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스타 X파일] #8. 백두산·한라산·독도에서 나훈아, 남북 ‘하나로’ 공연
  • 이기진│PD ()
  • 승인 2014.12.25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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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남북정상회담 무산으로 취소…광복 70주년 맞아 재시도

나훈아. 이 연재를 시작하며 따라붙은 필자의 고민 가운데 하나였다. 올해 우리 나이로 68세. 1960년대 가요계에 데뷔해 1970~80년대 최정상에 섰고, 1990년대와 2000년대까지 그 막강한 스타권력을 과시했으나, 2008년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어 놓은 루머 해명 기자회견 이후로 자취를 감췄다. 최근에는 세 번째 부인 정수경씨의 이혼 소송으로 다시 화제에 올랐으나, 정작 그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철저히 은둔하며 권력의 뒤안길로 사라진 그를 이 연재물의 주인공으로 등장시키는 게 옳은지에 대한 고민이었다.

하지만 20년 전 필자가 나훈아와 함께 준비했던, 그러나 끝내 빛을 보지 못했던 역사적인 공연의 실체를 이번 기회에 공개하고자 한다. 그와 동시에 나훈아의 복귀 무대를 계획하며, 20년 전 무산됐던 그 역사적 공연의 부활을 복귀의 계기로 시도해보고자 하는 계획을 조심스레 밝히면서, 그를 이 연재의 여덟 번째 주인공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 MBC 제공
‘스타권력’ 신조어 만들어낸 원조

2015년 새해는 광복 70주년이 되는 해다. 필자는 곧 나훈아에게 의미 있는 공연을 제안할 예정이다. 그것은 지난 1994년 당시 김영삼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의 역사적인 첫 남북정상회담을 맞아 함께 준비했던 공연을 다시 만들어보는 것이다. 당시 공연은 남북정상회담을 불과 며칠 앞둔 그해 7월, 갑작스러운 김일성 주석의 사망으로 무산됐다. 당시 나훈아는 남북이 하나 되어 미래로 함께 나아간다는 의미를 담은 <하나로>라는 노래를 만들어 녹음하던 중이었다. 이제 다시 그 노래를 완성해 광복 70주년 그날에, 비무장지대와 백두산, 그리고 한라산과 독도에서 4원 방송으로 동시에 양측 출연자들이 합창하는 장관을 연출하고 싶다. 그동안 필자는 나훈아와 숱한 공연을 함께하며 무대에 대한 그의 욕심과 열정에 때론 감탄하고 때론 속을 태우곤 했다.

“나훈아씨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겁니까? 언제 복귀하는 건가요?” 올 한 해, 정말 유난히도 많은 질문을 받았다. 하지만 필자는 단 한 번도 속 시원하게 답해주지 못했다. 2008년 1월, 그는 루머 후유증으로 잠정 은퇴를 선택하고 휴식에 들어갔다. 연예가에서는 그가 잠시의 휴지기를 가진 후 복귀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기자회견 후 어느덧 8년이 흘렀다. 그의 칩거와 침묵이 예상 외로 길다. 그렇다 보니 일부 매체에서는 그의 건강 이상설을 보도하기도 했다. 실제로 언론들은 그가 뇌경색 증세로 잠시 입원했던 양평의 요양병원을 찾아가 취재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결국 나훈아의 와병설 역시 루머로 판명이 났다. 사실 그는 매우 건강한 체질이다. 그의 쇼를 연출할 때마다 필자는 그의 체력과 열정에 놀라곤 했다. 3시간이 넘는 공연에서 그는 항상 지칠 줄 모르는 강철 체력을 과시하곤 했다.

엔터테인먼트업계 관계자들은 나훈아를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카리스마가 강했던 스타라고 평가한다. 그는 가장 오랜 시간 정상의 자리에 있었고 나이가 들어서도 인기가 결코 떨어지지 않았다. 특히 그는 깨지지 않고 있는 여러 기록의 보유자다. 지금까지 2500여 곡을 발표했고, 19개 정규 앨범을 포함해 약 200개의 앨범을 발표했다. 노래방 수록곡에도 153곡이 등재돼 1위를 기록 중이다.

그는 또한 한국 연예사에 ‘스타권력’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낸 원조 격이다. 그는 늘 방송 프로그램의 섭외 1순위이자 가장 섭외하기 힘든 스타로 존재했다. 특히 나훈아는 1990년대 이후 일체의 방송사 정규 프로그램 출연을 중단했다. 대신 그는 추석과 설날 등 명절에만 자신의 이름을 붙인 스페셜 쇼를 통해 대중을 만났다. 각 방송사는 명절이 다가오면 경영진까지 출동시키며 그를 섭외하기 위해 총력전을 펼쳤다. 그럴 때면 그는 자신의 요구 조건을 내걸고 이를 수용하는 방송사를 선택했다. 서태지와 아이들, SM의 이수만 사장 등이 스타권력을 앞세워 방송사를 압박하기 훨씬 전에, 그는 스타 파워를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1993년 필자는 SBS TV의 <스타와 이 밤을>이라는 프로그램의 연출을 맡았다. 어느 연출자나 그렇듯이 새 프로그램의 성공을 위해서는 당연히 당대 최고 스타의 출연이 급선무였다. 필자는 당시 이태원에 위치한 나훈아의 작업실을 뻔질나게 찾아갔다. 그렇게 3개월여가 지나 그는 필자의 읍소(?)와 압박에 못 이기는 척하며 프로그램 출연을 결정했다. 명절 때 특집에만 출연하던 그가 정규 프로그램에 출연한다는 사실 자체가 톱 뉴스거리가 되었다. 하지만 그다음이 문제였다. 그가 출연 조건으로 내세운 요구 사항들이 상상을 초월했기 때문이다.

이건희 회장 출연 요청도 일언지하 거절

내심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실제 그가 꺼내든 카드는 너무 엄청났다. 그는 오프닝 무대에서 어린이들과 함께 박인수·이동원의 곡 <향수>를 부르겠다면서 까다로운 무대 장치와 세트, 조명, 특수효과 등을 주문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다음. 그는 자신이 직접 출연하는 <향수> 뮤직비디오를 사전 촬영할 것을 요구했다. 촬영 장소는 부산 해운대 바닷가. 그는 해변에서 말을 타고 달리는 장면을 항공촬영해줄 것을 요구했다. 결국 필자는 그 모든 요구 조건을 수용해 헬기와 경주용 말을 섭외해 촬영을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그 후에도 그는 함께 특집 프로그램을 할 때마다 상상을 초월하는 요구 조건을 내세우며 필자의 애를 태웠다.

이렇듯 나훈아가 자신의 공연이나 프로그램을 위해 방송사나 제작사에 어마어마한 요구 조건을 내건 일화는 너무 많다. 그중 하나가 미국 순회공연이다. 그는 미국 주최사에 호텔 옥상에 헬기 착륙장을 설치하고 객실까지 붉은 카펫을 깔아줄 것을 요청해 관철시킨 바 있다. 그는 자존심이 대단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김용철 변호사가 자신의 저서에서도 언급했듯이 삼성 이건희 회장의 출연 요청을 받고 “나는 내 공연을 보기 위해 표를 산 사람 앞에서만 공연한다”면서 일언지하에 거절한 일화는 유명하다.

나훈아는 공연을 제외하고는 대중 앞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특히 혼자 작업하거나 여행하기를 즐긴다. 물론 그와 친분을 쌓으려는 정·재계 인사가 수없이 많았지만 어느 선 이상의 관계로 발전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의 절친한 지인은 일본에 더 많다. 그는 한국에서만큼 일본에서도 폭넓은 인기를 얻고 있다. 특히 충성도가 높은 팬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일본 전직 총리 등 정계와 재계에 폭넓은 인맥을 형성하고 있다.

최근 나훈아는 양평으로 사무실과 집을 옮기고 녹음 시설이 구비된 양평 작업실에서 새로운 곡 작업을 하고 있다는 소식이 간간이 들려온다. 올해 다시 인도 등지를 여행하고 돌아온 것은 음악적 영감을 얻기 위함이라는 이야기도 들린다. 앞에서 밝혔듯 광복 70주년이 되는 새해, 20년 전 무산됐던 그 공연에서 <하나로>가 울려 퍼질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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