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족 학교’가 돈 없어 장학 지원금 더 달라고?
  • 조유빈 기자 (you@sisapress.com)
  • 승인 2015.01.08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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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고, 하나임직원자녀전형 지속하며 서울시 장학금 축소에 반발

하나고. 하나금융지주가 출연한 대기업 자율형 사립고다. 2014년 기준 1인당 연간 학비는 1357만원이다. 이 중 등록금만 531만원에 달해 ‘귀족 학교’라고 불린다. 하나금융지주는 2010년 설립 때부터 2013년까지 총 845억원 상당을 하나고에 출연했다.

그러나 2013년 7월 은행법이 개정되면서 하나고에 대한 하나금융지주의 지원이 중단됐다. 금융위원회가 그해 7월2일 금융 계열사 공익법인 출연을 허가하는 개정안을 통과시키며 ‘출연 목적에 대가성이 있는 경우 출연을 금지한다’는 단서를 달았기 때문이다. 금융위원회는 하나고의 하나임직원자녀전형(정원의 20% 선발)이 자금 출연에 대한 대가성을 갖고 있다고 판단했다.

서울 은평구 하나고등학교 ⓒ 시사저널 구윤성
이런 가운데 서울시가 하나고 장학금 지원 예산을 줄이기로 하면서 하나고는 위기를 맞았다. 서울시는 하나고 장학금 지원 예산을 2013년 4억8600만원에서 2014년에는 3억2400만원으로 줄였다. 서울 시내 자사고가 하나고를 포함해 26곳으로 늘어났는데 비싼 수업료로 논란을 산 하나고에만 많은 장학금을 지급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문제제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액수도 일반고 학생에게 지급되는 장학금(1인당 연간 188만원 수준)에 비해 매우 높은 수준이었다. 2013년 서울시는 하나고 정원 600명 중 90명에게 1인당 540만원씩을 장학금으로 지원했다. 2010년부터 지금까지 서울시가 하나고에 지급한 장학금은 총 14억5530만원에 달한다.

하나고는 서울시가 종전대로 장학금을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나고 측에 따르면 2014년 12월 하나고에 새로 책정된 장학금 지원 예산은 전년에 비해 3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이에 하나고는 12월5일 서울시에 ‘서울시의 하나고 장학금 지급의 당위성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공문을 보냈다. 하나고는 ‘서울시가 지급하는 하나고 장학금은 2009년 체결한 학교 부지 임대차계약에서 계약한 사항이고, 서울시와 하나고가 각각 학생 15%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기로 합의한 사항이며, 하나고는 이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나고 측에 따르면 당시 서울시는 은평뉴타운에 우수 학교를 설립해 강남·북 간의 교육 환경 격차를 해소하려고 했다. 이에 따라 당시 학교를 설립한 하나고에 ‘장학금 지급’을 약속했다는 것이다. 또 서울시의 장학금은 ‘학교’가 아니라 ‘학생’에게 지급되는 것으로, 서울장학재단에서 학생들의 경제사정 등을 심사해 어려운 학생들에게 지급하는 것이기 때문에 서울시가 ‘하나고’에 대해 지원하는 것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하나고 관계자는 “학교 운영비나 시설 보수로 쓰이는 돈은 전혀 없다. (장학금은) 모두 학생들에게 가는 것인데 특정 학교에 대한 지원으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또 하나고는 모집 정원의 20%를 경제적 사배자(사회적 배려 대상자)로 선발한 최초의 고등학교로, 서울시가 장학금 지급을 하지 않으면 이 학생들이 학업을 계속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장학금이 대부분 경제적 사배자의 기숙사비와 급식비 지원에 사용되는 만큼 장학금이 축소되면 학생들이 학업을 포기하는 등의 결과가 나올까 우려된다는 것이다.

하나고 측은 “수업료 등 학생 납입금은 동결되지만 교직원 인건비 및 물가가 매년 오르고 있어 서울시 장학금 축소분을 부담할 여력이 없다. 하나재단 출연이 2012년 이후 중단돼 재정 운영이 난관에 봉착했다”며 서울시가 임의로 장학금을 축소하는 것은 명백한 ‘계약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원상회복이 되지 않는다면 하나고 역시 서울시와의 계약을 이행할 의무가 없으며, 학생들이 장학금을 지급받지 못해 발생하는 모든 피해에 대해 계약 당사자인 서울시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부지 임차료 납부를 거부하거나 강남 3구 선발 학생 수를 제한하지 않을 수 있으며, 계약 이행 촉구 및 미지급 장학금 원상회복을 위해 행정소송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학생 피해 생기면 서울시가 책임져야”

2009년 1월 하나학원과 서울시가 체결한 임대차계약서를 보자. 50년을 임대 기간으로 해 체결된 계약서 제3조에 ‘학교법인 운영 및 학교 설립 계획 관련 이행사항’을 규정해놓았다. 서울시와 하나고가 각각 학생 정원 15% 이상의 장학금을 지급하되, 학생 모집을 서울시 단위로 하면서 강남·서초·송파구에 거주하는 학생은 정원의 20%를 넘지 않도록 했다. 하나고는 서울시가 장학금을 축소하는 것이 이 3조에 위배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런데 3조 3항을 보면 하나학원은 학교 운영에 따른 내외 여건의 변화에도 원활한 학교 운영을 위해 출연기관인 하나금융그룹으로부터 안정적·지속적인 지원 계획을 약속받고 그 결과를 서울시에 제출하게 돼 있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2013년부터 하나학원은 하나금융그룹으로부터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이 조건을 이행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태다. 하나고는 서울시 측의 ‘계약 위반’을 문제 삼고 있지만, 하나고 역시 이행사항을 제대로 못 지키고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해 하나고 측은 “하나금융그룹의 출연금은 끊겼지만 그 금액을 법인에서 학교로 주고 있다. 그 내역을 서울시에 제출하고 있다”고 밝혔다.

서울시의회 김경자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은 “2009년 계약 내용에 따라 15%의 학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기로 했지만, 얼마를 지급하는지는 정하지 않았다. 하나고에 매년 4억원 이상 세금을 쓰고 있는 것은 다른 학교와의 형평성에도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지난 12월5일 공문을 받은 서울시는 “아직 답변을 준비하고 있는 중이다. 몇 년 동안 지속된 문제라서 한 번에 해결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장학금은 학교로 지급되고 있고, 수혜자들에게 따로 내역서를 요청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하나학원이 하나금융그룹 임직원 자녀에 대한 특례입학제도를 폐지하면 금융위원회가 판단한 ‘대가성’이 없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은행의 출연금 지원이 이뤄질 수 있다. 이에 대해 하나고 측은 “이미 (임직원 자녀 선발은) 계약 당시부터 설립 목적에 들어 있던 것”이라며 “임직원 자녀 선발을 취소한다면 하나금융그룹에서 지원을 할 이유가 없어질 수도 있다”고 밝혔다.

하나고는 2015년도 여섯 번째 신입생 모집에도 ‘하나임직원자녀전형’을 고수했다. 그리고 계약서 내용과 경제적 사배자의 학업 유지 어려움을 이유로 서울시가 종전대로 하나고에 장학금을 지급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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