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오와 참수의 땅, 그는 걸어들어갔다
  • 김회권 기자 (khg@sisapress.com)
  • 승인 2015.01.26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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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 가담하고 싶다” 3개월 만에 IS 소굴에 뛰어든 김군 미스터리

킬리스. 터키 남동부의 작은 국경도시다. 대다수가 잘 알지 못하는 이 작은 도시는 터키에서 시리아로 들어가려는 배낭여행객들이나 관심을 갖는 정도의 지역이다. 시리아 국경과 접하고 있고 시리아 도시 알레포까지 길이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행객들에게 이 길은 잘 선택되지 않는다. 킬리스에서 알레포로 넘어가는 대중교통 수단이 마땅치 않아서다.

이 작은 도시가 최근 국내에서 관심을 끌고 있다. 시작은 터키의 일간지 ‘밀리예트’의 기사였다. 지난 1월17일 이 신문은 현지 소식통을 인용해 “한국인 남성이 시리아로 밀입국했으며 IS에 가담했다”고 보도했다. 우리 외교부 역시 한국 국적을 가진 18세 김 아무개군이 터키에 입국했으며 시리아 국경에서 약 4.8㎞ 떨어진 킬리스에서 종적을 감췄지만 아직 검증은 못한 상태라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터키에 펜팔 친구를 만나러 간다던 김군은 IS 가입을 위해 시리아로 밀입국한 것이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컴퓨터에서 IS 관련 사진이 발견됐고 킬리스의 호텔에서 나선 지 약 30분 후에 신원불명의 남성과 함께 자발적으로 밴에 올라타는 모습이 CCTV를 통해 확인됐다.

ⓒ 연합뉴스·시사저널 포토
터키 현지 기자와 인터뷰 “하산은 예명일 것”

김군의 이동 경로는 이랬다. 1월8일 인천공항에서 이스탄불로 간 뒤 가지안테프까지는 터키 국내선 비행기로 이동해 하루를 묵었다. 보통 이 경로는 터키 남동부를 여행하려는 여행객들도 더러 선택하는 경로다. 이후부터 가는 길이 다르다. 다음 날인 9일, 가지안테프에서 60㎞ 떨어진 킬리스로 이동했다는 점이다. 가지안테프 오토가르(버스터미널)에서는 킬리스행 미니버스를 탈 수 있다. 이 버스를 이용해 킬리스에 도착한 후 호텔에 투숙했고 다음 날인 10일 오전 8시25분쯤 한 남성과 함께 검은색 차량에 탑승한 뒤 사라졌다.

김군이 갔던 루트는 IS 대원이 되려는 외국인들이 시리아로 찾아들어가는 바로 그 길이다. 이스탄불-가지안테프-킬리스 루트를 통해 적지 않은 외국인이 시리아 땅을 밟았다. 터키 남동부는 시리아와 900㎞ 정도가 국경으로 맞닿아 있다. 2013년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시리아 공습을 시작한 이후 터키 총참모부는 부랴부랴 국경 통제를 강화하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이 넓은 국경선에서 운영되고 있는 검문소는 2곳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번에 IS의 인질이 된 두 명의 일본인도 김군이 머무른 킬리스를 통해 시리아 땅을 밟은 것으로 전해진다.

어떻게 김군은 그렇게 유유히 사라질 수 있었을까.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시사저널은 익명을 요구한 터키 일간지 ‘투르키예’의 I 기자와 인터뷰를 했다. 그는 김군 사건에 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김군의 시리아행에는 ‘하산’이라는 인물이 포섭자로 등장한다. I 기자는 IS 문제를 취재한 적이 있고 그래서 이런 포섭자들을 몇몇 안다고 했다.


유럽 국가들이 자국민들의 시리아 밀입국을 막기 위해 터키 정부에 단속을 강하게 요구한 것으로 안다. 그런데 김군의 경우 아무런 제재 없이 시리아까지 넘어간 것 같다.

터키 정부는 과거부터 IS를 제거하는 것이 시리아의 알 아사드 정부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을 우려해왔다. 시아파인 알 아사드 정부를 수니파인 터키 정부는 좋아하지 않는다. 게다가 IS와 싸우는 쿠르드족은 터키의 최대 적 중 하나다. 그렇다 보니 IS에 합류하는 외국인 단속에 적극적이지 않다. 보통 단속은 국경에서 이루어지지 킬리스 같은 국경도시로 가는 도중에 막는 것은 어렵다. 최근에는 과거보다 열심히 단속한다지만 그래도 미흡하다.

킬리스가 시리아로 가는 주된 밀입국 루트인가.

안타키아(시리아 접경도시)도 중요한 밀입국 루트 중 하나다. 안타키아에는 시리아인이 많은데 이들이 외국인들을 시리아로 인도한다. 킬리스도 주요 루트다. 30~300달러만 주면 킬리스에서 시리아로 넘어갈 수 있다. 지난해 킬리스에서 시리아로 넘어가 IS에 몸담았다가 부상을 입고 돌아온 터키 소년이 있었다. 그는 20리라(1만원)를 내고 안내자를 따라 시리아로 들어갔다.

김군의 경우에는 터키로 오라고 권한 ‘하산’이라는 포섭자가 있었다. 이런 포섭자들은 어떤 인물인가.

IS 리크루터들은 온라인에도, 오프라인에도 존재한다. 아마 ‘하산’이 본명은 아닐 것이다. 내가 아는 리크루터들은 본명을 공개하지 않는다. 아마 IS 리크루터들이 가장 많은 곳은 이스탄불일 텐데 도시 곳곳에서 활동하고 있다. IS 깃발이나 문양이 있는 카페에도 이런 사람들이 있다.

안내자 없이도 시리아로 들어가는 게 가능한가.

가능하지만 경비 위치나 교체 시간을 안내자가 알기 때문에 따라가는 게 낫다. 미리 약속된 게 아니라 국경에 와서 밀입국 브로커를 통해 가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때로는 몸값을 받고 IS에 넘기기도 한다. 내가 아는 일본인은 지난해에 시리아로 취재를 가기 위해 밀입국 브로커를 고용했는데 2000달러에 자신을 IS에 넘기려고 해 터키로 급히 도망 왔다고 했다.

삶의 의미를 잃은 채 소속감을 찾으려 노력하는 김군과 같은 사람은 IS의 주요 타깃이다. 비슷한 사례는 전 세계에 퍼져 있다. IS에 가담한 경험이 있는 에르칸(25)도 이스탄불 파티(Faith)의 한 이슬람 사원에서 지하드 지지 모금을 하던 단체로부터 ‘스카우트’됐다. 그는 ‘슈피겔 온라인’과의 인터뷰에서 “그들은 주로 정신적으로 불안정하고 목표가 없으며 삶의 의미를 찾는 사람들을 골라 도움을 주겠다고 접근한다”고 말했다. 에르칸 역시 김군처럼 철저하게 혼자서 지낸 외톨이였다. 청소년 시절부터 본드를 흡입해 17세 때 이미 그의 몸은 완전히 망가졌을 정도다. 그는 IS 가담 후 시리아에서 일련의 끔찍한 일들을 겪은 뒤 그곳에서 도망쳐 나와 지금은 이스탄불에서 숨어 살고 있다. 처음 IS와 만난 파티 지역에는 갈 엄두도 못 내고 있다고 한다.

IS “삶의 의미 찾는 데 도움 주겠다” 유혹

김군과 같은 사람들을 IS는 전 세계에서 찾고 있다. 김군이 킬리스까지 가는 머나먼 여정에는 아무런 제재가 없었고 국경을 넘으려고 마음만 먹는다면 단속도 무용지물인 상황이다. 김군이 묵은 메르투르 호텔은 이 지역에서 밀입국 브로커들과 접촉하는 호텔로 유명했다. 터키 정부의 무관심에 우리 정부의 방관도 김군의 시리아행에 한몫했다. IS에 가입하고 싶다던 뜻을 지난해 10월에 밝혔지만 이를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 미국과 유럽 국가들은 터키를 통해 밀입국하는 사람이 늘어나자 IS 가담 가능성이 큰 사람들의 명단을 터키 정부와 공유하는 등 노력을 기울였지만 우리 정부에는 그런 명단 자체가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만약 시리아에 들어갔다면 김군은 부모의 품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한스-게오르크 마센 독일 헌법보호청장에 의하면 독일에서도 최소 24명의 미성년자가 IS의 선동에 넘어가 시리아와 이라크로 건너갔다. 이들 대다수는 이민자 가정 출신인데 전투 경험을 쌓은 뒤 독일로 다시 돌아온 청소년도 5명이나 된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극히 드물다. 프랑스 아비뇽에 살던 15세 소녀 노라 엘바티는 어느 날 방과 후에 사라졌다. 가족 몰래 만든 두 번째 페이스북 계정과 휴대전화로 파리의 지하디스트들과 연락 중이었는데 경찰이 휴대전화를 추적한 결과 터키를 거쳐 시리아 국경으로 이동한 것으로 파악됐다. 오빠가 직접 국경으로 찾으러 갔지만 이내 저지당했다. 프랑스 IS 전사 관리자라는 사람이 그에게 전화를 해 “네 동생은 자기 의지로 선택했다. 동생이 떠나고 싶다면 보내줄 것이지만 동생이 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들어가는 길은 열려 있어도 나오는 길은 험난한 곳으로 김군은 떠나간 셈이다.


SNS에 독버섯처럼 번지는 ‘IS 대원 모집’ 


경찰 관계자는 “디지털포렌식 수사를 통해 터키에서 실종된 김 아무개군이 최근 1년간 자신의 컴퓨터를 이용해 ‘IS’ ‘시리아’ ‘이슬람’ 등의 검색어를 총 517회 검색했다”고 밝혔다. 디지털포렌식은 컴퓨터·휴대전화 등 각종 디바이스나 인터넷에 남아 있는 디지털 정보를 분석해 범죄 단서를 찾는 수사 기법이다. 김군의 지난 1년간 검색 기록은 총 3000여 건으로 나타났는데 이 중 6분의 1을 IS 검색에 이용했다.

일방향적인 것보다 더 큰 문제는 쌍방향 접촉이다. SNS의 보급으로 IS와 같은 극단주의 테러단체들은 잠재적인 대원들과 사적인 접촉을 하기 수월해졌다. 그리고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친밀하게 소통하고 있다. 김군이 “IS 대원이 되는 법을 아는 분?”이라고 질문을 던지자 친절하게 답변이 달린 공간도 트위터였다.

확산 속도도 빠르다. IS는 고해상도 비디오를 흥미롭게 만들고 트위터 게시물에는 해시태그(특정 단어에 대한 글을 표현하는 기능)를 붙여 정보를 전 세계로 내뿜고 있다. 사용자 계정에 IS의 콘텐츠가 자동으로 올라가는 트위터봇도 있다. IS는 자신들의 전투원이 될 만한 사람들이 김군처럼 여가 시간의 대부분을 인터넷 사용에 몰두하고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공개된 SNS에서 접촉은 모든 단계의 처음이다. 이후에는 폐쇄형 메시지 서비스로 넘어간다. 친밀감이 커지면 개인 연락처를 교환하게 되고 최종적으로 터키 등에서 실제 만남이 이뤄진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방송통신위원회는 SNS 등에 게재된 테러 관련 정보 글에 대한 집중 단속에 나섰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은 테러리스트 그룹의 소셜 네트워크 이용을 차단하는 정책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해외 사업자가 운영하는 웹사이트의 경우 직접적인 시정 조치가 불가능해 관련 글의 원천적 차단은 어려운 실정이다. 가상 사설망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간단하게 우회할 수 있기 때문에 인터넷에서 특정 사이트를 차단시키는 것은 기술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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