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 가면 ‘친노’와 헤어질 수밖에 없다”
  • 김현│뉴스1 정치부 기자 ()
  • 승인 2014.10.13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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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내대표 선거 패배한 새정치연합 ‘비노’ 지리멸렬

새정치민주연합 ‘비노(非盧)’ 그룹이 문희상 비대위 체제 출범 이후 ‘친노(親盧)’ 그룹 기세에 눌려 지리멸렬한 모습이다. 비노 그룹은 비대위 구성의 계파 편향성을 문제 삼으며 추가 인선을 요구하고 있지만, 문희상 비대위원장은 ‘원칙’을 내세우며 김한길·안철수 전 공동대표 외엔 대리인의 비대위 합류 불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 때문에  비노 그룹의 목소리는 당 운영에 좀처럼 먹혀들지 않고 있다. 게다가 박영선 전 원내대표의 전격 사퇴로 10월9일 치러진 후임 원내대표 보궐 선거는 비노 진영이 비대위 구성의 균형을 맞출 대안 중 하나로 꼽았지만, 당내 비주류임을 확인하는 초라한 결과만 얻었다. 내년 초에 열릴 예정인 전당대회에서 차기 당권을 두고 친노 그룹과 일전을 겨뤄야 할 비노 그룹의 고민도 깊어질 수밖에 없어 보인다.  

9일 치러진 원내대표 선거는 비노 진영의 실상을 그대로 드러내 보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비노 진영을 대표해 출마한 4선의 이종걸 의원은 1차 투표에서 1위(43표)로 결선에 진출했다. 하지만 3위로 결선 진출에 실패한 이목희 의원의 표(33표)가 2위 우윤근 의원에게 쏠리면서 ‘범친노’로 분류되는 우 의원이 결선투표에서 64표를 얻어 53표에 그친 이 의원을 제치고 원내사령탑에 올랐다. 선거 결과만 놓고 보면, 당내 세력 구도에서 친노 그룹에 비해 열세임이 명확하게 드러났다.

10월9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총회에서 원내대표로 선출된 ‘범친노’ 우윤근(왼쪽에서 두 번째) 의원과 패배한 ‘비노’ 이종걸 의원(오른쪽에서 두 번째)이 인사하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김한길-안철수 간 불협화음 새어나와

일각에선 비노 진영의 대표 주자로 나선 이종걸 의원의 표 확장성에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의원이 당내 의원들에게 세월호 특별법 협상을 안정적으로 이끌 수 있다는 신뢰를 주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이 의원이 약속을 잘 지키지 못한다는 인상을 깊이 남기고 있는 것도 불안 요소로 꼽혔다. 이 의원이 동료 의원들과 해외에 나가기로 한 적이 있었는데, 이 의원이 공항에 나왔을 땐 이미 다른 의원들은 해외에 도착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지각이 잦다는 자신의 이미지를 의식한 듯 이 의원도 정견 발표에서 “‘정각 이종걸’이 되겠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비노 진영에 속하는 한 의원은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이 의원보다는 주승용 의원의 표 확장성이 더 컸다. 하지만 주 의원보다는 이 의원의 출마 의지가 강했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이 의원이 나섰음에도 11표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던 것은 상당히 선전한 결과라는 평가가 나오기도 한다.   

현재 비노 진영은 원내에서 ‘김한길계’와 ‘안철수계’ 그리고 ‘손학규계’ 등으로 크게 구분된다. 이들이 다시 중도 온건 노선을 표방하는 ‘민주당의 집권을 위한 모임’(민집모)과 ‘콩나물 모임’ 등을 통해 교감을 나누고 있다. 또한 정대철 상임고문과 정동영 상임고문 등을 주축으로 한 전·현직 의원 20여 명으로 구성된 ‘구당구국(救黨救國)’ 모임도 비노 진영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문제는 비노 그룹이 조금씩 세 규합을 시도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모래알’같이 흩어져 있다는 점이다. 확실한 구심점 없이 느슨한 연대체를 구성하고 있어 그만큼 결집력이 약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비노 진영이 느슨한 연대체인 데다 뚜렷한 리더십이 존재하지 않다 보니 당내 현안에 대해 의견이 우후죽순 격으로 나오는 경향이 있다. 조경태 의원 등 일부 의원은 너무 성급하게 분당론을 거론하는가 하면, 당초 김한길·안철수 전 공동대표의 비대위 참여에 반대하다 비대위가 범친노 일색으로 구성되자 측근 의원들이 다시 두 사람에게 비대위 참여를 요구하는 등 오락가락하는 모습도 보였다.

사실상 비노 진영을 대표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는 김한길·안철수 전 공동대표 간의 의사소통이 원활치 않다는 얘기도 들린다. 김 전 대표는 주변 의원들의 거듭된 요청에 최근 안 전 대표와 만나 비대위 참여에 대해 논의했지만, 안 전 대표가 거절한 것으로 전해졌다. 구체적인 대화 내용은 확인되고 있지 않지만, 김 전 대표가 안 전 대표의 답변에 불쾌감을 토로했다는 후문이다. 일각에선 그동안 주변 측근들로부터 ‘통합 이후 김 전 대표에게 끌려다녔다’는 지적을 받아온 안 전 대표가 김 전 대표와의 차별화를 꾀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비노 진영에 다선 의원이 많이 포진해 있는 것도 결집력 약화의 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관측이다. 새정치연합의 한 관계자는 “비노 그룹으로 뭉치고 있는 의원들 중에는 이를 기반으로 자신의 정치를 하고자 하는 의원이 상당수”라며 “다들 개별적인 욕심이 자리 잡고 있어 제대로 의견 정리가 이뤄지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동영 상임고문이 최근 손학규 전 상임고문을 찾아가는 등 두드러진 행보를 보이고 있는 것도 ‘존재감 부각’ 차원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번 원내대표 선거를 앞두고 비노 진영에서 제대로 된 교통정리를 하지 못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지적이다. 비노 진영에 속하는 한 3선 의원은 “그것이 우리의 한계”라고 토로했다.

9월15일 ‘비노’가 주축인 새정치민주연합 민집모 의원들이 오찬 모임을 갖고 당의 진로를 논의하고 있다. ⓒ 뉴스1
“전대 룰 둘러싸고 친노와의 싸움 치열할 것”

다만 지금은 느슨한 연대체지만, 차기 지도부를 선출하는 전당대회를 앞두고 세력화를 도모하는 과정에서 비노 그룹의 결속력이 강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비노 진영의 한 핵심 인사는 “지금은 누군가가 나서 비노 그룹 전체를 움직일 리더십을 발휘하긴 힘든 상황이지만, 전대가 다가올수록 출마자들을 중심으로 리더십이 생겨나게 될 것”이라며 “현재의 느슨한 연대체가 조직화되고 리더십을 갖추면, 원내대표 보선에서 얻었던 53표에서 60표 안팎으로 세가 늘어나지 않겠느냐”고 밝혔다.

당 주변에선 비노 그룹이 당장은 전대를 위한 세력화를 꾀하는 한편, 당 밖의 원심력을 키워나가면서 신당 창당론의 불씨를 키워나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수도권의 한 재선 의원은 “이제는 차기 당권과 밀접한 영향이 있는 지역위원장 선정과 조만간 구성될 전당대회준비위원회에서의 전대 룰을 둘러싸고 내부 싸움을 치열하게 전개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호남의 한 3선 의원은 “지금은 비대위에 중도 온건파 인사가 들어가기가 더 힘든 상황이 됐다. 비대위가 일방적으로 구성됐는데 들어간다고 무슨 목소리를 내겠느냐”며 “현재 비대위에 있는 분들 중 당 대표에 출마하려는 사람이 그만두게 되면 그때나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비노 진영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지금 원외에 있는 인사들을 중심으로 분당론 내지 신당 창당론이 적지 않다”며 “지금처럼 친노의 일방 독주 체제로 가게 되면 전대를 앞두고 헤어지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친노 그룹을 압박하고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외부에서 원심력을 키워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친노 본류인 문재인 의원이 결국 당권에 도전할 수밖에 없을 텐데, 이미 싱크탱크를 만들고 전국 조직을 건설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며 “친노에서 주장하는 모바일 투표를 어떤 식으로 변형할지 모르겠지만, 그것이 앞으로 친노와 비노 사이에 가장 큰 쟁점이 될 것이다. 비노는 이에 대한 견제를 어떤 식으로든 강화할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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