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목마른 ‘한 방’, 슈틸리케는 해결할까
  • 서호정│축구 칼럼니스트 ()
  • 승인 2014.12.02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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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월간 다양한 포메이션과 선수 평가…1월 아시안컵이 첫 관문

짧은 실험은 끝났다. 지난 9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A대표팀)의 새 사령탑으로 부임한 울리 슈틸리케 감독은 3개월간 네 차례 평가전을 치렀다. 한국 축구의 모든 것을 알았다고 하기엔 무리가 있지만 그는 다양한 테스트를 통해 강점도, 한계도 확인했다. 네 차례 평가전 성적은 2승 2패. 슈틸리케 감독은 아시안컵 준비에 돌입했다. 1월9일 호주에서 개막하는 2015 AFC 아시안컵은 55년 넘게 아시아 정상에 서지 못한 한국에 중요한 도전 무대다.

취임 전 경기장에서 직접 본 우루과이전(0-1 패), 그리고 자신이 벤치에서 지휘한 파라과이전(2-0 승), 코스타리카전(1-3 패), 요르단전(1-0 승), 이란전(0-1 패)까지. 슈틸리케 감독의 영향력이 직간접적으로 미쳤던 A매치는 총 다섯 차례다. 이 경기를 관통하는 가장 큰 흐름은 실험이다. 특히 슈틸리케 감독은 네 차례 평가전에서 단 한 번도 같은 포메이션, 같은 선수 구성을 가동하지 않았다. 파라과이전에는 중동파를 중심으로 한 제로톱 전술을 내세워 공격 축구를 선보였다. 코스타리카전에는 이동국·손흥민을 세우는 전형적인 원톱 전술을 썼다. 요르단전에는 현재 대표팀에서 가장 중요한 선수인 기성용을 아예 기용하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남태희·김민우·조영철·한교원·장현수·김진현 등 그동안 대표팀에서 비주류로 통했던 선수가 수면 위로 등장했다.

웃는 슈틸리케. 11월14일 한국과 요르단의 축구 평가전에서 이긴 뒤 미소 짓고 있다. ⓒ 연합뉴스
베테랑의 가치도 다시 인정받았다. 슈틸리케 감독은 브라질월드컵에서 한국이 실패한 이유 중 하나로 “너무 젊은 선수 중심으로 갔다. 위기 상황에서 팀을 안정시킬 경험 많은 선수가 보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동국·차두리·곽태휘에게도 기회가 돌아갔고 그들은 팀에 긍정적인 작용을 했다. 슈틸리케 감독의 가장 큰 장점은 ‘편견 없는 선수 평가’다. 그는 선수의 기량과 컨디션을 확인하기 위해 K리그는 물론 대학 무대까지 직접 찾아갔다. 협회 관계자가 대표급 선수의 정보를 알려주면 “아무 얘기도 하지 마라. 선입견이 생길 수 있다”고 단호히 뿌리치기도 했다.

제로톱은 OK, 원톱은 아직…

실제로 슈틸리케 감독은 편견 없는 선수 선발을 했다. 그는 10월과 11월 평가전을 위해 총 35명의 선수를 소집했다. 새로운 얼굴도 있었지만 브라질월드컵에서의 실패로 좋지 않은 평가를 받은 선수도 있었다. 그들이 어떤 마음가짐과 몸 상태로 대표팀에 임할지를 직접 불러서 확인했다. 대표적인 경우가 박주영과 정성룡이다. 두 선수는 11월 평가전을 위해 오랜만에 선발됐다. 여론의 거센 반발도 있었다. 하지만 슈틸리케 감독은 “내 눈으로 두 선수를 직접 확인해야 한다. 기량은 어느 수준인지, 대표팀에 대한 자세와 동료와의 융화도 관찰하겠다”며 단호한 자세를 보였다. 슈틸리케 감독은 두 선수에 대한 깊은 평가를 외부에 알리지 않았다. 다음에 발표할 명단을 통해 결과를 알려주겠다는 식이다.

슈틸리케 감독이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골 결정력이다. 4경기에서 4골을 넣었지만 만들어낸 찬스에 비해 득점이 적었다. 아시안게임, K리그, 대학 축구 등을 꾸준히 관찰한 슈틸리케 감독이 낸 결론도 한국 축구는 골 결정력을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11월 대표팀 명단을 발표하면서 “한국 선수는 찬스에서의 집중력이 강하지 않다는 걸 느꼈다. 그 부분을 개선하기 위해 훈련과 전술을 통해 다양한 시도를 하겠다. 상황에 따라 쓸 수 있는 여러 공격 옵션을 준비 중이다”고 말했다.

현재까지 슈틸리케 감독이 대표팀에서 보여준 공격 옵션은 크게 두 가지다. 남태희·조영철·이청용·김민우 등 작지만 기술이 좋고 빠른 선수를 활용한 제로톱이 하나다. 나머지는 이동국·박주영·손흥민 등 한 방이 있는 전형적인 원톱이다. 평가전에서 호평을 받은 것은 제로톱이었다. 파라과이전에서 한국은 이전에 본 적이 없었던 공격에서의 세밀하고 정확한 플레이로 상대를 조여들어가 골을 만들어냈다. 이 과정에서 청소년 대표팀 시절부터 최고의 개인 전술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아온 남태희가 황태자로 부상했다. 그러나 슈틸리케 감독은 제로톱만 고집하지 않았다. 코스타리카전에서는 이동국과 그 아래에 손흥민을 배치하는 전형적인 원톱을 들고나왔다. 이 원톱 전술은 절반의 성공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한 방은 있지만 과정이 제로톱에 비해 섬세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고개 숙인 슈틸리케. 11월18일(한국 시각) 이란과 평가전에서 0-1로 패한 뒤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 ⓒ 연합뉴스
꼼꼼하지만 자상한 할아버지 리더십

언론과 팬은 제로톱에 더 많은 비중을 두기 바라지만 슈틸리케 감독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상대에 따라 맞춰가는 전술이 필요하다. 둘 중 무엇이 더 낫다고 보기 어렵다. 두 가지 옵션 외에 하나 정도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란전에서 이근호·손흥민·구자철·이청용 등으로 구성된 새로운 공격 조합을 내놓기도 했다. 현재 슈틸리케 감독의 고민은 공격진의 부상이다. 부상을 입은 이동국과 김신욱이 아시안컵까지 회복되지 못하면 원톱 전술을 가동하긴 쉽지 않다. 박주영이 최근 사우디아라비아의 알 샤밥에 입단하며 컨디션을 끌어올리고 있지만 현재 상태로는 보험 정도의 가치다. 소속팀에선 맹활약하지만 대표팀에선 부담에 시달리는 손흥민의 기량을 끌어내는 것도 과제다. 슈틸리케 감독은 “손흥민은 어린 선수인데 너무 혼자 많은 책임을 지려고 한다. 마음 편하게 했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대표팀 선수들은 슈틸리케 감독에 대해 “꼼꼼하다”는 평가를 내놓았다. 파라과이전을 앞두고는 공격진을 불러서 ‘스페인 대표팀의 축구를 연상하며 플레이하라’는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선수가 입장할 때는 통로에 서서 하이파이브를 하며 긴장을 풀어줬다. 지난 10월 슈틸리케 감독의 첫 대표팀 소집 당시 주장을 맡았던 기성용은 “축구에 관해서는 굉장히 디테일하다. 작은 것 하나까지 놓치지 않는다. 대신 생활에서는 배려도 많고 따뜻한 분”이라고 말했다.

대표팀 선수나 축구협회와의 커뮤니케이션도 역대 어떤 외국인 감독보다 수월하다. 한국 축구는 물론 사회 전반의 문화를 익히기 위한 태도도 적극적이다. 한국의 식사 예절에 대한 정보를 전해 들은 그는 선수보다 먼저 식사를 마치자 “먼저 일어나도 괜찮겠느냐?”고 물어 선수들을 웃겼다. 이전의 어떤 감독도 그런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10월 선수 소집 발표 당시에는 대표팀 선수 이름을 모두 외워 와 주변을 놀라게 했다. 대한축구협회가 취임 기념으로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통해 팬과의 문답 이벤트를 벌이자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당시 슈틸리케 감독은 다양한 팬의 질문에 성심껏 답해 큰 호응을 받았다. 독일 태생이지만 스페인에서 선수 생활의 전성기를 보냈고 이후 아프리카·중동 등 다양한 지역에서 지도자 생활을 한 것이 빠른 한국 적응에 도움이 되고 있다는 평가다.

축구에 대한 욕심만큼은 역대 어떤 지도자보다 강하다는 것도 인상적이다. 수비수 출신답게 다양한 수비 전술을 준비해 선수를 맨투맨으로 지도한다. 감독 취임 후 첫 훈련 당시에는 예정된 훈련이 끝나고도 15분 넘게 세트피스 대응 전술을 설명했다. 이란과의 경기에서는 강한 승부욕을 보였다. 골키퍼 차징 반칙에 가까운 장면을 연출하며 이란이 결승골을 넣자 심판에게 격렬하게 항의했다. 기자회견에서 그는 “아시안컵에서 반드시 이란을 만나고 싶다. 그때는 수준 높은 심판과 함께하고 싶다”며 평소의 인자한 할아버지와는 180도 다른 모습을 보였다. 수평적인 위치에서의 적극적인 교감과 소통 리더십은 권위를 얻게 만드는 요소다. 슈틸리케 감독을 중심으로 다시 뭉친 대표팀이 과연 아시안컵 트로피를 한국에 가져올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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