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 시원하게 한 방 터뜨려봐
  • 서호정│축구 칼럼니스트 ()
  • 승인 2015.01.20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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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컵 골 결정력 고질병…속 타는 슈틸리케 감독

“이런 경기력으론 우승할 수 없다. 오늘부터 한국은 우승 후보에서 제외될 것 같다.”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수장인 울리 슈틸리케 감독의 입에서 나온 얘기다.

2015 아시안컵에 참가 중인 슈틸리케 감독은 쿠웨이트와의 조별리그 2차전이 끝난 후 팀을 강하게 질책했다. 이날 경기에서 한국은 1-0으로 승리하고 8강 진출을 확정지었지만 슈틸리케 감독의 성에 차지 않았다. 울퉁불퉁한 대표팀의 경기력은 우승컵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한국은 조별리그 1, 2차전에서 오만과 쿠웨이트를 차례로 꺾고 조기에 8강행을 확정지었다. 2011년을 제외하면 마지막 3차전까지 가서야 힘겹게 8강에 진출했던 과거와 비교하면 고무적인 결과다. 두 경기는 모두 1-0 승. 하지만 경기 양상은 달랐다. 오만전에서 한국은 70%에 가까운 점유율과 86%의 패스 성공률을 기록하며 경기를 완전히 지배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표면적으로는 1골 차 신승이었지만 압도적이었던 경기 내용에 크게 고무된 모습이었다. 특히 최근 대표팀에서 부진했던 구자철을 기용해 성공을 거둔 부분에선 뿌듯함을 나타냈다. 오만전을 현장에서 중계한 이영표 KBS 해설위원도 “무조건 칭찬해줘야 한다. 완벽했던 건 아니지만 경기 내용도 좋았고 원하던 결과도 가져왔다”고 평했다.

1월10일 호주 캔버라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5 AFC 호주아시안컵 A조 조별리그 1차전 한국 대 오만 경기. 손흥민이 상대 수비수와 공을 다투고 있다.ⓒ 연합뉴스
180도 달랐던 오만전과 쿠웨이트전

하지만 2차전에서는 점유율과 패스 성공률 모두 크게 떨어졌다. 경기 점유율은 50%를 간신히 넘었다. 사실상 대등한 경기였다. 패스 성공률도 오만전과 비교하면 8%가량 떨어진 78% 수준이었다. 특히 미스가 엄청나게 발생했다. 패스 실패는 물론이고 수비진에서도 평범한 상황에서 실수를 범해 위기를 헌납하는 등 불안한 장면이 이어졌다. 후반에 쿠웨이트의 양 측면 공격에 압도된 한국은 전반에 터진 남태희의 골을 간신히 지키며 승점 3점을 챙겼다. 오만전이 골 결정력이 아쉬웠던 승리라면, 쿠웨이트전은 패배했어도 할 말이 없었던 아슬아슬한 승리였다. 경기 후 슈틸리케 감독도 부진했던 경기력을 인정했다. 그는 “행운이 많이 따른 경기였다. 공을 소유하지 못하고 실수를 반복했다. 이런 플레이를 해서는 레알 마드리드의 수비수가 와도 어렵다”고 질책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기본적으로 공을 소유해 점유율을 높이며 주도권을 잡아 효과적인 공격을 펼치는 스페인·독일 축구를 모델로 삼고 있다. 그런데 쿠웨이트전은 그 출발인 공의 소유부터 막히며 어려운 경기가 됐다.

물론 오만전과 쿠웨이트전에서의 경기력에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있다. 선발 라인업에서 무려 7명의 선수가 교체됐다. 2경기 모두 선발 출전한 선수는 기성용·박주호·김진수·장현수뿐이다. 골키퍼도 바뀌었다. 오만전에서 속출한 부상자와 선수들의 감기 증상으로 인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그중에서도 이청용은 오만전에서 상대 수비수의 태클에 부상을 입으며  대회를 마감해버렸다. 이청용이 기성용·손흥민과 함께 팀 전력의 핵이라는 점에서 대표팀으로서는 큰 손실을 입게 됐다. 손흥민·구자철·김진현은 감기 몸살로 아예 쿠웨이트전 명단에서 빠졌다.

 그 결과 대표팀은 18명의 선수로만 쿠웨이트전에 임했다. 공격과 미드필드 2선은 완전히 선수가 바뀌었고 그 결과 조직력에 문제가 노출된 것이다. 그는 “축구는 11명이 아니라 23명의 팀이 하는 것이다. 누가 들어가든 팀이 하고자 하는 축구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주장 기성용은 쿠웨이트전 다음 날 “무엇이 잘못됐는지 선수들 모두 알고 있다. 상대가 누구든 우리가 주도하는 일관된 경기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다. 대회에 초청돼 아내 김민지씨와 함께 오만전·쿠웨이트전을 현장에서 지켜봤던 박지성은 “내용적으로는 질책이 필요한 부분도 있지만 지금은 대회 중이다. 평가는 대회를 다 마무리하고 하는 게 좋다. 지금은 응원이 필요한 시기다”며 후배들의 등을 두드려줬다.

아시안컵을 치르는 우리 대표팀의 경기력 중 가장 안타까운 것은 골 결정력이다. 새 감독이 왔음에도 한국 축구의 오랜 숙제는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한국은 오만전과 쿠웨이트전에서 각각 10개의 슛을 날렸다. 유효 슛도 똑같이 6개씩 기록했다. 전체 슛 대비 유효 슛 비중이 60%에 도달한 것까지는 만족스러웠다. 문제는 그렇게 공격을 펼치고도 단 1골밖에 넣지 못했다는 점이다. 우승을 놓고 한국과 경쟁을 펼칠 것으로 예상되는 호주와 일본은 1차전에서 4골을 폭발시켰다. 찬스에서의 순간적인 집중력이 탁월했다. 하지만 한국은 1골 차의 근소한 리드 상황에서 늘 상대에게 쫓겼다.

1월13일 호주 캔버라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5 AFC 호주아시안컵 A조 조별리그 2차전 한국 대 쿠웨이트 경기. 남태희가 골을 넣은 후 하트 세리머니를 펼치고 있다. ⓒ 연합뉴스
박지성 “질책할 부분 있지만 지금은 응원을”

이번 대회 공격진은 이미 역대 최약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동국과 김신욱이 부상으로 아예 선발되지 못했다. 유일하게 꺼낼 수 있는 최전방 공격 옵션은 박주영이었지만 슈틸리케 감독은 그 자리에 무명의 신예 이정협을 선택했다. 이정협은 K리그에서 지난 2년간 겨우 6골밖에 넣지 못했고 각급 대표팀에도 이름을 올린 적이 없었던 선수다. 도박에 가까운 선택이었다. 슈틸리케 감독은 이근호·조영철을 최전방에 세우는 제로톱 전술을 준비하는 한편, 의욕적이고 가능성이 있는 이정협의 활약에 기대를 걸었다. 문제는 그 기대가 결과물로는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조영철이 첫 경기인 오만전에서 결승골을 넣긴 했지만 공격수로서 강한 존재감을 보여준 것은 아니었다. 쿠웨이트전에 선발로 나선 이근호는 두 차례 결정적인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조커로 꾸준히 투입되는 이정협 역시 사우디아라비아와의 평가전에서는 골을 넣었지만 막상 본무대에 들어와서는 기대를 채워주지 못했다. 결국 손흥민을 중심으로 한 2선 공격수의 활약이 더욱 중요해졌는데 이청용의 이탈과 손흥민의 컨디션 난조로 이마저도 계획이 헝클어졌다. 

이번 대회에서 개최국 호주는 축구 붐을 일으키는 데 성공한 모습이다. 일본은 하비에르 아기레 감독의 스페인 클럽팀 재임 시절 승부 조작 혐의로 팀 분위기가 어수선한 상황에서도 순항 중이다. 중국과 UAE는 오랜 시간 이어진 아시안컵 부진을 끊는 데 성공했다. 일본에 맞먹는 한국의 라이벌 이란도 여전하다. 조별리그에서 들쭉날쭉한 경기력을 보인 슈틸리케호는 8강 토너먼트 이후부터 저력을 보여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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