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민심 들끓어, 정부 정신 차려야”
  • 대구=감명국 기자 (kham@sisapress.com)
  • 승인 2014.10.30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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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박’ 아성에서 혁신 외치는 ‘비박’ 권영진 대구시장

19대 총선 12개 지역구 새누리당 싹쓸이 당선. 18대 대선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80.1% 득표. 대구 지역의 지난 2012년 총선과 대선 성적표다. 대구는 경북과 더불어 새누리당의 텃밭, ‘친박(親朴)’의 아성이다. 그런 대구에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신호탄은 지난 6월 지방선거에서 올랐다. 대구 지역 친박 핵심 재선·3선 의원들이 새누리당 경선에 나섰지만 다 나가떨어졌다. 대신 서울에서 한 차례 의원을 지낸 ‘비박(非朴)’의 권영진 전 의원이 후보로 선출되는 이변이 연출됐다. 본선도 접전이었다. 새정치민주연합 김부겸 후보가 40.3%의 득표율로 기세를 올리며 여당과 권영진 후보를 위협했다. 한국갤럽이 10월23일 발표한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 조사에서 TK(대구·경북)는 60.0%로 나타났다. 대선 득표율 80%대에 비하면 무려 20%포인트 가까이 떨어진 수치다. 권영진 대구시장은 이를 “변화와 혁신의 갈망으로 들끓는 대구 시민의 분노”로 표현한다. 개헌론을 둘러싸고 박 대통령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간의 갈등이 첨예화되고 있는 10월22일, 대구를 찾아 권영진 시장을 만났다. 그가 전하는 대구 민심은 요동치고 있었다.

 

ⓒ 시사저널 임준선
서울에서 뉴스로만 체크해봐도 시장으로서 하루에 참 많은 일정을 소화하는 듯하다. 요즘 하루 몇 시간이나 자나.

평균 5시간 정도 자는 듯하다. 짧더라도 깊이 잠드는 스타일이어서 부족하다는 생각은 안 든다. 기본적으로 시장은 몸뚱아리 자체가 시민 행복 도구라고 생각하니까, 시민들과 함께하는 공간에서 오히려 에너지가 나온다.

대구 출신이긴 하지만, 서울에서 정무부시장과 국회의원을 지낼 정도로 정치·행정 기반을 서울에서 다져왔다. 대구는 고교 졸업 후 30여 년 만인데 적응에 어려움은 없나.

별로 없다. 대학 졸업 이후 사회생활을 할 때도 자주 대구를 오갔기 때문이다. 다만 그때는 대구의 모습을 피상적으로 봤지만, 시장이 된 지금은 골목골목을 다니며 구체적으로 느끼게 된다. 그동안 대구도 많이 발전했지만, 한편으로는 고교 때 그대로인 곳이 많고 지역적으로도 불균형이 심하다. 그래서 제가 내건 공약 중 하나가 도시계획을 전면 개편하겠다는 것이었다.

좀 지난 일이긴 하지만, 지난 4월 새누리당 대구시장 후보 경선 얘기를 안 할 수 없다. 권 시장의 경선 승리는 큰 이변이었다. 상대 후보들은 모두 대구 지역 현역 ‘친박(親朴)’ 의원들이었다. 반면 권 시장은 ‘친이(親李)’ 또는 ‘비박(非朴)’으로 분류되었고.

중앙정치의 시각으로 볼 때 자꾸 친박·친이를 구분하는데, 사실 대구 시민 속에서는 친박·친이가 없다. 만약 친박과 친이를 기준으로 대구 시민들이 선택했다면, 그래서 제가 친박이 아니라고 생각했다면, 절대 (대구시장 후보가) 될 수 없다. 대구 시민들은 새누리당 경선에서 변화와 혁신을 이끌어나가는 데 누가 더 적합한가를 선택의 기준으로 삼았다고 본다.

대구는 보수적인 성향이 강한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취임 후 100여 일이 지났는데, 제법 어려움을 겪었을 듯하다.

대구가 보수적이라고 흔히 말하지만, 그렇다고 변화를 거부하고 두려워하는 수구적 보수는 아니라고 본다. 다만 그동안 대구가 지방자치 시대에 접어들면서 너무 중앙 의존적인 사고를 강하게 해왔던 측면이 있다. 한편으로는 산업화 시대에서 지식산업화 시대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창의적인 경쟁에 좀 뒤처지기도 했다. 분지적인 특성에 안주한 측면도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대구 시민들은 과거부터 혁신과 창조의 DNA를 갖고 있다. 그게 없이 수구적 보수가 대구의 기본 정신이었다면, 지금의 권영진 시장은 결코 없었을 것이다.

대구 시민은 혁신과 변화를 바라지만 대구의 기득권 세력, 관료사회는 여전히 보수적인 성향이 강하지 않나. 취임 후 단행한 인사에서도 일부 잡음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

잡음은 없었다. 역대 어느 인사보다 언론에서의 평가나 내부적인 여론으로도 문제가 없는 인사라는 평가를 받았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다. 이는 다양성의 측면에서 좋은 것이다. 이게 차별로 가기 때문에 갈등이 생기는 것이다. 도시와 비도시의 차별, 행정직과 기술직의 차별, 학연과 지연의 차별 등이다. 공직사회의 인사문화 속에 내려오는 고질병은 연공서열 중심이다. 이는 타파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은 첫 인사였던 탓에 기존 관행을 100% 극복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극복하려 애썼다. 그런데 아직도 이런 관행에 젖어 있는 문화가 남아 있기 때문에 불만은 좀 있었다. 그러나 그게 정당하다고 보지 않는다. 앞으로도 계속 발탁 인사를 통해 열심히 하는 사람이 우대받을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정착시켜나갈 계획이다.

시청으로 오다 보니 ‘남부권 신공항’ 유치와 관련한 현수막이 눈에 많이 띄었다. 지역의 첨예한 관심사인 듯하고, 권 시장 역시 여기에 역점을 두고 있는 것으로 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국가 경제는 뒷전이고, 지역 이기주의로 흐르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저는 대한민국이 향후 두 길로 나가지 않으면 희망이 없다고 본다. 하나는 통일의 길이고, 또 하나는 지방 분권의 길이다. 지금 우리는 분단 조국을 안고 중앙집권적인 발전 전략을 통해 선진국 문턱까지 올라왔지만, 이 문턱을 넘어서려면 밖으로는 통일 한국을 만들어야 하고, 안으로는 지방 분권을 통한 균형 발전을 이뤄야 한다. 지역 균형 발전을 이루지 않고서는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갈 수 없다. 제가 서울 정무부시장을 해봐서 잘 안다. 엄밀히 말해 지금 우리는 수도권 단일 경제공동체다. 이것으로는 세계와 경쟁할 수 없다. 밖의 것이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안의 것만 계속 수도권으로 빨려들어가는 꼴이다. 그러다 보니 수도권은 너무 차서 문제고, 지방은 비어서 문제인 것이다. 수도권과 상생할 수 있는 지역 경제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 이게 바로 남부권 경제공동체다. 그러려면 신공항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동안 지방 공항을 건설했다가 혈세만 낭비하고 실패한 사례가 너무 많았기 때문에 국민이 우려하는 것이다.

지방 공항이 경제공동체의 중추 공항이란 전략 없이 그냥 지방의 소규모 공항을 난립시켜놓았기 때문에 발생한 실패다. 남부권 신공항은 그와는 다르게 분명한 개념을 잡아야 한다. 인천공항과  경쟁하는 그런 기능으로 건설해야 한다. 항공 물류가 가능한 그런 규모가 되어야 하고, 입지 조건도 8개 광역단체에서 골고루 접근이 가능하고 용이한 지역이어야 한다. 

지방 행정 수장들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이 예산 확보다. 중앙정부와의 대화 통로가 시·도지사의 능력을 좌우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지방 분권의 상징이 바로 예산과 인사 문제다. 하지만 아직은 대부분의 예산과 인사권이 중앙에 있다. 이를 명확하게 지방으로 분산시켜줘야 진정한 지방 분권 시대가 열린다. 선진국치고 이렇게 중앙집권적인 국가가 있나? 없다. 지방 분권을 통한 지역 발전이 나라 전체의 발전으로 이어지는 게 선진국 모델이다. 우리나라처럼 중앙에서 모든 걸 다 틀어쥐고 선진국으로 가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예산은 현재의 8 대 2 비율에서 최소한 6 대 4까지는 가줘야 한다.

TK 지역은 새누리당의 아성인데 최근 대구 지역 민심에서 변화가 느껴진다. 직접 시민들과 부딪치면서 그런 느낌을 받나.

그렇다. 지금 대구 민심은 한마디로 변화와 혁신의 갈망으로 들끓고 있다고 봐야 한다. 저도 정치 입문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당적을 바꾸지 않고 줄곧 새누리당에 몸담고 있지만, 우리 당이 대구 민심을 잘 읽어야 한다. 지금까지는 그냥 새누리당 후보가 나오면 다 뽑아줬다. 이제는 다르다. 대구 시민은 되묻는다. ‘그렇게 (새누리당을) 지지해줬는데, 영남 출신 대통령 많이 뽑아줬는데, 그런데 도대체 우리한테 뭘 해줬나’라고. 왜 우리의 삶은 이렇게 점점 어려워져만 가느냐고 이제 따져 묻기 시작했다. 박근혜정부가 응답하지 않으면, 저는 이 부글부글 끓는 변화와 혁신의 갈망이 완전히 새로운 정치 지형을 만들 수도 있다고 본다. 정부·여당이 정신 차려야 한다.

지난 6·4 지방선거를 통해 40~50대 젊은 시·도지사가 대거 배출됐고, 그들은 여야의 잠재적인 대권 주자로 부상하고 있다. 지방 행정 수장의 경험이 대권 도전에 도움이 될 것이란 주장도 있고, 반면 대권 가도에 지방선거를 이용한다는 비판도 있다.

‘로컬(지방) 리더’가 ‘내셔널(국가) 리더’를 향해 가는 것은  정치 선진 문화에서 보면 당연한 것이다. 광역단체의 행정 경험은 그 어떤 경험보다 중요하다. 현재 광역단체장을 맡고 계신 분들이 향후 국가 지도자를 꿈꾸는 건 당연하고 바람직한 일이라고 본다. 다만 저는 개인적으로 대구 혁신에 목숨을 걸겠다고 시민들에게 약속한 만큼, 대구의 변화에 좀 더 충실하고자 한다.

대구가 전국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비해 역대 대구시장들은 ‘큰 인물’로 성장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 그게 시민들에게는 불만일 수도 있다. 권 시장의 생각은 어떤가.

그런 지적에 공감한다. 그런 면에서 저는 앞으로 목소리를 분명히 낼 생각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우리 대구가 그동안 중앙 의존적인 성격이 강했다. 역대 시장님들의 성향도 그랬다. 그냥 중앙정부와 잘 지내고, 그래서 중앙에서 내려준 예산 받아서 살림 잘하는 것, 이것만이 대구를 위한 길이 아니다. 광역단체장이라면 국가 어젠다와 관련된 부분도 시민들의 뜻을 받들어서 분명한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가장 큰 문제는 지역·세대·이념 간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사회 양극화 문제가 그것이다. 대구 지역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는데.

우리가 고도성장을 하면서 분화는 굉장히 발달했는데, 통합의 기류는 그것을 따라가지 못하다 보니 갈등과 분열로 나타나고 있다. 개인 이기주의와 집단 이기주의를 앞세우는 건 다원화된 사회가 소통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본다. 현장에서 느끼는 것은 정말 소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모두가 공동운명체라는 생각을 갖도록 만들려면 협치를 해야 한다. 소통과 협치가 우리 시대의 새로운 정치와 행정의 원리로 자리 잡으면 앞서 언급한 갈등은 상당 부분 해소될 것이다. 대구에도 갈등이 없는 게 아니다. 많다. 그런데 시장이 높은 곳에서 벽 쌓고 내려다보고 있으면 안 된다. 벽을 허물고 시민들 속에 뛰어들어 소통해야 한다. 설령 일부 시민이 비합리적으로 외치는 절규라도 다 들어주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시민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것, 지도자라면 그것은 당연한 의무다. 그래서 ‘시장은 우리 편이다. 시장은 우리와 함께하는 사람이다’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게 중요하다. 시장뿐만 아니라 모든 지도자가 다 마찬가지라고 본다. 지도자 혼자서 다 할 순 없다.

지금 중앙에서는 개헌 문제로 청와대와 여당 간에 시끄럽다. 권 시장은 개인적으로 어떤 입장인가.

개헌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1987년 헌법 체제와 지금은 시대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통일 한국과 지방 분권 시대 정신을 제도적으로 담을 수 있는 개헌은 꼭 필요하다. 이 역시도 소통이 필요하다. 청와대와 여당이 각을 세우고 싸워서 해결할 문제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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