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진한 학생들, 능구렁이 정부에 ‘깨갱’
  • 모종혁│중국 통신원 ()
  • 승인 2014.12.01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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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지지 상실한 홍콩 시위대…지도부 구속되며 와해

11월26일 홍콩 까우룽(九龍)반도 몽콕(旺角)의 네이선(彌敦) 로드에 설치된 바리케이드가 철거됐다. 네이선 로드에서 바리케이드를 제거하자, 농성 중이던 시위대가 몰려왔다. 완력으로 법 집행을 막자 홍콩 경찰이 이들을 전격 체포했다. 체포된 사람 중에는 조슈아 웡(黃之鋒) 학민사조(學民思潮) 위원장, 레스터 셤(岑敖暉) 홍콩전상학생연회 부비서장 등 시위대 지도부가 다수 포함됐다.

이들의 체포 소식은 언론을 통해 곧 보도됐다. 그런데 홍콩 내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의 반응은 미지근하다 못해 냉담했다. “(경찰의) 정당한 법 집행을 (시위대가) 막는 것은 잘못된 행동”이라는 주장이 다수를 이뤘다. 지난 9월 중순 이래 홍콩 전역을 달궜던 민주화 시위의 뜨거웠던 열기는 어디로 가고, 시위대는 홍콩인들의 냉대를 받게 된 것일까.

지난 8월31일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는 2017년 선출할 홍콩 정부 수반인 행정장관 선거안을 발표했다. 전인대는 “행정장관 선거 후보자는 후보추천위원회 위원 절반 이상의 지지를 받는 애국 인사여야만 한다”며 “이들 2~3명 중에서 홍콩 주민이 투표로 행정장관을 선출한다”고 결정했다. 이런 요건은 반중(反中) 성향 후보자를 사전에 걸러내겠다는 중국 정부의 강력한 의지를 반영한 것이다.

11월26일 빨간색 모자를 쓴 홍콩 경찰이 네이선 로드에 설치된 바리케이드를 철거하고 있다. ⓒ AP 연합
같은 날 홍콩 민주파 정당과 시민단체 ‘센트럴(中環)을 점령하라(센트럴점령)’가 주도한 항의 시위가 홍콩 정부청사 앞에서 벌어졌다. 9월28일부터는 홍콩 주요 거리가 수십만 명의 시위대에 점령당했다.

거기까지였다. 점거 시위를 대학생 학생회 연합 조직인 학련과 중·고등학생 운동 조직인 학민사조가 주도하면서 시민단체인 센트럴점령은 점차 존재감을 잃어갔다. 학련과 학민사조는 순수하고 열정에 넘쳤지만, 강력한 리더십과 투쟁을 지속할 전략이 부족했다. 거리에서 농성하면 홍콩 정부나 중국 정부가 자신들의 요구를 들어주리라 믿을 만큼 이들은 순진했다.

10월21일 홍콩 의학아카데미에서 열린 대학생 대표 10명과 캐리 람(林鄭月娥) 정무사장을 대표로 한 홍콩 정부 관리의 첫 공식 대화가 이를 잘 보여준다. 이날 대화는 홍콩 주요 TV와 라디오로 생중계됐다.

학생들은 시종일관 “홍콩 정부가 친중 인사로 출마자를 제한한 전인대의 결정을 철회해야 한다”고 외쳤다. 이에 대해 정부 관료는 “홍콩기본법에 따라 전인대의 결정을 바꿀 자격이 없고 100만명의 시민도 여기에 찬성하는 서명을 했다”며 “중국 정부에 홍콩 시민들의 입장을 전달해 2022년 선거에선 제도를 개선토록 하겠다”고 설득했다. 학생들은 같은 주장만 되풀이했으나, 정부 관료는 노련하게 맞받아치며 다양한 대안을 제시했다.

합의 없이 끝난 이날 대화는 누가 봐도 홍콩 정부 측의 완승이었다. 학생 시위대는 혈기만 넘쳤지 정치력이 부족하고 순진하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홍콩 시민들이 점거 시위에 대거 참가했던 이유는 민주화에 대한 열망 때문만은 아니었다. 홍콩인들은 본토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중국인들에 대한 이념·문화적 괴리감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실제 ‘나는 중국인’이라는 홍콩인의 인식은 1997년 30%로 최고치를 기록했다가, 2010년 16.5%, 2012년 12.6%에 이어, 올해 8.9%로 급락했다.

또한 2003년 중국과의 경제협력협정(CEPA) 체결 후 홍콩인의 평균 임금은 41.5% 상승했으나, 집값은 중국 투기 자본 유입으로 194%나 폭등하는 등 사회적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홍콩은 소득 대비 주택가격 비율이 아시아에서 가장 높다. 여기에 중국 정부가 상하이(上海)를 아시아 금융의 중심지로 집중 육성하면서 자신들의 미래에 대한 큰 불안감이 생겼다. 학생 시위대는 이런 홍콩인들의 저변에 숨은 불만을 응집시켜 폭발시킬 리더십을 보여줘야 했다.

여론조사 “시위 중단해라” 83%

하지만 아직 체감하지 않은 2017년 선거 문제에만 매달리다 보니, 시민들의 관심은 점차 시들해졌다. 홍콩 정부의 인내 있는 대응도 시민들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점거 시위 초기 경찰이 최루가스를 사용하고 렁춘잉(梁振英) 행정장관이 설화(舌禍)로 구설에 올랐지만, 홍콩 당국은 점거 시위를 용인하면서 강제 해산을 자제했다. 중립적인 법원에 제소해 점거 해제 명령을 이끌어내고 중국 정부의 개입을 막는 등 법과 원칙에 따른 강온(强溫) 전략을 구사했다.

민심이 시위대를 떠난 현실은 여론조사에서 잘 드러난다. 11월19일 홍콩 대학이 발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83%가 ‘시위 중단’을 요구했고, ‘계속해야 한다’는 13%에 그쳤다. 68%는 법원의 점거 해제 명령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특히 전날 밤 시위대 일부가 입법회 청사에 대한 강제 점거를 시도하면서 여론이 악화됐다. 비폭력 원칙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순수한 열정만으로 진행됐던 홍콩의 민주화 시위는 결국 용두사미로 종언을 고하고 있다. 학생들은 순수함을 넘어 너무나 순진했다. 거리를 점거하면 중국 정부가 귀를 기울일 것이라 생각했다. 강력한 컨트롤타워와 리더십이 없는 대중 시위가 중국공산당 앞에서 얼마나 무기력한지 홍콩 시위대는 잘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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