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 김정은에 도전할 세력 없어”
  • 감명국 기자, 정리·제희원 인턴기자 (kham@sisapress.com)
  • 승인 2015.01.29 18:0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문정인 통일준비위원회 위원이 전망하는 2015년 한반도 정세

2000년 6월 제1차 남북정상회담 이후 개성공단이 들어서고, 금강산 육로 관광이 이뤄지는 등 구체적 성과들이 이어졌다. 2007년 10월 제2차 남북정상회담은 좀 더 진전된 합의 사항을 이끌어냈지만, 실제 실행에 옮겨진 게 거의 없었다. 그 차이는 무엇 때문일까. 1차 회담은 김대중 대통령의 임기 3년 차에 있었다. 반면 2차 회담은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해였다. 이 때문에 박근혜 대통령 임기 3년 차를 맞는 올해가 남북정상회담의 적기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분위기는 좋다. 박 대통령의 신년회견이나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제1비서의 신년사에서 ‘훈풍’이 느껴진다. 얼어붙어 있던 남북 관계에 돌파구가 마련될 것이란 기대감이 이어지고 있다. 그 중심에 대통령 직속 기구인 통일준비위원회가 있다. 문정인 연세대 교수는 1, 2차 남북정상회담 때 모두 대통령 특별수행원 자격으로 평양을 방문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장관급인 동북아시대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10년 진보 정권에서 굵직한 역할을 했던 문 교수가 현 정부의 통준위 민간위원으로 선임된 것은 주목할 만했다. 그의 역할에 남다른 기대감이 모아지고 있다. 연세대 김대중도서관 관장도 맡고 있는 문정인 통준위 위원을 1월20일 만났다. 

 

ⓒ 시사저널 이종현
통일부의 대통령 신년 업무보고에서 서울과 신의주·나진을 잇는 철도 계획이 발표됐다. 확실히 올해 들어 박근혜정부의 대북 관계가 전향적인 방향으로 가는 것 같다. 반면 제안만 있을 뿐, 구체성이 결여돼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나도 그 뉴스를 봤는데, 엄밀히 말하면 그 제안은 이번 정부 들어 새롭게 나온 게 아니다. 2007년 ‘10·4 남북공동선언’에서 하기로 한 것이었고, 그해 11월16일 남북 총리가 합의한 45개 사항에 들어 있는 것이다. 이를 이번에 통일부가 다시 거론할 때 2차 남북정상회담 합의 사항의 연장선상이라고 했더라면 북한의 반응을 이끌어내기가 더 쉬웠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않고 마치 새로운 제안인 것처럼 하니까 북측에서는 ‘남측의 의도가 뭔가’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지난해 3월 밝힌 ‘드레스덴 선언’도 마찬가지다. 이도 과거에 있었던 ‘6·15’와 ‘10·4’의 연장선에서 제안했더라면 북측이 수용하기 좋았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않은 데 문제점이 있다고 본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의 경우, 노무현 정부 임기 마지막 해여서 합의 사항들이 이뤄지지 못한 측면이 있다. 그런 면에서 보면 박근혜정부 임기 3년 차인 올해가 남북정상회담의 적기라는 분석이 나온다.

그렇다. 올해가 골든타임이다. 지금 해서 올해 안에 합의를 보면, 4년 차인 내년에는 구체적 실행에 들어갈 수 있다. 한국의 정치 상황에서 4년 차가 되면 레임덕이 오기 때문에 지금이 적기라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최근 박 대통령의 발언 등에서 변화가 느껴지는 듯하다.

대화를 할 수 있는 실질적 여건을 만들라는 등, 우리 정부가 북에 대화의지를 분명히 보이는 것 같다.  김정은의 신년사, 우리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 등을 종합할 때 남북 간 대화는 가능하리라 본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걸림돌들을 풀어야 한다.

걸림돌이라는 게 뭔가.

김정은의 신년사를 보면, 한미 군사훈련 중지, 북한의 자주권과 존엄 존중, 그리고 체제비방과 제도·체제 통일 의도 포기  등의 조건을 내걸고 있다. 이 조건들이 만족 된다면, (최고위급 회담을) 못할 것도 없다는 것이다. 꼭 하겠다는 건 아니고, 여건이 성숙되면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적극적인 제안이라기보다는 소극적 제안이다. 따라서 정상회담 전에 5·24 조치 해제, 금강산 관광 재개, 대북 전단 살포 중지 문제 등이 우선 해결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것들을 북한 측은 신뢰 구축의 하나로 보기 때문이다. 북의 강력한 메시지는 김정은이 3대 세습 체제하에서 지도자가 됐는데, 그것을 인정하고 흔들지 말아달라는 것이다. 

김정은의 신년사를 분석해 볼 때, 올해 남북 관계를 어떻게 전망해 볼 수 있을까.

김정은의 신년사를 자세히 읽어보면 눈여겨볼 대목 한 가지가 발견된다. ‘우리 사회주의가 훨씬 우수한 체제지만, 그것을 우리가 남쪽에 강요하지 않겠다. 그러니 남쪽도 북에 강요하지 마라.’ 이는 중요한 메시지다. 조선노동당 서문과도 대치되는 것이다. 규약 서문에는 통일전선 전략 노선이 아직 남아있다. 그런데 (김정은의 발언은) 남조선 적화통일 하지 않을 테니, 남도 우리를 치고 들어오지 말라는 상당히 수세적인 메시지인 셈이다. 이미 (대화의) 여건은 되어 있다. 문제는 우리 정부가 얼마나 과감히 나가느냐 하는 점이다.

2007년 10월3일 남북정상회담 특별수행원으로 참여한 문정인 위원(맨 오른쪽) 등 일행이 대동강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조선중앙통신 연합
일각에서는 지금 남북정상회담은 섣부른 게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당장의 정상회담은 섣부를 수 있지만, 그 분위기는 만들어져야 한다. 제일 중요한 것은 비공식 채널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현 정부에서는 모든 걸 공식 채널화하겠다며 비공식 막후 접촉이나 물밑 접촉을 금지하고 있는데, 정상회담은 비공식 채널로 모든 걸 준비해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정상회담이 남과 북 모두에게 이득이 되는 ‘윈-윈’ 게임이라는 합의가 사전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직은 그런 게 없다. 또한 어느 정도 상호 신뢰도 쌓여야 한다. 그러려면 김정은이 요청한 몇 가지의 요구 조건들 중 일부는 들어줘야 한다. 

올해로 김정은 체제가 4년 차에 접어들었는데 어떻게 보는가.

상당히 안정적이라고 본다. 북에서 김정은 체제를 위협할 수 있는 가장 조직화된 세력이 군인데, 황병서가 장악하고 있다. 쉽게 말해 조선노동당이 군에 대해 완전한 통제를 하고 있다고 본다. 그렇게 본다면 북에서 김정은에 도전할 세력은 지금 당장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1, 2차 남북정상회담 때 모두 특별수행원으로 평양 방문단에 참여했다. 3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린다면 어떤 점이 논의되어야 한다고 보는가.

1차 정상회담에서 6·15 공동선언을 채택함으로써 남북한 관계의 미래에 대한 총론적인 기초는 닦았다고 볼 수 있다. 2차 회담의 10·4 선언 같은 경우는 각론적인 처방을 담았다고 볼 수 있다. 3차 회담에서는 1, 2차에서 해결하지 못했던 것, 2차에서 노력했지만 미진했던 것들이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지금의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는 것에 대해 언급은 했지만, 실질적인 진전을 보지는 못했다. 3차에서는 군사적 신뢰구축을 구체화하고 종전선언을 통해 한반도평화체제를 구축하는 동시에 북한이 비핵화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방금 ‘북핵’ 문제에 대해 언급했지만, 북한은 미국과의 대화를 중시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오바마 정부가 북한에 대해 강경한 태도를 취하는 것 같다.

미국은 기본적으로 지금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원하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미국과 북한이 나빠진 건 핵문제 때문인데, 지금 핵문제를 해결하려 들기는커녕, 오히려 새로운 전선을 만들고 있다. 인권전선, 사이버전선이 바로 그 것이다. 특히 이번 소니사에 대한 사이버공격으로 북한의 이미지가 더 나빠졌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은 표면적으로는 북한의 위협을 명분으로, 그리고 실제적으로는 중국 견제를 위해 한·미·일 삼각공조를 강조해 왔다. 남북관계가 좋아지면 한미동맹의 명분이 퇴색할 수 있다. 그 때문에 미국이 북한에 더 강하게나가는 게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즉 한반도에 지속적 군사긴장과 갈등이 존속되어야 한미동맹의 존재이유가 더 정당화 될 수 있고, 한미동맹이 강화되면, 한·미·일 삼국 간 군사공조도 심화되어 ‘아시아 중시’ 정책에 따른 대중 견제가 순조롭게 이루어 질 수 있다고 보는 것 같다.

한반도 문제에서 역시 중요한 나라는 중국이다. 지난해까지는 북·중 관계가 경색 국면이었는데, 언제까지 가리라고 보나.

중국의 대북 정책 자체가 변했다고 보지는 않는다. 시진핑 주석이 표방하는 한반도 관련 3대원칙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고, 한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하는 동시에 모든 현안문제를 대화와 협상을 통해 풀어나가자는 것이다.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북한체제의 붕괴나 (남한 주도의) 흡수통일을 수용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최근 중국이 공식적으로 북한 편을 들기도 했다. 북한 측이 미국에 ‘한미연합 군사훈련 중지하면 우리도 추가 핵실험 중지하겠다’는 제안을 했는데, 미국이 이를 거부하자 중국 정부는 관영 신화통신을 통해 ‘미국은 왜 북한 제안을 수용하지 않느냐”는 입장을 밝힌바 있다. 이는 상당히 중요한 단서라고 본다. 중국 정부는 한국이 미국과 매년 3, 4월에 실시하는 ‘키리졸브 연습’과 ‘독수리 훈련’에 대해 상당히 껄끄러워하는 태도를 보여 왔다. 이 점에서는 중국과 북한의 공감대가 형성되어있다고 본다.

중국 학계에서는 ‘남한의 흡수통일을 반대하지 않는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학계 의견과 시진핑 정부 입장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인가. 

완전히 다르다. 그런 (학계) 사람의 숫자가 늘어나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과거에는 북한이 중국의 자산이라고 생각했다가, 지금은 오히려 부채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국내 일각에서는 박 대통령이 외교를 잘해서 지금 시진핑 정부는 우리 편이라고 보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완전히 아전인수 격 해석이다. 우리 정부는 시진핑 주석이 ‘북한의 비핵화’라는 표현을 썼다고 하지만, 중국 외무성 문건 어디에도 ‘북한의 비핵화’란 표현은 없다. ‘한반도의 비핵화’라고 되어 있다. 이는 엄격한 의미에서 북핵도 반대하지만, 미국의 핵우산에 대해서도 절대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북·중 관계보다 더욱 경색 국면인 게 지금의 한·일 관계다. 장기화될 경우 한반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는가.

물론 한국과 중국을 자극하는 아베 총리의 언행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따라서 국민정서차원에서라도 박 대통령이 아베 정부에 대해 갖는 지금의 원칙은 계속 고수하는 게 좋을 것이다. 하지만 국가이익 측면에서 본다면 현재 벌어지고 있는 한일 교착상태가 바람직하지 않다. 미국과 중국이 ‘G2’라는 양강 지도체제를 구축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한·일 협력은 필수적이다.  향후 적당한 명분을 만들어 한일정상회담을 해야 한다고 본다.  

현재 대통령 직속 기구인 통준위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데, 진보 성향 목소리를 대변할 기회는 있나.

통일준비위원회는 거대한 기구다. 민간위원 40명, 장관위원 14명, 그리고 6명의 국책연구원 원장들이 준비위원들이고 게다가 비슷한 수의 전문위원이 또 포진해 있다. 회의 한번 하면 100명씩 온다. 그러니 발언 기회가 제한되어 있다. 그러나 각 분과위원회 별로 적극적 내부토론을 한다. 그런 점에서 의미는 있다.

일각에서는 통일부와의 중복성 문제를 제기한다.

심각한 문제라 본다. 통준위는 대통령 자문기구로 두고 과거처럼 통일부장관을 부총리로 격상시켜서 대북관련 업무를 총괄하게 하는 게 더 바람직한 것 아닌가 한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