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에 사원증 걸고 강남대로 활보하고 싶다
  • 하재근│대중문화 평론가 ()
  • 승인 2014.11.05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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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생’ 바라는 미생들이 <미생>에 열광하는 까닭

케이블 채널인 tvN의 드라마 <미생>이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시청률로만 보면 아직 한 자릿수에 불과하지만 화제성 면에서 폭발적이다. 특히 인터넷에선 지상파에서 주중에 방영되는 월화·수목 미니시리즈 총 여섯 편을 다 합친 것보다도 큰 화제를 모은다. 젊은 네티즌들이 뜨거운 공감을 보내고 있다는 뜻이다.

이 작품은 윤태호의 웹툰, 즉 만화를 원작으로 한다. 요즘 지상파에서도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내일도 칸타빌레>가 방영되고 있다. 방영 전 화제성은 <내일도 칸타빌레>가 압도적이어서 캐스팅 단계에서부터 크게 주목받았다. 아이돌 캐스팅이 네티즌의 격렬한 반대로 무산되기도 했다. 반면에 <미생>은 소리 소문 없이 막을 열었지만 막상 방영된 후엔 두 작품의 화제성이 완전히 역전됐다.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서 책으로 출판된 <미생>까지 판매에 호조를 보이고 있다. 방영 후 올 국내 출판계에서 처음으로 100만부를 돌파했다. 무엇이 이처럼 열광적인 반응을 만들어내는 걸까.

ⓒ 누룩미디어 제공, ⓒ CJ E&M 제공
제목 <미생>은 바둑에서 아직 살지 못한 돌을 일컫는 말이다. 그러나 완전히 죽은 사석과는 달리 앞으로 완생이 될 가능성을 품은 존재이기도 하다. 주인공 장그래가 바로 그런 미생이다. 그는 한국기원의 고졸 바둑연구생이었다가 가정형편 때문에 바둑 기사가 되는 것을 포기하고 인맥을 통해 대기업 상사 인턴사원이 된 인물이다. 그는 완생이 되려 한다.

‘88만원 세대’가 현실의 ‘미생’

드라마 초반, 장그래가 꿈꾸는 완생이란 별게 아니다. 그저 사원 명찰을 달고 다니는 사람들 대열에 끼고 싶은 것뿐이다. 아침에 양복 입고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하는 그 수많은 사람들 속에 끼고 싶은 것, 그들이 장그래를 ‘우리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주는 것 정도의 소박한 소망. 하지만 세상은 그만큼의 소망조차 쉽게 들어줄 의사가 없다.

이 작품은 초반에 인턴사원 장그래가 회사에 적응하는 과정, 2년 계약직으로 입사하기 위해 오디션 같은 면접을 치르는 과정을 그렸다. 그것은 전쟁이었다. 바둑에 매진하느라 아무런 스펙을 쌓지 못한 장그래는 회사 적응을 위해 악전고투를 한다. 내세울 것 하나 없는 자신에 대한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 그 속에서 존재 가치를 입증하기 위한 전쟁. ‘나를 좀 받아들여 달라’는 외침. 그러나 아무리 발버둥쳐도 ‘그들’은 장그래를 선뜻 ‘우리’로 받아들여주지 않는다. 명찰을 단 사람들은 수시로 장그래에게 ‘넌 우리가 아니야’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그래서 하루하루가 아득한 전쟁이다.

그런 장그래 같은 사람들, 자기 자신이 미생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방영 초기 이 작품에 열광했다. 완생을 열망하지만 그 언저리에 머물러 있는 불완전한 미생 같은 존재들 말이다. ‘88만원 세대’라고 불리는 젊은이가 바로 현실의 미생이다. <내일도 칸타빌레>의 만화 같은 설정보다는 <미생>의 현실적인 설정이 미생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2000년대 이후 목에 거는 명찰이 완생의 표지가 되면서 이 땅의 수많은 미생들에게 동경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현실 공감 프로그램으로 명성이 높았던 <롤러코스터>에서는 젊은 여성이 가장 행복한 순간으로 ‘명찰을 걸고 테이크아웃 커피 잔을 든 채 강남대로를 활보할 때’를 꼽은 적이 있는데, 명찰이 이 시대 젊은이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보여준 장면이었다.

1980년대 젊은이는 강남대로에 ‘짱돌’을 던지고 싶어 했지만 지금의 젊은이는 명찰을 걸고 그 세계 안으로 들어가려 한다. 극단적인 불안이 빚어낸 현상이다. 불안은 외환위기 이후 한국 사회를 대표하는 정서가 됐다. 빈곤에 대한 불안, 미래에 대한 불안, 한마디로 ‘루저’가 될지 모른다는 불안. 명찰은 그 불안을 면할 수 있다는 표식이고 부적이다.

<미생> 초반은 바로 그런 명찰을 열망하는 시대 정서를 대변했다. 정사원이 되기까지의 고통, 수모를 통해 공감을 주기도 하고 또 한편으론 어떻게 하면 ‘그들’의 세계 안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처세 지침서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미생은 취업 준비생에 그치지 않는다. 극 중에서 과장은 “우린 모두 완생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일 뿐”이라고 말한다. 정규사원이 돼도 대리가 되고 과장이 돼도 결국 모두 다 미생일 뿐이다. 우리 사회의 진정한 ‘갑’ 앞에 모두가 ‘을’이라는 뜻이다. 장그래가 부러워하는 대리·과장도 하루하루 전쟁을 치르며 살아간다. 작품은 그런 현실을 그려내 수많은 직장인들부터 ‘마치 내 이야기를 보는 듯하다’는 찬사를 이끌어냈다.

ⓒ CJ E&M 제공
결국은 모두가 미생인 세상

과거 한국의 직장인 드라마는 이렇게 우울하지 않았다. 물론 서민의 애환을 그리긴 했지만 기본적인 정서는 낙관적이었다. 젊은이를 그린 청춘 드라마는 더욱 밝았다. 그것이 과도하게 현실을 미화하긴 했지만 정말 현실의 정서를 반영한 측면도 있었다. 이러한 낙관성이나 밝음이 외환위기 ‘경제 국치’와 함께 무너져 내렸다. 20대 취업 준비생, 30~40대 직장인 할 것 없이 모두가 생존 전쟁을 치르며 불안에 떨어야 하는 세상. 모두가 미생으로 전락한 시대. 그것이 바로 <미생> 초반에 그려진 풍경이다.

<미생> 초반엔 한국 드라마의 절대 법칙이라고 할 수 있는 러브라인이 등장하지 않는다. 드라마에 으레 나오는 재벌 왕자님과 신데렐라도 없다. 지상파 방송사였다면 이런 설정이 가능했을까. 요즘 지상파 방송사의 수목 미니시리즈를 보면 <아이언맨>에선 여러 명의 하인(!)을 거느리고 살며 초능력까지 가진 청년 기업가와의 로맨스가, <내 생애 봄날>에선 국내 최대 한우 유통업체 사장과의 로맨스가,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에선 대형 기획사 사장이자 천재 작곡가와의 로맨스가 펼쳐지고 있다. 여주인공은 모두 신데렐라가 돼 ‘완생’할 태세다. 이렇게 빤한 설정만 반복한다면 지상파 드라마의 위기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단지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통한 본방 시청층 이탈만이 시청률 저하의 원인이 아닌 것이다. 당의정을 안겨주는 지상파와 쓴 현실을 있는 그대로 그려준 <미생>의 초반, 이 땅의 ‘미생’들은 <미생>에 더 찬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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