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를 디자인하라] 정부가 묵혀놓은 정보, 기업의 노다지 되다
  • 영국 런던=이규대 기자 (bluesy@sisapress.com)
  • 승인 2014.10.30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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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열린 정부’ 현장 취재…정부-민간 손잡고 ‘혁신’

얼굴에 자신감이 가득했다. 말끔하게 빗어 넘긴 이마 아래, 파란 눈동자가 정치적 야망으로 번뜩였다. 13년 만의 영국 보수당 재집권의 주역. 영국 헌정 사상 최연소(43세) 내각 수반. 스스로 이룩한 성취로부터의 자부심 때문일까. 2010년 5월, 데이비드 캐머런 신임 영국 총리의 목소리에는 힘이 실려 있었다. 그는 취임 일성으로 자못 당찬 포부를 밝혔다. “정부와 공공 서비스를 둘러싸고 있는 ‘비밀의 장막’을 걷어버리고 싶다. 최대한 투명성을 확보하고자 한다.” 취임 직후부터 ‘열린 정부’에 대한 의지를 강력하게 표명하고 나선 것이다.

캐머런 총리의 공언은 공염불에 그치지 않았다. 내각 수립 후 4년여가 흐른 지금, 영국의 열린 정부 정책은 세계적인 모범 사례로 꼽힌다. 각종 국제기구는 영국 열린 정부의 경쟁력이 세계 최상위라는 조사 결과를 잇따라 내놓았다. 전문가들은 “여타 국가보다 영국 정부의 오픈데이터 전략이 눈에 띄는 이유는 공공 데이터를 활용한 실질적인 혁신 창출을 모색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놓는다. 과연 그들이 창출을 모색하는 ‘실질적인 혁신’의 정체는 무엇일까. 이를 가능하게 하는 영국 정부의 오픈데이터 정책은 어떻게 설계돼 있을까. 그 생생한 실체를 들여다보기 위해 직접 영국 열린 정부의 현장을 찾았다.

ⓒ 시사저널 이규대
신흥 IT산업단지에서 ‘혁신’ 적극 지원

영국에 도착한 취재진이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런던 동부의 ‘테크시티(Tech City)’다. 이곳이야말로 오픈데이터를 활용한 ‘혁신’이 잉태되는 현장이기 때문이다. 테크시티는 ‘영국의 실리콘밸리’로 명성이 높은 곳이다. 과거에는 범죄 발생률이 높은 빈민가였으나, 2010년 캐머런 내각 출범 이후 정부 지원을 바탕으로 영국 경제의 신성장 동력을 집중 육성하는 IT벤처 산업단지로 거듭났다. 바로 이곳에 영국의 오픈데이터 기반 혁신을 주도하고 있는 ODI(Open Data Institute·오픈데이터연구소)가 있다.

ODI는 오픈데이터의 사업적 사용 지원 및 활성화를 목적으로 설립된 비영리 기구다. 월드와이드웹(www)을 창시해 인터넷 세상을 열어젖힌 컴퓨터과학자 팀 버너스-리(Tim Berners-Lee), 오픈데이터 분야에 정통한 학계 전문가인 나이젤 새드볼트(Nigel Shadbolt) 영국 사우샘프턴 대학 교수가 영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공동 설립했다. 불과 2년 전인 2012년 11월에 설립됐으나, 당대를 대표하는 석학들이 주축이 된 만큼 세계 최고 권위의 오픈데이터 연구기관으로 급부상할 수 있었다. 취재진이 이곳을 가장 먼저 찾으려 했던 이유가 있다. ODI가 오픈데이터의 경제적·사업적 가치에 특히 중점을 두며 관련 벤처기업의 창업을 적극 지원한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지속 가능한 ‘혁신’을 이루려면 수익 모델을 떼놓고 생각하기 어렵다. 영국 정부가 ODI를 통해 이를 어떻게 현실로 구현하고 있는지, 이로써 ‘혁신’을 어떻게 가시화시키고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10월13일 ODI를 찾은 시사저널 취재진을 국제개발팀장 리즈 캐롤런(Liz Carolan)이 반갑게 맞았다. ODI의 신규 창업 지원 사업에 대해 묻는 기자에게 캐롤런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지난해 10개 벤처기업의 창업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활동에 돌입했다. 사회 각계로부터 유치한 250만 파운드(약 42억원) 규모의 투자가 바탕이 됐다.” 이들 회사는 창업 원년인 지난해 140만 파운드(약 23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2014년 10월 현재까지 ODI의 지원으로 창업한 오픈데이터 활용 벤처기업은 모두 17개다.

ODI는 지원 대상 선정부터 육성까지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췄다. 매년 오픈데이터 활용 경연대회를 열어 여기서 주목할 만한 전망을 보여주는 회사들을 선정한다. 이들 회사를 대상으로 ODI의 핵심 인력으로 구성된 멘토링 팀과 비즈니스 컨설턴트들이 수시로 사업 진행 상황을 점검하고 조언한다. 캐롤런은 “ODI의 최고경영자 개빈 스타크(Gavin Starks)는 이미 여섯 차례나 사업을 성공으로 이끈 수완가다. 기술 디렉터 제니 테니슨(Jenni Tennison)은 획기적인 오픈데이터 활용 기술을 여럿 개발해 영국 여왕 훈장을 받았을 정도다. 이렇게 최고의 능력을 갖춘 전문가들이 신생 회사들을 밀착 육성한다”고 밝혔다. ‘준비된 혁신의 풀(Pool)’이라 불리는, 테크시티 일대의 창의력을 오픈데이터 분야에서 꽃피우도록 하는 인큐베이터 역할을 하는 셈이다.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창업을 준비 중인 대학생을 발굴·지원하는 ‘ODI Jump Start’ 프로그램도 적극 추진 중이다.

“과거 ‘인터넷’과 같은 잠재력 지녀”

오픈데이터가 어떻게 ‘돈’이 될 수 있을까. “현재 등장한 수익 모델은 일반 기업이 그 사업 목적에 맞게 오픈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지식을 팔아 매출을 올리는 것”이라고 캐롤런은 설명했다. 즉 기업 대 기업(B2B) 사업 모델인 셈이다. 한 예로 ‘Transport API’는 런던 교통국, 영국 국영철도 등이 공개하는 교통 공공데이터의 서로 다른 API 형식을 통일해 쉽게 사용할 수 있는 형태로 가공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교통 관련 응용프로그램 개발자들이 이를 제공받는 대가로 일정 금액을 지불하는 식이다. 소비자가 모바일 앱 등을 통해 교통 정보를 편리하게 활용하는 과정에 윤활유 역할을 하는 셈이다.

그렇다면 B2C 모델, 즉 일반 시민들에게 직접 서비스를 판매하는 수익 모델은 없을까. 캐롤런 팀장은 “현재는 B2B 모델에 타깃이 맞춰져 있다. 청각장애인에게 유사시 긴급 서비스업체를 바로 연결해주는 휴대전화 응용 프로그램 정도를 생각해볼 수 있으나, 이 또한 청각장애인보다는 긴급 서비스업체 쪽이 서비스 수요자에 더 가깝다”고 말했다. 아직까지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직접적인 수익을 얻어내는 오픈데이터 수익 모델은 미개척 영역으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ODI는 오픈데이터 활용 시장의 미래를 매우 긍정적으로 본다. 2011년 영국 정부는 자국의 공공 영역 정보가 지닌 경제적 가치를 160억 파운드(약 27조원) 상당으로 추산한 바 있다. 그런데 ODI는 이처럼 구체적인 수치로 경제적 가치를 추산하려 하지 않는다. 현재로서는 섣불리 재단할 수 없을 정도로 오픈데이터의 잠재력이 엄청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 잠재력을 차례로 현실화하는 시발점이 현재 B2B 수익 모델 중심의 벤처기업 육성인 셈이다. 캐롤런은 “과거 팀 버너스-리 교수가 세계 굴지의 기업들에 ‘인터넷의 가능성에 주목하라’고 주문했을 때 진지하게 받아들인 곳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실제로 인터넷은 세상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고 막대한 경제적 가치를 창출했다. 오픈데이터의 미래도 마찬가지로 전개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흔히 ‘혁신’을 이야기할 때 비탈길을 구르는 눈덩이에 비유한다. 잠재돼 드러나지 않았던 가능성들이 작은 계기를 시작으로 결집되기 시작해 결국 커다란 성과로 발전해나간다는 것이다. 지금 ODI가 하는 일은 최초의 눈덩이를 뭉치는 일인 셈이다.

흥미로운 것은 영국 정부와 ODI의 관계다. 영국 정부는 ODI에 각종 정책적·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영국혁신기관(UK Innovation Agency)과 기술전략위원회(Technology Strategy Board)를 통해 5년에 걸쳐 1000만 파운드(약 170억원)를 지원할 정도다. 그럼에도 ODI가 수행하는 사업의 독립성을 철저히 보장한다. “캐머런 총리를 비롯해 영국 내각 관계자들은 공개된 데이터가 국민들의 혜택으로 연결될 수 있으려면 정부로부터 독립된 기관이 있어야 한다는 점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했다.” 정부가 강한 정책 추진력을 갖고 제반 환경을 조성하되, 전문가 집단의 전문성과 민간의 창의력을 제약하는 일을 피하기 위해서다.

‘영국의 실리콘밸리’로 떠오른 테크시티 일대. 오픈데이터 활용 시장이 이곳을 중심으로 태동하고 있다. ⓒ 시사저널 이규대
‘데이터 질’ 제고가 정부 핵심 과제

영국 열린 정부의 심장은 ‘화이트홀’(Whitehall)에 있다. 고풍스러운 양식의 정부 관청이 즐비하게 늘어선 런던 중앙부 소재의 거리다. 정부의 공공데이터 공개 및 투명성 정책을 추진하는 주무 부처 역시 이곳에 자리 잡고 있다. 10월14일, 이곳에서 만난 내각 실무 담당자 올리버 버클리(Oliver Berkeley)는 “오픈데이터 활용을 통한 경제적 혁신은 ODI 지원을 통해 진행하고 있다. 영국 내각에서는 해당 부서에서 사업 목적이 맞을 때 신생 벤처기업에 자금을 지원하는 방식의 지원이 덧붙여지는 정도”라고 밝혔다. 경제적 혁신과 관련해선 ODI에 정책 실행의 중심축을 두고, 영국 정부는 이를 지원 및 보조하는 쪽에 주력한다는 얘기다.

빅데이터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빅토르 마이어 쇤버거는 이렇게 지적한다. “최근 정부가 보유한 데이터에서 가치를 가장 잘 추출하는 방법은 민간 부문과 사회에 일반적 접근권을 허용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퍼지고 있다.” 영국 정부의 정책 추진 방식 역시 이러한 인식을 그대로 담고 있다. 오픈데이터 정책의 모든 분야를 기획하고 관여한다. 하지만 각 분야에서 오픈데이터를 활용해 부가가치를 발생시키는 ‘실행’ 부분을 정부가 모두 수행하지는 않는다. 정부가 해야 할 역할과 민간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서로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각 부처에서 개별적으로 오픈데이터 활용 툴이나 플랫폼을 개발하는 경우도 있으나, 이런 경우 학계와 민간 전문가 집단과 함께 업무를 추진하는 게 대다수다. 중앙 및 지방 정부 공무원 사이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정부 부처 차원에서 개발된 앱 등이 들인 노력이나 예산 지출에 비해 성과가 크게 떨어진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 한국의 실정임을 고려하면 눈여겨볼 대목이다.

올리버는 영국 정부의 실행 목표를 세 가지로 설명했다. “첫째로 시민에게 양질의 데이터를 전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민간 영역에서 활용하기에 적합하도록 데이터의 질을 끌어올리는 것이 정부의 핵심 실행 과제다. 두 번째는 공개된 공공데이터에 활발한 접근이 일어날 수 있도록 시민들에게 잘 알리는 것이다. 오픈데이터의 잠재력·가능성을 시민 모두가 공유하기 위해서다. 세 번째는 G7, OECD 등에서 ‘정부 투명성’ 이슈와 관련해 영국이 오픈데이터 선진국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공공데이터라는 재화의 ‘공급자’로서의 역할을 최우선하는 한편, 자국 열린 정부 정책의 홍보 및 국제 리더십 형성 등에 실행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는 뜻이다.

영국 정부가 ‘혁신’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여러모로 인상적이다. 중·장기적인 비전을 철저히 염두에 두면서도, 단기적 성과를 바탕으로 오픈데이터 활용의 잠재력을 대중들에게 각인시키려 한다. 오픈데이터 활용 정책을 ‘테크시티’를 중심으로 한 IT 육성정책과 결합시킴으로써 정책 간 시너지를 극대화한다. 정부와 시장, 학계와 전문가 집단이 해야 할 역할을 명확히 인식하고 이를 각자에게 효과적으로 배분한다.

‘당신은 홀로 걷지 않는다(You’ll never walk alone).’ 영국의 인기 프로축구 구단인 리버풀 FC의 공식 응원가 제목이다. 영국 정부의 열린 정부 정책에도 이 문장이 고스란히 적용된다. 정부 수반의 카리스마, 혹은 일방적인 의지로써만 정책 추진의 리더십이 발현하지 않는다. 국가 공동체가 지금까지 축적해온 지 적 인프라 전체가 유기적이고 효율적으로 작동하며 정책을 실행해나간다. 각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성을 갖춘 학자와 업계 관계자, 그리고 아직 드러나지 않은 잠재된 가능성들까지 모두 정책의 주역으로 등장한다. 어쩌면 영국 민주주의가 지닌 힘은, 이렇듯 사회 각 부문들의 역량을 모아낼 수 있는 성숙한 정책 마인드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영국은 결코, 홀로 걷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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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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