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 왜 박삼구 회장 유독 챙기나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5.01.22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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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권 위임 등 금호그룹에 특혜…STX·동부그룹에는 가혹

금호그룹의 지주회사 역할을 하고 있는 금호산업은 2009년 12월 워크아웃에 돌입했다. 2개월 후인 2010년 2월5일 산업은행과 박삼구 금호그룹 회장은 경영 정상화를 위한 이면 합의서를 작성했다. 산업은행은 박 회장에게 금호타이어 경영권을 약속했다. 경영 정상화 계획이 달성되면 우선매수권을 통해 그룹을 되찾아갈 수 있도록 배려했다. 박 회장은 대신 금호석유화학 주식(12%)을 팔아 우선적으로 금호타이어에 투입하기로 했다. 약속이 지켜지지 않으면 박 회장에게 약속했던 경영권 보장도 철회하기로 합의했다.

당시 금호산업의 주거래 은행은 우리은행이었다. 하지만 이 합의서를 작성한 사실은 주거래 은행조차 몰랐을 정도로 은밀히 진행됐다. 산업은행과 박 회장은 같은 해 2월23일 추가 이면 합의서도 작성했다. 박 회장이 금호산업과 함께 아시아나항공과 대한통운의 명예회장까지 맡을 수 있도록 협조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들 기업의 대표이사는 박삼구 회장이 추천하는 인사가 맡도록 했다. 그룹을 위기에 빠뜨린 책임이 있는 박삼구 회장에게 사실상 경영권을 위임한 것이다.

ⓒ 시사저널 구윤성
그 후부터 박 회장의 경영 복귀 절차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박 회장은 2010년 11월 금호그룹 회장에 공식 복귀했다. 2013년 8월과 2014년 3월에는 각각 금호산업과 아시아나항공의 등기이사에 선임됐다. 채권단이 보유한 금호산업의 지분 57.5%를 되찾는 것이 마지막 남은 숙제였다. 산업은행을 포함한 채권단은 조만간 이 지분에 대한 매각 공고를 낼 예정이다. 박 회장이 이 지분을 매입할 여력이 있는지에 대한 논란은 여전하다. 하지만 박 회장이 이 지분을 인수하게 되면 워크아웃에 돌입한 지 5년여 만에 그룹을 완전히 되찾게 된다.

산업은행은 최근 동부그룹과 STX그룹에 대한 구조조정도 진행했다. 하지만 금호그룹 때와 판이하게 달랐다. 산업은행은 2013년 7월 STX조선과 자율협약을 체결하면서 당시 강덕수 STX그룹 회장의 사임을 요구했다. 강 회장이 사퇴하자 STX조선 대주주에 대한 100 대 1의 감자를 단행했다. 대표이사 자리에 정성립 전 대우조선해양 사장을 앉히면서 강 전 회장의 복귀를 원천 차단했다. 당시 STX조선 노동조합은 “자율협약은 워크아웃보다 채권단의 개입 단계가 낮다”며 “워크아웃 중인 금호산업은 등기이사로 오너 일가인 박삼구 회장을 선임하면서, 자율협약이 진행 중인 우리 회사의 경영진을 교체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두 차례 이면합의서로 경영권 보장

동부그룹의 상황은 더하다. 산업은행은 지난해 자금난을 겪고 있는 동부제철을 지원하면서 김남호 동부팜한농 부장의 동부화재 지분 13.29%를 담보로 요구했다. 동부화재는 사실상 동부그룹 금융계열사의 지주회사다. 김남호 부장은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의 장남이다. 동부그룹 측은 “경영권이 위협받는다”는 이유로 불가 입장을 밝혔다. 산업은행은 동부제철 대주주에 대한 100 대 1 감자를 단행했고, 김 회장은 동부제철에 대한 경영권을 상실했다.

지난해 말에는 그룹의 모태 회사인 동부건설도 김 회장 손을 떠났다. 산업은행은 동부건설에 1000억원을 지원하는 대신, 5년간 추가 투입될 자금 중 50% 이상을 김 회장 측이 부담하도록 했다. 결국 동부건설은 지난해 12월31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동부그룹은 사실상 동부화재와 동부생명 등 금융계열사 중심으로 재편되고 재계 순위도 18위에서 30위권으로 밀려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 과정에서 산업은행은 금호그룹처럼 경영권이나 우선매수권을 보장하지 않았다. 김 회장이 지목하는 인사를 대표이사로 선임하는 이면 합의서 작성도 없었다.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도 산업은행의 이중적 잣대에 불만이 많은 듯했다. 그는 2015년 신년사에서 “지난해 구조조정 과정에서 억울하고도 가혹한 자율협약으로 동부는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며 “지난 반세기 동안 땀 흘려 일군 소중한 성과들이 구조조정의 쓰나미에 휩쓸려 초토화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에 대해 산업은행 측은 “금호그룹과 동부그룹은 경우가 다르다”고 주장한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박삼구 회장은 금호그룹 구조조정 과정에서 3300억원의 사재를 출연했다”며 “김준기 회장이 사재 출연을 하지 않은 상황에서 우선매수권을 주는 것은 역차별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강덕수 전 회장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사재 출연이 거의 없었다. 무엇보다 STX그룹의 문제가 강 전 회장의 판단 잘못에서 비롯된 것인 만큼 경영 배제가 불가피하다고 산업은행 측은 설명했다.

하지만 금융권에서는 여전히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산업은행이 박 회장에 대해 경영권과 조건부 우선매수권을 부여한 시기는 2010년 2월이다. 당시 박 회장이 사재를 출연한 것은 채권단이 제공한 계열사 여신에 대한 담보 성격의 지분과 부동산이 전부였다. 박 회장은 금호타이어 여신에 대한 담보로 금호생명 주식 77만주(222억원), 금호산업 여신에 대한 담보로 금호산업 주식 30만주(40억원), 아시아나항공 여신에 대한 담보로 전남 나주와 경기도 화성에 위치한 묘지 지분 일부(2억원 상당)를 제공했다. 담보로서 가치가 크게 없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금호그룹 사정에 정통한 인사는 “금호산업과 금호생명 지분은 이후 100 대 1과 3.17 대 1로 감자됐다. 부동산 역시 일부 지분만 넘겨받았기 때문에 처분이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박 회장에게 우선매수권을 부여한 것은 기업구조조정촉진법에 근거한 채권금융기관조정협의회의 ‘채권금융기관 출자전환주식 관리 및 매각 준칙’에도 어긋난다. 관련 준칙 제12조(구사주에 대한 경영권 부여)에는 ‘부실 책임의 정도나 사재 출연 등 경영 정상화를 위한 노력의 사후 평가를 통해 우선매수청구권을 부여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구사주에 대한 우선 매수권 부여는 사후적 평가 요소이며 산업은행의 설명처럼 사재 출연의 대가가 아니라는 것이다.

“금호 특혜는 기업구조조정법에 위배”

특히 2010년 체결한 산업은행과 박삼구 회장의 합의서에는 금호석유화학 지분을 판 돈을 최우선적으로 금호타이어에 투입하는 것으로 돼 있다. 하지만 박 회장은 2012년 금호석화 지분을 매각한 돈을 금호산업(2200억원)에 우선적으로 투입했다. 금호타이어에 투입한 돈은 30% 수준인 1100억원에 불과했다. 경영권을 약속하며 작성한 합의서조차 이행하지 않았음에도 산업은행은 박 회장의 경영 복귀에 필요한 조치를 아끼지 않았다는 점에서 특혜 논란이 일고 있다.

전문가들도 채권단의 과도한 권한 남용을 우려하고 있다. 신흥철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는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누구는 봐주고, 누구는 안 봐주는 식’으로 의심을 사는 것 자체가 우려스럽다”며 “금호그룹에 비해 상대적으로 심한 차별을 받고 있다는 동부그룹 측 반발은 당연하다”고 지적했다. 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대학원 교수는 “기업 구조조정의 세계적인 흐름은 경영자에 대한 징벌적 관점보다 기업 회생이라는 경제적 관점으로 이동하고 있다”며 “STX그룹이나 동부그룹에 대한 산업은행의 조치는 정상적인 자율협약의 모습이 아니다. 경영자를 축출하는 것은 자칫 경영권 강탈로 비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회의원실에 ‘막말’하면 승진? 



금호그룹에 대한 산업은행의 특혜 의혹은 이뿐만이 아니다. 금호타이어는 2008년부터 미국 조지아 공장 건립에 나섰다. 하지만 2008년 발생한 글로벌 금융위기와 2010년 1월 시작된 워크아웃으로 공장 건립을 사실상 중단했다.

이런 상황에서 금호타이어 채권단은 지난해 6월 조지아 공장 건립을 승인했다. 4000억원의 자금도 추가로 투입하기로 했다. ‘현대·기아차가 미국 현지 공장 보유 기업에 납품 우선권을 부여하기로 했다’는 산업은행의 보고서가 채권단을 움직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하지만 당시 현대차는 “금호타이어에 납품 우선권을 주기로 약정한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산업은행의 금호 감싸기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부상했다. 김영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은 “당시 금호타이어는 워크아웃 졸업을 위한 실사도 시작하지 않았다. 금호타이어 미국 조지아 주 공장 건설 과정에서 채권단이 정확한 검증 없이 4000억원이 넘는 투자를 했다”고 지적했다.

이 과정에서 김영주 의원실과 투자 승인을 주도한 산업은행 기업구조조정본부 간에 설전이 오가기도 했다. 김영주 의원실의 한 보좌관은 산업은행에 관련 자료를 요청했다. 금호타이어가 추진 중인 미국 현지공장 건설 프로젝트의 적정성과 산업은행 특혜 지원 의혹을 알아보기 위해서다. 산업은행 A부장은 “국회에서 자료를 요구하면 우리가 X같이 제출해야 하느냐”며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김 의원은 산은에 강력히 항의했다. 결국 홍기택 KDB금융그룹 회장 겸 산업은행장이 사과하고, A부장에 대해 대기발령을 내는 선에서 문제는 마무리됐다.

당시 금융권에서는 A부장에 대한 대기발령은 의원실과의 마찰을 무마하기 위한 형식적인 징계라는 얘기가 나돌았다. A부장이 조만간 구조조정 업무에 다시 복귀할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당시의 관측은 현실로 나타났다. A부장은 1월5일 발표된 연초 인사에서 본부장급으로 승진한 것으로 밝혀져 논란이 예상된다.

이와 관련해 산업은행의 한 관계자는 “자료 요청 과정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 “김영주 의원실과는 이미 오해를 풀었다. 의원실에 양해를 구하고 A부장을 복귀시킨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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