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선’ 100명 와도 ‘아파트 비리’ 끄떡없다
  • 조현주 기자 (cho@sisapress.com)
  • 승인 2014.12.01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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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지난해 11개 단지 실태조사 무용지물 전락

최근 배우 김부선씨가 서울 성동구 옥수동 ○아파트의 난방비 비리를 폭로해 아파트 관리비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아파트 투사’로 나선 김부선씨의 활약으로 급기야 국회에서는 이른바 ‘김부선법’ 제정 논의까지 벌어지고 있다.

김씨가 살고 있는 서울 성동구 아파트는 올 초 성동구청에서 이미 시정명령 등 행정 조치를 받았지만 이후에 별다른 개선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가 문제가 터지고 말았다. 지난 9월12일 김씨가 아파트 반상회에서 주민들과의 폭행 시비에 휘말리면서 난방비 비리 의혹이 불거졌고 아파트 관리비 부정 문제는 사회적 이슈가 됐다.

사태가 이처럼 번진 것은 성동구청의 시정명령 이후에도 개선 조짐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를 김씨가 살고 있는 아파트만의 사정으로 볼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노(NO)’다.

아파트 난방비 비리 의혹을 폭로한 배우 김부선씨가 지난 10월27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 시사저널 구윤성
“실태조사 후 아파트 관리 부정 더 활개”

서울시는 지난해부터 아파트 관리 비리 근절을 위한 ‘맑은 아파트 만들기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지난해 6월 한 달 동안 11개 아파트 단지를 대상으로 아파트 관리 부정과 관련된 실태조사를 벌였다. 당시 사상 처음으로 벌인 아파트 특별감사에 조사반원 100여 명이 투입됐다.

처음에는 그럴싸한 조치가 내려지는 듯했다. 서울시는 지난해 7월8일 특별감사 결과를 발표하며 “이번 조사에서 주먹구구식 공사 발주, 규정 무시한 수의계약 남발, 무자격 업체 부실 시공과 입찰 담합 의혹 등 부조리가 대거 적발됐다”며 “입찰 비리 사례뿐 아니라 관리비·장기수선충당금 같은 아파트 재산을 개인 돈처럼 유용한 사례 등 각종 부정이 168건 적발돼 이 가운데 10건은 수사 의뢰하고 83건은 과태료·시정명령 부과, 73건은 행정지도 조치를 취했다”고 밝혔다. 발표 이후 수사 의뢰 건이 한 건 더 늘어나 지난해 아파트 특별감사로 사정 당국에 수사 의뢰가 들어간 것은 11건이다.

하지만 현장에서 달라진 것은 없다. 아파트 단지의 부정 비리로 시정명령이나 과태료 처분을 받은 아파트관리소 직원이나 입주자 대표 등이 별다른 제재 없이 그대로 활동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의혹이 불거져 경찰 수사에 들어간 건 또한 마찬가지다.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해 수사 의뢰를 한 11건의 비리 사건 가운데 4건은 내사 종결 혹은 무혐의 처분으로 수사가 종료됐고, 나머지 7건은 검찰에 송치된 이후 수사 계류 중이거나 여전히 혐의 조사 중이다. 서울시는 지난해 특별감사 발표 당시 “이번 조사를 통해 나타난 부조리에 대해선 행정 조치, 수사 의뢰 등 엄격한 후속 조치를 해 아파트 관리 투명성을 높일 것”이라고 발표했지만, 사실상 아파트 관리 비리 사건 가운데 단 한 건도 제대로 된 형사 조치가 없었던 셈이다.

심지어 지난해 특별감사를 받은 아파트 단지 가운데는 별다른 조치가 취해지지 않아 다시 고발전이 시작되는 곳까지 생겨났다. 서울시 중구의 ㄴ아파트가 이에 해당한다. ㄴ아파트는 지난해 서울시 실태조사 결과 행정지도 4건, 시정명령 8건, 과태료 1건, 수사 의뢰 1건 등 총 14건의 제재 조치를 받았다. 제재 조치가 많은 만큼 아파트 관리 부정 유형 또한 입찰 담합에서부터 전기·수도 요금 과다 징수, 미신고 공사 진행까지 다양했다.

그렇다면 가장 강력한 조치를 받은 수사 의뢰 건은 어떻게 됐을까. 지난해 실태조사 결과 ㄴ아파트에서는 2010년 초 방수·도장 공사 입찰 과정에서 업체들끼리 담합해 공사비를 5억원 가까이 부풀렸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공사 입찰에 뛰어든 업체 4곳 모두 23억~25억원 사이 가격을 써냈고 최종 계약은 22억7000여 만원에 체결됐는데 서울시 감사 결과 이 계약금액에서 공사비의 20%가 넘는 4억8000만원가량이 부풀려진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시는 즉각 수사 의뢰했다.

지난해 서울시는 아파트 관리 부정과 관련된 실태조사에 나섰지만 특별감사를 받은 아파트 중에 여전히 관련 비리로 몸살을 앓는 곳이 많다. ⓒ 시사저널 구윤성
수사 의뢰 11건 중 형사 처벌 1건도 없어 

하지만 이 사건은 수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은 채 종결됐다. 지난 11월25일 만난 ㄴ아파트의 이 아무개 전 감사는 “처음에 서울시에서 검찰에 진정서를 냈는데 고발장을 제출할 필요가 있다고 해서 주민들이 다시 서울남부지방검찰청에 고발장을 냈다”며 “하지만 관할이 아니라고 해 다시 경찰에 고소하려 했다. 이 과정에서 (검찰이) 진정인들이 사건 정지를 요청했다는 이유로 사건이 각하됐다”고 밝혔다. 이어 “재수사 요청을 해야 하는데 이제 (감사) 임기가 끝나 진행에 어려움이 있다”고 밝혔다.

게다가 14건에 달하는 제재 조치를 받은 후에도 ㄴ아파트에선 문제가 됐던 관리소장이나 입주자대표자회의 회장이 그대로 직무를 보고 있었다. ㄴ아파트의 일부 주민들은 지난해 실태조사 이후의 각종 공사에서도 비리 정황이 포착돼 이번에는 청와대에 보낼 진정서를 준비하고 있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진정서에는 ‘(ㄴ아파트 단지는) 지난해 이미 서울시 감사에서 시정명령과 수사 의뢰 등 14건의 지적을 받았지만, 행정기관을 무시하듯 부조리는 계속되고 있다’고 적시돼 있다. 이들은 진정서에서 ‘게다가 지난해 중순께 전혀 문제 없는 양호한 아파트 내 보도블록을 교체하면서 측량 면적이 아닌 공고 면적대로 비용을 지불해 (입주민에게) 큰 손실을 끼쳤다. 올해 8억7000만원 규모의 아스팔트 재포장 부대공사를 했는데 공사를 계약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올해 새로운 감사로 선출된 이 아무개씨는 “보도블록 공사는 작년에 이뤄졌는데 장기 수선 계획에도 없었던 것이다. 얼마나 공사를 했는지 면적을 측량해보자고 했더니 실제 측량된 (보도블록 공사) 면적과 상관없이 자재가 입고되는 대로 공사비를 지출했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 진행한 아스팔트 공사는 초기 측량 결과가 약 40만㎡로 돼 있었는데 총면적이 60만㎡인 아파트 단지에서 터무니없는 결과여서 재측정을 요구했더니 4만㎡로 면적이 줄어 있었다”며 “이런 식으로 눈먼 돈이 빠져나가고 있지만 입주민들은 이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ㄴ아파트 김 아무개 관리소장은 “그동안 아파트 관리 문제로 검찰에 고발당해 조사를 받은 것들은 모두 무혐의가 났고, 시나 구청으로부터 받은 과태료 등 처분은 이미 매듭지어진 일들이라 더 이상 해명할 게 없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 아스팔트 공사는 장기 수선 계획에 의해 진행되는 것”이라며 “추가 비용이 들었던 부분 또한 입주자대표자회의 의결을 거친 것이라 문제 될 것이 없다”고 주장했다.

서울시 중구의 L아파트는 지난해 특별감사 결과 14건에 이르는 제재 조치를 받았다. ⓒ 시사저널 구윤성
아파트 관리 비리 전담 기관 설치해야

아파트 관리 부정 문제가 부각되자 서울시뿐 아니라 관리·감독 책임을 지고 있는 관할 지자체에서도 아파트 비리 척결이라는 구호를 내세우고 있지만 ‘전시 행정’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오히려 사정이 더 열악해졌다는 말까지 나온다. 송주열 아파트비리척결운동본부 대표는 “지난해에 서울시에서 수사 의뢰를 하는 등 강력한 조치를 취했지만 워낙 자료 취합이 어려운 문제이다 보니 대부분 수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거나 진행되더라도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며 “(아파트 입주자 대표나 관리소장들이) 명예훼손을 했다고 공무원을 엄청나게 고소했다. 수사 의뢰를 하면 무혐의가 나버리고 고소를 당해 (관련 공무원들이) 일하는 데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공동주택 관리·감독을 담당하는 별도의 기관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송 대표는 “시청과 구청 공무원들은 (표심에 흔들리는) 선출직인 단체장과 기초의원들의 압력으로 아파트 비리 문제에 과태료를 부과하기조차 쉽지 않다”며 “아예 공동주택관리청을 신설해 이곳에 근무하는 이들에게 특별사법경찰권을 주어 민원이 발생하는 즉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같은 지적에 대해 서울시 공동주택과의 한 관계자는 “아파트 비리 의혹과 관련해서는 수사 권한이 있는 경찰 등이 조사를 해도 증거 확보가 어려워 내사 종결된 건이 많다. 공무원들은 더 어려움이 크다”며 “실태조사 이후에 사정 당국이 실질적으로 조사에 나섰는지 여부도 시가 모두 확인하거나 강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아파트 비리 척결 사업이 지난 1년 동안은 사업 자체를 알리고 계도 차원에서 진행된 부분이 있다 보니 미흡한 점이 있었다. 앞으로 더 강력한 고발 조치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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