 좇아 뒤돌아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책 제목은 이랬다. <가로수길이 뭔데 난리야?>

일간지나 매거진, 방송에서는 이 길을 ‘핫’한 곳으로 다뤘다. 드라마나 예능 장소를 섭외하는 작가들은 길 위의 가게들을 샅샅이 방문했다. “도대체 이 길이 뭔데?”라며 지방에서 올라오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2007년,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의 모습이다.

불과 7년 전 가로수길은 소수문화의 코드가 있는 특별한 공간으로 다뤄졌다. 하지만 7년이 지난 지금은 아니다. 초창기 가로수길을 지켜왔던 아기자기한 가게들 중 지금까지 살아남은 가게는 전무하다시피 하다. 소규모 패션·디자인 매장과 이국적 카페들로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었고 디자이너 쇼룸과 편집숍, 개성 넘치는 보세 가게 등으로 한국의 소호 거리로 불리던 건 과거의 영광이다. 지금 길이가 1km도 안 되는 이 거리를 차지한 것은 대형 의류 매장과 커피전문점이다. 가로수길의 특색을 만든 상점들은 급등하는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고 이곳에서 밀려났다.

ⓒ 일러스트 배중열
건물주의 탐욕이 몰아낸 홍대 문화 상권

가로수길만의 일이 아니다. 서울의 문화 상권을 형성하는 곳에서 매번 되풀이되는 일이다. 홍대 앞을 터전으로 삼는 김남균 그문화 갤러리 대표는 ‘맘 편히 장사하고 싶은 상인들의 모임’이란 단체를 운영한다. 그는 지금의 홍대를 ‘문화 백화 현상’으로 설명한다. 문화 백화 현상이란 지역이나 상권, 혹은 골목에 생성된 문화예술이 소멸되는 것을 말한다. 문화로 만들어진 상권은 결국 문화를 먹고사는데 그 문화가 사라지면서 상권의 몰락을 가져온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1980년대 홍대 앞은 화력발전소가 내뿜는 매연을 맡고 다녀야 할 만큼 낙후된 곳이었다. 그러던 홍대에 미대생 혹은 미대 입시생들을 위한 공간이 만들어지면서 변화가 시작됐다. 화력발전소는 LNG발전소로 바뀌었고 홍대 아래를 관통하던 기찻길 위를 주차장이 덮으면서 본격적으로 탈바꿈했다. 인디밴드들의 공연장이 생겨났고, 거리에서는 버스킹(길거리 노래와 연주)이 이뤄졌다. 아기자기한 의류 가게와 음식점들, 그리고 소규모 갤러리까지. 홍대만의 독특한 문화 생태계가 형성됐다. 이곳의 문화와 공간을 소비하기 위해 몰려드는 사람은 점점 늘어갔다. 그러자 이내 돈이 거리를 잠식하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상업시설이 침투했고 자본의 강한 힘에 이끌려 임대료가 치솟았다. 원래 터를 잡고 이곳의 문화 가치를 올린 사람들은 점점 홍대 옆, 홍대 밖으로 밀려났다.

작은 일본식 선술집을 운영했던 조 아무개씨는 2013년 홍대에서 가게를 접었다. 6년 정도 운영한 10평 남짓의 가게를 위해 내부 인테리어만 8000만원을 들여서 했을 정도로 애착을 가진 장소였다. 어느 정도 입소문이 났고 홍대 앞의 음악가들도 종종 들르는 곳이 되었다. 1년 전 건물주가 바뀌었다. 계약 기간 만료가 다가오자 새 건물주는 원래 내던 월 300만원의 임대료보다 200만원이나 올린 500만원을 요구했다. 월세가 부담스러워 건물주를 설득하려 했지만 만나주지도 않았다. 조씨가 받은 것은 월세를 주지 않는다면 명도소송을 하겠다는 대리인의 전화뿐이었고, 결국 가게를 접어야 했다. 조씨처럼 홍대 거리를 만들었던 사람들의 노력으로 권리금이 늘어나자 그것을 떼어먹기 위한, 건물주들만의 신재테크 방법이었다.

“부동산중개업자가 이전 임차인이 원하는 권리금보다 더 높은 권리금을 새로운 임차인에게 받아내고 그 차액을 본인이 가져가는 사례도 많다”(신승만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조사연구팀장)는 설명처럼 때로는 중개업자도 플레이어로 끼어든다.

지난해 서교동에 있던 한 부동산중개업소가 홍대 인근 상수동으로 옮겨왔다. 상수역을 중심으로 홍대 상권이 확장되자 이사한 이 중개업소는 서교동에서부터 임차 상인들에게 악명이 높았던 곳이다. 이 업소의 행태는 이랬다. 먼저 인근 건물의 등기부등본을 쫙 열람한다. 그리고 건물을 파악한다. 주로 보는 것은 빚을 나타내는 근저당이다. 그렇게 건물의 상태를 들여다본 후에 타깃을 잡는데, 빚이 많은 건물이 1순위다. 우선은 건물의 월세와 권리금 그리고 세입자들의 계약 기간 등을 알아본다. 그 후 건물을 파는 사람, 사는 사람 양쪽 모두에게 대안을 제시한다. 건물주에게는 어떻게 건물을 좋은 가격으로 팔 것인지, 매입자에게는 근저당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를 설명한다.

자본 침투한 서촌, 마을공동체 사업 구상 중

양쪽 모두가 이익이라면 손해는 누가 보게 될까. 세입자다. 세입자에게 계약 만료가 되면 나가라고 한 뒤 나가기 싫다면 훨씬 높은 월세를 내라고 한다. 조씨가 당한 수법이다. 나가지 않는다면 명도소송으로 내보내면 그만이다. 이런 식으로 골목 전체의 월세를 한꺼번에 올리기도 한다. 새로 들어오려는 세입자가 내는 권리금은 전 세입자가 아닌 건물주가 가져간다. 이런 식으로 2년마다 임차인을 내쫓고 받기를 반복하면 권리금으로 빚을 탕감할 수 있다. 이런 방법이 현실에서 효과적인 것으로 검증되자 홍대 문화를 만들어낸 원주민들은 이곳을 떠나가고 홍대 거리 전체가 버티고 내쫓느라 아우성이 됐다.

결국 문화 상권에 사람들의 발길이 끊기는 것은 문화가 소멸돼서가 아니다. 김 대표는 “문화예술가들이 있는 지역은 전 세계에서 거의 비슷하게 뜬다. 재미있으니까. 그런데 그 지역 월세가 많이 올라가면 작업실이나 레이블이나 스튜디오 등이 다 없어지게 된다”고 지적한다.

그가 보는 지금의 홍대는 ‘저소비자층 유입 팽창’ 단계인데 지금처럼 소비자층의 매력이 사라지면 진출했던 대기업들 역시 사라질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북적이던 신촌과 이대, 그리고 압구정 로데오거리는 이런 과정을 거쳤고 지금 그 거리들은 휑해졌다.

가로수길과 홍대가 겪은 일은 이 시간 서울의 또 다른 곳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종로구 일대 한옥마을 서촌에서는 전통의 풍경 뒤에서 치열한 머니게임이 펼쳐지고 있다. 카페와 화장품 가게가 늘어났고 임대료는 한없이 치솟는 중이다. 이미 10평 면적의 매장 임대료가 월 400만원까지 치솟은 이태원, 매장 자리가 나오자마자 바로 팔린다는 인근 경리단길에서도 이국적인 특색을 창조해낸 작은 가게들이 점점 변방으로 쫓겨 나가고 있다. 그래도 그나마 대응하려는 움직임이 있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서울시에서는 서촌을 주민 주도의 마을공동체로 만들기 위해 따로 사업을 계획 중이다. 용산구청은 이태원의 건물주들을 간담회에 초청해 “비싼 임대료 때문에 이국적인 점포가 떠날 수 있으니 제발 막아달라”며 간곡히 부탁했다. 문화는 그대로 둔 채 거리를 발전시키는 법에 대한 고민, 이제 막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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